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말에는 묵직한 정서적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낭만적 힘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뜻 아버지를 말하긴 어려웠다.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거나 등을 돌리고, 가족이란 이름에 길게 그늘을 드리운 존재였다. 그렇게 아버지는 터지면 골치 아프지만, 떼어버려도 별다른 문제없는 맹장처럼, 가족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화두로 소환해낸 <국제시장>은 예상대로 관객 천만을 가뿐히 넘겼다. 하지만 <국제시장> 속 아버지는 익숙함에도 친숙하지 않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인간적 모습을 잃은 채 영웅의 이미지에 갇힌 가부장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와 가족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배워보지 못한 아버지는 제 목소리를 내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동정 받지 못하고, 아련하기만 한 이름이 아버지이다.
<국제시장>처럼 격변기를 거쳐 꿋꿋이 삶을 살아낸 부모도 있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딱히 용기도 없는 소시민이었던 우리 부모들은 소용도 대책도 없는 가난하고 지난한 삶을 어떻게 살아왔을까? 내 자식 목구멍에 음식 넘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뼈와 살이라도 팔 수 있었을 거란 어른들의 나른하고 반복적인 회고담 속에는 고단한 삶을 견뎌온 자신의 뚝심에 대한 예찬도 있고, 그렇게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자식에 대한 원망도 있고, 고단한 자신의 삶이 나름 가치 있는 것이었단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까지도 담겨 있다. 하정우가 주연과 감독을 맡은 영화 <허삼관>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 피를 팔아 가족을 건사하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 보편적 회고담이 아니다. 허삼관은 우리의 아버지라는 대표성 대신,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어떤 아버지가 있다는 정도만 보여준다. 소동 끝에 드디어 아버지가 되어보려는 한 남자의 어떤 이야기인 셈이다. 그럼에도 <허삼관>은 친숙해 보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 아버지(였으면 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배경은 1950년대 충난 공주. 가난하지만 패기 있는 청년 허삼관(하정우)는 마을 최고의 인기녀 허옥란(하지원)을 사랑한다. 그녀의 선심을 얻기 위해 가진 것 없는 그는 피를 팔아 얻은 돈으로 그녀의 선심을 얻고, 옥란 아버지(이경영)의 마음도 얻어 그 집안의 데릴사위가 된다. 10년 뒤 일락, 이락, 삼락이라는 세 아들의 부모가 된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마을에 소문이 돈다. 일락이가 옥란이 시집가기 전 잠시 사귄 남자 하소용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혈액검사 결과, 일락이는 허삼관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충격을 받은 허삼관은 아내보다 일락이가 더 밉다. 그래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구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일락이가 병으로 쓰러진다.
알려진 대로 영화 <허삼관>은 중국 소설가 위화의 작품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지독한 가난을 풍자와 해학으로 품어낸 원작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영화 <허삼관>은 그 스토리를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해 낸다. 기승전결을 잘 아우르는 이야기는 수많은 배우들의 등장에도 산만하지 않고, 적당한 시점에 웃음과 눈물을 조화롭게 섞어 극의 완급조절도 해낸다. 한 마디로 <허삼관>은 딱히 모나지도 않고, 크게 흠잡을 곳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하정우 감독은 철없는 허삼관이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큰 무리 없이 재치 있고 가볍게 그려낸다. 전작 <롤러코스터>가 지녔던 매니아적 유머코드와 지독함은 걷어내고, 조금은 쉽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가가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남의 자식을 키워낸다는 마을 사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락이를 아들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는 두 가지 소동은 굉장히 극적이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매혈’의 서울행을 벌이는 장면에선 배우 하정우의 연기력과 감독 하정우의 연출력이 만나 서로 상승작용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카메오 수준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배우들은 <허삼관>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 되었다. 사실 감독 하정우 보다는, 배우 하정우와의 인연으로 출연했을 배우들의 면면은 정말 대단하다. 장광, 주진모, 성동일, 김영애, 전혜진, 이경영, 정만식, 조진웅, 김성균, 그리고 윤은혜가 등장한다. 그렇게 한국영화계를 이끌어가는 대표 주조연 배우들이 쉴 틈 없이 등장한다. 굵직한 존재감을 가진 배우들임에도 나서서 홀로 두드러지려는 법 없이 극에 잘 녹아들어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배우들이 대부분 기능적인 역할로 한걸음 물러서 있다는 말이다. 이런 배우들을 모아뒀다면 뭔가 더 대단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관객들의 기대는 그들이 별다른 기능없이 등퇴장을 반복하는 동안 무너진다. <허삼관>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마을과 배우들의 연기 톤, 극의 전환 등은 연극 공부 좀 한 사람이라면, 아는 브레히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낯선 순간들을 만들어 낸다. 분명한 의도였을지 모르겠지만, 관객들이 극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상업영화를 지향함이 분명한 영화의 결과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마음을 끌었던 부분은 지독한 현실을 견디게 만드는 삶의 해학 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깊은 해학 보다는 단발성 농담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허삼관>은 무난하지만 기대한 것처럼 탱탱하고 찰진 이야기를 품어내지는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허삼관>을 보고난 후라면 분명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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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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