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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되어 ‘놀란’ 감성의 피로함 <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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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의 승부수는 웜홀이라는 과학적 가설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물리학이다. 하지만, 과학을 동원한 상상력으로만 끝난다면 놀란 감독이 아니다.

얼핏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마겟돈>이 떠오른다면 당연히 잊어도 좋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터스텔라>는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영화다. 상상 그 이상을 실현시켜 보여주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망설임이 없다. 당연히 169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에도 지루할 틈이 없다.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는 물론이고, 가족과 사랑의 가치를 녹여낸 이야기도 억지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 경이롭고 숨 막히는 5차원의 공간과 과학적 상상력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이상하게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결론처럼 말하진 않겠지만, 이유를 알 것 같다. 놀란의 감성에 놀란 관객들에게 감독은 촘촘하게 꽉 짜인 이야기와 결말을 툭 던져주고, 다른 결말을 기대하거나 상상할 틈을, 즉 관객들이 좀 놀고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떨어지는 순간을 즐겨보려고 자이로드롭을 탔다. ‘에잇! 눈 감았어!’

 

 

 

재난을 극복하는 영웅담에서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경향은 재난 그 이후를 향하는 것 같다. <인터스텔라>는 인류의 멸망을 목전에 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극심한 환경 파괴로 식량 부족 상태가 된 지구는 농업사회로 회귀된 상황이다. 전직 우주비행사지만 지금은 농부인 쿠퍼(매튜 맥커너히)는 아내가 죽고 두 남매를 홀로 키운다. 그러던 어느 날 쿠퍼와 딸 머피는 이상한 신호를 발견하고 그곳을 향한다. 해체된 줄 알았던 NASA가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NASA는 지구를 대체할 수 있는 행성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쿠퍼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우주 탐험에 동참한다.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 과학자들이 선택한 것은 ‘웜홀’이다. 웜홀을 통해서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우주로 향한다.

 

<인터스텔라>의 승부수는 웜홀이라는 과학적 가설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물리학이다. 하지만, 과학을 동원한 상상력으로만 끝난다면 놀란 감독이 아니다. 그는 과학적 상상력이 발현된 SF에 인간 사이의 관계, 그 내밀한 소통이라는 이야기를 주입한다. 이를 위해 <인터스텔라>는 상대성 이론을 근거로, 인물 사이의 마주선 관계를 들여다본다.


우주에 나간 사람들과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그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주에서의 1시간이 지구의 7년이라는 가설에 따라, 우주로 향한 대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지구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20년의 세월을 보낸다. 우주와 지구라는 그 사이, 가족이라는 단단한 구심점으로 이어진 인물들의 이야기는 아무리 밀어내도 다시 원심력을 타고 절박하게 서로를 향해 되돌아온다. 4차원과 5차원이라는 공간 속을 유영하지만, 놀란 감독은 그 사이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를 단단하게 매듭짓는다. 우주에서 유영하는 이들도, 지구에 남아 이들을 기다리는 가족들도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고 기다리겠다는 마음은 한결 같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 전 캐스팅 된 매튜 매커너히의 캐스팅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이미 크리스천 베일을 배트맨으로, 히스 레저를 조커로 캐스팅하고, <인셉션>에 조셉 고든 래빗을 캐스팅하는 등 배우를 보는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이었다. <인터스텔라> 캐스팅 이후 촬영된 <달라스바이어스클럽>을 통해 매튜 매커너히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연기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카우보이모자를 벗어던진 그에게 당당한 가장의 모습도 제법 잘 어울린다. 여기에 놀란 감독이 선택한 캣 우먼이었던 앤 해서웨이는 모험심 강한 과학자이자, 인간적인 사랑을 간직한 섬세한 여성의 매력을 선보인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늘 그랬듯 극적 몰입도를 배가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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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음향효과 없이 줄곧 고요한 순간이 오히려 박진감을 주었던 <그래비티>를 통해 침묵과 고요함이 던져주는 절대적 압도감을 느껴본 관객에게 <인터스텔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압도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광활한 우주에 던져진 인간의 두려움과 외로움까지도 담아내면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끈다. 방대한 스케일이 우주의 공간을 담아낸다면, 놀란은 그 속에 담긴 인간에게는 소소한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을 허락한다. 스펙터클을 좋아하는 관객도, 잔잔한 드라마를 선호하는 관객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전략이다.

 

미래 지구의 모습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정말 그런 시절이 닥친 것 같고 광활하면서도 적막한 우주의 이미지는 압도적이다. 우주 SF라면 흔히 상상되는 괴생명체나 외계인도, 이들을 위협하는 악의적인 적도 폭력도 없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직조해 내는 놀란의 연출력은 기대한 만큼 훌륭하다. 하지만, 눈 질끈 한번 감았더니 끝난 놀이기구처럼 관객들의 상상력이 개입한 여지를 두지 않는다. 이게 정답이야, 라는 놀란 감독의 결말에 설득될 수 있는지는 직접 보고 판단하길 권한다. 보수성향이 강한 놀란 감독은 <인터스텔라>에도 소시민의 반란과 역할은 절대적으로 막고, 절대 영웅과 가부장제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드러낸다. 물론 영화 전체를 무겁게 짓누를 지경은 아니다. <인터스텔라>의 연출은 스필버그가 맡으려고 했다. 놀란 감독은 영화 속에 다른 피를 수혈했겠지만, 스필버그라면 당연히 보여주었을 따뜻한 감성과 가족애를 놀란도 나름의 방식으로 품어보려한 것은 확실하다.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답게, 관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힌 다양한 상영방식을 제공한다. 35mm 필름 상영본은 물론 아이맥스, 2D 디지털, 4D 등 취향에 따라 골라볼 수 있는 것도 <인터스텔라>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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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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