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다인. 19살. 친구들은 이제 고3이 됐다. 하지만 그는 아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삶의 정체가 궁금해 엄마에게 던진 질문 “엄마는 꿈이 뭐야?”로 시작된 세계여행 덕분이다. 엄마는 그가 직접 세상을 겪으며 공들여 생각할 시간을 갖길 바랐다.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냈으면 했다. 고민은 짧았고 결심은 빨랐다. 여행은 곧 시작됐다. 과감한 좌충우돌 여행이었다. 이 도전적인 선택에 대해 엄마 박민정은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한 번도 공들여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인생의 가장 큰 화두를 진지하게 시간 들여 오랫동안 고민해보지 못한 거죠. 그 정도 시간을 들일 거면 세상을 보면서 생각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세계 여행을 생각한 거니까요.”
딸의 나이 17살에 떠나 그렇게 2년. 지금 변다인은 걱정이 많다면서도 웃는다. 불안할 법도 한데 표정이 해맑다. “지금도 걱정은 많지만 해보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요. 여행에서 많은 걸 배운 것처럼 일상에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라는 말이 무척 성숙하다. 여행은, 딸과 엄마, 모두를 성장시킨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 여행은 ‘잠깐 휴식’이 아니라 ‘치열한 공부’ 쪽에 더 가까웠던 것. 그나저나 궁금하다. 변다인은 꿈을 찾았을까? 사실 아빠는 꿈을 찾지 못해도 전혀 상관없다고, 못 찾을 가능성이 100배는 더 크다고, 단지 고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행을 걱정하는 딸에게 말했었다. 변다인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녹음기를 켜고 꿈에 대해 묻고 다녔었다. 그러니 꿈을 찾았는가 하는 질문은 어쩌면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변다인
3천만 원 대출을 받아서 시작한 갑작스런 여행
갑자기 떠난 여행인 만큼 일정을 소화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순간의 감정을 잘 담아냈어요. 기록은 어떻게 했나요?
변다인: 일기를 썼죠. 되게 힘들었어요.(웃음) 아침에 일어나서 밥 차려 먹고, 나가서 밤에 들어올 때까지 계속 돌아다니다가 숙소 들어와 씻고, 밥을 또 해먹고, 그렇게 여행을 했는데요. 그러고 나서 일기까지 쓰려면 진짜 힘들었어요. 나갔다 오면 밤 9시 정도 됐고요. 씻고 정리하면 더 늦으니까 일기 쓰기가 힘들었죠.
박민정: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인이가 인터뷰를 했어요. 인터뷰는 다 녹음을 해야 해서 기록은 일기를 쓰는 것으로 했죠. 일기까지 쓰고 나면 12시 전에는 자기가 힘들었어요.
여행지에서 밥을 해먹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박민정: 밥값이 저렴한 곳은 사먹으면 되니까 그 부분이 해결되면 좋았을 텐데 사먹을 만큼 저렴한 곳이 많이 없더라고요. 매 끼 사먹을 여유는 없었으니까요. 여행하면서 먹는 걸 대충 해결했어요. 아침도 못 챙겨 먹을 때가 있었는데 점심도 거의 대충 지나갔으니 두 끼 이상을 거의 못 먹었죠. 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웃음) 갑자기 여행을 간 거라 저희는 경비가 문제였어요. 3천만 원 대출을 받아서 시작한 거거든요. 가기가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고민하면 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고, 무조건 질러보자고 해서 간 거예요.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평범한 가정에서 그만한 돈을 쌓아놓고 살진 않잖아요. 그렇게 간 거라서 식비를 많이 아껴야 했어요.
변다인: 배고플 때 밥 먹고 싶은데 엄마가 밥을 안 사줘서 너무 힘들었어요.(웃음) 보통 해먹었는데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저는 평소에 하루 세 끼 꼭 챙겨먹고 간식까지 먹고 그랬었거든요. 일단 여행 나가는 첫날 엄마가 “먹는 건 아예 생각도 하지 마” 하는 거예요. 먹는 여행이 아니라면서요. 근데 정말 이렇게까지 안 먹을 줄 몰랐어요.
다인 씨의 질문, ‘엄마는 꿈이 뭐야?’에서 시작된 충동적 여행이었잖아요. 이 여행을 책으로 담겠다는 마음이 처음부터 있었나요?
박민정: 일단은 일기는 계속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책이 나오든 안 나오든 간 것에 대한 기록이 있어야 뭔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책이 출간되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책을 위해서 여행을 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기록은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 할 수 있는 건 하자고 생각한 거죠.
보통은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고 떠나는데, 세계 여행을 이렇게 떠났다는 게 참 대단해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었을 텐데요.
변다인: 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긴 여행은 처음이니까 이런 여행을 한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고, 모든 게 다 새로웠어요. 처음에 러시아 갔을 때도 건물들만 봐도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계속 만져보고 그랬거든요. 딱히 장점이라고 꼽을 게 없이 다 정말 좋았고요. 워낙 준비 없이 떠났기 때문에 그런 게 힘들었죠. 긴 여행을 위해서는 체력도 길러야 한다는데 제가 정말 체력이 없거든요.(웃음) 그런 대비를 못 했던 게 아쉽죠. 사실 여행에서 힘든 과정이 많았어요. 배를 놓치거나 위험한 도시에 밤에 떨어지는, 문제라 생각할 수 있는 상황들이 많았는데요. 엄마가 추진력 있게 하기도 했고, 저도 헤치고 나가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좀 생겼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 문제들이 있어서 여행이 재미있기도 했어요.
박민정: 제 경우 어떤 결정을 오래 끌면 하지 못하거든요. 뭐든 과감하게 하려고 하고, 결정은 하루 이상 끌지 않아요. 일단 결정한 건 다른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여행하면서 느낀 게 다인이는 신입 사원이고 저는 사장 같다는 거였는데요.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이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잘 가르쳐서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여행을 단순히 놀다 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저는 일단 힘든 걸 많이 겪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예기치 않은 상황들에 대처하는 일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것을 겪으면서 자기 수정을 많이 하게 될 테니까요. 그건 우리 둘 다에게 큰 장점이었다고 생각해요. 단점이라면 시행착오 때문에 돈을 허투루 쓴 경우가 많았다는 거예요. 헛돈 썼다는 것, 실수가 많았다는 것이 아쉽긴 해요.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그건 아마 준비를 했어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떠나기로 결심하고 얼마 후에 여행을 시작한 거예요?
박민정: 다인이가 학기 중에 그 질문을 한 거라 바로 떠날 순 없었고요. 한 4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도 다른 일이 많아서 여행에 대해 알아볼 상황이 아니었어요.
통과의례 같은 여행
각 나라의 시작 부분에 ‘소소한 팁’을 적어뒀어요. 그 부분이 아주 중요한 장면이라 생각했는데요. 거기 적은 팁의 대부분은 실수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이었거든요. 많은 배움이 실수를 통해서 일어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박민정: 다인이를 정말 많이 힘들게 해서 그걸 통과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여행이 통과의례 같은 느낌도 있는 거죠. 요즘은 사실 배고플 일도 별로 없고, 사고 싶은데 못 사는 일도 많지 않고, 뭔가 좀 참을 일이 없잖아요. 참아 보고, 고생하고 싶었던 거예요. 또 여행하며 느꼈던 건 많이 알고 준비를 하면 여행이 조용해진다는 거였어요. 사건 사고가 일어날 일이 없더라고요.
변다인: 페루 마추픽추를 갈 때 사진을 많이 보고 갔어요. 워낙 유명하니까요. 정보도 많이 찾아보고 갔는데 막상 좀 실망스러웠어요. 많이 알고 가니까 진짜 그곳의 생생한 느낌이 줄어드는 것 같았어요. 이후로는 어딜 가도 정보를 많이 갖지 않고 찾아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놓치는 부분도 많지만요.
예측하지 못한 것에서 일어나는 생생함은 또 여행의 묘미기도 하겠죠.
박민정: 처음엔 정보도 좀 찾고 했어요. 어쨌든 돈을 들여 평생 한 번일지도 모르는 여행을 하는데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엔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하다 보니 초보인 저희가 고수처럼 여행할 수는 없더라고요.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가야 한다는 걸 생각하며 다녔어요. 같은 곳을 갔을 때 저희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의 방식과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어요. 저희만의 방식을 찾아내려고 노력한 거죠. 특히 다인이는 이게 정말 시작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성취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먹는 건 포기했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 이런 다양한 것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부분은 아끼지 않고 쓴다는 생각이었고요. 그런 구분을 했던 것 같아요.
ⓒ변다인
세계 곳곳을 다녀왔는데요. 두 번째로 다시 간다면 어디를 꼽을까요? 그건 아마 가장 좋았던 곳이기도 하고, 아쉬웠던 곳이기도 할 것 같아요.
변다인: 러시아요. 일단 제일 처음 간 곳이어서 가장 인상 깊었고요. 모스크바랑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곳만 갔으니까 다음엔 주변의 공국들도 가보고 싶어요. 엄마는 아프리카를 다시 가보고 싶어할 거예요. 아프리카 전체를 다 돌기로 했었는데 제가 겁이 나서 몇 군데만 돌았거든요. 그런데 그곳도 너무 좋았거든요. 다른 곳도 가보고 싶어요. 페루나 멕시코, 볼리비아 같은 곳 중 원주민들이 사는 데를 집중적으로 여행하고 싶기도 해요. 관광지만 다녔는데 다시 간다면 원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가보고 싶어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한달씩 길게 잡고 있었거든요. 소도시에 오래 있으면서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요. 그렇게 있으면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잖아요.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생각할 시간도 많아지고요.
박민정: 남미가 좀 아쉬웠어요. 유럽, 남미 다니면서 제일 좋았던 곳이 볼리비아, 페루였거든요. 그래서 더 길게 머물며 있고 싶어요. 러시아도 그렇고요. 다음에 어떤 여행을 간다면 더 길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작은 도시가 좋았는데 사람들이 덜 바쁘니까 저희에게 더 관심을 보여줬거든요. 그래서 작은 도시 위주로 오래 있어보고 싶어요. 큰 도시에 보고 배울 게 많다면 작은 도시는 우리가 녹아들기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여행의 계기가 꿈에 대한 질문이었잖아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계속 인터뷰 했다고 했는데 다인 씨가 찾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어요? 원하는 걸 찾았나요?
변다인: 중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정말 뚜렷한 게 없었어요. 미래를 생각하면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고요. 막연한 생각들만 했었는데 한두 살 먹으면서 뭘 하고 싶은지 제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거든요. 그냥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고, 학교에 공부하는 게 좋고 그래서 딱히 꿈이란 걸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는 원래 여행을 안 좋아하는데 엄마가 여행을 떠나자고 하니까 일단 간 거예요. 글이나 그림 보는 걸 좋아하니까 여행 가면 그런 것도 보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꿈을 물어보면 저도 조금 아이디어를 얻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시야를 넓힐 수도 있고요.
하고 싶은 걸 찾은 것 같긴 해요. 여행을 가서 꿈을 찾았다는 건 거짓말인 것 같고요. 여행을 가서 생각할 시간을 가졌고,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거구나 하고 생각을 정리하게 해준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동화책 읽는 걸 좋아해서 동화작가를 해보면 어떨까 막연히 생각은 했었거든요. 지금은 동화작가가 되고 싶어요. 언제 바뀔지는 또 모르겠지만요.(웃음)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여행 더 다니면서 더 배우고 싶어요.
박민정: 꿈에 관한 인터뷰가 좋았던 건 각 나라의 사람들의 삶이 보인다는 거였어요. 꿈에 대해 얘기하면 왜 그 꿈을 못 이뤘는지도 알게 되고, 꿈을 꾸고 찾는 모든 과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돼요. 여행의 초점은 그것이었으니까요. 확실한 성장의 동력은 있었던 것 같아요.
ⓒ변다인
여행으로 변화한 것들
친구들은 이제 고3이잖아요. 잠시 다른 길을 다녀온 기분은 어떨까요?
변다인: 저는 되게 평범해요. 여행을 가서 좋았고, 많은 걸 봤고, 정말 행복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어쨌든 다시 일상이거든요. 지금 이 일상도 좋아요.
박민정: 가기 전과 후, 뭐가 변했냐고 물어본다면 일상은 변한 게 없어요. 일상은 같아요.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 전 인사동을 갔는데 다인이가 조계사 대웅전을 보면서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는 거예요. 그게 변화 같아요. 그런 데 관심이 없었고, 여행도 안 좋아했는데 말이에요. 보는 눈이 달라진 건 확실해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싸우는 장면이 정말 많이 나오거든요. 그 과정에서 관계도 조금 달라졌을 것 같아요.
박민정: 저희는 원래 가족이 친해요. 뭐든 얘기를 잘하고요. 엄마 아빠를 되게 좋아하는 아인데 그래도 싸워요. 어쩔 수 없잖아요. 안 싸울 수는 없어요. 그런데 싸우면 정말 좋은 걸 봐도 기분이 너무 나빠서 그 좋은 게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걸 몇 번 겪고 나니까 좀 달라져야겠더라고요. 전 또 화가 나면 밥을 못 먹거든요. 한 번은 멕시코에서 정말 오랜만에 비싼 음식을 먹으러 갔는데요. 별 것 아닌 걸로 싸우고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못 먹었어요.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조금만 시간을 두면 괜찮다는 걸 알았어요. 서로 기분이 나쁘면 말을 하지 않기로 했죠. 4개월쯤 되면서부터는 점점 소모적인 싸움을 줄여가기는 했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그 방법이 통하던가요?
변다인: 돌아오자마자는 사실 많이 싸웠어요.(웃음) 아빠한테 하소연하면서 말이에요. 투닥투닥 싸우기도 했는데 어쨌든 여행하면서 지켜왔던 게 있으니까 다시 화해가 됐던 것 같아요.
박민정: 다인이는 이렇게 얘기하는데요.(웃음) 부모 입장에서는 어쨌든 시간과 돈을 들여 남들보다 특별한 경험을 시켜준 거잖아요. 어쩔 수 없이 기대하는 게 있어요. 집에 돌아와서 다인이에게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길 바랐어요. 그런 욕심을 부릴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집에 와서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니까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다인이가 제 기대만큼은 못하는 거예요. 그게 너무 저를 속상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다인이가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이런 걸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죠. 사실 저도 제 내부는 변했지만 겉으로 보기엔 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잖아요. 다인이도 그랬을 거예요. 아침에 파자마 입고 뒹굴거리고 게으른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안 변한 건 아니잖아요. 생활과 변화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떠나기 전에 아빠가 다인이에게 꿈을 못 찾아도 괜찮다고 얘기했는데요. 그런데 저는 노력하고, 시간을 할애했다고 뭔가를 보상받으려 했던 거죠. 그건 또 아닌 것 같더라고요. 다인이와 저의 관계는 단순해요. 제가 바뀌면 다인이가 바뀌어요. 그냥 여행 때 한 것처럼 다인이가 잘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하는 대로 지켜보니까 다르더라고요. 다인이의 좋은 점을 제 욕심 때문에 보지 못 했던 것도 많더라고요.
제목의 화자가 다인 씨잖아요. 책을 읽기 전에 가지는 기대도 다인 씨의 성장에 관한 내용일 거고요. 그런데 그 속에서 엄마도 성장을 했다는 게 인상적이네요.
박민정: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자식은 늘 불안해요. 믿음을 보여주지 않죠. 그런데 여행지에서의 다인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쨌든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확실한 건 제가 욕심을 낼수록 다인이에게 화가 난다는 거예요. 그 욕심이 되게 무섭단 생각이 들거든요.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떠났을 때 했던 가장 큰 생각은 네 스스로 꿈을 찾아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면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까요. 일단은 시간을 주고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우리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한 번도 공들여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인생의 가장 큰 화두를 진지하게 시간 들여 오랫동안 고민해보지 못한 거죠. 그 정도 시간을 들일 거면 세상을 보면서 생각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세계 여행을 생각한 거니까요. 일상의 모습은 같지만 그 안에는 다른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아이를 믿어보는 거죠. 모든 사람에게 한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모두에게 정말 중요한 시기에 한 여행이었네요.
박민정: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스스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또 여행할 생각도 분명히 있겠죠?
변다인: 엄마는 지금도 얘기하는 게, 나중에 대학교 가고 해도 또 같이 여행 가자고 해요. 저도 그렇게 가고 싶어요.
인생의 어떤 순간들에 둘만 가지는 공통의 기억이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니까요.
박민정: 물려줄 게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물려줄 게 저희의 삶의 가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부자도 아니고요. 그냥 이 가치들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유산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박민정: 그럼 정말 좋겠죠.
일단 해보는 것
혹시 후회한 순간은 없었나요?
변다인: 전 걱정이 정말 많은 애예요. 갔다 오면 고등학교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수업은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어요. 여행은 계속 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다른 애들은 공부하고 있을 텐데 말이에요. 그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걱정은 많지만 해보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요. 여행에서 많은 걸 배운 것처럼 일상에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후회하긴 아직 이른 것 같아요. 아직 모르잖아요.
박민정: 저는 인생을 길게 봐요. 이 1년, 고3, 이렇게 생각 안 하고 그냥 길게 보면 여유가 좀 생기거든요. 그런 식으로 보면 훨씬 현재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실수로 배우는 건 있지만 후회해서 배우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다니면서 나빴던 곳이 거의 없었어요. 훨씬 세상을 인간으로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는데요. 그게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다인 씨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변다인: 큰 테두리가 변한 것 같아요. 소소한 건 똑같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전에는 시도가 부담스러운 일이었어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선택을 하는 걸 좋다고 생각했어요. 온실 속 화초처럼요. 그런데 나가서 부딪쳤잖아요. 해보니까 세상과 부딪치는 일이 중요하고 뭐든지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실패하면 다음에 또 잘하면 되고요. 생각만 했던 것들을 일단 행동으로 옮겨보자, 이런 생각을 배우게 됐어요. 자신감이 많이 생겼죠. 이런 말을 다른 분들에게도 하고 싶어요.
서로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박민정: 어떤 일을 하든, 꿈꾸는 게 어떤 것이든 상관없지만 그 길을 가려면 어떤 일이든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장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일의 즐거움도 있지만 단점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것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지 각오해야 한다는 거죠. 편한 게 좋고, 그런 단점을 감수하긴 어렵다고 한다면 그 길은 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바라는 건 같이 친구처럼 늙어갔으면 하는 거예요. 성격은 안 맞지만 취향은 잘 맞아서 정말 좋은 친구인 것 같아요.
변다인: 여행하면서 엄마의 깊은 속내를 알게 되고 감동한 일이 많았거든요. 진짜 우리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요. 그런 엄마가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가 앞으로도 엄마의 생각을 더 많이 얘기해주고 대화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여행에서 했던 것처럼 일상에서도 그런 대화를 많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엄마가 변하고 있으니까 저도 엄마한테 맞춰서 변하고 있어요. 엄마한테 더 바라는 건 많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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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떠나길 잘했어박민정,변다인 공저 | 마음의숲
이제 막 청춘이 시작되는 감수성 풍부한 17살 딸과 습관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청춘이 끝나가는 41살 엄마. 모녀가 같지만 다른 시선으로 그려가는 이 여행기는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 같다. 일 년 동안 좌충우돌 티격태격 세계여행을 하며 꿈을 찾고 꿈을 이룬다는 ‘꿈’을 주제로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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