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축구는 끝나지 않았다
이 글은 축구가 왜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지를 고민하다 두서 없이 떠오른 11가지 매력을 서술한 것이다.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말했듯, 축구공은 둥그니까.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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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알제리에 4:2로 패하면서, 월드컵 분위기가 차갑게 식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은 남아 있다. 벨기에에 대승하고, 나머지 경기를 지켜보자. 만약 한국이 16강 진출에 성공한다면 축제는 계속되고, 설사 예선에서 탈락하더라도 월드컵은 이어진다. 나머지 경기를 좀 더 느긋한 기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종종 월드컵과 올림픽이 비교되곤 하지만, 단일 종목으로 이렇게 세계인의 시선을 끄는 스포츠는 없다. 대체 왜 축구는 세계적인 스포츠가 되었을까. 이는 가벼우면서도 심오한 주제다. 이를 주제로 한 논문이나 책도 나왔으니까. 충분하지는 않지만, 11가지로 축구의 매력에 관해 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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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냥, 인간의 본능
축구는 조직적으로 골을 몰아가서 상대방의 골문으로 집어넣는 행위다.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목표가 정해졌다는 점, 그렇게 해서 얻은 소득은 팀 전체에 돌아간다는 점이 인간이 수렵에 나섰을 때 모양과 비슷하다. 축구는 사냥의 현대적 모습이다.


2. 골대 규격(7.32m * 2.44m)
야구장은 다소 자율적으로 펜스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데 비해 축구장에서 골대 규격은 정해져 있다. 가로 7.32m 세로 2.44m이다. 골대 크기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지정된 크기보다 크면 골이 많이 나올 것이고, 작으면 너무 적게 나올 것이다. 보통 축구 경기는 1점이나 2점에서 승부가 갈라지곤 한다. 무승부도 많다. 이는 약팀이라도 언제든지 강팀을 이길 수 있다는 의미다. 즉, 드라마가 연출되기에 좋은 스포츠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제프 헤르베르거 감독은 말했다. 공은 둥글다고.


3. 홈팀 승률 60%
통계적으로 볼 때 홈팀 승률이 60%일 때 관중이 제일 많다고 한다. 100%가 아니다. 관객은 뻔한 승리보다는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경기를 원한다. 어느 스포츠에나 그렇지만 한 팀이 절대적으로 우세할 때는 관객 없는 경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4. 오프사이드
오프사이드 규정이 지금 형태로 자리 잡은 건 1925년이다. 예전에는 공을 뒤쪽으로만 패스해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했다. 이렇게 되면 패스를 하기보다는 개인돌파에 전술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재 모습대로 오프사이드 규정이 바뀐 뒤에 축구 경기가 진정한 팀 스포츠가 된다. 개인과 조직이 모두 중요해졌다. 골도 많이 터졌다. 새로운 규정을 도입한 뒤 잉글랜드에서는 골이 40% 이상 더 나왔다.


5. 민족주의
스페인의 티티카카. 이탈리아의 빗장 수비. 네덜란드의 토탈 사커. 브라질의 삼바 축구. 프랑스의 아트 사커 등등. 축구의 특징 중 하나가 나라마다 축구 스타일이 다르다고 믿는 것이다. 축구 스타일은 한 팀의 뛰어난 선수에 초점을 맞춰 전략이 짜지고, 그 팀이 성공적으로 ‘기적의 팀’으로 우뚝 선 뒤 그 영향력이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예를 들어 전차군단 독일의 ‘스타일’을 명확히 하기는 어렵지만, 베켄바워와 네처가 이끈 뒤로 독일 국가대표팀 하면, ‘전차군단’이 연상되는 식이다. 하지만 한스 울리히 굼브레히트는 『축구의 미학』에서 축구가 스타일 개념과 친화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정치적 이유에서 특정 민족의 정체성과 축구 스타일 간의 관계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쉽게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니지만, 흥미로운 소재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어쨌든, 올림픽에서도 그렇지만 민족주의가 결부되면 행사가 흥행하기 좋다. K리그와 국가대표팀에 쏟아지는 관심의 차이를 보라.

 

6. 규칙
축구의 규칙은 단순하다. 물론 오프사이드가 있기는 하지만, 오프사이드를 빼면 어려운 규칙이 없다. 특히 야구와 비교하면 축구의 단순성은 명확하다.


7. 규칙만으로 모든 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모든 걸 세세하게 규칙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경기를 하는 상대 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현장에서 타협하는 데는 ‘신뢰’가 결정적이다. 193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신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결승전에서 맞붙은 팀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였다. 두 팀은 모두 자신들의 공으로 게임을 하겠다고 우겼다. 주심은 전반전에는 아르헨티나 팀의 공을, 후반전에는 우루과이 팀의 공을 쓰도록 했고 두 팀은 수락했다. 이와 비슷한 일이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일어났다. 처음 발표된 경기 시간이 선수에게 치명적일 수 있고, 유럽 위주라는 비판에 FIFA는 일부 경기를 바꿨다. 그중에서 일본과 코트디부아르 전이 대표적인데, 이 경기는 유일하게 현지 시각으로 10시에 열렸다. 일본 NHK 입김이 세게 작용했으리라는 게 후문이 있지만, 여하튼 코트디부아르는 변경된 시각을 받아들였다.

 

8. 파도타기
최초의 파도타기는 1986년에 멕시코 월드컵에서 출연했다고 한다. 파도타기는 우리 팀의 승리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서 모든 사람의 감정을 하나로 뭉치게 해 준다. 그런데 이 파도타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현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에만 움직인다. 무엇보다도, 2002 월드컵 때처럼 홈팀을 찾은 팬이 압도적으로 많을 때 가능하다.

 

9. 영웅
지난 대회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우승한 것을 탈영웅화된 조직의 승리로 해석하는 흐름도 있었지만, 일단 스페인이 이번 대회에서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페인에는 수많은 축구 스타가 있다. 축구가 팀 스포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영웅이 없는 것도 아니다. 펠레나 마라도나가 했던 폭풍 드리블 후 골문에 슛까지 꽂아 넣는 장면을 좀처럼 보기 힘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영웅은 존재하고 개인의 역량은 중요하다.

 

10. 감독
축구는 팀 스포츠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의 권력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 어떤 선수를 선발해서 어떤 포지션에 배치할지는 감독 권한이다. 하지만 외부 환경까지 감독이 좌우할 수는 없다. 종종 축구팀 감독을 기업의 CEO와 비교하곤 하는데, 적절한 비유다. CEO가 외부 시장환경을 통제할 수 없듯, 축구팀의 감독 역시 다른 팀의 사정까지 제어할 수는 없다.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팀을 짜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하는 방법밖에 없다.

 

11. 심판
삶에도 법정, 정부 등의 심판이 있듯 축구에도 심판이 있다. 다만 그 심판이 균형감을 잃고 편파판정을 한다면, 그 게임은 활력을 잃는다. 경기에서 심판은 항상 공정하지는 않다. 그건 삶도 마찬가지다.

 


* 축구 관련 책

 

축구의 미학

프리츠 B. 지몬 저/박현용 역 | 초록물고기

왜 축구팀은 15명이 아니라 11명일까? 골대의 크기는 왜 가로 7.32미터 세로 2.44미터일까? 새로운 오프사이드 규칙은 왜 도입된 것일까? 선수들이 손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나라마다 축구 스타일은 왜 다른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책에 참여한 저자 중에서는 사회학자가 많은데, 자연스레 논의의 방향도 사회학적으로 전개된다.

 

 

 


축구의 사회학

리처드 줄리아노티 저/ 복진선 역 | 현실문화연구

서포터 문화, 축구의 '공간'인 경기장, 축구와 텔레비전의 상관성, '산업'으로서의 축구, '몸'이라는 자본을 가진 축구선수들, 축구 전술 그리고 인종, 성, 계급 등 축구와 관련된 핵심요소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축구는 모르고 봐도 재밌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보면 더욱 보이는 게 많으면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저자와 함께 축구의 역사적, 문화적 복합성을 풀어가다 보면, 독자들은 글로벌 게임(축구)의 사회학적 가치와 이슈들을 빠짐없이 다룬 '축구의 사회학' 분야의 새로운 탄생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축구의 세계사

데이비드 골드블라트 저/서강목,이정진,천지현 공역 | 실천문학사

돈과 권력, 인종과 계급, 폭력과 저항 그리고 수많은 영웅들과 역사적인 승패 등을 교차하며 세계사를 형성했는가를 추적한다. 둥근 공을 상대방 골네트에 꽂아넣기만 하면 되는 그토록 단순한 놀이가, 어떻게 각자의 인간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을 수 있었을까? 『축구의 세계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축구를 둘러싼 수많은 권력의 교차선들을 생생히 드러내며 오늘날 축구가 가져야 할 정당한 좌표를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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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