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 <맥베스> 맥버니라는 나르시시스트
뮤지컬 <맥베스>가 관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글ㆍ사진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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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울시뮤지컬단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7세기 초에 <맥베스>를 발표했다. 이야기의 시작이 된 실제 스코틀랜드의 왕 맥베스는 11세기의 인물이다. 뮤지컬 <맥베스>가 공연되는 지금은 21세기다. 맥베스가 즉위한 1040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 이야기는 거의 1,000년간 계속되는 중이다. 장군이었던 맥베스가 왕을 죽이고 스코틀랜드의 왕이 된다. 무엇이 맥베스의 쿠데타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드는 걸까. 친밀한 사이에도 존재하는 것이 권력이다. 실질적인 서열의 차이든 정보와 파급력의 차이에서든 수시로 권력이 이동하기에 온전한 50:50의 관계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인간은 내밀한 관계에서부터 거대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식으로 끊임없이 권력을 탐한다. 그렇게 <맥베스>는 다양한 얼굴로 시대를 초월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서울시뮤지컬단의 뮤지컬 <맥베스>가 지금의 관객과 만나는 방식은 마녀와 레이디 맥베스의 새로운 해석이다. 맥베스의 미래를 예언하던 희곡 속 마녀들은 뮤지컬에서 맥베스의 아버지와 아들, 청년 시절의 자신으로 등장한다. 이들을 통해 관객은 맥베스가 강압적인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그를 향한 인정욕구, 아버지와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발견한다. 보편적 감정의 공유가 맥베스의 선택에 맥락을 만든다면, 레이디 맥베스의 서사는 맥버니라는 이름을 통해 완성된다.


원작의 레이디 맥베스에게는 이름이 없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아버지의 성에서 남편의 성으로 이동하며 이름 대신 남편의 성으로 불린다. 특정한 개인은 사라지고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만이 강요되는 삶이다. 그런 사회에서 남편의 권력욕을 자극해 왕비가 되는 레이디 맥베스는 신인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원작 속 레이디 맥베스가 갈 수 있는 길은 딱 거기까지다. 김은성 작가는 레이디 맥베스에게 맥버니라는 이름과 칼을 쥐여주며 그의 감정과 주장, 행동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맥버니가 아이를 잃은 어머니이며 승리한 맥베스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그가 폭력의 가해자라는 점을 절대 잊지 않는다.


사진: 서울시뮤지컬단


그렇다면, 맥버니의 폭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뮤지컬 <맥베스>는 맥버니의 잘못된 선택을 그의 나르시시스트적 면모를 통해 설명한다. 맥버니는 강요와 조종, 비난과 비교로 맥베스를 지배하며 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선다. 그는 맬컴 왕자의 왕세자 임명에 화가 난 맥베스에게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이 아니라 내 것을 되찾는 일”이라는 말로 살인을 부추긴다. 맥버니에게 왕좌는 쟁취해야 할 목표가 아닌, 이미 손에 쥐고 태어난 것에 가깝다. 그는 전장에서 도망간 왕세자,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던컨왕, 죽음에 대한 공포를 살인의 이유로 든다. 하지만 이는 맥베스 회유를 위한 것일 뿐, 자신의 위로 아무도 올려두지 않는 맥버니에게는 모두 무의미하다.


무대 위 맥베스는 불안에 떨며 던컨을 죽이지만, 맬컴을 죽이는 맥버니에게서는 특별한 감정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살인은 내 것을 되찾기 위한 당연한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살인의 순간을 목격한 뱅코우 가족을 협박하는 것도, 자신들을 비판한 이들의 입을 막는 것도, 반란군이 성문 앞까지 밀고 들어와도 초상화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맥버니는 화가에게 말한다. “신보다 빛나게 그려라.” 신을 넘어서는 자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결국 뮤지컬 <맥베스>는 나르시시스트가 강한 추진력을 장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가장 비극적 상황을 그리는 셈이다.


맥버니를 보며 생각한다. 비대해진 자아는 어떤 잘못된 선택을 낳는가. 맥버니가 되지 않는 법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에게는 더 높은 곳, 더 나은 삶,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 이러한 욕망은 성공의 바탕이 되지만, 잠식되는 순간 원래의 나로 돌아오기가 어렵다. 내 안의 건강하지 않은 자기애는 어떻게 돌아보고 어디서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할까. <맥베스>는 앞뒤 없이 내달리는 맥베스와 맥버니를 조롱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 곁을 찬찬히 비춘다. 같은 수법으로 왕이 되는 맥더프,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리보전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귀족들, 수없는 폭행에 휘말려도 비판의 목소리를 꺾지 않는 양민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데 이보다 좋은 질문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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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엔터테인먼트 웹매거진 <매거진t>와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10년 동안 콘텐츠 프로듀서와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다.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무형의 생각을 무대라는 유형의 것으로 표현해내는 공연예술과 관객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