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여자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가방을 구경하고 사는 것을 좋아한다. 가방만큼이나 그 사람의 취향을 잘 드러내는 것이 있을까? 천으로 된 캔버스 백을 즐겨 들고 다니는 사람은 왠지 손수건이나 텀블러 등 친환경적인 물품을 즐겨 쓸 것만 같고, 백팩을 즐겨 메고 다니는 사람은 활동적일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나는 가방도 T.P.O에 맞춰서 들고 다녀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라 경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이런 저런 가방을 사 모았다. 놀러 갈 때를 위한 배낭, 1박 2일 여행을 위한 가방, 2박 3일 여행을 위한 가방, 잠깐 외출을 할 때 적합한 작은 크로스백, 편한 옷차림에 들 수 있는 숄더백, 격식 있는 자리에 들고 갈 수 있는 가죽 토트백…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니 그냥 가방을 사들이기 위한 핑계 같긴 하다.
가방 자체도 궁금하지만, 사실 그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건 가방에 담긴 소지품들이 아닐까. 예전에 주인을 잃은 가방을 주워 돌려주기 위해 부득이하게 가방을 열어 봤더니, 번듯한 가방 안에 들어있는 건 낙서가 가득한 수첩 하나와 주유소에서 받은 휴지가 전부인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던 적이 있더랬다. 이와는 반대로 작은 상처를 입은 사람을 위해 자신의 가방 속에서 1회용 반창고를 꺼내주는 사람을 보면 사려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인 마이 백 : 148인의 가방 속 이야기』는 이처럼 내밀한 사람들의 가방 속을 들여다 본 이야기로 이뤄진 책이다. 책에는 평범한 여대생의 가방부터 안동에 거주하시는 할아버지의 가방, 학교 선생님의 가방과 조각가의 공부 가방 등 다양한 사람들의 가방 속 사진과 짧은 문답이 실려 있다. 사실 가방 속을 공개하는 컨셉의 진행은 잡지에선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이를 확장하여 148명의 가방 속을 들여다 보자고 제안하고 이를 정리하는 일은 보통 수고로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소소한 소지품들이 가득한 페이지들을 넘기고 있노라니 실제로 이런 걸 가방에 넣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나 싶기도 하고(사인볼 같은 것?), 휴대용 마우스워시 같은 건 나도 갖고 다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남의 가방 속은 재밌다!
148인의 가방 속 이야기에 덧붙여 나도 ‘솔직히 말해서’라는 칼럼 코너명에 걸맞게 가방 속을 공개해본다. 왠지 학창시절에 돌려서 쓰던 앙케이트를 작성하는 기분이긴 하다.
1. 지갑
2. 스마트폰
3. 우산
4. 공인인증서와 OTP가 들어있는 주머니
5. 장바구니
6. 손수건
언제 어딜 가든지 꼭 지니고 다니는 것: 스마트폰 교통카드 손수건
집에 불이 났을 때 가장 먼저 챙겨 나올 것: 우리 아이
병적으로 좋아하는 것: 정리함이나 정리바구니, 다이소의 흰색 플라스틱 정리함을 보면 자꾸 사야만 할 것 같은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다
최근에 구입한 물건과 후기: 다이소에서 산 발뒤꿈치를 부드럽게 해준다는 덧버선. 로션을 바르고 착용하면 효과가 더 좋다고 한다. 양말은 갑갑해서 잘 안 신었는데, 신어보니 착용감이 좋아 효과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보니 발등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는 건 좀 에러
나는 이 사람의 가방 속이 궁금하다: 셜록 홈즈가 가방을 들고 다녔다면 그 안엔 뭐가 있었을까?
관심 있는 이성의 가방 속에 들어 있었으면 하는 것: 집에서 직접 싼 도시락이 들어 있으면 왠지 달라 보일 것 같다
10년 후 내 가방 속에 들어 있었으면 하는 것: 아이가 써준 편지. 참고로 우리 아이는 10개월. 언제 커서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써주려나
좌우명: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당신에게 가방이란: 어디론가 출발할 때 나의 힘이 되어주는 벗
가방 속 소지품은 나를 직접적으로 얘기해주진 못 하지만,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바나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또다른 내가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의 가방 속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한 번 떠올려 보길 바란다.
- 인 마이 백 148인의 가방 주인 저 | 루비박스
어릴 적 기억 속에 있는 ‘가방 검사’가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이번에는 가방 주인들이 자발적으로, 혹은 아주 흔쾌히 자기 가방을 열어젖혔으니 말이다. 그것도 성별, 연령대, 직업군이 서로 다른 14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극히 은밀한 공간’을 공개하는 이런 행위는 새로운 자기표현의 형태이자 하나의 재미있는 이벤트다. 가방 속 물건들을 통해 우리 이웃들의 일상을 엿보며 호기심을 충족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책의 수익금 기부를 통해 사회적 의미를 더하고자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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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도서1팀장)
뽀로로만큼이나 노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또르르
2014.09.30
장고
2014.09.29
여의주
2014.08.29
아, 물론 본인이 공개한 사진을 통해서 볼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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