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
제대로 된 ‘사람’이 될 때,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는 법. 머리·가슴·발로 공부하는 학생이 곧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스승이 됩니다.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현장까지 이어지는 공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현될 수 밖에 없습니다. 관계가 공부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니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것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글ㆍ사진 김도훈(문학 MD)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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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人行, 必有我師焉(삼인행 필유아사언)

 

공자의 말입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요. 누구에게나 배울 것은 있다, 따라서 선한 것을 가려서 따르고 배우라는 뜻입니다. 통상 배울만한 점이 있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지만, 다른 의미로도 읽힙니다. 배울 게 있는 사람이 아닌 배우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평생 혼자 살 수 없으니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테고, 따라서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서 무엇을, 얼마나 배울 수 있는 지는 배우려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무엇이든 배울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낮추기 어렵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배우고자 했던 공자의 삶과 가르침이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전하는 게 아닐까요?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신영복 선생은 좋은 스승입니다. 공자가 그런 것처럼, 그 역시 배움의 자세를 가진 훌륭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좋은 스승이 될 수 있었습니다. 20년 복역 기간을 자신의 ‘대학 생활’이라고 부른 이유는, 감옥에서 수많은 스승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집을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는 노인 목수와의 만남은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하는 계기가 됐고, 기존 복역자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자부심과 오기를 보여준 신참을 통해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감옥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덕분에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그의 인식이 달라졌지요. 그에게 감옥이 ‘대학’일 수 있었던 건 그가 훌륭한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학벌이 낮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누구에게든 배우고자 했기에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멋진 학생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그의 마지막 강의 『담론』은 훌륭한 인생의 교재입니다.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고액을 주고 족집게 과외도 한다는데 20년 수형 생활을 통해 얻은 가르침을 고스란히 담았으니, 가히 인생의 고액 참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학교 시험과 달리 인생은 같은 질문도 없고 정해진 답도 없기 때문에 족집게라 할 수는 없지만, 담고 있는 가르침의 깊이를 생각해보면 수능 족집게 과외와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가르침이 그득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25개의 강의가 담긴 책이 단돈 16,200원이라니, 고맙고 감사한 책입니다. 한 권 책을 읽는 것만으로 멋진 인생 공부가 시작됩니다.

 

 

발로 완성하는 공부

 

하지만 좋은 강의를 듣는 모두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영복 선생이 표현대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고, 가슴에서 끝나지 않고 발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세계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사고를 넘어 품성의 문제가 되고, 실천과 변화로 이어져야 진정한 공부가 된다는 것이지요. 『담론』을 읽고 나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독자 앞에 놓여 있습니다. 머리와 가슴으로 한 공부를 발까지 잇는 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훌륭한 가르침을 자기화 하는 작업도 필요하고요. 삶의 현장에서 자기만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때 비로소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될 때,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는 법. 머리?가슴?발로 공부하는 학생이 곧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스승이 됩니다.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현장까지 이어지는 공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현될 수 밖에 없습니다. 관계가 공부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니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것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신영복이라는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고, 읽는 것만으로도 남다른 공부가 되는 책. 왠지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자주 꺼내볼 것 같습니다. 꺼내볼 때마다 마음은 한 뼘 더 자랄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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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신영복 저 | 돌베개
저자는 2014년 겨울 학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대학 강단에 서지 않는다. 이 책의 부제를 ‘마지막 강의’로 한 이유이다. 선생의 강의실은 늘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가 넘쳐난다. 다루는 내용이 한문 고전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문맥을 현재로 끌어내어 우리의 입장에서 읽기 때문이다. ‘공감’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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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문학 MD)

고성방가를 즐기는 딴따라 인생.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며,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