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을 쓴 저자 이랑주는 비주얼 머천다이저(VMD; Visual Merchandiser)이다. VMD는 상품 기획부터 매장 인테리어, 상품 진열 방식, 서비스까지 매장 환경의 모든 부분을 관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아직은 많은 이에게 낯선 직업을 이랑주는 ‘상품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랑주는 수많은 쪽박 가게를 대박 가게로 만들며 다양한 상품의 운명을 바꿔왔다. 이랑주는 VMD로 승승장구 하던 중 유명 백화점의 명품관을 박차고 나와 전국의 전통시장을 누비며 ‘소상공인 맞춤 VMD’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그리고 2012년 돌연 세계 여행을 떠났다. 모두가 만류했던 그 여행에서 그녀는 세계 40여 개국 150여 개의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점포를 직접 체험했고, 그 과정에서 ‘살아 남은 것들의 비밀’을 배울 수 있었다.
8월 23일, 이랑주의 이러한 체험을 담은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의 출간을 기념하는 청춘 행사가 열렸다. <체험하라, 체념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강렬한 제목과 함께 등장한 이랑주는 무대에서 내려와 청중 바로 앞에서 강연을 시작했다.
살아남은 전통 시장의 비밀을 찾아 모르는 세상으로 향하다
“한 지하상가에 강연을 간 적이 있어요. 80년대 이대 앞 보세 옷 가게로 시작해서 오늘날 대기업이 된 이랜드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제 말을 듣던 한 아주머니께서 이렇게 여쭤보시더라고요. “나도 80년도에 보세 옷 가게를 시작했는데, 난 왜 다 망해 가는 상가에 있는 걸까요?” 저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소상공인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세요. 왜 열심히 일하는데도 누구는 대기업 CEO가 되고 누구는 다 망해 가는 상가에 있는 것일까. 한 아주머니께서 던진 이 질문이 계속 저를 괴롭혔죠. 그 때가 마침 제가 VDM 일을 한 지 20년이 되던 해였어요. 그래서 저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10년 뒤 내 모습은 어떻게 될까?’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소상공인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열심히 일만 하느라 ‘체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 깨달음을 ‘두 명의 나무꾼 이야기’로 설명했다.
“두 명의 나무꾼이 있었어요. 한 사람은 하루 14시간 나무를 벤 반면, 다른 사람은 하루에 8시간나무를 벴어요. 당연히 14시간 일한 사람이 더 부자가 되어야겠죠. 그런데, 20년 뒤 성공한 사람은 8시간 일한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은 나머지 8시간에 옆 동네 숲을 간 거죠. 그 숲에서는 전기 톱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전기 톱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다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더 먼 숲에 갔어요. 그 숲에서는 나무로 종이를 만들고 있었어요. 그 기술을 배워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이렇게 8시간 일한 나무꾼은 재벌 회장이 되었어요. 그런데 16시간 나무만 베고 그 숲을 떠나지 않았던 나무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20년 뒤에는 근육이 다 빠지고 한 그루도 벨 수 없는 나무꾼이 된 거예요.”
이랑주는 두 명의 나무꾼 중 ‘체험하는 나무꾼’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는 세상에서 모르는 세상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우린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클로드 베르나르의 말을 가슴에 품고 모험을 시작했다. 그녀는 1년 간 스페인 산타 까레리나 시장,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시장, 영국 코벤트 가든, 독일 함부르크 어시장 등 40여 개국 150여 곳의 시장을 직접 체험했다.
“왜 1년간 이런 고생을 했는지 궁금하시죠? 한국의 전통 시장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있기 때문이었어요. 대형마트의 매출이 30%씩 성장할 때 전통시장의 매출은 7%씩 감소하고 있습니다. 2005년도에 1600개였던 전통시장이 현재 950개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고, 그 중에서도 회생 가능한 시장은 900개밖에 안돼요. 이런 추세가 계속 된다면, 20년 뒤엔 ‘시장? 그거 박물관에 있는 거 아니야?’ 하지 않을까요? 시장이라는 문화가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통시장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이랑주는 7년간 전국 800개 정도의 전통시장을 직접 다녀봤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등 다양한 시장을 다녔지만 모든 시장이 특색 없이 다 똑같았다.
“왜 이렇게 다 똑같을까? 이게 전부일까? 그런데 저도 다른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새로운 시장을 제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분명 ‘다른’ 시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세계의 살아남은 전통 시장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뮌헨에 갔을 때에요. 시장 중앙으로 들어갔는데 1,000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숲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에 ‘비어 부스’가 있어서, 독일의 유명한 맥주 회사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맥주를 교체해요. 사람들은 이 맥주를 맛보면서 시장에서 안주 류를 구입하고, 식사를 마친 뒤에는 다시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가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장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 1,000명이 함께 식사하는 이 장소보다 더욱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이 있다. 이 시장에는 한 가게가 문을 닫으면 그 자리에 들어오는 다음 상인은 반드시 기존의 품목으로 장사를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50년 동안 올리브 장사를 하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은 과일 가게든, 건어물 가게든 다양한 업종이 들어올 수 있죠. 그런데 이 시장에서는 오로지 ‘올리브’ 가게만 다시 들어설 수 있어요. 그 자리에서는 무려 200년 동안 올리브만 팔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엄마와 시장을 가서 이 곳에서 올리브를 샀던 기억이 있으면, 그 아이는 나중에 커서 자신의 자녀와 다시 여기를 찾아요. 이게 계속 되는 거죠. 그 자녀가 어른이 되면 나중에 엄마를 추억하기 위해서 자식과 함께 또 이 곳을 찾아요. 시장이 하나의 문화로 계승되어요. 상인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보다는 전통을 물려주는 것이 더 소중하다. 우리는 시장이라는 문화를 물려주고 있다.’ 정말 놀랍죠.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철학을 시장에 심어놓았죠.”
스펙보다 중요한 것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
시장 이야기에 이어 이랑주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그녀는 스스로를 ‘무 스펙’이라고 말했다. 스펙을 쌓는 대신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를 강조했다.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의 관심은 받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치열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것이 지금의 이랑주를 있게 한 가장 큰 교육이었다.
“제가 무 스펙으로 대체 가능한 부속품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된 건 저희 엄마의 무관심이 컸어요. 그러실 수밖에 없었던 게, 저희 엄마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공장에서 밤 10시까지 일하셨어요. 그 사이에 잠시 들러서 저희 먹을 것을 해두고 가셨고요. 저희 6남매는 엄마의 치열한 관심은 받지 못했지만, 엄마가 치열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봤어요. 저는 이 덕분에 저희 6남매가 지금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잘 해나가고 있다고 믿어요. 또 엄마는 저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 않았어요. 엄마는 VMD가 뭔지 몰라요. 엄마 세대에 VMD가 이렇게 성공할지 알았을까요? 지금 어른들이 하라고 하는 직업들, 다음 세대에는 망해요. 미래는 본인만 알아요. 남들이 다 하는 스펙 쌓기에 시간을 보내지 말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인생은 한 번밖에 없어요.”
이랑주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그 주위의 일반 성당을 예로 들었다. 일반 성당은 줄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입장료도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 곳을 지나친다. 반면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기 위해서는 기꺼이 돈을 내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 이 차이는 ‘대체 불가능성’에서 온다. 일반 성당은 다른 성당과 다를 것 없는 대체 가능한 것이지만, 가우디의 성당은 유일하고, 압도적이고, 최초라는 점에서 대체 불가능하다.
“실전 팁을 하나 드릴게요. 단골집을 만들지 마세요. 단골집은 편해요. 편하면 세포는 확장이 일어나지 않아요. 생각이 고착돼요. 제가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하면, 단골은 반숙을 주는데 다른 집은 노른자만 줘요. 어떤 집은 완숙이에요. 다 다른 거에요. 이렇게 다른 걸 경험하면 평가를 할 수 있죠. 뭐가 더 좋다,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면 이렇다, 비평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단골집만 가면 반숙된 것만 볼 수 있어요. 20대에는 단골집을 만들면 안돼요. 카페에 가면 그림으로 된 신제품을 드세요. 맛이 없더라도 괜찮아요. 나는 ‘먹어봤기 때문에’ 욕을 할 수 있어요. 욕을 할지라도, 먹어봤기에 할 얘기가 생기는 거잖아요? 세계일주를 가지 않아도 늘 체험할 수 있어요. 일상에서 늘 다른 곳을 가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생각을 하면 돼요.”
그녀는 이 밖에도 골목에 신호등을 설치한 식당, 누울 수 있는 카페, 끓는 아이스크림 등을 소개하며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무언가를 추구하라고 말했다. 작은 것이라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
체험의 힘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전문가가 되라
어린 시절, 그녀는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늘 생각했다. 이제는 그 가난의 이유를 알았다. 전통시장에서 쥐를 때려 잡아 시장 상인 분들과 친해지고, 천장에서 바퀴벌레가 떨어지는데도 불평하지 않고 일을 하며 진심을 인정받은 것 모두 어린 시절의 가난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30년이 지나서야 우리 집이 가난했던 이유를 깨달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 그렇게 어려움에 처했던 것이, 나중에 저의 재주를 잘 키워서 전통시장 상인 분들이나 소상공인 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라는 뜻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어떤 경험이든 언젠가는 다 의미 있게 쓰이는 날이 오는 것 같아요.”
이랑주는 가난의 경험조차 하나의 체험으로써 삶의 바탕이 되었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나’라는 사람은 지금껏 살아온 체험과 획득한 지식의 총합이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머리로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몸이 한 경험을 따라올 수 없다. 체험하라. 그리고 체험을 통해 얻은 힘을 사람의 마음을 얻고 세상을 움직이는 데 쓰라.”
마지막으로 이랑주는 ‘온기 품은 전문가’가 될 것을 강조했다. 그녀는 TV 프로그램 <땡큐>에서 리처드 용재 오닐이 ‘섬집아기’를 연주하던 장면을 설명했다. 비올라가 뭔지도 모르는 해녀 할머니가 용재 오닐의 연주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그녀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순간 ‘아, 전문가라는 사람은 비올라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비올라를 통해 감동을 줄줄 알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그게 진정한 전문가구나. ‘VDM가 뭔지 모르고, 상품 진열이 뭔지 몰라도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다짐했죠. 여러분이 자신의 것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면, 여러분들은 이미 경쟁이 필요 없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옆의 사람과 경쟁하지 마세요. 나 자신은 하나밖에 없어요. 유일한 전문가가 되세요. 옆 사람과 똑 같은 기능인이 되지 마세요. 온기를 가진 전문가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본인이 원하는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연이 끝난 뒤 이랑주는 루게릭 환우를 돕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동참했다. 루게릭 환우를 위한 병원 건립에 힘쓰고 있는 승일희망재단에 기부의 뜻을 밝힌 뒤 얼음물을 맞는 그녀의 모습 그 자체가 ‘온기를 가진 전문가’의 표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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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이랑주 저 | 샘터
이랑주 대표는 국내 1호 VMD(Visual Merchandis) 박사이다. 그간 그는 전통시장 제품진열 전문가로, 전국 방방곡곡의 전통시장을 다니며 수많은 상인들을 만나고 여러 점포를 찾았다. 진열 교육도 하고 컨설팅도 해주었다. 그러던 2012년 3월 1년간의 세계 일주를 떠났다. 40여 개 나라 150여 곳의 시장을 방문했고, 오랜 시간 고객에게 사랑받고 있는 여러 시장과 상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직접 두 발로 세계의 전통시장을 다니며 경험한 여러 사례들과 그들에게 배운 장사 철학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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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9.27
물론이죠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깐 ㅎㅎ
yundleie
2014.08.30
샨티샨티
2014.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