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핑크(Apink) < Pink Blossom >
에이핑크의 기획은 진부함에서 새로움을 창조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20여 년 전 1세대 아이돌의 이미지를 다시금 부활시킴으로서 가요계의 빈틈을 공략한, 색다른 고유의 미를 확립하는데 까지는 성공적이었다. 허나 아이돌 그룹의 주요한 인기 요인인 다양한 콘셉트 변화가 불가능한 특수 상황을 조성했기에 온전한 음악의 질 자체가 그 어느 그룹보다도 중요해졌다. 약간의 일탈인 「Hush」의 부진 이후 「NoNoNo」로 '영원히 순수한 소녀들'이 되기로 대놓고 천명했기에 고민은 더욱 배가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자원에서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재연 가수'라는 오명을 피할 수 있다.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신보는 흥미와 지루함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긍정적인 면에 발을 걸치고 있다. 「몰라요」, 「My my」, 「NoNoNo」로 이어지는 싱글 계보를 잇는 「Mr.chu」는 거대한 파급력은 없을지라도 인기의 지속 면에선 여전히 효과적이다. 테니스 코드 걸의 콘셉트와 곡 전체를 지배하는 수줍음은 예상 가능한 순수함이지만 지루함으로까지 연결되지 않음으로서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
여기에 수록곡들은 확실한 기조를 따르면서도 감상의 다양함을 더함으로서 타이틀을 보조한다. 어쿠스틱 구성으로 팝적인 인디 감성을 더한 「Sunday morning」, 피아노와 현악 편곡이 더해진 「So long」등의 곡들은 양질의 아이돌 앨범으로서의 구성을 갖춘다. 억지스러운 음악적 성숙이나 변화 없이 목표에 충실하면서도 퀼리티를 등한시하지 않았다.
레퍼런스 그룹의 한계를 곡 퀼리티로 극복해야 한다는 거대한 부담감을 생각해보면 분명 신보의 성과는 인상적이며, 에이핑크라는 그룹 또한 굉장히 선전하고 있다. 허나 여전히, 역으로 신선함을 담보했던 이들의 전형적 이미지가 다시 고착화되는 현 상황에 대한 마땅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음원 차트에서는 강세지만 '한번 보면 두 번 또 보고 싶은'정도의 그룹 파워를 갖추지 못했고, 개별 멤버들에 대한 관심도 음악이 아닌 예능이나 연기와 같은 외부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약점이 벌써부터 하나 둘 드러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당장의 인기를 위해 과거에서 빌려온 특징의 한계를 잊는다면 분명 훗날 필연적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엔 상당한 딜레마에 골머리를 싸매야 할 것이다. 정교하고도 철저한, 고난도 기획의 '순수함'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다.
글/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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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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