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이 화제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저 주어진 게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기회인 것 같아 더없이 반갑다. 사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는 드라마틱한 서사와 순간 들이 너무나 많다. 국권 상실이라는 상황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극적인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욕망이 날것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본성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영혼, 밤이 깊을수록 빛나는 별 같은 존재를 만날 수 있는 것 또한 그 시대였다. 우리가 설마 독립하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는 이광수나 서정주,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조선정신’을 제창했던 육당 최남선마저 훼절하던 그때, 오로지 조국독립에 대한 당위 하나에 목숨을 건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이름도 명예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들 중, 언젠가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고 보훈처라는 곳이 생겨 자신의 행적을 심사하여 독립유공자로 포상하게 될 거라고 계산한 이는 단 한 분도 없었을 것이다.
독립투쟁사 곳곳에는 너무나 순결하고 뜨거운 영혼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그들은, ‘이번 거사가 실패하면 내세에서 만나세’ 같은 결연함으로 초연히 건배를 나누고 사지로 향했다. 어쩌면 그들만큼 뜨겁게 생을 사랑한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는 몇 장면 출연하지 않았지만 조승우의 존재감은 꽤 컸다. 그만큼 그가 연기한 의열단장 김원봉이란 인물 자체의 비중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중 삼중의 감시망 아래 조금만 수상해도 곧바로 끌려가던 당시 상황에서 독립운동 조직은 모조리 국외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영영 이대로 나라 잃은 국민으로 살아야 되는가 체념하고 있을 때,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발 사건 등 간간이 들려오는 의거소식에 사람들은 숨죽여 환호했다. 우리나라가 덧없이 사라지지는 않겠구나 싶은 가느다란 한줄기 희망의 빛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열 번 거사를 꾸미면 그중에 겨우 한두 건이 성사될까 말까 하고, 나머지는 수많은 염석진 같은 밀정들에 의해 사전에 발각되거나 또는 가난한 살림살이 탓에 제대로 된 폭탄의 성능을 갖추지 못해 불발탄으로 끝나버리기 일쑤였다. 거사를 위해 국내로 잠입한다는 것은 곧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의열단원들은 그 길을 서로 가겠다고 앞을 다투었다. 이 모든 거사를 지휘하고 동지들에게 목숨을 던지라고 명령하는 것까지 책임지고 있던 김원봉은 당시 이십 대의 청년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던 시절, 김원봉의 이름은 사람들 사이에서 쉬쉬하며 퍼져나갔다. 그의 인기는 엄청났다.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김원봉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들 중 최고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는 게 인기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일본 고등계 민완형사와 동족을 팔아먹고 사는 밀정들과 하이에나 같은 끄나풀들까지 김원봉을 잡으려고 혈안이었다. 김원봉은 변장을 하고 톨스토이와 헤겔 책 몇 권만 가지고 수시로 거처를 옮기며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했지만, 의열단원들의 엄호도 철통 같았다. 그런 그가 독립된 조국에서 우리 경찰에게 잡혀가 뺨을 맞고 수염을 뽑히는 수모를 당했다. 그게 바로 고문귀로 악명 높던 친일경찰 노덕술이다. 그는 반민특위에 잡혀갔으나 이승만의 호위 아래 풀려났을 뿐 아니라 반공을 기치로 내세우며 승승장구하기까지 했다.
반민특위의 해체야말로 오늘날 우리 현대사를 이토록 뒤틀리게 만든 잘못 끼운 첫 단추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정우가 연기한 하와이 피스톨은, 엄혹한 시대에도 사랑은 싹트고 낭만은 휴머니즘의 꽃이란 생각이 들게 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하와이 피스톨이 총격전을 벌이다 죽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자, 나를 매료시켜 결국 『경성을 쏘다』라는 책까지 쓰게 했던 한 사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독립운동사상, 경성 한복판에서 천여 명이 넘는 일제의 군경과 단신으로 쌍권총을 쏘며 총격전을 벌인 유일한 사나이, 김상옥이 바로 그다.
나도 그들을 따라 혼백이나마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권력도 누구를 지배할 수 없다. 다른 누군가를 지배할 권위를 부여받은 자는 그 누구도 없다. 본문에서
그의 총 솜씨는 상해에서도 유명해서, 그의 실력에 감탄한 사설 사격장의 마담이 돈을 받지 않을 테니 언제든지 찾아와 달라고 할 정도였다. 지사적인 풍모의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무인기질이 다분했던 김상옥의 대담무쌍함과 신출귀몰에 일제 경찰조차 간담을 쓸어내리고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김상옥은 대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이 국외로 망명할 때 국내에서 저항하던 인물이었다. 3.1만세 운동 이후 미국의원단들이 일제의 만행을 조사하기 위해 입국한다는 소식을 접한 김상옥은 동지들과 거사를 계획한다. 제1목표는 사이토 총독과 총독부 관료들, 그리고 친일파들에 대한 암살이었다. 그들은 차량 세 대를 준비해서, 두 대는 무장을 한 사격요원들이 타고 폭탄과 탄약을 실은 한 대는 주택가 골목길에 숨겨 놓은 후, 미국의원단 행렬이 종로 거리를 지날 때 무장사격 요원들이 먼저 총독과 고관들을 암살하고 출동한 병력들과 대치하면서 엄호사격을 하면 나머지 단원들이 경찰서 등을 폭파하기로 하고 훈련과 준비를 마쳤다.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대담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역시 밀정들에 의해 사전에 발각 당하면서 김상옥은 상해로 몸을 피한다. 이때 그의 가족들과 평소 김상옥을 존경하고 흠모하던 여자동지가 잡혀가 차마 말하기도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임정의 지령을 띠고 조직을 재정비하기 위해 경성으로 잠입한 김상옥은, 상해로 돌아갈 때 혼자 몸으로도 가기 어려운 길을 여자 동지를 업고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여자 동지는 고문 후유증 때문에 결국 죽고 마는데, 김구 선생이 관이라도 사라면서 100다양의 돈을 보낸다. 그걸 들고 나간 김상옥이 사온 것은 관이 아닌 7연발 모제르총이었다. 동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수를 반드시 갚겠다는 의지였다.
김상옥 의사가 폭탄을 던질 무렵 종로경찰서.
김상옥 역시 김원봉에게 간곡히 부탁해서 경성으로 잠입한다. 그러나 또다시 밀정들의 방해로 약속한 기일 안에 폭탄이 도착하지 않자 김상옥은 포기하지 않고 혼자라도 싸우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폭탄을 종로경찰서에 던졌다. 종로경찰서는 우리 독립투사들이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죽어간 한 서린 곳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종로경찰서를 유유히 떠난 그는 서울역 앞 매부 집에 은신하면서 며칠 후에 일본 제국회의 참석차 출국하는 사이토를 암살하기 위해 치밀하게 답사를 하며 준비한다. 그러나 매부의 집 역시 밀고에 의해 발각되고 눈 덮인 남산을 신출귀몰 도망치다가 종로구 효제동 동지의 집에 숨어들지만, 이 또한 조선인 경찰에 의해 발각되면서 서울 한복판에서 최후의 격전이 벌어지게 된다.
눈앞에서 번번이 김상옥을 놓친 일제는 무려 천여 명의 군ㆍ경을 동원하여 이중 삼중으로 포위망을 좁혀나가면서 총격전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김상옥은 3시간이 넘게 저항하며 14~5명의 사상자를 낸다. 그러나 그의 몸도 이미 여러 발의 관통상을 입은 후였다. 마지막이라는 걸 깨달은 그는 상해를 떠나면서 김원봉과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거사가 실패하면 내세에서나 만납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그는 마지막 남은 한 발의 총알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총은 상해에서 여자 동지의 관 대신 샀던 모제르총이었다.
구본웅 화가는 중학생 때 김 의사가 자결하기 직전 효제동에서 벌어진 최후의 격전 장면을 보았다.
우리나라가 해방되자 당시 기억을 살려 그림을 그렸고 시화집 『허둔기』에 스케치와 시를 함께 실었다.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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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쏘다이성아 저 | 북멘토
1923년 1월 12일, 김상옥은 일제 식민 치하 경성 한복판에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신출귀몰 경찰들을 따돌리다가 열흘 만인 1월 22일 새벽, 일제 군경 천여 명과 세 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인 끝에 마지막 한 발의 총탄으로 자결한다. 이 시가전으로 일본 형사 16명이 죽거나 다쳤다. 일제의 식민 치하로부터 벗어난 지 올해로 꼭 69년이 되는 2014년, 일본의 우경화 정책이 날로 표면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와 평화의 씨앗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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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아
소설가. 장편소설 『가마우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 소설집 『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 『절정』이 있으며 청소년 역사테마소설집 『벌레들』(공저, 「빼앗긴 죽음」 수록)과 인물이야기로 『최후의 아파치추장, 제로니모』, 『경성을 쏘다-김상옥 이야기』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