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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아이즈> 버튼인 듯 버튼 아닌 버튼 같은 조롱

영화 <빅 아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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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아이즈>는 그렇게 예술과 창작의 본질, 예술의 가치와 대중예술의 싸구려 감성에 대한 태도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기에 훌륭함이 틀림없다”

 

앤디 워홀이 남긴 ‘빅 아이즈’ 현상에 대한 평으로 영화 <빅 아이즈>는 시작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커다란 눈의 소녀 그림은 프린트를 통해 차곡차곡 쌓인다. 팀 버튼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이미 서두부터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 챘을 것이다. 하지만 <빅 아이즈>는 논쟁적이지 않다. 시작부터 끝까지 줄곧 조심스럽다. 평상시처럼 미국 문화의 키치적 습성들을 조롱하지만, 정작 키치 예술을 대량생산해낸 예술가에 대한 관점은 신중하다. 아마 실존 인물이면서 아직도 살아있는 예술가 마가렛 킨을 배려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건 배려라기보다는 존경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빅 아이즈> 속 슬픈 눈망울의 아이들을 이미 봤던 기억이 있다. 팀 버튼 감독의 애니메이션 <프랑켄위니> 혹은 <유령신부>의 주인공들을 떠올려 보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커다란 눈매에는 요상하게 슬픔이 어려 있다. 매혹적이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마가렛 킨의 ‘빅 아이즈’는 팀 버튼에게 아주 가까운 예술이었고, 늘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은 큰 눈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팀 버튼은 자신의 작품의 영감의 원천이 된 마가렛 킨에 대한 존경을 전한 바 있다. 그렇게 영화 <빅 아이즈>는 팀 버튼의 B급 감성을 직조하는데 큰 영감을 주었던 감독 에드워드 우드 주니어에 대한 헌사를 바쳤던 <에드우드>에 이어, 실존했던 예술가에게 바치는 두 번째 헌사를 담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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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킨의 고소가 없었다면, 1950~6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월터 킨은 그림뿐만 아니라 포스터와 아트 상품을 겸하면서 대중미술의 상업화의 전기를 마련한 인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1986년 부인인 마가렛 킨이 월터를 고소하면서 그림을 실제로 그린 사람이 마가렛 킨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의 전말이 드러났다. 마가렛 킨의 극적인 이야기는 여러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당연하게도 오랜 그녀의 팬을 자처한 팀 버튼 감독이었다. 마가렛 킨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고,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팀 버튼은 이전에 보여주었던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는다. 우선 1996년 이후 단 한 번도 떨어져 본적이 없는 그의 페르소나 조니 뎁과 헬레나 본헴 카터가 등장하지 않는 것부터가 새롭다. 그렇게 영화 <빅 아이즈>는 팀 버튼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가 되었다. 에이미 아담스와 크리스토프 왈츠라는 배우는 낯설어진 팀 버튼의 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더한다.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이다. 당시 미국사회는 여권운동이 벌어지기 전 보수적인 남성중심의 사회였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물론, 예술가로서의 여성의 삶 자체도 온전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이혼을 경험한 마가렛 킨은 자신의 예술과 어린 딸, 두 가지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남편의 그늘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잊었던 그녀는 자신과 딸의 삶을 당당하게 지키기 위해 법정에 나선다. 아버지에 대한 헌사 <빅 피쉬> 이후, <빅 아이즈>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앞서 말한 것처럼 팀 버튼은 마가렛 킨이라는 한 여인이자 어머니에 대한 판단을 최대한 유보하고, 예술가이자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의 마가렛의 삶 자체를 긴밀하게 들여다본다. 동시에 마치 자기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빅 아이즈>가 예술가의 전기를 다룬 평이한 드라마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팀 버튼은 비주류 감성을 가진 예술이 대중적 관심으로 주류가 되어가는 과정을 미국의 키치적 현상으로 보고, 대량복제의 시대로 넘어가는 대중예술의 생산 과정을 조롱하기도 한다. 대중적 성공에 도취된 월터 킨은 마가렛 킨에게 박람회를 위한 거대한 사이즈의 그림을 강제로 그리게 하는데, 영혼이 없는 이 그림은 줄곧 ‘빅 아이즈’를 하찮게 여겼던 뉴욕 타임즈의 미술평론가 존 케너데이에 의해 조롱된다. 영화는 줄곧 미술계의 홀대와 딕 놀란이라는 기자로 대변되는 언론의 호응 사이를 오가면서 진정한 예술의 가치가 무엇인지, 누구의 평가가 온전한 것인지를 되묻는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가렛 킨이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진열된 상품들 사이로 수북하게 쌓인 복제된 자신의 그림과 만나는 장면이다. 이 속에서 그녀는 사람들의 눈이 ‘빅 아이즈’가 되어있는 환영과 마주한다. 기괴하고 비일상적 감성을 가진 그녀의 작품이 시대의 감성으로 포장되어 가는 과정은 팀 버튼 영화답게 비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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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아이즈>는 그렇게 예술과 창작의 본질, 예술의 가치와 대중예술의 싸구려 감성에 대한 태도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자신의 창작물을 남편에게 도둑질 당한 마가렛 킨의 실화는 예술의 대량생산과 판매라는 화두와 맞물려 과연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화자가 평론가 존 케너데이였다면 확연하게 달라졌을 영화의 화자가 가십전문기자였던 딕 놀란이라는 점은 <빅 아이즈>가 지향하는 주제의식과 맞닿아있다. 대중예술의 허상과 미디어라는 위선을 조롱하면서도 동시에 그림을 향한 마가렛의 열정, 딸을 향한 사랑, 그리고 그 속에서도 빛나는 예술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마구 뒤섞인 <빅 아이즈>는 고급예술과 키치를 오가는 팀 버튼의 영화답다. 다시 영화의 타이틀에 오롯이 담긴 앤디 워홀의 기이한 평가를 되짚어 보자. 그 말을 뒤집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것이 아니다.’가 된다. 과연 그런가에 대한 해답은 영화 속에는 없다. 그건 너희들이 찾아야지, 라고 말하는 것이 참으로 팀 버튼답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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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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