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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미스터리 소설의 트릭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제1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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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가 어떤 트릭을 이용하고 있는지, 이 자리에서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다만 이런 유의 작품을 가장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라면, 작가가 설치한 덫에 무작정 발을 들이미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작가의 배신’을 전제로 하기에, 꼼꼼하게 따지고 들면 독자의 손해다. 미스터리의 가장 큰 즐거움인 경이로움을 놓칠 수도 있다.

장르소설 중 미스터리는 가장 많은 변주가 이뤄지는 영역이다. 이제 ‘범죄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대충 쓸어 담기에는 버거울 정도이다. 하지만 ‘무언가’가 있기에 어떻게든 알아서 나뉘는 것이 또 장르소설이다. 이 글은 꾸준히 출간되는 신간들을 통해 미스터리 소설의 ‘무언가’를 더듬어서 이번엔 또 어떤 변주가 있었는지 추리하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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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는 곡절이 많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단편이었다가 장편으로 다시 씌어졌고,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심까지 올랐으나 탈락했다. (다행히 그해 수상작은 없었다.) 이후 잡지에 연재됐다가 세 번이나 재출간됐다. 작가마저 사망한 지 3년째 되던 해,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작품에게 또 하나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프라인 서점 분쿄도에서 ‘복간 희망 도서’ 리스트를 기획한 것. 거기 선정된 『모방살의』는 마침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절판을 거듭한 1970년대 작품이 단기간 동안 일본 내에서 30만 부 넘게 팔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트릭 때문이었다. ‘시대를 앞선, 이제껏 보지 못한 놀라운 트릭.’ 마치 유적이라도 발굴한 듯, 일본 독자들 사이에 입소문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최초의 근대적인 미스터리 소설인 『모르그 거리의 살인 사건』(1841)에서 탐정 오귀스트 뒤팽은 까다로운 문제와 마주한다. 누구도 나갈 수 없고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에서 일어난 두 모녀의 끔찍한 죽음. 이 밀실은 아주 작은 트릭으로 구성돼 있는데, 트릭은 작품 전체를 떠받친다. 트릭이 밝혀지면, 사건도 해결되고, 소설 또한 종결된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트릭은 가장 중요하다. 고전적인 미스터리는 대개 ‘놀라운 사건 - 탐정의 논리적 추리 - 뜻밖의 결말’이라는 구성을 따르고 있는데, 교묘하게 설치된 멋진 트릭은 결말 부분에서 짜릿한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다. 속이기 위해 고민하는 작가와 기꺼이 도전에 응하는 독자. 이상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란 이처럼 작가와 독자의 대결 구도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하지만 트릭은 작가에게 큰 부담이 된다. 좋은 트릭이 화수분에서 샘솟을 리도 없고, 한 번 사용한 이상 다시 써먹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잘 쓴 작품이라 해도 트릭이 지지부진하다면 작품의 평가가 바닥으로 추락하기 일쑤여서, 트릭은 그야말로 혹독한 양날의 검이라 하겠다. 1950년대 얘기긴 하지만,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는 2천 권의 작품을 분석해서 트릭을 802개로 정리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이제 사용할 수 있는 트릭은 더는 없다고.

 

최근 미스터리 작품들은 더는 독자를 속이려 들지 않는다. 반전보다는 범죄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거나, 범죄가 발생한 사회의 생채기를 드러내려는 작품들이 훨씬 많다. 그래도 소수이긴 하지만 독자에게 멋진 도전장을 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작가들도 있다. 이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트릭을 조합해서 이용한다.

 

첫째는 물리적인 트릭이다. 걸쇠 밑에 얼음을 놓고, 돌을 달아 흉기를 없애는 등 장치를 이용한 트릭이다. 이런 트릭은 당시에는 기발했지만 대부분 과학의 발전에 맥을 추지 못했다. 요즘은 다른 트릭의 보조 수단으로 종종 사용된다.


둘째로 심리적인 트릭도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단편
『도둑맞은 편지』에서 멋지게 선보인 바 있는 기법으로, 별다른 장치 없이 독자의 착각을 유도하고 맹점을 찌른다. 1인 2역, 알리바이 조작, 시간의 착각 등은 이러한 심리 트릭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다.


셋째, 독한 독자들과 맞서기 위해 등장한 서술 트릭도 있다. ‘작가는 공정한 정보를 제시할 것’이라는 원초적인 믿음을 배신하고 덮어놓고 오독誤讀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완벽하게 사용된다면 가장 놀라운 반전을 주지만, 어설프게 사용하면 지저분해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 또 영상화도 어렵다.

 

다시 『모방살의』로 돌아가서, 작품은 7월 7일 오후 7시, ‘사카이 마사오’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유리컵의 청산가리, 안에서 잠긴 현관문, 유서와도 같은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이란 제목의 소설까지. 모든 증거는 자살을 가리키지만, 동료 ‘쓰쿠미 신스케’와 연인 ‘나카다 아키코’는 이를 믿지 않는다. 자발적인 그들의 수사는 한 챕터씩 번갈아 기록되는데, 이 교차 서술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모방살의』가 어떤 트릭을 이용하고 있는지, 이 자리에서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다만 이런 유의 작품을 가장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라면, 작가가 설치한 덫에 무작정 발을 들이미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작가의 배신’을 전제로 하기에, 꼼꼼하게 따지고 들면 독자의 손해다. 미스터리의 가장 큰 즐거움인 경이로움을 놓칠 수도 있다.

 

 

 

물리 트릭 추천,  『클락성 살인 사건』



1999년 세기말, 몰락하기 직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중2'스러운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 석궁을 손에 들고, 유령과도 같은 존재인 '게슈탈트의 조각'을 인지하는 탐정 미나미 미키. 그 앞에 갑자기 루카라는 소녀가 나타나 자신이 거주하는 클락성의 스킵맨을 없애달라고 의뢰한다. 취향을 타는 작품이긴 하지만, 거대한 물리 트릭 하나는 기가 막힌다. 

 

 

 

 

 

 

 

심리 트릭 추천,  『황제의 코담뱃갑』



밀실의 마스터이자 오컬트 미스터리의 대가 존 딕슨 카의 1940년대 걸작. 일단 분량도 많지 않고 내용도 선정적이거나 부담스럽지 않아 미스터리 소설에 막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황제의 코담뱃갑>은 '독자를 속이는 기법'에 대한 모범 답안 같은 작품이다. 트릭은 작품 서두에 과감하게 제시돼 있고 그 칼끝은 등장인물뿐 아니라 독자마저 겨냥한다.

 

 

 

 

 

 

 

서술 트릭 추천,  『살육에 이르는 병』



일단, 19금이다. 심신이 허약하거나 특정 묘사에 약한 분들은 읽지 않는 편이 좋다.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는 세 명의 시선을 나누고 시간 순으로 재배치하여 놀라운 마법을 만들어낸다. 장담하건대 띠지에 적힌 것처럼, 마지막에 이르면 반드시 앞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최고 장점은 복기하는 즐거움. 40여 개가 넘는 단서가 공정하게 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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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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