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될 수 있는 미래를 경계하라
사람들이 <헝거 게임>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캣니스 에버딘이라는 모두가 존경하고 닮고 싶어 하는 강하고 슬기로운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매혹적인 로맨스는 적절히 안배되어, 독자는 끊임없이 손에 땀을 쥔다. 주요 등장인물이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됨에 따라 독자는 그와 함께 성숙해질 기회를 얻는다. 또한 감성을 건드리고 책을 내려놓은 후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 작품 안에 가득하다. 시저 플리커맨과 인터뷰하는 도중 피타 멜라크의 느닷없는 사랑고백, 경기장에서 루의 몸에 꽃을 흩뿌리던 캣니스, 캣니스의 세계는 물론 우리 세상까지 무너뜨려버리는 대통령 스노우의 사저 밖 폭발 장면 등을 누가 잊겠는가? 우리는 이 책에서 이러한 장면은 물론 다른 많은 장면을 다시금 떠올려 꼼꼼히 되짚어볼 것이다.
그렇다. <헝거 게임>에는 사람을 매혹하는 많은 요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놀라운 연작에 열광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헝거 게임>은 이 책의 저자들에게 특별히 중요한 것을 다루고 있으니, 바로 진리 탐구다. <헝거 게임>은 캣니스 에버딘이라는 한 용감한 소녀가 자신의 세계를 겹겹이 둘러싼 거짓을 벗겨내고, 그 기만적인 얼굴 뒤 진실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캐피톨 시민은 짙은 화장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내면에 자리한 추함을 온전히 감추지는 못한다. 캐피톨 뿐만 아니라 판엠 전체에 그러한 허위가 넘쳐난다. 가짜 겉모습이 판치는 세상에서 캣니스는 철학자처럼 진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모든 사람, 모든 사물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하여 모든 기만이 불에 타 재로 변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진실이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여러분이 우리만큼 <헝거 게임>을 좋아한다면, 똑같은 불꽃이 가슴속에 타오를 것이다.
캣니스가 싸우고 사랑하면서 삶에서 벌어지는 혼란스러운 사건의 의미를 성찰할 때, 우리는 그녀 곁에서 함께 여행했다. 이 책의 목표는, 그때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환상적이고 기괴하면서도 기분 나쁘게 익숙한 그 세계를 최대한 깊이 탐색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아마 그 여행 중에 피타가 던진 부드럽지만 통찰력 있는 농담에 웃었을 것이다. 대통령 스노우의 잔혹 행위에는 혐오감을 느끼고 분노했을 것이다. 울거나, 캣니스가 자주 그랬던 것처럼 눈물을 참은 적도 있었을 것이다. 대재앙 후에 펼쳐진 그 세계는 지금 우리 세계와는 여러 면에서 한참 동떨어진 듯 보인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을 움직이는 희망과 두려움과 욕망은,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열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하여 이 작품은 우리의 깊은 곳에 호소한다. 단지 상상 속 경이로운 소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난과 열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철학은 바로 그 지점에 개입한다. <헝거 게임>을 성찰함으로써 우리는 삶에 대한 사유의 문을 열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서양철학이 탄생한 곳 어귀에도 사유와 관련한 유명한 문이 있었다. 아폴론을 모시는 델피 신전 입구에 누군가 새겨놓은 “너 자신을 알라” “중용을 지켜라”라는 글귀가 그것이다. 고대 수많은 철학자는 이 구절이 우리가 잘 사는 데 필요한 지혜를 간결하게 요약해준다고 여겼다. 지나침을 피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캐피톨 시민은 이미 때를 놓친 게 분명하다. 또 삶에서 자제력의 중요성을 배우고 자신의 동기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캣니스와 달리, 자기 자신을 그다지 잘 아는 것 같지도 않다. 캣니스의 지혜를 성장시키는 힘은 거침없이 의심하는 정신이다. 해답을 찾는 캣니스의 갈망은 전염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캣니스의 세계와 우리 세계의 유사성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벌집에서 쏟아져 나와 덤비는 추적말벌(tracker jacker, 캐피톨이 만든 변종생물로, 쏘이면 극심한 통증과 환각에 시달리고 심할 경우 목숨을 잃는다 ─ 옮긴이) 떼 같은 무수한 질문에 에워싸인다.
우리는 캣니스와 프림, 피타, 게일의 세계와 이 세계의 차이를 궁금해 한다. 이 나라도 판엠을 파멸시킨 악에 굴복할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른다. 수잔 콜린스는 최근의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콜린스가 그린 미래의 디스토피아와 우리 세계의 유사점은 이게 다가 아니다. 우리는 캣니스와 동료 조공인(tribute, 헝거 게임에 차출된 소년 소녀 ─ 옮긴이)이 경기장에서 겪는 끔찍한 일을 보면서, 헝거 게임 같은 잔혹한 행위가 대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아해 한다. 그러고는 서구의 권력 엘리트가 로마 콜로세움에서 헝거 게임을 후원한 것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며, 이 또한 콜린스의 소설에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헝거 게임의 세계를 더 잘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질문이, 마치 캣니스에게 약과 음식을 가져다준 은색 낙하산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용기를 내어 생각의 경기장에 들어선 우리에게 좋은 질문은, 마치 조공인의 생명을 지켜주는 후원자의 선물처럼 삶을 지탱하는 양식이 된다.
질문으로 힘을 얻은 우리는 계속해서 궁금증을 이어나간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 즐거워하다니 어찌 된 일일까? 일상의 도덕규범은 생존만을 위해 싸울 때도 적용될까? 우리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일도 판엠 시민처럼 쉬울까? 모르는 사이에 이미 우리도 은밀히 조금씩 지배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이제 전장에서 좀 더 부드러운 로맨스의 영역으로 물러나고 싶어질 때면, 우리는 어느덧 캣니스가 구혼자인 피타와 게일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묻게 된다. 그리고 자문한다.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읽으면 읽을수록 <헝거 게임>은 더 많은 질문을 낳는다. 판엠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예술과 음악, 과학과 문화의 의미를 숙고하게 된다. 한마디로 복잡한 인간사 전체를 생각하게 된다. 그중에서 무시해도 좋은 건 없다. 없는 체해도 사라지지 않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캣니스가 눈을 감는다고 해서 뒤를 쫓는 변종야수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질문은 철학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철학은 이제껏 인간이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벼린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3구역 발명가 비티가 만들어냄직한 물건이다. 경기장에서 캣니스의 활 솜씨가 생존에 꼭 필요하듯, 철학은 생각하기 원하는 사람에게 필수불가결한 도구다. 우리는 <헝거 게임>이 제기하는 문제의 답을 찾는 데 철학을 활용했다. 그리고 동맹군 한 팀의 참여를 얻었다. 클로브의 칼처럼 날카로운 지성을 갖춘 그들은 피닉 오데어의 그물처럼 튼튼한 논증을 자아냈다. 또한 추적말벌 독에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통제할 수 없는 분노로 정신이 오염된 피타를 치유하고자 ‘진짜인가 가짜인가’ 게임을 고안한 군인 잭슨처럼 선견지명을 발휘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을 쓴 철학자들은 잭슨과 매우 많이 닮은 것 같다. 늘 겉모습 같지만은 않은 세계를 항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진짜인가 가짜인가’ 게임을 일종의 치료법으로 고안했으니 말이다.
<헝거 게임>은 현실이 될 수도 있는 미래 인간 사회의 모습을 경계하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오락을 위해 아이들이 살육되고, 폭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부자가 웃으면서 굶주리는 노동자를 구경하는 세계가 묘사돼 있다. 동시에 지금 이 세상의 무엇이 그러한 악의 전조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가족을 지키기로 마음먹은 용감한 십대 소녀처럼,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내면에 비범한 선과 영웅 행위가 살아 있음을 깨달을 기회를 준다. 무엇보다 평범한 이들의 놀라운 선행이야말로 구원의 가장 큰 희망일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도 자식을 위해 식량배급표를 사는 일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정말로 바란다면,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하고 성찰하고 질문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 그럼 이제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를 시작하자!
시리즈 편집자
윌리엄 어윈 William Ir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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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조지 A. 던,니콜라스 미슈 외저/윌리엄 어윈 편/이석연 역 | 한문화
이 책은 수잔 콜린스의 판타지 소설 『헝거 게임』을 플라톤, 칸트, 푸코, 부르디외 등 고금의 철학자들과 함께 숙고한 책이다. 허구의 시대, 허구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을 고찰하는 것이 짐짓 무의미해 보일 수 있으나, 우리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그리 탄탄하지 않다는 점을 이미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로 배웠다. 무엇보다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가 시스템이 만든 가상에 불과하다면, 가상의 세계를 따져 묻는 것이야말로 현실을 직시하는 가장 적확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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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어윈
앙ㅋ
2015.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