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 넛 X 노 브레인 <96>
여전히 1990년대 한국 펑크록의 추종자를 자처하고 있는 당신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울 작품이다. 이번 스플릿 앨범의 두 주인공은 크라잉 넛과 노브레인. 숱하게 클럽 드럭의 링 위에 올랐던 두 파이터가 한 음반에 모였다. 그러고 보니 그 모양이 여러 스타를 탄생시켰던 드럭 레코드의 컴필레이션 '아워 네이션' 시리즈와도 닮았다. 크라잉넛은 옐로우 키친과 함께 했던 1996년의 < Our Nation 1 >에서, 노브레인은 위퍼와 함께 했던 1997년의 < Our Nation 2 >에서 이름을 알린 바 있다. 마침 앨범의 제목도 '96.' 이들이 막 음악을 시작했던 1996년으로 시점을 돌린다. 이에 대한 회고는 두 밴드가 함께 부른 음반의 맨 마지막 트랙 「96」에 실려 있다. 나머지 여섯 곡은 서로의 대표곡을 세 곡씩 정해 바꿔 부른 커버들이다.
선곡서부터 나름 재미가 보인다. 과거에 쌓아놓은 1990년대의 기록과 현재를 달리며 남긴 2000년대의 기록이 반씩 목차를 나눈다. 노브레인의 곡들을 보자. 2004년의 히트곡 「넌 내게 반했어」가 먼저 들어올 테지만 무게가 실리는 지점은 「아름다운 세상」과 「바다사나이」와 같은 훨씬 이전, 폭도 시절에 날렸던 펀치들에 있다. 크라잉 넛의 리스트는 이와 대칭을 이룬다.
1990년대를 빛낸 한국 펑크의 송가 「말달리자」 뒤에 나오는 두 곡은 2000년 이후에 낸 「비둘기」와 「룩셈부르크」다. 반대되는 비율로 앨범의 균형을 맞췄다. 내용도 좋다. 서로를 잘 이해하는 만큼, 원곡의 분위기와 자신들의 스타일 사이에서 접점을 잘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넌 내게 반했어」는 로큰롤 사운드를 품어 강렬해졌고, 「룩셈부르크」는 새로운 편곡을 통해 간편해졌다. 오리지널과 크게 다르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목소리를 담은 「말달리자」와 차승우 시절의 노브레인을 연상시키는 기타 솔로가 담긴 「바다 사나이」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아쉽게도 신곡 「96」에서는 소구력이 떨어진다. 텍스트에 담긴 자전(自傳)과 두 밴드의 협업에서 발하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는 크라잉 넛과 노브레인이 공유하는 모먼트의 집합임과 동시에 같은 시간을 걸어온 팬들과의 교차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감격을 연출하는 도입부의 피아노 연주와 곡 전반에 놓인 평범한 펑크 사운드는 어딘가 심심함을 낳는다. 추억이라는 기획을 여실히 증명하나, 나름 강성의 태도를 몰고 나온 앞의 여섯 곡과는 맥이 다소 어긋난다. 텐션이 크게 감소하는 부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앨범 전체에까지 영향을 끼칠 문제는 아니다.
시각을 넓혀 음반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콘셉트와 콘텐츠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 하고 싶다. 창작욕을 과시하거나 대단한 획을 그어 나온 결과물은 아니다만 수준은 보통의 위치를 넘는다. 여기에 한국 인디 신의 태동기를 이끈 두 밴드의 조합과 이들이 내건 숫자 「96」의 상징성까지도 더해보면 그 무게감 또한 한층 오른다.
글/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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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