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샹떼』 강신주와 이상용의 영화 예찬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언제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갈증을 느낀다. 극장을 나설 때부터 ‘영화 어땠어?’라고 묻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 내 마음을 건드렸던 한 권의 책과 만났을 때처럼 그 작품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말하고 싶고, 다른 이는 어떻게 느꼈는지 듣고 싶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상징들에 대한 해답도 찾고 싶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목마름을 씻어 줄 상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은 단순히 줄거리를 읊어주는 휘발성 강한 것에 불과하거나,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언어들로 가득 찬 전문가의 말들뿐이다.
그래서 『씨네샹떼』와의 만남은 반가움에서 시작된다. 영화를 보고, 느끼고, 이야기함으로써 이해에 다다르고 싶은 간절함을 알아주는 이를 만난 느낌이다. 『씨네샹떼』의 이야기는 영화의 이론에만 갇혀 있지도 않고, 작품과 동떨어진 사유의 세계를 부유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두 영역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이 영화적 기법과 역사에 대한 의미를 짚어준다면 철학자 강신주는 그 안에 녹아있는 인간과 사회와 시대의 자화상을 읽어내는 까닭이다. 영화 전문가와 철학 전문가의 만남인 동시에 영화 문외한과 철학 문외한의 만남인 이유로, 두 사람의 언어는 평범한 관객들의 눈높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또는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는 균형감 잡힌 이야기를 평이하게 들려줄 수 있음은 『씨네샹떼』가 가진 미덕이다.
『씨네샹떼』는 지난 해 여름부터 6개월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진행한 동명의 영화 토크쇼를 정리한 것이다. 그들이 함께 감상한 영화에 대한 정보는 물론, 강연을 통해 나눈 이야기, 관객들과 나눈 대화까지도 ‘정돈’해 놓았다. 철학자 강신주가 “책으로 만들면서 많은 부분들을 아프게 버려야 하는 점이 안타까웠다”고 밝혔을 정도로 단순히 내용을 정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야기들을 책의 언어로 재탄생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그리고 토크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깊어진 시선을 담아놓았다. ‘철학자의 눈’ ‘비평가의 눈’이라 이름 붙인 장에 실린 글들은 토크쇼가 끝난 후에 적어 내려간 것으로, 소통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넓혀간 두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평론가 이상용은 『씨네샹떼』의 문을 열며 “결과적으로 이 책은 한 권의 시나리오였다. 이를 바탕으로 25회의 촬영 현장이 펼쳐진 것이다”라고 적었다. 충격으로 다가왔던 탄생의 순간부터 성장과 방황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화가 걸어온 길을 조명한 이 작품은 ‘영화에 대한 성장 영화’라 부를 만 하다. 뤼미에르 형제와 조르주 멜리에스에서 시작해 로베르 브레송과 알프레드 히치콕, 김기영, 장 뤽 고다르, 우디 앨런과 장이머우를 거쳐 미야자키 하야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다다르기까지, 영화사의 물길을 틀었던 거장 감독과 작품들이 즐비하다.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탁월한 감독들, 그리고 그들의 빛나는 대표작을 통해 우리 이웃들에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출간 이유를 밝힌 강신주의 말에서도 『씨네샹떼』가 가지는 의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터다.
오늘날 영화에 대한 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범람하고 있지만, 정작 영화를 응시하고 들여다보고 생각하면서 동시대를 사유하는 말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이 책의 열망은 시대의 뒤안길로 접어든 영화의 성찰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와 함께 영화의 언어가 타오르는 것이다. (『씨네샹떼』 15쪽)
『씨네샹떼』를 보면 영화의 문법이 보인다
『씨네샹떼』에 소개된 25편의 영화를 선정하는 데 이견은 없으셨나요?
이상용 :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선택한 건데요. 그 중에서도 많은 분들에게 전달될 만한 영화들, 영화사에서 누구나 꼽게 되는 걸작들, 시대의 격변을 끌어안고 있는 영화들을 선택했죠. 조금 더 친절하게 작가를 안내해 드리고 싶었고,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들을 같이 말씀드리길 원했거든요. 지역적인 안배를 하기도 했고, 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들을 고르기도 했지만, 일단은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골랐어요. 그래야 편하게 권유할 수 있으니까요.
강신주 : 주관적이라는 이상용 선생님의 말은 정직하게 골랐다는 의미에 가까울 거예요. 어떤 사람은 어려운 걸 다룸으로써 자신이 유식하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이상용 선생님은 영화에 자신감이 있으신 게, 쉬워 보이는 영화에도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다고 말씀하세요. 저는 보편적인 영화 25편을 꼽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상용 선생님을 감동시켰던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도 감동시킬 수 있는 영화들이죠.
고전 작품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만, 이미 많이 이야기된 작품을 재론한다는 것이 부담되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상용 : 그렇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고전에 대해서 오인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너무 많이 들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하지만 직접 경험하고 나누는 시간들은 그다지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씨네샹떼』에서 소개한 작품들은 마땅히 함께 나눠볼 만하고 얘기해 볼만 한 것들이고요. 제가 자신감 있게 편한 마음으로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이 얘기하면 재밌을 작품들을 고른 거예요. 고전의 가치라는 건 같이 읽어보고 보고 경험해야 빛나는 것 같아요. 알고 있다고 믿는 환상 속에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강신주 : 『씨네샹떼』를 처음 기획할 때 저희의 의도는, 우리가 처음 영화를 봤을 때의 친근한 느낌을 끌어올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어떤 작품을 처음 봤을 때는 30%만 보였는데 『씨네샹떼』를 읽은 후에는 60% 70%를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를 바랐어요. 그러면서 더 성장하고 성찰할 힘도 생기고요.
『씨네샹떼』의 구성을 살펴보면 영화라는 존재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상용 : 중요한 순간들의 영화들을 끄집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처음부터 영화의 아버지 격에 해당되는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부터 최근의 작품까지 다뤄보자는 흐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 때는 영화사의 중심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약간 소외됐거나 수그러든 흐름들도 적절히 안배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상대적으로 할리우드나 미국 영화를 최소화시키기도 했고요. 『씨네샹떼』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대적 격변을 따라갔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2차 세계 대전 이전과 이후, 70년대에 보수화되면서 등장했던 세계사의 흐름도 따라가고 있거든요.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시대와 떨어져서 홀로 존재하는 장르가 아니에요. 너무나 대중적인 장르이고 많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밖에 없는 예술 매체이기 때문에, 그 흐름들을 충실히 짚어가면서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의도하신 이유가 있으실 텐데요.
이상용 : 영화와 관련된 책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있었어요. 전체 흐름도 조망하면서 주요한 작품들에 대해서 재해석하거나 지금 우리 시대에 맞게 현대적 언어로 다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데 왜 이런 책들이 없을까, 정말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천만 관객 시대라고 하는데 그에 반해서 영화를 정리하는 움직임은 왜소한 것이 아닌가 싶었던 거죠. 그것이 『씨네샹떼』의 가장 큰 출발점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강신주 : 제가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대화해 보니까, 정작 읽어야 될 보석 같은 것들을 놓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관객 수준을 올리는 건데, 그래야 작은 예산의 영화도 사는 거거든요. 문화가 획일적으로 되는 건 끔찍한 일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영화를 제대로 보자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이상용 선생님에게 『씨네샹떼』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 거예요. 이 책을 잘 보다 보면 영화 보는 눈이 굉장히 커져요. 인문학에서 문법에 해당하는 건 역사일 수밖에 없거든요. 역사란 기승전결을 요약한 거예요. 『씨네샹떼』를 통해서 영화사 100년을 훑는 순간 영화의 문법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보여요. 수록된 작품은 25편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영화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영화를 보려면 지적 허영부터 버려라
철학자와 평론가의 만남이어서 좋았던 부분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이상용 : 만약에 평론가 혼자 혹은 평론가 둘이 했으면 재미없었을 것 같아요. 영화 평론이라는 한계 속에 너무 갇혀서 정보나 지식들을 많이 전달해 줄지언정, 그것들이 현실의 삶과 결합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들은 상대적으로 덜했을 수 있었겠죠. 다행히 『씨네샹떼』는 강신주라는 사람과 함께 했기 때문에 영화가 우리의 경험과 삶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이나 참고가 될 수 있는지 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대한 정보는 이미 블로그에 많이 있잖아요. 중요한 건 그것을 우리의 말과 생각과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인데 그건 어디에도 없죠. 그걸 만들어가기 위해서 이 조합은 굉장히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강신주 : 다른 분야의 전문가 둘이 모이면 담론이 쉬워지죠. 저는 영화에 문외한이고 이상용 선생님은 철학에 문외한이니까, 서로를 이해시켜야 하잖아요. 거기에 관객까지 개입되니까 친근해지고요. 그 부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씨네샹떼』에는 저희가 대화를 나누고 관객들과 질의 응답한 부분들도 담겨 있고, 철학자와 비평가가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에 대한 글도 실려 있는데요. 그것들이 모여서 진짜 풍성해졌다고 생각해요.
“우리 이웃들에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적으셨는데요. 우리가 영화를 읽고 이야기하는 행위의 목적이 ‘성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신주 : 성찰은 온 몸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거예요. 영화라는 매체는 어두운 공간에서 혼자 바라보는 관음증적 매체인데, 사실 영화감독들은 성찰을 요구하거든요. 『씨네샹떼』에 실린 25편의 영화를 결정했을 때도 영화에 물씬 들어가자고 이야기했어요. 이상용과 강신주라는 사람도 이 영화들을 보면서 더 많이 지혜로워졌고 삶을 바라보게 됐으니까요. 성찰의 힘이라는 건 그런 거죠. 피상적으로 살지 말고, 구경꾼으로 살지 말고, 영화 속에 뛰어들어서 젖어 들자는 거예요. 전쟁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도 좋은 영화들은 그것이 얼마나 참혹한지 가슴 속까지 느끼게 하잖아요. 이상용 선생님께서 선택하신 영화들은 그런 거예요.
이상용 : 성찰에 대해서 두 가지 범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영화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숨겨져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요. 또 하나는 정말 중요한 영화들인데 지금은 잊혔거나 잘 안 보는 영화들과 만나는 거죠. 고다르(장 뤽 고다르)나 안토니오니(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들은 여전히 새롭고 대단히 중요한 영화들인데, 사람들은 낯설게 느끼거나 어색해하고 충격을 받기도 하거든요. 그것 역시 굉장히 중요한 영화적 경험이에요. 그러니까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고, 낯선 것들은 ‘그것이 왜 지금까지도 새롭고 현대적인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거죠. 『씨네샹떼』는 그 두 가지 층위를 골고루 배합해 놨기 때문에 영화들에 다가갈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발견하실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성찰과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왜 평론가나 철학가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까’를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성찰에 이르는 지름길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강신주 : 우리 눈에는 보이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거죠. 제가 공부를 하면서 얻었던 건 딱 하나예요. 내 느낌에 충실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거죠. 중요한 건 정직하게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으니까 흉내 내려 하거든요. 안경을 벗으면 보여요. 모두가 똑같이 보인다고 말할 때 ‘나에게는 이렇게 보인다’라고 얘기하면 시작되는 거죠. 영화를 보고 내 감정을 울렸던 부분에 대해서 왜 그랬는지, 어떤 기법 때문에 감정이 울렸는지 반성하면 영화 평론이 되는 거예요. 영화가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하면 되는데, 다들 위대하다고 하면 그냥 따라가거든요. 그 허위가 쌓이는 거예요. 영화 이론을 과잉해서 영혼 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어떤 스토리 라인이나 장면에서 감정이 울리면 그것만 반성해도 돼요. 성찰은 그런 거죠. 감정과 느낌 없이 성찰을 하면 지적 허구가 돼요.
이상용 :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이야기하는 자신감과 솔직함이 비평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곧 철학이자 성찰이고요. 솔직하지 못하면 안경이든 필터든 쓴 채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보이는 대로 말하는 데에 있어서 평론가나 비평가의 위치에서는 책임이 따르죠. 왜 그렇게 보이는지에 대해서 열린 자세로 같이 대화를 나눠야 하니까요. 결국 자신이 왜 그렇게 봤는지에 대해서 언어를 통해서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본 대로 말하지 못하는 거죠. 그 지점까지 갈 수 있다면 누구나 영화를 통해 성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씨네샹떼』에서 저희가 나눈 이야기들도 똑같아요. 각자가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왜 그렇게 봤는지 얘기한 거거든요.
강신주 : 지적으로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적으로 너무 과잉되어 있고 지적 허영이 많아서 영화가 안 보이는 거예요. 정직하게 ‘이 장면이 좋았다’부터 쌓아 올리면 돼요. 어린아이 같은 순진성을 가지고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어요. 강신주와 이상용이 위대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순진함을 회복해서 보이고 나는 잘난 척하기 때문에 안 보인다’라고 생각하면 정답에 가까울 거예요.
이상용 : 영화는 숨기는 매체가 아니에요. 다 보여주는 매체죠. 다만 내가 열어놓고 있지 않아서 다가가지 못하는 거예요. 일단 내 눈으로 볼 것, 그리고 앞에 보이는 매체는 모든 것을 들려주고 보여주려고 애쓰는 매체라는 걸 당당하게 대면할 것.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될 것 같아요.
철학자와 비평가의 행복했던 변화
“궁극적으로 우리는 영화를 통해 철학자가 영화평론가가 되고, 영화평론가가 철학자가 되는 걸 꿈꾼다”고 하셨습니다. 영화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서로의 시선에 영향 받기도 하셨나요?
강신주 : 처음에 한 편의 영화를 봤을 때 강신주는 강신주로, 이상용은 이상용으로 있었죠. 그런데 영화를 매개로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쓰면서 강신주의 글에 이상용 선생님의 흔적이 남게 됐어요. 이상용 선생님의 글에는 강신주의 흔적이 남게 됐고요.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더 성장하고 안목이 넓어졌으니까요. 이상용 선생님은 철학적으로 변하고, 강신주는 영화평론가적 감각이 생긴 거예요. 강신주가 영화평론가가 됐거나 이상용 선생님이 철학자가 된 게 아니에요. 이상용 선생님은 어떤 철학자를 만나든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고, 저도 다른 영화평론가를 만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해가듯이 『씨네샹떼』는 실질적 관계에 들어가 있어요. 책이 나오기 전이나 후에 이상용 선생님은 달라졌고 저도 달라졌죠. 그건 행복한 거예요.
이상용 : ‘비평가의 눈’ ‘철학자의 눈’ 속에는 강연에서 서로에게 들었던 말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죠. 교정 과정에서 보니까 강 선생님 글 속에 제가 했던 말이 있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제가 쓴 글 안에도 강 선생님이 중요하게 다뤘거나 툭 던졌던 말을 받아서 다른 식으로 풀어놓은 부분이 있죠. 강연을 함께했던 청중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체도 모든 강연의 시작과 끝이 달랐어요. 첫 회를 시작했을 때와 마지막 회를 마칠 때의 호흡과 느낌도 달라져 있었고요. 그 결과물들의 총 집합체가 『씨네샹떼』라고 할 수 있어요.
책이 상당히 묵직합니다. 900쪽 가까운 분량인데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려면 어떤 방식이 좋을까요?
강신주 : 25편의 영화 중에 분명히 본 영화가 있으실 거예요. 그 부분부터 읽으면 돼요.
한편에서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라고 조언하기도 하더군요.
강신주 : 어떤 방법도 관계없어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본 영화, 좋아하는 감독에 대한 이야기부터 읽는 거예요. 그러면 금방 알게 될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이 영화가 이렇게 더 깊게 풀리고 감동을 주네’라는 생각이 들 거고, 그러면 다른 꼭지도 알아서 찾아보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을 먼저 읽으면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으로만 영화를 이해하려고 할 거예요. 그러니까 목차만 살펴보거나 영화를 보고, 만약 한 편도 관람한 영화가 없다면 편한 느낌이 드는 영화부터 넘겨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면 ‘나는 뭘 봤던 거지’하고 놀랄 수도 있을 거예요. 『씨네샹떼』의 목적이 그거거든요. 봤던 영화 다시 보게 하기,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쌓인 뒤에는 보지 않은 영화도 ‘이상용이랑 강신주가 정해 놓은 영화네, 봐야겠네’라는 신뢰까지 끌어내는 거죠.
이상용 : 책에 실린 영화들은 개봉한 지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라는 개념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좋은 영화들은 내용과 줄거리를 다 알아도 상관없어요. 줄거리나 몇 가지 언어로 요약되지 않는 수많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거든요. 『씨네샹떼』가 다루고 있는 영화들은 내용을 안다고 해서 영화를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들이에요.
철학자 강신주와 영화평론가 이상용은 『씨네샹떼』를 통해 영화 담론을 뿌리 내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더욱 풍성한 영화 이야기를 피워나가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책 밖에서도 활발히 이어질 예정이다. 6월부터는 대학로에 위치한 ‘벙커1’에서 ‘30금 씨네샹떼’라는 이름으로 오픈 강좌를 시작한다. 『씨네샹떼』의 싹을 틔웠던 극장 CGV에서도 새로운 강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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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샹떼 강신주,이상용 공저 | 민음사
인구 대비 영화 관객 수가 가장 많은 한국은 세계적인 감독들을 배출하고 있는 영화 선진국이다. 그러나 영화 독자는 정작 읽고 싶은 책을 찾을 수 없다. 어려운 용어만 난무하는 현학적인 글이거나, 영화를 하나의 스토리로 접근한 평론이거나, 또는 소개한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성이거나 너무 지루한 예술영화 얘기만 하고 있거나… 이 모든 불만 사항을 고려하고 앞으로 펼쳐질 영상 시대를 대비한 종합 대책으로서 『씨네샹떼』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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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