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데뷔, 등단 후 발표한 세 작품의 연이은 문학상 수상, 2013년 세계 3대 문학상이자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 공쿠르상 수상작 『오르부아르』의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가 한국에 왔다. 지난 11월 10일 프랑스 문화원에서는 먼 곳에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를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작가는 “작가로서 특히 외국 독자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말하며 자리한 독자들에게 먼저 감사를 표했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형사 카미유 베르호벤이 등장하는 추리소설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가 하면 국내에서도 『이렌』, 『알렉스』 등의 작품이 번역되어 존재감을 떨쳤다. 『오르부아르』는 그런 작가가 세계적인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하며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겸비한 작가로 다시 한 번 존재를 과시한 작품이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날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오르부아르』를 중심으로 자신의 글쓰기와 작가로서의 삶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작가가 이야기에 앞서 함께 자리한 번역가 임호경과 『오르부아르』 출간을 기획한 출판사 저작권팀장 그레고리 림펜스가 책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번역가 임호경은 피에르 르메트르의 책 『실업자』와 『웨딩드레스』를 번역한 바 있다. 이 책들을 번역하며 무척 좋았다고 말하며 피에르 르메트르의 작품은 재미있을 뿐 아니라 “철학적이고도 심리적이고 심지어는 사회학적이고 역사적인 차원까지” 생각하게 하는 다층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굉장한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작품이더라고요. 아주 흥미진진하고요. 흥미로운 만큼 정말 또 깊이도 있고 말이죠. 굉장히 두툼하게 책이 나왔지만 굉장히 빨리 읽으실 겁니다. 그러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에 희생되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반항하는가, 이들의 반항이 어떤 한계가 있는가를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앞으로 문학사에 이름이 남을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기대되는 바가 많고, 그런 분을 여러분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제가 번역을 맡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르부아르』의 국내 출간을 기획한 열린책들 그레고리 림펜스 팀장은 2013년 이 작품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공쿠르상을 수상해 국내 출간 경쟁이 생기기도 했지만 마침내 출간하게 되어 굉장히 기쁘다고 말했다.
“저는 창피하게도 『오르부아르』를 읽기 전에는 르메트르의 작품을 잘 몰랐는데요. 읽고 나서의 느낌은 정말 이 사람 이야기꾼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잘 읽히고, 깊이도 있고, 여러 겹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생각했어요. 중요한 작품이고 재밌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재미있게 본 만큼 다른 사람도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런 칭찬에 대해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칭찬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건강한 사람에게 많은 칭찬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웃음) 저는 아주 건강하니 걱정하지 마시고요”라며 쑥스러운 마음을 농담으로 전하기도 했다.
2013 공쿠르상 수상작 『오르부아르』를 말하다
『오르부아르』는 프랑스 역사상 아주 특별한 시대인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를 그리고 있다. 저자가 특별히 이 시기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을 전쟁, 전후 두 개의 표현으로만 얘기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바로 평화로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죠. 전쟁, 전후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면 마치 신이 갑자기 이제 여러분들 다들 잘 싸웠으니 이제부터 평화를 누리도록 하세요, 하고 명령을 내린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요. 사실 이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은 학살이었습니다. 대량 학살 무기를 사용하면서도 육탄전을 벌였던 마지막 전쟁이었고요. 또한 당시 관련된 사진도 존재하고, 영화화된 것도 많고, 다큐멘터리도 존재합니다. 1차 세계 대전은 유일하게 언론화 된 대중들에게 알려진 전쟁이었고, 정보를 조작할 수 있고 허위 정보들이 존재할 수 있던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유럽을 넘어 전 세계가 이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는 사회 전체가 마비되었다. 어린이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형제나 부모가 전쟁터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50개월에 걸친 전쟁은 1918년 드디어 막을 내린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고는 했으나 ‘끝났다’는 말로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사회였다.
“전쟁과 전후 사이에 전환기가 필요했죠. 이 시기는 모든 주민들이 상당히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던 기간이었습니다. 다시 평화를 배워야 했고, 다시 달리 사는 것을 배워야 했어요. 정상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워야 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싫어했던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고, 정상적인 삶을 다시 되찾아야 했는데요.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책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떠났던 군사들이 자신들이 떠났던, 보호했던, 그리고 승리했던 국가로 되돌아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떠났던 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는 없죠.”
생존병사들이 귀환한다. 그러나 그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시간은 그들 없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귀환한 생존자들은 그 사실을 발견한다. 게다가 사회는 역설적인 태도로 서둘러 전쟁을 정리하려 한다.
“사회는 생존한 병사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에게는 신경 쓰지 않으면서 전사자들만 신경 쓰게 됩니다. 사실 살아 있는 사람을 보호하고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하겠죠. 전사자들에게 예우를 해야 하고요. 하지만 반대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제대한 군인들은 일도 없고, 연금도, 수당도 받기 어려웠어요. 그 외에 여러 가지 사회 적응에도 어려운 상황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를 위한 위령탑 3만 개가 3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세워지게 됩니다. 프랑스는 기억의 열정에 사로잡히게 된 거예요. 1920년의 어떤 일요일에는 100개도 넘는 위령비의 개막식을 개최합니다. 이것은 정말 모순이죠.”
전쟁에서 돌아온 두 명의 군인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 안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저들의 입지를 발견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사기를 치게 된다. 바로 위령탑을 판매하는 사기를 치기 시작한 것. 이들의 사기 행위는 물론 부도덕하지만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전쟁을 다뤘기 때문에 명랑한 소설은 아니지만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것은 슬프거나 비관적인 것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모험소설처럼 읽히고 싶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나온 병사들이 생존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를 비극적이기 보다 재미있게 사기를 치게 되는 것이죠. 반전이 있는 작품입니다.”
피에르 르메트르가 말하는 ‘나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거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라고 하기에 피에르 르메트르는 너무나도 소박하게 “별 볼 일 없다”고 먼저 입을 뗐다. 사람들이 흔히 작가에 대해 가진 이미지와 현실은 같지 않다는 의미였다. 작가를 낭만적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라고 작가는 말했다.
“우선 작가는 고통을 받는 사람입니다. 많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고통을 받기 때문에 그 고통을 종이에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저는 재미있게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환희를 느끼고 많이 웃는 사람이죠. 저는 글을 쓰는 것이 정말 큰 즐거움입니다. 영감보다는 땀을 더 많이 믿습니다. 보통은 작가에 대해 백지 앞의 고뇌 같은 것을 주로 얘기하는데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분 좋게 바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저는 낭만적인 의미의 작가는 아니죠.”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를 공예가에 비유했다. 문체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으며, 그것은 신이 부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소설적 허상’을 믿는다고 전한다.
“집 안에 들어오듯 독자가 소설의 세계에 들어오도록 합니다. 그 세계에 들어오게 되면 기분이 좋고, 다른 방을 방문해보고 싶고, 집안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고 싶어 하게 합니다. 모든 이야기를 샅샅이 읽어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재미있어 독자가 따라 들어오게 해야죠. 즐겁게요. 저는 독자들이 시간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성급하죠. 예전에는 달랐지만 지금은 4쪽 만에 판단을 해버립니다. 나도 역시 다른 독자와 마찬가지고, 우리들은 모두 성급한 독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의 초반부를 굉장히 정성들여 씁니다. 내가 이야기를 할 텐데, 이런 등장인물들이 나올 것이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관심이 있다면 나와 함께 길을 걸을래 하고 제안을 하는 것이죠.”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이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게 하는 것, 서스펜스를 통해 놀라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야기를 하고, 문학을 읽는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미스터리라고 말한 작가는 문학을 “삶을 이해하는 엄청나게 큰 기계”라며 말을 이었다.
“다른 학문을 통해서도 사건이나 현상이나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역사 같은 경우 사건과 연도를 통해 이해하려고 하죠. 사회학자도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통계와 사건을 이용합니다. 콘셉트 이용하는 학문도 있죠. 문학은 무엇을 이용할까요? 감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이 모든 시대와 언어를 넘어 전달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정은 프랑스, 한국 할 것 없이, 또 15세기, 21세기 할 것 없이, 남성과 여성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죠. 문학은 독자들이 감정을 이용해 뭔가를 이해하게 만듭니다. 숫자도 연도도 개념도 아니고 바로 감정을 통해 이해시키는 것이죠.”
피에르 르메트르에게 묻다
스물한 살 대학생입니다. 작가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같아 부러웠습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저는 56세가 되어서야 작가가 되었습니다. 50년을 생각한 끝에 작가가 된 것이죠. 작가가 되기 위해 50년을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충분히 생각하기 위해서는 50년이 걸리리라 생각합니다.(웃음) 성급한 편이라면, 멋진 선택을 하기 위해 50년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삶에서 얻은 교훈은 모든 것이 어떤 사람에게든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작가가 된 것은 모든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교육을 받은 것도 없고, 나이도 많이 들고, 작가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저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노력을 했습니다. 나의 욕구였죠.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의지로 변화시킨 것이었어요.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어떤 심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작가였습니다. 오래전부터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독자로서 커다란 열정을 처음 느꼈을 때 제가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3세, 14세 때 얼마나 많은 즐거움과 열정을 가지고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레미제라블』을 읽었는지 기억합니다.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어린 시절부터 열정적인 독자였기 때문에, 이 덕에 작가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항상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게 되는 건 아니죠. 저도 굴곡을 겪었고요. 하지만 늘 문학과 동반했습니다. 문학 속에서 살아왔어요. 20여 년 이상 오랫동안 문학을 가르쳤는데, 그게 문학이라고 하는 내 내면의 열정을 소진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50년이 지난 뒤에 드디어 작가가 된 것이죠. 머릿속으로 나는 오래전부터 작가였던 것입니다. 단순한 이야기죠.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많은데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많이 접하지 못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뭔가요?
프랑스에는 제1차 세계 대전밖에 없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은 두 달 만에 지나갔어요. 아주 빨리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고, 거의 전쟁이랄 게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2차 세계 대전은 독일의 점령기였고, 저항기였죠. 저항군들이 저항해 보려고 노력했고 나치 수용소의 문제가 나오는 것이에요. 군사적인 이야기이고 저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하지 않았고요. 1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의 사회가 오늘날의 프랑스 상태와 비슷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자들에게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소설을 쓸 때 영화화를 고려하시나요?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요. 저는 영화화를 생각하고 소설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시각적인 글쓰기 방식을 이용합니다. 머릿속에 쓰고자 하는 구체적인 장면이 상상되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으로 보는 장면을 묘사하는 거거든요. 이런 경향이 있다 보니 영화화가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영화를 고려하고 쓰는 것은 아니고, 결국 영화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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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피에르 르메트르 저/임호경 역 | 열린책들
이 책 『오르부아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기성세대가 벌인 전쟁에 상처 입은 두 젊은이가 위선적인 세계에 맞서 벌이는 전대미문의 사기극을 담았다. 전쟁조차 사업가들의 이권 투쟁으로 번져 가는 과정이 치밀한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문체로 펼쳐진다.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감각과 프랑스 문학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심오한 철학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작가답게 서스펜스, 유머, 범죄와 반전, 사랑과 화해, 그리고 비극이 완벽하게 결합된 최고의 작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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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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