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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사랑이야> 정상이 아니어도 괜찮아

SBS <괜찮아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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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사랑이야>는 공효진과 조인성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시각적 만족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드라마다.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장재열과 정신과 의사 지해수라는 등장인물의 직업 설정 역시 흥미를 끌었다. 게다가 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로 충분했다.

괜찮아사랑이야

 

부와 명성, 심지어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잘나가는 추리소설 작가 장재열(조인성)과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의 첫 만남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떠올렸다. 잔인한 폭력이 난무하고 성적인 코드가 가득한 소설을 쓰는 장재열에게 지해수는 인간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지나칠 정도로 방어적으로 대한다. 작가와 정신과 의사와의 대담이라는 방식으로 출연한 TV 프로그램에서 능청맞고 잘난 맛을 뽐내는 장재열은, 쥐락펴락하며 지해수를 약 올리지만 그럼에도 그런 지해수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가려고 한다. 반면 지해수는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과나 정신적 문제에 대한 편견을 마음의 감기로 표현하며, 도움이 필요한 존재에게 정신과 의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훈훈하게 대담을 마무리 짓고 나서,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장재열과의 선도 냉정하게 그어버린다.


자신을 알아보는 매력적인 여자들이 주변에 즐비하고 누군가를 유혹하는 게 어렵지 않아 보이는 장재열은 뻣뻣하게 구는 지해수가 자꾸 눈에 밟힌다. 둘은 지해수의 정신분열증 환자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지해수의 냉랭한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던 찰나 장재열은 애인이 자기 작품을 표절해서 책을 출간하고, 그걸 도운 사람이 가장 믿었던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해수는 300일간 사귄 남자친구와 자신의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섹스를 하려고 약속한 날, 남자친구가 하룻밤 유혹에 넘어가 다른 여자와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극심한 배심감을 느낀다. 지해수는 지난 20년 간 불륜을 일삼아 온 어머니의 영향으로 이성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스킨십에 대한 불안 장애로 나타나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를 드라마에 등장시키면서 사람들을 치유해 나가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스스로 만들어낸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그 인물마저도 늘 자신의 문제 앞에서 회피하고 싶고, 벗어나길 바라면서도 선뜻 쉽게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다. 아무리 지식의 측면으로 접근해도 자기문제를 직면하고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와중에 장재열은 정신 문제에 대한 아주 간단명료한 해결책을 지해수에게 제시해주곤 한다. 지해수는 인간을 그릴 때 성기만 부각시키고 본드 흡입을 일삼는 사춘기 소년을 환자로 맡아 진료하면서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는 착한 어머니를 생각해보라고 핀잔을 준다. 이에 장재열은 성실하고 착한 인간이라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성기를 그리기만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반문한다. 소년은 자신이 자는 줄 알고 있던 엄마가 애인과 성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목격했고, 엄마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르는 불안에 그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그림을 보고 슬퍼하자, 그만두고 싶어하지만  자기 의지로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출 수 없어서 본드를 한 것뿐이었다.


부부관계에서 SM적 요소를 가지고 수갑 같은 각종 도구를 사용하려는 남편 때문에 힘들어 하는 환자에 대해서 지해수가 그런 것이 결코 변태적인 것이 아님에도 거부감을 가지는 건, 수동적으로 성을 대하는 여자의 문제가 아니겠냐 의견을 낼 때 장재열은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제야 지해수는 남편이 동의를 구했는지 환자에게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두 케이스는 여러 측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편견만으로 환자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것 같아 전문성을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동시에 내가 보기에도 문제해결 방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그려졌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냉정하고 자기도취적인 장재열이 가진 통찰력은 소설가다운 면모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장재열은 지해수의 트라우마 극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키스를 하는 것만으로도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불안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지해수의 말에 ‘생각 없이 그냥 해보라’고 말하며 기습키스를 해버린다.

 

괜찮아사랑이야

 

그렇게 지해수의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것이 장재열의 매력이다. 일종의 행동요법을 당한 이후 지해수는 머릿속에서 장재열의 말과 행동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자신이 환자를 진료하는 순간순간마다 겹쳐진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드라마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에게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한다. 장재열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잭 니콜슨이 출연한 영화를 언급하며 ‘저들은 미쳤고 나는 멀쩡하다. 이상하고 음울하고 기괴하고 미쳤다고 생각했던 등장인물들이 귀엽고 안쓰럽고 재밌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이야기하고 ‘감기를 앓듯 마음의 병은 수시로 온다. 그것을 이해하면 세상은 조금 더 편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장재열의 과거도 드러난다. 폭력적인 의붓아버지에 대항하다 그를 죽이게 되었고 그 죄를 형이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갔다. 장재열은 그때의 충격으로 그 사실을 전혀 인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장재열의 측근으로 등장한 경수라는 소년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를 보며 장재열은 아버지가 때리면 도망치든 맞서라고 소리친다. 경수가 드디어 폭력에 대항했으며 그런 모습에 당황한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는 말에 그를 꼬옥 껴안아 다독여준다. 기쁘고 후련한 마음으로 질주를 하는 장면에서 경수라는 인물은 장재열에게만 보이는 가상의 인물임이 드러난다. 경수는 장재열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치유하기 위한 도구이자 끊임없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걸 경수가 장재열에게 보낸 소설로 보여준다.

 

결국 주요한 등장인물 모두 자기만의 사연으로 마음과 정신에 문제를 안고 있다. 이제부터는 그걸 극복해 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사랑’과 함께 펼쳐질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주제에 대해 노희경 작가는 인구의 80%가 신경증을 앓고 있고, 20%는 약을 먹어야 하는 수준에 있지만, 정신증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크다며, 어린 시절 경험하게 된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아 성인이 된 이후에도 치유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신증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그 주제와 조금 다르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요즘 들어 심리학이 부각되는 이유로 함께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기계발서의 유행은 이제 심리학으로 이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경제 위기인 불황을 의미하는 ‘디프레션(depression)’이 정신적인 우울과 같은 단어임을 주목한다면 이 시대의 정신병적 징후는 사회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드라마는 가정 폭력이나 불륜과 같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충격을 바탕으로 한 정신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왜 지금에 와서 사회가 인간의 정상적인 심리에 관심을 갖고 우울을 케어하려고 드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정신이 갑자기 퇴화해서 작은 일에도 견딜 수 없게 약해진 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개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실어준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개인은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계발서의 문구를 되새김질하며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어놓고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게 만든다. 하지만 그 미래란 아무 것도 없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애벌레들의 탑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심리적 문제는 또다시 자기계발 측면의 심리학으로 이끈다. 어딘가 지치고 병든 나를 위로해주는 척, 지금의 나를 긍정하게 하는 척 하지만 그 목적은 쉬지 말고 자기계발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넌 비정상이 아니야. 약간 지친 것뿐이지. “넌 정상이니, 우리 정상에서 만나자.”와 같은 헛된 위로말이다. 병 주고 약을 주는 방식으로 심리학과 인간 정신이 이용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2020년이 되면 우울증이야말로 심신 양면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가벼운 우울증 환자를 법률상 정신병 환자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그 이유가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라는 포용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사회구성원으로 해낼 수 있는 역할에서 제외시키기엔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이들이 지나치게 다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회를 구성할 때 개인은 정상의 범주일 때만이 비정상으로 특별히 배려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본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를 보면서 다소 무거운 내용을 연상하게 되었고 드라마 역시 주제의식 자체는 사회적편견과 싸우는 과정이기에 생소하다 느낄 수 있지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엉뚱하고 기이한 행동방식을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고 치유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각자의 상처들이 드러나 우리는 등장인물에게 연민을 느끼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싹트는 애정을 흥미롭고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상이 되어야 한다라는 강박보다는 정상이 아니어도 괜찮다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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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현정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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