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삼총사>의 시작은 알렉상드르 뒤마의『삼총사』와는 조금 달랐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자금성 서고에서 ‘박달향 회고록’을 발견한다. 역사적 실존 인물인 박지원을 등장시켜 박달향이라는 허구의 인물이 써낸 책에 현실감을 더해주는 방법은 선택했다. 그것은 비록 <삼총사> 역시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삼총사>가 중심에 두고 다루고 있는 인물인 소현세자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특히 발견한 서책을 밤새 읽은 박지원이 “만약 소현세자가 왕이 됐다면 조선은 어찌 됐을까"라고 생각하며 "많은 것이 달라졌으며 청나라까지 따라잡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목적을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학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100년의 시대를 앞서 간 소현세자의 탁월한 시대 감각과 안목이 펼쳐지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것이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것이며 살아남은 자의 것이기에 어린 시절 광해를 그저 폭군으로 오해 했듯 왕이 되지 못한 세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선 왕 독살사건』을 읽게 되었다. 잘 알려진 기존의 정사뿐만 아니라 야사까지 면밀하게 분석하여 조선 왕의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 책이다. 내게 이 책에 독살 의혹이 제기된 왕과 세자 중 가장 안타까웠던 죽음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소현세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것은 박지원이 느낀 아쉬움과도 이어지는 감정이다.
역사적 기록에서 소현세자는 34살의 나이로 병사했지만 그의 죽음은 인조가 독살했을 거라는 야설이 오히려 신빙성 있게 느껴진다. 인조는 반정으로 왕이 되었다. 자신이 반정을 직접 진두지휘할 정도로 광해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다. 광해는 선조의 또 다른 아들이었던 정원군을 견제했고 그의 아들 중 한 명을 모반죄로 모함하여 죽였는데 그것이 인조의 동생이었다. 광해의 인목대비 폐모(廢母)와 친후금의 중립외교를 반정의 명분으로 삼았지만 인조를 도운 서인 역시 당시 권력에서 소외되었기에 인조를 도와 실권을 장악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국제 정세를 읽어내지 못하는 탐욕스러운 무리가 조선의 정권을 장악하게 되고 광해의 실리적인 외교 정책을 이어나가는 대신 기울어져 가는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우던 인조는 두 번의 호란을 겪게 된다. 그 결과 처참하게 패한 인조는 삼전도에서 신하들과 세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청태종에게 치욕스러운 삼배구고두(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를 해야 했다. 자신의 정통성 문제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인조였지만 그런 인조로 인해 실질적으로 고통 받아야 했던 건 백성들이었다. 자신의 처지만 지켜내기 급급했던 인조에게 청에 인질로 잡혀왔다가 돌아온 소현세자는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청이 자신을 밀어내고 아들을 왕위로 올리진 않을까 두려워하는 와중에 아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현세자는 청의 신문물을 소개하고 청과 친화적인 외교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니 자신이 겪은 치욕을 잊을 수 없는 인조 입장에서는 그 소현세자가 어여쁘게 보일 리 없었다.
청에서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병사한 소현세자, 물론 <삼총사>는 소현세자에게 닥치게 될 미래의 비극적 사건보다는 조선낭만활극이라는 부제를 붙여 소현세자와 우정을 나눌 호쾌한 사내들의 조우와 그 활약상을 그릴 것이다. 뒤마의 『삼총사』를 충실하게 오마주하면서도 조선 중기의 특색을 잘 살려냈다. 왕실 근위대가 되려고 한 가난하지만 의협심 넘치는 시골뜨기 달타냥처럼 강원도 고성에서 무과 급제를 위해 한양으로 온 박달향이 등장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돈을 잃고 삼총사와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집중력 있고 속도감 있게 다뤄지지 않아 지루한 감이 있었고, 활극이라고는 하지만 액션 장면이 카메라 편집으로 그다지 생동감 있지 않아 아쉽긴 했지만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섬세하게 혹은 능청스러웠다.
‘낭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드라마 특유의 연애라는 소재를 절대 놓치지 않고 함께 한다. 박달향이 5년 전 우연히 만나 사랑의 감정을 나누었던 여인이 세자빈이 된 것은 원작과는 다른 설정이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박달향의 모습을 보며 순수하고 순진한 남자에게 사랑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 장원급제에 대한 자신만만함, 그녀를 다시 만나 청혼하기 위해 5년 간 수련해 온 순정. 이 얼마나 애틋한지. 소현세자 역시 세자빈 대신 흠모하는 다른 여인이 있었으나 그 여인이 적대적 세력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화살표가 어긋한 연애 감정까지 겹쳐지며 청춘 연애물로써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다.
병자호란 직전, 전운이 감돌던 1636년에 시작되어 소현세자가 독살 위기에 처하는 1646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전쟁과 심양에서의 볼모생활, 명-청-조선 3국의 치열한 외교전을 다루며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낙천이라고 할 수 있는 희망과 낭만을 잃지 않는 청춘을 그려낸다. 즉 시대의 암울함 속에서도 청춘은 꿈꾸고 사랑하고 모험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현세자와 박달향 그리고 삼총사로 묶인 그들의 뜻과 포부는 늘 앞선 세대로부터 위협받는다. 그러나 결코 그 명분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기에 그들은 맞서 싸운다.
<삼총사>를 보면서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사 강론이 떠올랐다.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좌절감과 열패감에 휩싸여있고 그저 살아남기 위함이 급급하여 우정도, 사랑도 제대로 나눌 수 없는 각박한 각개전투의 투쟁 속에 놓여 있는 지금은 청춘들에게 체제의 수긍이 아닌 새로운 개척과 큰 흐름을 파악하여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은 경건하지만 단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 속에만 녹아 있는 건 아니었다. 시의 적절하게 등장한 드라마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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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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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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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