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4일, 미호 출판사와 컬쳐워크가 마련한 특별한 투어 행사가 열렸다. 미호 출판사의 신간 『작은 가게』 출간 기념으로 기획된 이 행사는 작은 가게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소개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경복궁 서문 영추문에서 시작해 갤러리, 이상의 집, 대오서점, 윤동주 하숙집 터 등 서촌만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고, 티베트 난민을 지원하는 ‘사직동 그 가게’에서 짜이를 맛보는 시간을 가지며 컬쳐워크의 아트가이드가 설명하는 서촌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작은 가게』는 이웃처럼 친근한 가게, 가족, 친구 혹은 연인이 함께하는 가게, 나만 알고 싶은 우리 동네 골목 등 일상에서 지나쳤던 골목과 가게를 다시 불러 내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큐레이션 서비스가 중요해진 것처럼, 잘 찾은 가게들만 모은 이 책은 독자의 소소한 골목 여행에 도움이 될 만 하다.
서촌이 시작되는 곳, 영추문과 보안여관
서촌으로 불리는 지역은 경복궁 서쪽을 지칭하는 말로, 예전 양반과 왕족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이다. 특히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살기로 유명하다.
가을을 맞이하는 문, 영추문에서부터 투어를 시작했다. 조선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으로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고종 때 경복궁 재건과 함께 다시 지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첫머리를 보면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라는 명을 받고는 ‘연추문’으로 들어갔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연추문이 바로 영추문이다. 지붕의 조각과 잡상에 관한 내용을 들으며 사진을 찍었다.
통의동 보안여관은 80여년의 세월동안 이름 그대로 ‘여관’으로 사용된 공간이었다. 2009년 문화 그룹 메타로그가 여관 안에서 전시를 열면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통의동은 겸재 정선이 노닐었던 곳이자, 추사 김정희가 태어난 곳이다. 일제시대 시인 이상이 ‘오감도’에서 묘사한 ‘막다른골목’도 통의동의 골목을 가르킨다. 이렇게 예술가들이 삶의 흔적을 남기고 갔던 통의동의 여관이 문화전시공간으로 바뀐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골목을 들어서자 통의동 백송 터가 보였다. 통의동의 백송은 1962년 천연기념물 4호로 지정되었으나 1990년 태풍으로 인하여 백송이 쓰러져 고사했다. 이에 고사된 나무 아래 밑동만 남게 되었는데, 아쉬웠던 사람들이 살아있을 당시 솔방울을 가져다 묘목을 만들었던 백송 4그루를 주변에 심어 터를 남겨 기리고 있다.
이상의 집에서부터 통인시장까지
서촌 골목을 걷다보면 현대 건물 사이로 기와집이 하나 끼어 있다.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에 위치한 ‘이상의 집’은 문학가 이상(李箱, 1910-1937)이 세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살았던 집 터에 일부에 자리한 문화공간이다. 이상을 기억하고 지역을 사랑하는 모든 이를 위한 공간으로, 개방시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이상과 관련된 도서가 구비되어 있어 공간 내에서 열람도 가능하다.
윤동주 하숙집 터와 수성동계곡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친일파로 알려진 조선후기 관료 윤덕영이 1930년대 딸을 위해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박노수 화백이 살면서 2011년 종로구에서 인수해 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운영한다.
윤동주 하숙집은 터만 존재했다.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하숙생활을 하고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등이 여기서 쓰여졌다.
인왕산 동쪽 아래에 있는 계곡이다. 겸재 정선이 그린 산수화 <수성동>이 여기를 배경으로 그려졌으며, 그림에서 보이는 계곡에 걸쳐놓은 돌다리는 현재도 남아있다. 옥인아파트가 들어섰다가 철거된 이후 예전의 모습을 복원하는 사업이 진행되었고 현재는 자연 계곡의 모습을 되찾았다. 철거된 아파트는 일부 벽을 남겨 이 곳에 아파트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직동 그 가게, 그리고 다른 가게들
두 시간여의 서촌 골목길 탐방을 마치고 ‘사직동 그 가게’에 들어섰다.
‘사직동 그 가게’는 티베트 난민을 지원하는 록빠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가게다. 여기서 생긴 수익은 운영비를 제외하고 전액 티베트 난민을 돕는 데 쓰인다.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도 모두 자원봉사로 운영한다. 짜이 티를 마시자 강한 생강 향과 함께 달달한 맛이 골목길을 돌아다닌 다리를 풀어주었다.
서촌에는 <사직동 그 가게>말고도 작고 예쁜 가게들이 많다. 서촌이 유명해지면서 여기도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서지만,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가게들이 골목을 색다르게 빛내고 있었다. 인테리어가 예쁜 가게, 메뉴가 특이한 가게, 콘셉트가 신선한 가게….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사랑받는 작은 가게들을 둘러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도시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20~30대 젊은 층은 곳곳마다 프랜차이즈 가게가 세워진 도시를 편하게 여기면서도 남들이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개인은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가게와 골목이 가진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불러내고, SNS 등을 통해 알려진 골목은 입소문으로 상권이 살아난다.
이번 주말, 알면 더 재밌는 작은 가게의 소소하지만 특별한 뒷이야기와, 스쳐 지나가며 보던 길과 골목이 갖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그냥 지나쳤던 골목 가게들이 새롭게 보이면서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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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 vol.1 with미호 편집부 편저 | 미호
많은 가게들이 트렌드만 좇아 우후죽순 생겼다 사라지고,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구석구석 들어서는 가운데에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반짝이고 있는 가게들이 있다. 가까이에 ‘함께’하는 이웃 같은 가게, 가족, 친구, 연인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 가게, 하나의 가게 안에 여러 분야가 ‘함께’ 있는 가게. 이 세 카테고리 안에서 14개 가게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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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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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2016.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