이 뮤지컬이 내년이면 한국 초연 10주년이라는군요. 이 작품은 그렇습니다. 처음 접할 때는 신선한 구성과 기발한 스토리에 소름이 돋는 감동을 느끼게 되고, 다음 시즌부터는 이미 반전의 묘미를 알고 있는 데도 새로운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려 다시 공연장을 찾게 되죠. 그래서 이미 9년째 공연되고 있지만 캐스팅이 공개될 때마다 가장 관심이 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 대학로에서 가장 주목 받는 남자 배우, 또는 한 배우의 전혀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공연. 네,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뮤지컬 <쓰릴 미> 얘깁니다. 뮤지컬 <쓰릴 미>가 지난 2월 19일부터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2관에서 공연되고 있는데요. 이번 시즌 여러분은 어떤 배우가 가장 눈에 들어왔나요? 기자는 단연 강동호 씨였습니다.
“전역한 지 두 달 조금 넘었어요. 군에 있을 때 무엇보다 연기를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한 1~2주 쉬다 바로 <쓰릴 미> 연습에 들어갔죠.”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동호 씨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진짜 사나이가 된다는데 그래서일까요?
“군대 가서 많이 배웠어요. 배우는 아무래도 자유로운 직업이고 규칙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먼데, 군대에서는 규칙대로 생활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조교를 했어요. 조교를 하려면 성적이 좋아야 하거든요. 저보다 열 살 어린 친구들과 경쟁했죠(웃음). 다른 사람한테 싫은 소리도 잘 못하는데, 조교는 역할 자체가 제 성향과는 달라서 배우로서는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제대 후 첫 작품이라 신중하게 골랐을 텐데, <쓰릴 미>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연기 공백도 있었는데 소극장 2인극은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요.
“제가 무대는 2005년에 데뷔했거든요. 무대에 선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까 관객들 앞에서 연기하는 게 가장 편하고 행복해. 그래서 부담보다는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쓰릴 미>는 2008년에 했던 작품인데, 그때 아쉬움이 커서 꼭 다시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군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이 더욱 커졌는데, 제 한을 풀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2인극이고, 연기적으로 에너지도 많이 쓸 수 있고. 그래서 고민 없이 바로 좋다고 했어요.”
8년 전과는 작품이 많이 달라졌죠?
“네, 일단 좀 더 세련돼졌다고 할까요? 돌이켜 생각했을 때 좀 촌스럽다 생각했던 부분들이 세련되게 다듬어졌어요. 대사나 가사도 바뀐 부분이 많고. 그동안 다른 배우들이 찾아낸 것들도 많아서인지 훨씬 더 디테일해졌고요.”
그러고 보면 강동호 씨가 <쓰릴 미>를 20대 초반, 굉장히 어릴 때 하셨네요. 작품에 참여하는 스스로도 달라진 점들이 느껴지나요?
“그렇죠, 지금은 제가 30대고. 확실히 시야가 넓어지고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리처드(그)라는 역할 자체가 두 인물 중에서는 리드를 하는 편인데, 리드를 하려면 여유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여유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였던 면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면에서 확실히 노련해졌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쓰릴 미>에 참여하는 배우들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마 상대 배우들이 낯설 것 같은데, 작품에서 만날 때는 어떤가요?
“세 배우가 참 달라요. 일단 정욱진 배우와는 <광화문 연가2>에서 코믹한 장면을 함께 연기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서로 참여하는 줄 모르고 다시 만났어요. 극중에 서로 키스도 해야 하니까 처음 연습할 때는 진행이 안 되더라고요, 보기만 하면 웃음이 터져서. 그래도 막상 공연에 들어가니까 역시 잘 맞아요. 가장 사이코처럼 느껴지고(웃음). 정욱진 배우와 강영석 배우는 무척 대조적이에요. 실제로 2인조 범죄에서는 한 명이 리드라면 다른 한 명은 다 맞춰주면서 희생하는 경우가 많대요. 이상이 배우는 그것에 딱 부합하는 배우예요. 헌신적이고, 일편단심 해바라기 같고, 그래서 마지막 반전도 크고요. 반면에 강영석 배우는 잘 안 져요. 자기 할 말 따박따박 다 하고. 그래서 리처드는 당근과 채찍을 줘가면서 더 뱀처럼 굴어야 해요.”
상대 배우에 따라 리처드도 달라지는 걸 보니 정말 여유가 많이 생기셨네요.
“맞아요, 예전에는 상대 배우는 보이지도 않고 제 할 거 하느라 바빴을 거예요(웃음).”
<쓰릴 미>를 하게 되면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질문인데요. 두 인물 모두 극단적이기는 합니다만, 리처드(그)와 네이슨(나) 중에 어느 쪽에 가깝나요? 특히 연애할 때요.
“글쎄요, 겉으로 드러나는 말투나 성향은 평상시에도 부드럽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래서 네이슨 쪽에 가깝지 않나 생각되는데, 실제 성격은 리처드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연애할 때도 무척 자상한 것 같대요. 자상한 게 아니라 자상한 것 같대요(웃음). 매너 있게 대하고 얘기도 잘 들어주는데, 고집도 세고 결국은 제 마음대로 하는 면이 있어요. 아이러니하죠.”
표정이나 사진을 찍는 각도에 따라서도 굉장히 다른 이미지로 보입니다.
“이번에 <쓰릴 미>는 리처드로서 표현하고 싶은 모습을 최대한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어쨌든 연기 공백도 있었고, 공연 포스터나 사진이 가장 먼저 오픈되니까 기대감을 심어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나름 정성들여 찍었어요. 예전에 시니컬하고 차가운 느낌의 리처드만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여유 있고 능글맞은 모습까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강동호 씨가 20대 중반일 때 인터뷰했으니까 꽤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데, 뭐랄까요,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에서처럼 예전에는 누나들이 좋아하는 밝고 귀여운 느낌이었다면 실제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드라마나 영화 작업도 하고, 나이도 더해지고,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겠죠?
“정확하게 말씀하셨어요. ‘대범’이가 딱 제 이지미죠(웃음). 20대에는 좀 어리버리하고 순하고 착한 이미지가 주를 이뤘는데, 그런 모습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지만, 배우로서 길게 보자면 한계가 있겠더라고요. 배우는 무대 위에서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연기해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더 배우답게 보이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어요. 기본적인 성향은 비슷하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성격이 조금 바뀌기도 했고요.”
30대 초반이고, 공백도 있었으니까 지금 배우로서 이미지 변신하기는 딱 좋은 시기네요. <쓰릴 미>의 리처드는 더없이 좋은 선택인데요?
“맞아요, 사실 제작사 측에서는 처음에 네이슨을 말씀하셨어요. 네이슨이 제 기본적인 성향에는 잘 맞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편하게 접근할 수도 있는데, 이제는 방향을 좀 틀어야겠다 생각했고, 앞으로는 조금 더 남자다운 이미지를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리처드를 하겠다고 했어요. 다행히 팬분들도 군대 다녀와서 변한 모습이 보인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나중에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조금 더 남자 냄새 나는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무대에서도 그동안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했는데 이제 더 깊은 멜로를 하고 싶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으니까 연극도 하고 싶고요. 하지만 <쓰릴 미> 이후에는 남자랑 하는 작품은 안 하고 싶어요. 군대에서도 2년 동안 남자들만 봤으니까(웃음).”
특히 남자배우는 30대에 훨씬 짙고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시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는 만큼 각오 한 마디 들어볼까요?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나름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을 텐데도 아쉬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연기에 더 큰 열정을 갖고 덤벼야겠다, 그런 각오로 <쓰릴 미>도 준비했어요. 한 분야에서 10년 동안 미쳐서 매달리면 달인이 된다고 하잖아요. 앞으로 10년은 확실히 미쳐서, 정말 배우답게 해보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잔잔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자신의 생각과 결의를 조심스럽게 말하는 강동호 씨를 보고 있자니 새삼 ‘흘러간 시간’이 느껴졌습니다. 대학로에서 역시 기자와 배우로 만났지만, 예전과는 다른 유리벽 같은 게 존재했다고 할까요? 물론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는 연기력과 이미지로 대중과 만나는 사람이니, 착한 남동생보다는 세련되고 범접하기 힘든 남자가 앞으로의 강동호 씨에게는 더 다양한 기회를 열어줄 테고요. 그렇게 ‘배우’라는 롤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겠죠. 그런 차원에서 <쓰릴 미>가 더욱 기대되는 건 기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죠? 강동호 씨가 ‘진짜 사나이’가 돼서 돌아왔는지, 그의 앞으로의 10년을 리처드를 통해 확인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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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몽스타1980
2017.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