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이 땅의 모든 아마조네스를 응원하며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때로는 무자비하게, 때로는 섹시하게, 때로는 스마트하게 남자들을 요리한다. 그녀는 조금은 유약한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달리 필요할 때면 남자들과도 과감히 몸싸움을 벌이는데, 실제로 『밀레니엄』 시리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격투 장면에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등장한다. 이 빼빼 마른 여자가 고군분투 끝에 거구의 남자들을 쓰러트릴 때마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환호성을 질렀으리라.
201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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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 인간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짝은 별명이 ‘사마귀 인간’이었다. 선머슴처럼 늘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던 덩치 큰 여자애였는데 무릎과 손등에 사마귀가 잔뜩 나 있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은 의외로 잔인한 구석이 있어서 타인의 약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친구들은 짝을 끊임없이 놀려댔다. 사마귀한테 물려서 그렇게 됐다느니 닿으면 옮는다느니 하면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때부터 좀 정의의 사도 콤플렉스 같은 게 있어서 친구들이 내 짝을 놀리면 말리거나 맞서 싸우는 쪽이었다. 그런데 짝이었던 이 친구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았다. 남자애들이 “사마귀 인간, 사마귀 인간” 하고 놀려도 그냥 씩 웃거나 질펀한 욕 한 사발을 퍼붓는 게 전부였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책상에 엎드려 울지도 않았고 선생님께 이르지도 않았다. 당연히, 자기편을 들어주는 나에게 반하는 일 따위도 없었다.
그런 가하면 내 짝은 운동 실력이 남달랐다. 피구를 할 때면 그 친구가 던진 공에 숱한 남자애들이 나가떨어졌다. 오래 매달리기도 아주 독보적이었고 계주 선수도 도맡아 했다. 내 짝이 못했던 건 딱 하나, 바로 공부였는데 그 친구는 그런 것도 별로 상관없는 듯 보였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여름방학 전의 몹시 무더웠던 어느 날로 기억하는데 수업 중에 내 짝이 연필 깎는 칼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
수업 시간에 좀처럼 딴 짓을 하지 않는 좀스러운 범생이었던 나는 묘한 죄책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끼며 짝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 친구는 무릎에 튀어나와 있던 사마귀에 칼을 가져다 대더니 그대로 쓱쓱 자르기 시작했다. 우웩!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짝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작업을 마무리 하고는 공책을 북 찢어 사마귀가 있던 자리를 꾹꾹 눌렀다. 새빨간 피가 배어 나왔고 나는 속이 메스꺼워져 책상에 얼굴을 파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귓가에 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골. 흐흐흐.”
『밀레니엄』 을 읽으며 ‘그녀들’을 떠올리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제1부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을 읽기 시작한 건 재작년 가을 무렵이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그 전부터 읽어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전집을 한 번에 다 사놓고 보니 여섯 권짜리 이 책들을 다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몹시도 무료하고 우울했던 어느 가을날, 드디어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권을 집어 들었다. 그때가 아마 오전 11시 무렵이었나? 우리 집 소파로 비실비실한 햇살이 비쳐들었으니 그즈음이었으리라. 아무튼 그 순간부터 꼬박 스물네 시간 동안 나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은 물론이고 제2부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의 1권까지 쭉 읽어버렸다. 어디 그뿐이랴, 그 주 내내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결국 여섯 권을 다 읽었다. 제3부인 『벌집을 발로 찬 소녀』 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작가의 죽음으로 이 시리즈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눈물이 났다. 아! 어디 숨겨진 원고 없나?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작가 ‘스티그 라그손’이 쓴 이 괴물 같은 작품은 스웨덴의 ‘밀레니엄’이라는 가상의 잡지사가 배경이다. 이 잡지사에서 일하는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천재적인 여성 해커이나 어두운 과거를 가진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각각 남녀 주인공으로 『밀레니엄』 은 이들이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치밀한 복선과 반전, 기자 출신 작가가 선보이는 전문적인 지식 등에 더해 기존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주인공들 때문이었다. 특히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이다. 피어싱과 문신으로 가득한 작은 몸, 사회부적응자, 양성애, 그럼에도 천재적인 해킹 실력을 자랑하는 이 여전사는 『밀레니엄』 의 실질적인 원톱 주인공이자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이다.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때로는 무자비하게, 때로는 섹시하게, 때로는 스마트하게 남자들을 요리한다. 그녀는 조금은 유약한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달리 필요할 때면 남자들과도 과감히 몸싸움을 벌이는데, 실제로 『밀레니엄』 시리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격투 장면에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등장한다. 이 빼빼 마른 여자가 고군분투 끝에 거구의 남자들을 쓰러트릴 때마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환호성을 질렀으리라.
나는 『밀레니엄』 을 읽는 내내 그 옛날의 ‘사마귀 인간’을 떠올렸다. 투박한 연필 깎기 칼로 자신의 사마귀를 서걱서걱 잘라내던 그 친구의 모습과 끊임없이 남자들과 맞서 싸우는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짝은 어린 시절의 내가 인식한 최초의 ‘강인한 여성’이었다. 남자의 보호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홀로 우뚝 서 있던 그 친구와의 인연은 6학년 때 우리 집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끝났지만 그 기억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강인한 여성들을 만났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각 장 앞에 나와 있는 역사 속의 ‘여성 전사들’처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아마조네스들은 내게 많은 영감과 감동을 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아마조네스는 바로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실직한 동안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며 안팎으로 숱한 고생을 하셨다. 안 해 본 일이 없으셨고 또 못하는 일도 없으셨다. 꽃처럼 여리고 예쁜 어머니는 먹성 좋은 아들 넷을 키우느라 늘 잔병을 달고 사셨고 그럼에도 직장 생활을 하랴 집안일을 하랴 한 시도 쉬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필요할 때면 괄괄하게 싸우기도 하셨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어린 시절의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게 근성과 열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모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아내는 연애하던 시절에는 천생 잘 자란 막내딸이었다. 울기도 잘 울고 마음도 여리고 내게 기대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돈 잘 못 버는 남자의 아내가 된 후에는 180도 달라졌다. 무슨 일이든 혼자서 척척 잘 해냈으며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는지 각종 세일 소식이며 할인 소식들을 알아내서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나갔다. 떼쟁이 아들의 엄마가 된 후에는 더 강해졌다. 어린 아들을 차에 태우고 먼 길을 마다않고 문화 센터에 다니는 것도 모자라 아들과 남편을 위해서라면 밤잠을 설쳐가며 일을 하고 집안을 돌보았다. 어느 날인가는 강남까지 가서 아줌마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일하는 아들 옷을 ‘득템’했다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그날 밤 나는 아내의 구멍 난 속옷을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언뜻 우리나라보다 남녀평등이 더 잘 구현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스웨덴에서도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힘들다는 사실을 『밀레니엄』 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특히 전형적인 여성이 아닐수록 그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독특하고 기괴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무시와 차별을 받게 된다. 또한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미성년자 성매매는 유럽에서도 여전히 여성을 성적 도구화하는 불편한 사실을 보여 준다.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시리즈 내내 부딪치고 싸우는 대상은 바로 남자로 대변되는 사회 시스템과 부조리들이다. 그녀는 때때로 승리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아쉽게도 3부로 마무리된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단 한 번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강하다. 인터넷에서 도시 전설처럼 떠도는 ‘된장녀’들과 달리 내가 만나 본, 적어도 내 주위에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어떤 남성들보다도 더 주도적으로 헤쳐 나간다. 그것은 육체적인 강함의 문제가 아니라 측정할 수 없고 수치화 할 수 없는 정신적인 강함의 영역이다. 어머니는 내게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고 기회는 온단다.”
아내는 요즘 들어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뭐든 긍정적으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나는 세상의 파도 앞에 당당히 선 강인한 여성들을 보면 무한한 존경심과 함께 경외감을 느낀다. 편견과 오해 앞에서도 늘 자신 있게 삶을 개척해 나가는 현대의 아마조네스들에게,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 혹은 독립적인 주체로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강인한 여성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이 세상을 향해 멋진 펀치를 날릴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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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 내 짝은 별명이 ‘사마귀 인간’이었다. 선머슴처럼 늘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던 덩치 큰 여자애였는데 무릎과 손등에 사마귀가 잔뜩 나 있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은 의외로 잔인한 구석이 있어서 타인의 약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친구들은 짝을 끊임없이 놀려댔다. 사마귀한테 물려서 그렇게 됐다느니 닿으면 옮는다느니 하면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때부터 좀 정의의 사도 콤플렉스 같은 게 있어서 친구들이 내 짝을 놀리면 말리거나 맞서 싸우는 쪽이었다. 그런데 짝이었던 이 친구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았다. 남자애들이 “사마귀 인간, 사마귀 인간” 하고 놀려도 그냥 씩 웃거나 질펀한 욕 한 사발을 퍼붓는 게 전부였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책상에 엎드려 울지도 않았고 선생님께 이르지도 않았다. 당연히, 자기편을 들어주는 나에게 반하는 일 따위도 없었다.
그런 가하면 내 짝은 운동 실력이 남달랐다. 피구를 할 때면 그 친구가 던진 공에 숱한 남자애들이 나가떨어졌다. 오래 매달리기도 아주 독보적이었고 계주 선수도 도맡아 했다. 내 짝이 못했던 건 딱 하나, 바로 공부였는데 그 친구는 그런 것도 별로 상관없는 듯 보였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여름방학 전의 몹시 무더웠던 어느 날로 기억하는데 수업 중에 내 짝이 연필 깎는 칼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
수업 시간에 좀처럼 딴 짓을 하지 않는 좀스러운 범생이었던 나는 묘한 죄책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끼며 짝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 친구는 무릎에 튀어나와 있던 사마귀에 칼을 가져다 대더니 그대로 쓱쓱 자르기 시작했다. 우웩!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짝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작업을 마무리 하고는 공책을 북 찢어 사마귀가 있던 자리를 꾹꾹 눌렀다. 새빨간 피가 배어 나왔고 나는 속이 메스꺼워져 책상에 얼굴을 파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귓가에 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골. 흐흐흐.”
『밀레니엄』 을 읽으며 ‘그녀들’을 떠올리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제1부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을 읽기 시작한 건 재작년 가을 무렵이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그 전부터 읽어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전집을 한 번에 다 사놓고 보니 여섯 권짜리 이 책들을 다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몹시도 무료하고 우울했던 어느 가을날, 드디어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권을 집어 들었다. 그때가 아마 오전 11시 무렵이었나? 우리 집 소파로 비실비실한 햇살이 비쳐들었으니 그즈음이었으리라. 아무튼 그 순간부터 꼬박 스물네 시간 동안 나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은 물론이고 제2부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의 1권까지 쭉 읽어버렸다. 어디 그뿐이랴, 그 주 내내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결국 여섯 권을 다 읽었다. 제3부인 『벌집을 발로 찬 소녀』 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작가의 죽음으로 이 시리즈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눈물이 났다. 아! 어디 숨겨진 원고 없나?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작가 ‘스티그 라그손’이 쓴 이 괴물 같은 작품은 스웨덴의 ‘밀레니엄’이라는 가상의 잡지사가 배경이다. 이 잡지사에서 일하는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천재적인 여성 해커이나 어두운 과거를 가진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각각 남녀 주인공으로 『밀레니엄』 은 이들이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치밀한 복선과 반전, 기자 출신 작가가 선보이는 전문적인 지식 등에 더해 기존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주인공들 때문이었다. 특히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이다. 피어싱과 문신으로 가득한 작은 몸, 사회부적응자, 양성애, 그럼에도 천재적인 해킹 실력을 자랑하는 이 여전사는 『밀레니엄』 의 실질적인 원톱 주인공이자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이다.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때로는 무자비하게, 때로는 섹시하게, 때로는 스마트하게 남자들을 요리한다. 그녀는 조금은 유약한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달리 필요할 때면 남자들과도 과감히 몸싸움을 벌이는데, 실제로 『밀레니엄』 시리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격투 장면에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등장한다. 이 빼빼 마른 여자가 고군분투 끝에 거구의 남자들을 쓰러트릴 때마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환호성을 질렀으리라.
나는 『밀레니엄』 을 읽는 내내 그 옛날의 ‘사마귀 인간’을 떠올렸다. 투박한 연필 깎기 칼로 자신의 사마귀를 서걱서걱 잘라내던 그 친구의 모습과 끊임없이 남자들과 맞서 싸우는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짝은 어린 시절의 내가 인식한 최초의 ‘강인한 여성’이었다. 남자의 보호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홀로 우뚝 서 있던 그 친구와의 인연은 6학년 때 우리 집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끝났지만 그 기억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강인한 여성들을 만났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각 장 앞에 나와 있는 역사 속의 ‘여성 전사들’처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아마조네스들은 내게 많은 영감과 감동을 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아마조네스는 바로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실직한 동안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며 안팎으로 숱한 고생을 하셨다. 안 해 본 일이 없으셨고 또 못하는 일도 없으셨다. 꽃처럼 여리고 예쁜 어머니는 먹성 좋은 아들 넷을 키우느라 늘 잔병을 달고 사셨고 그럼에도 직장 생활을 하랴 집안일을 하랴 한 시도 쉬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필요할 때면 괄괄하게 싸우기도 하셨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어린 시절의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게 근성과 열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모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아내는 연애하던 시절에는 천생 잘 자란 막내딸이었다. 울기도 잘 울고 마음도 여리고 내게 기대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돈 잘 못 버는 남자의 아내가 된 후에는 180도 달라졌다. 무슨 일이든 혼자서 척척 잘 해냈으며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는지 각종 세일 소식이며 할인 소식들을 알아내서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나갔다. 떼쟁이 아들의 엄마가 된 후에는 더 강해졌다. 어린 아들을 차에 태우고 먼 길을 마다않고 문화 센터에 다니는 것도 모자라 아들과 남편을 위해서라면 밤잠을 설쳐가며 일을 하고 집안을 돌보았다. 어느 날인가는 강남까지 가서 아줌마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일하는 아들 옷을 ‘득템’했다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그날 밤 나는 아내의 구멍 난 속옷을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언뜻 우리나라보다 남녀평등이 더 잘 구현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스웨덴에서도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힘들다는 사실을 『밀레니엄』 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특히 전형적인 여성이 아닐수록 그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독특하고 기괴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무시와 차별을 받게 된다. 또한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미성년자 성매매는 유럽에서도 여전히 여성을 성적 도구화하는 불편한 사실을 보여 준다.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시리즈 내내 부딪치고 싸우는 대상은 바로 남자로 대변되는 사회 시스템과 부조리들이다. 그녀는 때때로 승리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아쉽게도 3부로 마무리된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단 한 번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강하다. 인터넷에서 도시 전설처럼 떠도는 ‘된장녀’들과 달리 내가 만나 본, 적어도 내 주위에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어떤 남성들보다도 더 주도적으로 헤쳐 나간다. 그것은 육체적인 강함의 문제가 아니라 측정할 수 없고 수치화 할 수 없는 정신적인 강함의 영역이다. 어머니는 내게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고 기회는 온단다.”
아내는 요즘 들어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뭐든 긍정적으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나는 세상의 파도 앞에 당당히 선 강인한 여성들을 보면 무한한 존경심과 함께 경외감을 느낀다. 편견과 오해 앞에서도 늘 자신 있게 삶을 개척해 나가는 현대의 아마조네스들에게,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 혹은 독립적인 주체로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강인한 여성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이 세상을 향해 멋진 펀치를 날릴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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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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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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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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