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근대적 의미의 최초의 미스터리 작품으로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1841년)을 꼽는다. 에드거 앨런 포는 잘 알려진 것처럼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시작은 분명히 그렇지만, 미스터리의 종주국은 미국보다는 영국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늘날 너무도 익숙한 미스터리의 장르의 거장들, 예를 들어 아서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등은 모두 영국인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발아한 영국 미스터리는 세계 1차 대전과 세계 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황금기라 불린다)에 이미 형식적으로 완결됐다. 당시 전 세계에 유행하던 ‘영국식 미스터리’는 1920년대 후반에 ‘하드보일드’라는 새로운 흐름을 맞이한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급변하던 미국에서 탄생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은 상류층이 아닌 하류층의 미스터리였고,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만한 기묘한 사건이 아닌 현실의 범죄를 다루었으며, 보수적이기보다 진보적이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엇비슷하게 발전하던 영어권의 미스터리는 그 지점에서 각각 방향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그 찬란한 전통을 생각해 볼 때, 국내 시장에 영국 미스터리가 풍성하게 소개됐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드물게 전작이 발행된 애거서 크리스티나 끊임없이 재 출간되는 셜록 홈스 시리즈를 제외하면 영국 미스터리는 한 해 10∼20여 권 정도 소개됐다. 매년 국내에 출간되는 미스터리는 대략 250권 정도인데, 채 10퍼센트를 넘지 못하는 점유율이다. 이는 척박하기 그지없다는 국내 미스터리보다 낮은 수준이다.
국내에 소개된 해외 미스터리 작품은 꽤 오랜 기간 동안 일본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후 영어권 작품은 대부분 미국 시장을 통해 유입됐다. 최근에는 독일과 북유럽 작품이 인기를 끌었으니, 적어도 국내 시장에서 (고전을 제외한) 영국 미스터리의 공동은 꽤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된 셈이다. 그나마 최근 ‘BBC 셜록’ 같은 영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나를 찾아줘』 유의 여성 스릴러가 상업성을 인정받으면서 국내에 새롭게 소개되고 있는 추세이다.
올해 1월에만 벌써 세 권의 영국 미스터리가 출간됐다. 소피 해나의 『리틀 페이스』, 벨린다 바우어의 『블랙랜드』, 사만다 헤이즈의 『언틸유아마인』. 모두 2000년대 이후 작품이며, 유행을 반영하듯 여성 작가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다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이지만, 그중 소피 해나는 유독 눈에 띈다.
소피 해나는 소설가이기 전에 시인으로 먼저 알려졌다.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하고, T. S. 엘리어트상 최종 후보에 오를 만큼 촉망받는 시인이었던 그는 2006년 『리틀 페이스』를 시작으로 범죄 소설을 연이어 발표한다. ‘스필링 범죄수사반 시리즈’로 알려진 이 시리즈는 현재 9권까지 출간됐으며, 드라마로 제작돼 크게 성공했다. 이후 소피 해나는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의 공인 아래 명탐정 에르큘 푸아로가 등장하는 새로운 시리즈를 저술하는 등 그야말로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리틀 페이스』는 힘들게 딸을 출산한 이후 처음으로 외출한 앨리스 팬코트에서부터 시작된다. 부유한 시어머니가 선물한 회원권으로 최고급 헬스클럽을 둘러보지만 앨리스는 왠지 딸이 보고 싶어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무슨 일인지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고, 남편은 잠이 들어 있다. 불안한 마음에 아기 침대로 향한 앨리스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절규한다. 사랑하는 플로렌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가 납치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앨리스와 달리 남편 데이비드는 자기 딸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급기야 그녀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사건이라 할 수도 없는 비정상적인 상황. 어쨌거나 그들은 DNA 검사를 해보기로 한다. 하지만 검사 결과가 밝혀지기 하루 전 앨리스와 아이가 동시에 사라진다.
『리틀 페이스』는 사건의 스케일이나 기묘함보다 인물의 내면과 등장인물의 내밀한 관계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쉴 새 없이 1인칭 시점이 바뀌는 동안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심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앨리스는 망상에 빠진 걸까? 아니면 정말 아이가 납치된 것일까? 만약 납치됐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고전으로 칭송받는 황금기 영국 미스터리는 대부분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했다. 반면 현대의 작품들은 수수께끼라는 무게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불합리함을 간과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섬세한 심리와 계급 의식이 얽히고설킨 『리틀 페이스』 속 진실은 이러한 현대 영국 미스터리가 가진 고유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국 미스터리라는 울타리 안에는 찬란한 전통에 어울리는 거장과 걸작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이 국내에 소개돼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길 기대해본다.
폭스 이블
미네트 월터스 저/권성환 역 | 영림카디널
한적한 시골 마을, 유서 깊은 저택, 의심스러운 사람들. 센스테드 장원의 저택에서 여주인이 시체로 발견되고, 남편은 폐인처럼 저택에 틀어박힌다. 가문의 재산을 노리는 탕아가 돌아오고, 마을 사람들은 남편이 범인이라고 수근대기 시작한다. 영국 고전 미스터리의 클리셰를 현대에 풀어낸 이 작품은 2003년 CWA 골드대거를 수상했다.
야수는 죽어야 한다
니콜러스 블레이크 저/이순영 역 | 황금가지
제2의 황금기를 이끌어낸 작가로 평가받는 니콜라스 블레이크는 계관시인 세실 데이 루이스의 필명이다.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아들을 잃은 추리소설가의 기록으로 시작되며, 중반부에 이르면 화자가 기록 밖으로 빠져 나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인간의 본성과 범죄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걸작이다.
이니미니
M. J. 알리지 저/전행선 역 | 북플라자
연인, 모녀, 친구 등. 밀폐된 장소에 뗄 수 없는 두 사람을 가둔 범인은 한 개의 총알이 든 권총을 주며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한 사람을 죽여야 네가 살 수 있다.' 『이니미니』는 무려 117챕터로 구성돼 있으며, 챕터는 카메라의 쇼트처럼 빠르게 전환된다. 속도감으로 무장한 탁월한 페이지터너로 요즘 유행하는 웹소설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작품이다.
[연속 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