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은 우리 모두가 '국가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 이렇게 아주 근본적인 질문까지 던지게 만드는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난 7월 8일, 사토 요시유키와 하승우의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와 세월호 침몰, 그리고 안전장치> 발표,토론회가 김정한 사회자의 진행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세월호 참사'를 화두로 '안전 권력 및 한국의 안전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드러난 '안전 권력'
『신자유주의와 권력』의 작가 사토 요시유키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의 상황을 푸코가 말한 안전권력을 통해 설명했다. 그는 '저선량피폭'의 영향에 대한 평가가 권력과 과학적 앎 사이의 결합관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ICRP(국제방사선방어위원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인 2011년 3월 21일 성명에서 사고 지속 시 공중이 받는 최대 방사선 양을 20mSv에서 100mSv로, 관리 하의 단계에서는 1mSv에서 20mSv로 규정하였다. 장기적으로는 공중의 연간 피폭량을 1mSv로 억제할 것을 권장했다. 이 성명에 따라 일본 정부는 연간 피폭량이 20mSv 이상인 지역만을 원전 사고에 의한 피난 구역으로 설정했다. 결과적으로 후쿠시마시나 고리야마 시는 피난 지역에서 제외되었다.
"현재 일본 정부는 피난구역을 후쿠시마 제일원전에 가까운 고오염지역, 즉 연간 20mSv이상의 피폭량이 예상되는 지역에 한하여 설정하고, 이마저도 상대적으로 선량이 떨어진 지역에서부터 순서대로 해제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란 과학기술적 앎의 문제인 동시에 바로 국가권력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푸코의 안전권력을 제시했다. 푸코는 권력을 법적권력,규율 권력,안전권력으로 나눠서 설명했다. 그 중 안전권력은 '개인들을 인구라는 집단으로서 포착하고,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 산출되는 리스크를 통계학적으로 파악하고, 경제적,사회적 비용 계산을 통해 그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다.
"안전권력은 스스로의 관리 범위에서 떨어져나가는 주체가 일정 수로 존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용인하며, 비용-편익 계산에 기초하여 사회적 비용과 편익이 균형을 이루는 점을 결정하고 이를 한도량으로 설정합니다. 즉, 안전권력은 막대한 비용을 피하기 위해 저선량피폭에 의해 어느 정도의 인간은 암 때문에 죽을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앎이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 과학자와 의사들은 언론을 통해 "100mSv 이하라면 건강에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사토 요시유키는 이를 '경계값 가설'이라 표현했다.
"원전 사고 이후 언론을 통해 소개된 이 경계값 가설은 쉽게 말해 '100mSv라는 경계치가 있는데, 이에 도달하지 않으면 건강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고 그걸 넘어서는 순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가설은 현재 주류가 아니고 거의 폐기되고 있는 이론 중 하나입니다. 오히려 피폭에 대한 가장 지배적인 이론은 경계값 이하의 수치도 충분히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으로, 연간 약 1mSv의 저선량률의 피폭으로도 암으로 인한 사망률 등이 증가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계값이라는 개념은 과학적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이데올로기적 개념입니다. 피폭량은 최대한 낮게 억제되어야만 합니다. 결국 제가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렇습니다. 과학을 통해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과학적 앎'이라는 것조차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토 요시유키는 방사능 오염에 따른 이주의 권리를 강조했다.
"이제 방사능에 오염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에게 푸코적 고찰을 후쿠시마 사고 후의 구체적 사회상황 속에서 활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피폭선량에는 경계값이 존재하지 않으며 연간 20mSv라는 한도량도 비용 계산에 기초하여 정부가 “결정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고찰에서 구체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오염지역의 주민이 이주를 바란다면 이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지원되어야만 하며, 이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은 지금까지 원자력 정책을 추진해왔던 국가에 의해 보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원전 추진의 사회적 결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방사능에 대해 감응성이 강하고 방사능의 피해를 가장 받기 쉬운 아이들을 위해서도, 이주 권리가 경제적,사회적으로 보증되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안전담론
다음으로 『공공성』, 『아나키즘』의 저자이자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에서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하승우 교수의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안전담론'을 주제로 한 발표가 이어졌다.
"박근혜대통령의 5.19 대국민담화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보다는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 방향은 정부 기관의 쇄신 등으로, 이를 위해 민간전문가들을 대거 발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짧은 담화지만 그 안에서 '전문성,전문가'라는 말이 15차례 나타났습니다. 이는 사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요즘 많이 논의 되고 있는 '국가개조', 즉 정부의 공동 영역을 민간 영역으로 전환시키겠다는 발상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와 고리원전 재가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안전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원전 1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한 날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세월호 참사와 고리원전 문제는 많은 부분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설뿐 아니라 관리체계도 같은 부분이 있는데요, 이 두 가지를 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안전성의 기준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사실상 안전성을 논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와 기회 자체가 박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승우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로 '고착'을 뽑았다. 이러한 징후는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창조 컨설팅 문제로 대표되는 노동문제 등에서 이미 나타나왔다.
"요즘 제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느끼느냐 했을 때, '고착'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를 설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금지'는 아니지만 거기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둘러싸서 막아버리는 거죠. 그리고 그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외부의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키는 상태도 나타납니다. 금지도 아니고 배제도 아니지만 이 사람이 무엇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형태로 권력이라는 것이 작동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징후는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라 비슷하게 진행되어 온 여러 많은 사건들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노동 문제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존재하나 스스로 이 법을 무력화시키는 사회의 모습이 잘 나타나는 사례가 바로 '돈을 받고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노무법인 창조 컨설팅 문제입니다. 이처럼 엄연히 불법이지만 사실상 검찰, 노동위원회, 기업주가 힘을 합쳐 규칙을 무력화시키는 사회에서 통치는 폭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에 불어닥친 폭력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제'라는 단어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는 이러한 폭력은 결국 우리를 꼼짝 못하게 고착시키고 있습니다."
책임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처럼 병폐를 드러낸 한국 사회의 고착에 맞서기 위해 세월호 참사 관련 국민대책회의가 구성되고 "존엄으로부터 안전을 세우기 위하여"를 기조로 하는 존엄과안전위원회가 출범하였다. 하승우 교수는 이들이 기업살인법,원전사고 등과 관련하여 제시한 일곱 가지 과제에 대해, 중요한 것은 '해야 합니다'의 그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는 것이라 했다.
"이 일곱 가지 과제에서 중요한 건, 과연 이 과제 속의 '해야 합니다'는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사실 세월호 참사 이후 제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정부를 민주화시켜야 한다'고만 얘기하였는데, 이제는 '국가란 무엇인가? 정부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합니다. 즉, 이제 우리는 과연 '어떤 대상에게' 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이 과제를 현실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소위 안전 담론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그는 안전담론이 예측불가능성에 따른 공포를 기반으로 문제에 대한 직시 대신 회피나 도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음을 강조했다.
"안전담론은 예측할 수 없는 문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늘 공포를 수반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 초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이와키시라는 동네의 활동가들을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농민이었고 그 마을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사업으로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활동가들이 국내에 왔을 때 이에 대한 반감이 꽤 있었습니다. 특히 이와카시의 활동가들이 그들이 직접 농사지은 목화로 만든 인형을 가지고 와서 '우리가 어떻게 다시 마을에서 살아가려고 하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했을 때,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물품들을 국내로 반입하려고 한다'는 반대가 많았습니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일본 활동가들이 '방사능에 그토록 민감한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핵발전소를 그대로 둘 수 있냐고, 어떻게 마을 한 가운데에 송전탑을 세우냐고' 한국의 상황을 놀라워하고 있는데 말이죠. 제가 그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데도 안전의 벽 안에 남아 안전 담론 속에 존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든, 스스로 정했든 우리 스스로 이러한 모순에 빠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재 맞닥뜨린 현상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핵 발전 문제, 노동 문제, 가스나 의료의 민영화 문제와 같은 개별적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사실 다같이 한국 사회를 이루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이 흐름을 무엇이라 규정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기가 여전히 모호하고 어려운 상태이다. 하지만 이를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토 요시유키 작가와 하승우 교수의 발표 이후에는, 이를 토대로 최원 교수와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이 함께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세월호 참사가 각 국가, 더 나아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 신자유주의와 권력 사토 요시유키 저/김상운 역 | 후마니타스
구조주의 이후 현대 정치 철학에 대한 뛰어난 안내서이자 해설서다. 비판적 현대 정치철학의 흐름을 ‘신자유주의적 통치성과 이에 대한 저항 전략’이라는 일관된 주제와 문제의식 아래 솜씨 있게 엮어 내고 있다. 현대 정치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서로 교차시키고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물론이고, 이를 현실 사회에 대한 분석으로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주요한 참고점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경쟁’의 원리와 ‘자기-개발의 논리’는 어떻게 등장했으며,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 미치는 함의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지를 추적한다.
- 권력과 저항 사토 유시유키 저/김상운 역 | 난장
일본의 촉망받는 신진 이론가 사토 요시유키의 이런 ‘포스트 담론’에 대한 성찰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요시유키는 ‘포스트 담론’을 대표하는 네 사상가, 즉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루이 알튀세르가 자본주의와 그 권력을 비판만 해왔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 사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기존의 통상적 비판을 오해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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