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출판 기획자로 활동하다, 저자로 데뷔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출판 기획자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또 인문학을 어려워하거나 혹은 나름 몇 번 시도를 하다가 포기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교양 수준의 인문학 안내서를 구상하다가 이렇게 직접 책을 쓰게 되었다.
1권이 호평을 받았는데, 기분이 어떤가.
인문학에 관심은 많은데 어렵게 느껴 망설이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을 위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문학 안내서가 있다면 어느 정도 호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출판사도 나와 같은 생각이더라. 그래서 기획자의 입장에서 저자를 물색하다 여러 가지로 여의치 않아서 직접 쓰기로 결심을 굳혔다. 때마침 인문학을 향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매우 기뻤다. 무엇보다 책의 내용만 보고 좋은 평가를 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몇몇 출판 관계자분들께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
시중에 이미 많은 인문학 개론서가 나와 있다. 그럼에도 주현성 저자의 책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특정 분야가 아닌 인문학 전체를 전반적으로 정리해주는 책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와 출판사의 기획 의도였으니까. 여기에 출판사에서 지어준 책 제목 또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 같다. 굳이 책의 장점을 뽑자면 나를 닮았다는 것? 나는 학창시절부터 주로 혼자 인문학을 공부해 오면서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런 어려운 봉착점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그래서 인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던 독자가 책을 보면, “왜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야 하나?” 또는 “하나라도 더 깊이 들어가야지 줄줄이 나열하기만 했다”라는 비판을 많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문학 공부로 고생을 좀 해봤다면, 그것이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시되었던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며 매우 기뻐하더라. 내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준 독자는 대부분 이런 분들인 것 같다. 실제 강의에서도 “이제야 후련하다”는 대답을 많이 듣곤 한다.
보통 인문학 개론서는 가장 첫장에 그리스 사상을 다루는 게 보통이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은 프로이트를 전면에 내세웠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출판쟁이인 거다. 철학부터 시작한다면 흥미를 유발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고, 이는 출판사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래서 책의 시작을 심리학으로 할 것인가, 회화로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인문학 분위기를 좀 더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심리학이라고 판단했다. 심리학 중에서도 프로이트를 먼저 내세운 것은 프로이트야말로 심리학을 매우 신비롭고 흥미로운 분야로 인식시키며 대중화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출판 기획자로 활동했고, 쓴 책이 모두 독서 내공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을 것 같다.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 좋아하는 사상가나 작가가 있다면 함께 소개 부탁한다.
사춘기 때 고독을 많이 느끼며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방황의 이유나 삶의 이유를 찾고자 심리학이나 철학을 들척이던 것이 계기다. 하필이면 그때 형이 30권이나 되는 철학 전집을 사다놓아, 그 책이 내 몫이 되고 말았다. 가스통 바슐라르와 소쉬르를 좋아한다. 또 좀 구닥다리같이 느낄지 모르지만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칸트와 다윈을 생각한다. 소설가는 아멜리 노통브, 한국 소설 중에 제일 열심히 읽은 건 전동조의 『묵향』 같다. (웃음)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 관심사와 관련하여 읽는 책이나, 저술 계획이 있다면 알려 달라.
최근에는 신화와 진화심리학, 정신과 예술의 관계에 대하여 관심을 쏟고 있다. 이런 것들과 우리가 가진 상식이 역사의 어느 부분에 속하고, 어떻게 융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이를 통해 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좀 더 색다른 세계사를 선보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이 2권까지 나왔으나, 아직 중국, 인도 쪽은 다루지 않았다. 앞으로 다룰 계획은 없나?
위에서 말한 세계사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인도, 한국 등의 신화와 사상 등이 다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반면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동양 편을 의미한다면, 동양에 대해서도 언제나 관심을 놓지 않고 있는 만큼 언젠가 소개하게 될 거다.
인문학이 중요하다, 는 사회적 인식과는 반대로 현실에서는 갈수록 인문학 전공자가 사라지고 인문학 도서를 찾는 사람이 줄어든다. 서점의 인문학 코너에 가면 자기계발서 류의 책이 인문학 저서인 양 둔갑하는 사례도 있고. 인문학이 마케팅 용어로 사용되는 추세가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인문학의 위상, 어떻게 보나.
위상을 높여라 높여라 한다고 높아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위상을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 하나는 오늘날 갑자기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우리나라에서 나타나 세계를 놀라게 하고 주름잡는 것이다. 순전히 우연을 바라거나 그 기초 기반이 중요하겠다. 나머지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친근하게 생각하면서 인문학의 수용층이 넓어질 테다. 수용층이 넓어야 자연스럽게 그 깊이도 더해진다. 실제 인문학이 번성하기 시작한 시기도 활자와 종이가 급속도로 증가한 르네상스 시대부터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인문학이 다양한 쓰임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부정적인 부분보다 바람직한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독자들과 더 친근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얼마나 잘 활용하여 더 좋은 계기로 만드느냐는 것인데. 확실한 것은 수용층이 넓고 두터워진다면 자연스럽게 인문학도 깊이를 더할 것이라는 점이고, 그러다 보면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석학이 나타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나.
인문학은 고민하고,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저자가 보기에, 현재 우리의 고민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나.
우선 경제적인 고민이 가장 큰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제 고도성장이 멈춘 데다가 세계 시장마저 그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 하루빨리 대안을 찾아야겠지. 가장 쉽게는 독일과 스웨덴 같은 좀 더 안정적인 경제 모델을 연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미국식 경제 모델은 자본주의 폐해를 오롯이 안고 있는 모델이라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지 안을까? 그리고 어쩌면 자본주의를 좀 더 변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 청년실업과 관련해서는 젊은이들이 빨리 현실을 인지하는 게 좋다. 정부도 물론 실업률을 낮추는 데 노력해야겠지만, 저성장이 가져오는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제는 늘 청년창업도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변화를 원하면서 변화를 택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다들 정치를 비판하고 바꿔야 한다고 말하지만, 전작 그 결정권인 선거에서는 아무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어느덧 2013년이 흘러가고 있다. 2013년에 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 2014년에 하고 싶은 일, 한 가지씩만 말해 달라.
되돌아보니 올해는 정말 한 일이 없다. 더위 속에서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2』를 쓴다고 낑낑대던 일만 떠오른다. 내년에는 책 쓰는 것 말고도 뭔가 근사한 일을 하나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이런 질문 줘서 감사하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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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