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는 구석이라곤 별로 없을 것 같은 두 사람,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과 주영대사?주일대사를 역임했고 현재 한양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70대 학자 라종일과 30대 에세이스트이자 아픈 상처를 어쩌지 못해 괴로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김현진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주로 김현진이 물었다. 사랑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라종일은 답했다. "문제는 우리가 경험하는 크고 작은 상처, 그 상처의 아픔이 아니라 그 아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있겠지요.(28쪽)"
지난 2월 4일 저녁, 『가장 사소한 구원』의 두 저자와 함께 나눈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저물어가는 겨울밤을 붉게 물들였다. 이날 행사는 『가장 사소한 구원』의 김현진 저자가 송기역 시인과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의 공개방송으로 함께 진행됐다. 출판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 진행자 박태근과 시인 송기역의 사회로 김현진, 라종일 저자와의 북토크가 진행됐다.
박태근(이하 '박'): 도대체 이 두 분이 어떻게 서로를 알게 돼서 연애편지보다 더 깊고 진한 편지를 나누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현진(이하 '김): 너무 매치가 안 된다고 다들 궁금해 한다. 2009년 『그래도 언니는 간다』라는 책을 냈다. 강준만 교수님이 좋게 서평을 써주셨는데 라종일 선생님이 관심을 가지셨던 것 같다. 책을 보시고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 처음엔 의아했다. 보통 이런 분들은 저를 전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웃음) 당시 김대중 대통령 서거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선생님과 커피 한 잔 하면서 너무 마음이 안 좋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무렇지 않게 '물론 돌아가신 건 애석한 일이지만 그분은 자신의 정치적 목표나 이룰 수 있는 명예도 많이 이루신 분이다. 당신은 작가로서 그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생(生)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라는 말씀을 하시더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해서 인연이 시작됐다.
송기역(이하 '송'): 라종일 선생님은 어떻게 전화를 하게 되셨나?
라종일(이하 '라'):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게 있었다. 우리 민족이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커다란 위기 두 가지가 분단문제와 언어 문제라는 점이다. 유럽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그런지 유럽에는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이 많더라. 지금도 세계에는 육천 개 정도의 언어가 있는데 매년 서른 개 정도의 언어가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 국어 역시 위기다. 민족 분단과 언어 문제는 함께 겹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북한의 지도자, 민족 모두가 함께 읽고 감동 받을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통일에 좋은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현진 작가의 책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우선 현실감각이 굉장히 날카롭다. 또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다. 가장 큰 장점은 나이가 젊다는 것이었다. 60대까지 공부를 하면 내가 늘 바라던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말이 있다. '프랑스 말은 사랑을 나눌 때 쓰고, 영국 말은 장사를 할 때 쓰고, 독일 말은 돼지를 나무랄 때 쓴다.'(웃음) 그런데 괴테 같은 사람이 나오고, 칸트와 헤겔 같은 사람이 나오니까 독일어가 사랑 받았다. 체호프나 투르게네프의 등장으로 러시아 말도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분단을 극복할 수 있고, 우리 언어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임꺽정』을 쓴 홍명희를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존경한다. 언어를 살리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작품 없이는 한국어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김현진 작가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박: 그렇게 서른두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를 주고받은 시차가 궁금하다.
라: 저는 답을 금세 쓰는 편이다. 옛날에도 숙제를 바로바로 했다. 그런데 김현진 작가는 아마 생각나거나 화가 날 때 편지를 썼던 것 같다.(웃음) 출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판이라는 것은 공적인 프로젝트다. 반면 우리가 주고받은 얘기는 사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안 된다 생각하고 끝까지 저항했는데 김현진의 투지를 못 당했다. 책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저항을 했었다. 출판이 의외로 관심을 끈 것을 보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하다.
송: 김현진 작가는 몇 번째 편지에서 출판을 고민했나?
김: 애초부터였다. 왜 글을 쓰는가 생각한 적이 있다. 몇 년 전에 쓴 제 책을 읽고 한 여자 분에게 이메일을 받았다. 대학 초년생 때 안 좋은 경험으로 극단적인 결심을 하고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제 책을 읽었는데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것을 계기로 열심히 공부하고, 원하는 직장에 첫 출근을 했다며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한 명이라도 제 책으로 위로를 받는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내가 받은 특혜를 나눠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해서 선생님이 반대해도 '시대가 원하는 거다'라고 설득했다.
송: 서른두 통의 편지 외에 더 주고받은 편지가 있나?
김: 휴대폰 메신저로 자주 한다. 오늘 받은 것은 제가 최근 아파서 부었다고 메신저를 보냈더니 네 글자로 답을 주셨다. '서시빈목(西施?目)'.
라: 중국에 서시라고 최고의 미인이 있었다. 서시가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니 더 예뻤다고 한다. 요즘 아파서 안 예쁘다기에 미인은 아파도 예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다.
김: 그러니까 제가 눈만 높아져서 남자를 못 만난다.(웃음) 남자 분들은 외웠다 잘 써먹길 바란다.
박: 나보다 어린 사람의 책을 잘 안 읽는 일종의 권위주의적 경향이 있다. 라종일 선생님께서 이렇게 어린 작가와 책을 냈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라: 주변에서는 책이 나올 때까지는 몰랐다. 출간 후 오히려 좋았다. TV출연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책이 나올 때만큼은 출연한다. 얼마 전에도 출연했다.
김: 선생님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
송: 김현진 작가가 '나의 남자친구'로 라종일 선생님을 자주 소개한다. 라종일 선생님은 실제로 젊었을 때 김현진 작가를 만났다면 어땠을 것 같은가?
라: 저를 남자친구라고 자주 소개하는데 우선 나를 남자로 생각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일이다.(웃음) 현진 작가의 부모님에게 동정이 간다. 이렇게 짓궂은 아이를 키우려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한다. 연인이 되기에는 조금 무섭다. 저는 파괴적인 사랑에 취미가 없다. 담배도 술도 안 하는 그런 사람이어서 붉고 은밀한 사랑에는 취향이 없다.
박: 책에서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를 나눈다. 연애, 아이, 청년. 연애에 대한 태도에서 라종일 선생님의 답변은 상담자와 같다. 전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씀을 하는데 라종일 선생님 개인의 연애가 궁금하다.
라: 연애는 많이 안 해봤다. 특별히 배타적 관계를 설정하려거나 로맨틱한 것을 좋아하는 면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예전에 누군가 내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는데 '당신이 사랑한다고 한 것은 당신의 식욕을 사랑하는 것이다, 굉장히 배가 고프면 먹음직하지 않은 것도 사랑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했다. 우리말이 참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함부로 해석돼 있다. 쉬운 일이 아닌데 쉽게 '사랑'이라는 말이 나온다. '고양이가 제일 사랑하는 건 쥐 아니겠는가.'라고 한 적이 있다. 사랑에 관해서는 조금 경계하는 편이다.
김: 알지도 못하는 그 분을 동정하게 되면서 어디 가서 절대로 배고프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박: '사랑한다는 말, 엄청나게 무겁다. 언어의 혼란, 사고의 혼란을 위해서 필요할 때만 쓰고 상황에 맞는 다른 말을 개발해봐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여전히 개발 중인가?
라: 고대 희랍어는 여러 가지 말로 사랑을 표현했다. 친척, 부모 간의 사랑도 있고, 지식에 관한 사랑 역시 그렇다. 상황에 맞는 말을 여러 분들이 생각해보라.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잘못이다. 만일 일제가 패망하지 않고 우리가 독립했다면 언어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아일랜드의 경우 300년 걸려 영국을 쫓아냈다. 결국 언어를 잃었다. 영어로 완전히 동화됐다. 유명한 아일랜드 작가들 모두 영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야스쿠니에 나도 참배를 하고 싶을 정도다.(웃음)
박: '아이'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선생님 말씀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김현진 작가는 결국 태도를 달리하는 듯한데, 진심인지 궁금하다.
김: 아이를 낳아서 비정규직 인력이나 깔아주라는 말인가, 하는 태도가 예전부터 있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이 선생님께서 그런 생각이야말로 아이를 낳아 생산 인력으로 달라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하셨다. 결국 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들과 같은 곳에서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은 언제까지 젊을 수 없고, 누구나 자신의 자리를 뒤에 내줘야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친구가 아이를 낳았다. 그런 식으로 자리바꿈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를 낳는 것과 상관없이 내 자리를 뒤에 물려준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야겠다, 그러려면 그 이상의 태도가 있어야겠다, 생명이 생명을 잇는다는 개념은 내 안에 새롭게 정립해야겠다, 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다소 굴복적인(웃음) 태도로 바뀐 것 같다.
라: 사랑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다면 그건 자기 아이를 안았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게는 아이가 큰 구원이고 혁명이었다. 말구유 속에 담긴 아이가 구원의 상징이자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신화를 그때 깨달았다. 이후로 사람을 다르게 본다. 공부 못하는 학생을 멀리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학생을 가까이하게 된다.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그에게 부모가 쏟았던 정성을 생각한다. 자랑스러운 경험은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고도 보편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은 아이를 낳지 않고도 사람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고, 칸트는 결혼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의 영역으로 대하라고 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세상에 나와 가장 훌륭하게 경험한 것을 묻는다면 아이를 낳아 키운 경험이라고 이야기하겠다.
송: 삼포세대, 88만원 세대라고 하는 '청년'들 다수가 비정규직 삶을 살고 있다. 라종일 선생님 세대의 청년문제는 어땠나?
라: 탁석산 선생이 한국사회가 지향하는 바를 세 단계로 분류했다. 생존, 행복의 추구, 삶의 의미 순으로 발전해왔다고 한다. 저희 세대는 생존의 문제가 주요했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쉽지 않았다. 다만 지금과 차이가 있다면 원래 어려운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당시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문제에 대처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전체적으로 그렇다.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자본가들은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해 임금을 깎아야 한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 경제가 계속 좋아질 수는 없는 문제다. 쉬운 해결이 없다.
박: 결국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태도로 바라보는지에 대한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칼럼니스트 김경 씨가 라종일 선생님에게 공개질문을 했다. '무엇보다 먼저 묻고 싶다. 이 세상은 진정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생각하나?
라: 나는 낙관론자가 아니다. 세상에 대해 비관하고 산다. 통제된 비관론이다. 대개 자살하는 사람들은 낙관론자들이다. 세상에 좋은 게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살은 이중의 부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보코프 소설에 그런 장면이 있다. 폭군을 죽여야 하는데 방법이 없으니 스스로 죽인다. 그러면 깨끗이 해결된다. 사람들은 큰 것을 바라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한 철학자가 말했다. '인간이라는 구부러진 나무를 가지고는 절대로 똑바른 재목을 만들 수 없다.' 사람이 세상을 그렇게 훌륭하게 만들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일제 말기를 기억한다. 정의가 없는 사회, 폭력적인 갈등의 시대였다. 여자, 아이들의 지위가 형편없었다.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마해송, 방정환 선생을 훌륭한 혁명가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시골에서 자랐는데 여자가 성폭행을 당해도 하소연을 할 수 없었다. 남자들은 자랑을 하고 다니고 오히려 여자들은 움츠리고 지내는 걸 많이 봤다. 어렸지만 참 부정의하다고 느꼈다. 해방 후에는 이념의 차이로 서로 살상하는 모습도 많이 봤다. 그렇게 폭력을 직접 경험했다. 한국전쟁 때는 오랫동안 함께 지낸 이웃끼리 서로 죽이는 것도 봤다. 그런 세상을 산 사람과 여러분은 다를 거다. 때문에 그래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묵살하지 않고 어떤 사안에 대해 공론화가 진행되고 비판을 한다. 그 정도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송: '이야기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라는 멋진 표현이 있다. 이야기가 무엇일까. 아픔을 표현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김현진 작가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편지를 다 쓴 소감이 어떤가.
김: 작년 한 해는 거의 칩거를 했다. 그러는 동안 라종일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활동을 시작하니 다시 안 좋아지는 것 같아 2탄을 해야 하나 고민이다.(웃음) 편지를 나누면서 우리 사회가 서로 본전 생각을 많이 한다고 느꼈다. 심지어 친구끼리도 그런데, 그런 것에 젖어있지 않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러분도 이 책을 보면 그런 정성과 진심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이 편지가 저뿐 아니라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병풍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말을 세상에 나오도록 한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라: 세상은 부정의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회도 완전히 정의로운 사회는 없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없을 것이다. 어떤 정의를 세워도 그 정의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야기야말로 정의의 치장이다. 이야기가 꼭 있어야 한다. 이야기가 정의의 그늘 밑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풀어줘야 한다. 이야기가 없는 사회가 제일 부정의한 사회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회가. 그래서 이야기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기가 당한 고통을 얘기할 수만 있다면 이미 치유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창비에서 출간된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보며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다.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야기라는 것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토록 중요하다.
김: 편지를 나누면서 완전히 다 나았다기보다는 이성적 비관의 태도를 배운 것 같다. 희망이 안 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랑이 왜 썩고 악취가 나냐고 물었을 때, 오히려 네가 할리우드적 환상에 사로잡혔던 것 아니냐는 답을 들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고 그에 저를 맞추게 된 것 같다.
라: 김현진 작가의 글 중에 제일 감동한 것이 마지막 편지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부분이었다. 원래 있던 말이라도 그걸 쓸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원래 없는 말은 없다. 별로 감동을 안 하는 편인데 그 부분에서 감동을 했다.
박: '멋스런 노년 신사가 돈도 빽도 없는 청춘에게 건네는 말들'이라고 책에도 쓰여 있는데 최근에 한국 사회에 이처럼 어른들이 불려나오고 있다. 채현국 이사장님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라종일 선생님도 이 사회의 어른으로 목소리를 전해준 맥락이 있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나?
라: 우선 어른이라는 건 안 믿는다. 어쩌다 정계에 몸을 담아서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한 사람도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해 본 사람이 없다.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어른이 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이라고 하는 제 세대의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유시민 씨가 『나의 한국현대사』를 썼는데 보니까 그런 얘기가 있었다. '나이 많은 기성세대가 박근혜에 투표해서 대통령이 되도록 한 것은 자기 세대를 알아달라는 뜻이었다.' 왜 그런 해석이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성세대가 그런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자신을 알아달라는 생각을 버리고 세대 간에 간격이나 어려움 앞에서 그래도 나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다가가려고 해야 하지 않나,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송: 결론적으로 책을 잘 내셨다고 생각하나?
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우선 김현진 작가가 좋아하기 때문이다.(웃음) 그 정도 보람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본다니까 그렇게 후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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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소한 구원라종일,김현진 공저 | 알마
대한민국 1퍼센트라 불리는, 이른바 성공적인 엘리트 코스를 밝아온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와 10대 시절 《네 멋대로 해라》를 출간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자칭 집도 절도 빽도 없는 도시빈민이자 비정규직 노동자 에세이스트 김현진. 두 사람이 뜻밖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로 주고받은 편지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서로를 알게 된, 겹치는 데라고는 전혀 없는 30대 ‘날백수’와 멋스러운 70대 노교수는 네 계절 동안 32통이나 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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