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좋아하는 사람한테 전화를 겁니다.
왜 했냐고 그 사람이 묻습니다.
당신은 대답합니다. 그냥요, 그냥 했어요.
누가 ‘뭐해?’ 하고 물으면
‘그냥 있어요’ 라고 대답할 때가 있지요.
또는 누군가의 이름을 그냥 한 번 불러보고 싶을 때도요.
어떤 ‘그냥’은 때로 말할 수 없이 쓸쓸합니다.
누군가가 힘없이 ‘그냥요...’ 라고 말할 때,
그는 그것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하는 거니까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그냥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냥 걷고, 그래서 그냥... 텅 비어 앉아 있습니다.
어쩌면 진실은 자주 ‘그냥’ 속에 있습니다.
콕 찝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계산하지 않고 그냥 주고 싶고,
이유 같은 거 의미 같은 거 없이, 그냥 그러고 싶을 때라는 게 있으니까요.
설명할 수 없는 말들을 다 끌어안아 주는 말,
우리에겐 좀더 많은 ‘그냥’이 필요합니다.
그냥의 헐렁함, 그냥의 너그러움, 그냥의 싱거움, 그냥의 무의미...
그러니까 그냥 읽는 책, 그냥 재미로 하는 일,
그리고 그냥 통하는 사람들...
안녕하세요, 여기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입니다.
<빨간책방>이 3주년을 맞아 특별한 '책, 임자를 만나다' 시간은 계속 됩니다.
이번에는 소설 담당 흑임자 김중혁 작가가 직접 선정한 비문학 작품을 함께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그가 선정한 비문학 책은 다름 아닌 메리 로치의 『인체재활용』인데요, 이 책은 2004년 『스티프』란 제목으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은 뒤 우리 인체가 어떻게 재활용 되는지를 속속들이 파헤친 책이죠. 소설 담당 흑임자 김중혁 작가는 이 책을 어떻게 이야기해주실지 기대해 주세요.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1) 책 소개
유명 저널리스트인 메리 로치가 시체와 인체, 영혼에 대한 중세의 수술이었던 고문서부터 최근 저잣거리에 나도는 소문인 인육 만두까지 연구용으로 기증된 시체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취재한 결과물이다. 끔찍하고 혐오스러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저자만의 독특한 필체가 만나 밝고 유쾌한 글로 탄생됐다.
시체는 해부학 실습뿐 아니라 수술 연습용, 과학 실험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뇌사자의 시체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표본이 되어 교육용 자료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퇴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 책을 덮을 때쯤 독자는 죽음과 사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죽음 후에 인체를 기증하는 것이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세상을 뜨면서 공원 벤치를 하나 기증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질 것이다.
2) 저자 : 메리 로치
『스푸크: 과학으로 풀어보는 영혼』과 『봉크: 성과 과학의 의미심장한 짝짓기』의 저자이다. 저널리스트로서 <아웃사이더> <와이어드> <내셔널 지오그래픽>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 수많은 간행물에 기고해왔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살고 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의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 곳곳, 미지의 장소를 뒤졌다. 남극을 세 번째 방문하고 난 뒤로 주변으로 눈을 돌려, 『인체재활용』에서는 과학과 시체를, 『스푸크』에서는 과학과 영혼을, 『봉크』에서는 과학과 성을 취재하였다. 그녀의 관심은 우리의 삶 가운데 존재하는 틈새에 항상 위치하고 있다.
◆ 125-126회 <책, 임자를 만나다> 도서
국경시장
김성중 저 | 문학동네
다음 ‘책, 임자를 만나다'시간은 오랜만에 게스트와 함께 합니다. 주인공은 바로 놀라운 상상력으로 소설 세계를 구축해가고 계신 김성중 작가 입니다. 김성중 작가의 작품은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작가에게 이야기를 설계하는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이라고 말한 신형철 평론가의 평처럼 정교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세계 구축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상상력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작가들의 유쾌한 수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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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재활용 메리 로치 저/권루시안 역 | 세계사
유명 저널리스트인 메리 로치가 중세시대의 시체와 인체, 영혼에 대한 고문서부터 최근 저잣거리에 나도는 뜬소문까지 모든 정보를 모아서 사실 관계를 취재하고 파헤쳐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취재를 위해 미국에서 중국 하이난 성의 화장장, 스웨덴의 뤼뢴까지 세계 곳곳을 방문해 발로 직접 뛰고 자료를 모아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은 방대한 양의 정보가 저자의 취재를 통해 잘 정리되어 이 책 『인체 재활용』에 담겼다.
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감귤
201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