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대학생 리포터들이
매주 소설 원작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마션>, <메이즈 러너>, <사도>, <국제시장>.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이들이라도 지난해 한 번쯤은 극장에서 봤을 만한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흥행에 성공한 ‘스크린셀러’라는 것이다. 스크린셀러는 스크린(Screen)과 베스트셀러(Bestseller)의 합성어이다. 즉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다시 주목받게 된 원작소설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소설이 영화와 연관될 경우 영화의 인기에 따라 소설의 판매량이 크게 치솟는 경우가 많으므로 영화사와 출판사가 제휴를 맺는다거나, 서점가에서 개봉 시기에 맞춰 관련 서적을 소개하는 등 소설과 영화의 연계는 이미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영화사 측에선 이미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검증된 작품을 다룸으로써 스토리나 소재의 부족으로 흥행에 실패할 리스크를 어느 정도 덜 수 있으며, 원작의 독자들 대다수가 스크린을 찾을 것이라는 꽤 합리적인 예측을 한다. 이 예측은 소설 원작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소비자 역시 소설 내 텍스트 안에서 개인의 주관적인 상상 속에 존재하던 장면, 캐릭터, 분위기를 영화사 나름의 해석으로 담아놓은 영상을 통해 다시 한 번 접하는 것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이와 같은 선순환은 출판계는 물론 영화계에서의 스크린셀러의 입지를 견고히 하고 있다. 예스24 대학생 리포터단은 1월 특집 기사로 각 주제에 따른 스크린셀러를 소개할 계획이다.
1월 2주차 주제는 ‘어린 시절 감성이 그리울 때’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어린왕자』, 『플립』 세 가지 작품을 소개한다.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봤을 작품, 아니 읽어보지는 않은 사람이라도 제목쯤은 대부분 들어본 작품이다. 흔히 이들을 통틀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부르곤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동화라는 장르 고유의 특징인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독자에게 자신이 얼마나 ‘어른’이 되어갔는지에 대한 객관적 사유를 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 가장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대개 아이들을 위해 읽기 쉬운 글과 표현으로 쓰였지만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위의 세 소설은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증명하듯 모두 영화화되었다. 텍스트보다 영상처럼 직관적인 매체에 익숙하다면 스크린을 통해 작품을 접하는 것 역시도 좋은 방법이다.
어린 시절 감성을 다룬 스크린셀러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브라질 태생의 소설가 J. M. 데 바스콘셀로스의 작품이다. 역시 브라질 출신의 마르코스 번스테인 감독에 의해 2014년 5월 29일 국내에서 개봉했으며 누적 관객은 7,493명으로 영화는 원작만큼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에서 파생된 행동과 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시선 차를 가정폭력이라는 소재를 통해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제는 브라질의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가족의 폭언과 폭력에 희생되는 5살 꼬마아이다. 그럼에도 그는 낙담하지 않는다. 활발하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사 간 집에 심어진 오렌지나무에게 ‘밍기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제제에게 밍기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자신과 놀고 대화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친구다. 또한 우연히 만난 어른 ‘뽀르뚜가’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료받고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쌓아가며 제제가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오렌지 나무라는 상징적인 소재를 통해 제제의 정신적 성장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것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슬픔을 알아버린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성장통을 섬세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뽀르뚜가라는 인물을 통해 누가 올바른 어른인가, 또 인생의 멘토는 어떠한 자질을 갖춰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남기기도 한다. 어른이 된 독자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을 읽으며 제제에게 투영된 어린이였던 순수한 자신의 옛 모습을 되돌아본다.
내게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제제가 아버지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거리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지만, 아버지는 그 가사만을 듣고 제제를 때린다. 세상에 물든 어른이 얼마나 무관심하게 어린아이의 선한 의도를 짓밟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어린 시절을 단순히 어두운 분위기로 담아낸 작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생텍쥐페리의 작품 『어린왕자』는 유사한 주제를 위해 아이의 순수함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5년 12월 23일 마크 오스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1월 5일 기준 누적 관객 543,328명으로 비교적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원작 그대로 영화화된 것이 아니라 내용과 주제는 그대로 답습하되 소설의 마지막 이후 이야기를 풀어가는 등 어린왕자를 현대사회의 캐릭터로 재탄생 시켰다. 어린왕자는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B-612라는 소행성에서 온 어린 소년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소년은 자신의 행성에서 사랑에 빠진 장미와 여행 중 만난 사람들, 지구에 도착해 느낀 깨달음을 꾸밈없이 조종사에게 전달한다. 작가이자 극 중에서의 조종사인 생텍쥐페리는 이를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로 그려낸다.
여타 스크린셀러들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성공적인 각색이었다’,’원작의 가치를 살리지 못했다’라는 식의 상반된 논쟁이 붙었다.
어린왕자는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통해 순수함을 포기하고 세계에 적응한 어른을 관망한다. 또 어른이 되어가며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오히려 행복에 더 가까웠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금 주변에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복잡한 철학적 사유나 냉철한 자기반성 따위의 과정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말한다. 그저 필연적으로 경험했을 어린 시절 자신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누가 수천, 수백만 개의 별 중에서 하나밖에 없는 어떤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라는 말은 우리가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목표에 매몰돼 등한시한 가치들을 재조명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어린왕자의 대사에 어떠한 꾸밈도 없어 좋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말하듯이, 어렵지 않은 말로 툭툭 내뱉지만, 그 말에는 꽤 깊이가 있어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의 가슴을 쿡쿡 찌른다. 그래서인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나도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 플립
마지막으로 사랑, 그중에서도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간지러운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웬들린 밴 드라닌의 작품 『Flipped』는 독특한 구성과 섬세한 표현으로 보는 이들이 서툴지만 설레는 어린 시절 사랑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받는다. 국내에선 『플라타너스 나무 위의 줄리』와 『두근두근 첫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판되었으며 영화는 2010년 랍 라이너 감독 연출 하에 개봉하였다. 안타깝게도 국내개봉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원작의 영향이었는지, 혹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 때문인지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며 실제로 각종 사이트 평점에서도 상위권에 랭크 돼 있다. 아마 상업적 성공 여부가 아니라 텍스트에서의 감동을 스크린에 가장 성공적으로 이식한 영화를 기준으로 본다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스크린셀러다. 이 작품은 극중 인물 간의 뚜렷한 갈등이 없다. 그저 한 소년과 소녀가 만나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세심한 심리 묘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상황을 여주인공인 줄리와 남주인공인 브라이스의 시선에서 번갈아 보여주면서 서로 감정의 보폭을 맞춰가는 과정을 아기자기하게 나타냈다.
혹자는 어떠한 소설이나 영화에 대해 ‘두드러지는 갈등이 없어 지루하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비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반적인 로맨스물처럼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라는 클리셰가 아닌 평이한 구성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첫사랑이란 단어가 지니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가치를 우리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새로운 감정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서로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자신조차도 보지 못했던 본인의 모습에 당황하는 그 사랑스러운 풋풋함을 이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로써 어른이 되고 나름의 연애경험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잊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한 우리에게 아무런 조건이나 고민 없이, 순수했던 어린 시절 사랑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책으로 읽을 땐 별다른 갈등 없이도 사람들에게 공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 놀랐고 영화로 볼 땐 책의 감정선과 분위기를 부족함 없이 담아냈다는 사실과 영상미에 놀랐다. 영화를 보기 전 소설을 감명 깊게 봤다면 영화에서 그 느낌을 이어갈 수 있고, 소설은 보지 않았더라도 영화를 통해 원작 그대로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과거는 늘 미화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추억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그저 ‘내가 어렸을 때는.......’이라는 말로 현실을 부정하곤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달라진 건 우리일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사실에 권태를 느끼고 요즘 부쩍 행복했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을, 영화들을 꺼내보고 울고 웃으며 그때의 순수함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순간순간을 여행처럼 즐긴 그 시절의 감정을 되새겨보면 행복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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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 이정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