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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낭만과 상상을 결코 죽이지 않아요” - 『과학자의 서재』최재천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면 훨씬 기막힌 낭만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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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 뒤편에 병렬된 공역과 공저 서적, 여러 개의 학위, 사회 여러 분야에서 받은 상,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은 연구성과 등을 훑어봤다. 가히 압도적이었다.

▷ 최재천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 걸음은 묵직했고 표정은 단단해졌다. 특정분야에 걸출한 성과를 거둔 인터뷰이를 찾을 때마다, 결코 A 학점이 허락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손바닥에 솟는 땀을 닦아가며 예닐곱 장의 시험지를 채워야만 하는 기분이 된다.


『과학자의 서재』 뒤편에 병렬된 공역과 공저 서적, 여러 개의 학위, 사회 여러 분야에서 받은 상,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은 연구성과 등을 훑어봤다. 가히 압도적이었다. 허술한 질문은 용납되지 않을 성 싶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가는 달 모양으로 휘어지는 웃음을 지으며 던지신 첫마디는 방안 공기를 훨씬 숨쉬기 좋도록 바꿔놓았다.
“저한테 뭐 물어보실 게 많으신가요?”

길어야 한 시간 안에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인터뷰 여건 상, 대개 형식적인 인사를 재빨리 나누고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당연히 묻고 답하는 게 목적인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 이런 인사라니. 이유없이 웃음이 나왔다.

인터뷰 두 건이 연달아 있는 바람에 식사가 늦어지는 것을 염려해 황급히 마무리지으며,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물었다.(기사에 쓸 예정은 아니었다) 순간 안단테 정도였던 말의 속도가 알레그로 정도로 빨라졌다. 그리고 표정은 그야말로 ‘해피’. 굉장히 몰입한 상태로 오랑우탄을 ‘네 마리’ 대신 ‘네 명’으로 부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실례의 말씀이지만, ‘딸바보’ 아빠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의 애교를 자랑하는 모습과 꽤 비슷했다) 오랑우탄 ‘보석이’와 함께 연구 중인 ‘윤보석’ 교수의 이름이 같은 것을 어제서야 알았다며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개그를 들은 표정으로 한참을 웃으셨다. 글자 ‘허허허’를 음성지원한다면 딱 이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돌아오는 길, 책 뒤쪽에 병렬된 논문 제목을 다시 봤다. ‘너무도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단순한 이론으로부터. 이다지도 문학적인 논문제목이라니. 그리고 이다지도 감성적인 과학자라니.

◈ 최재천 교수 이력
세계적 권위를 지닌 자연과학자이지만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개미와 말한다> <황소 개구리와 우리말>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서울대학교 동물학과에 들어간 후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을 접한 것을 계기로 생물학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곤충학과에서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 생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직을 제안받아 귀국하였고,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학자, 이토록 멋진 인생

『과학자의 서재』 란 제목에 지레 겁을 먹었는데 순식간에 읽었다.”,“의외로 아이가 엄마보다 빨리 읽었다”는 독자 반응을 보았습니다.
안 그래도, 편집부에 “대한민국에서는 제목에 ‘과학’ 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판매부수에 0이 하나 빠져요” 라고 했었죠.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지는 듯합니다. 멋있다고 동경하면서도 막연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어렵다고 회피하기도 하고요.
요즘 고교에 강의를 가는데, 어이가 없습니다. 문이과 분리라니, 도대체 석기시대 교육인지 뭔지 한심하죠. 게다가 문과가 더 많거든요. 과학기술 시대에 ‘이과 나오면 취직 힘들다. 남의 관리 하에서 일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니 말이죠.

그 옛날에는 과학자가 꿈이었던 아이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쉬운 일이예요. 그런 뜻에서 과학자가 쓴 책을 사람들이 읽어주는 것 자체가, 그리고 ‘과학자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재미있는 인생이로구나’ 한번 느끼게 되는 것이 유의미한 일이라고 봐요.

과학자의 인생은 어떤 식으로 즐거운가요?
‘세상 살면서 무엇이 가장 멋진 일일까’ 생각해 보곤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학처럼 멋진 일은 드물어요. 아무도 보지 못했던, 그리고 아무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세상에서 최초로 해내는 것이잖아요. 이렇게 신나는 일이 어디 있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만나야만 하는 이유예요. 일종의 말장난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대중의 과학화’라는 말을 언급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 번도 과학자를 꿈꾼 적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어 습작노트를 끼고 살았고, 조각이라는 아름다운 세계를 발견하고는 그곳을 향해 무작정 내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방금 말했듯이 네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과학자가 되어 있습니다. 꿈꿔본 적이 없는 모습이 되었다고 해서 제가 서운해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름들 속에는 제가 꿈꿨던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죠.(작가의 말)



“과학에다가 물을 타지 마십시오”

『과학자의 서재』 에는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과학의 대중화’를 모토로 일반인들에게 과학을 전달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어요. 그런데 쉽게만 설명하려는 욕심에 과학 알맹이는 쏙 빠지고 과학냄새만 풍기는 일이 잦았죠. 그건 ‘과학의 저질화’ 에 다름 없어요.

간혹 “과학이 재밌는 건 줄 알고서 전공했는데 너무 어렵습니다.”라고 호소하는 학부생을 봅니다. 저는 대답하죠. “과학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기가 막히게 멋진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과학의 저질화’요.
한낱 마술쇼와 같은 과학쇼들이 많습니다. 신기한 게 반짝반짝하고 펑펑 터지지요. 그걸 ‘우와!’하면서 보고는 집에 돌아갑니다. “뭘 많이 보고 재미있었는데, 그게 뭐였지?” 하고 훗날 기억되지요.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일찍이 리처드 도킨스가 “대중에게 과학을 알린답시고 과학에 물을 타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저도 그에게 동의해요.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쉽고 흥미롭게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예요. 그렇다고 ‘과학’을 뺀 대중화를 해서는 안 되죠.

감정에 호소하는 문화, 논리가 실종된 토론을 목격하곤 합니다. ‘대중의 과학화’가 이뤄지면 사람들이 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될까요? ‘떼한민국’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떼쓰면 다 된다고요. 과학적 사고는 합리적 사고죠. 대중의 과학화를 통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마인드를 많은 이들이 공유하게 됨으로써 얻어지는 성과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누군가는 “되게 재미없는 세상이 되겠네요. 감성은 모조리 사라지고 이성만 남은 세상이요”라고 반박하기도 하는데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이츠가 쓴 시가 있어요. ‘뉴턴이 분광학을 통해 무지개를 해부했다. 과학이 낭만을 소멸시켰다’는 내용인데, 도킨스가 『무지개를 풀며』에서 이를 비판했죠.



과학은 낭만과 상상을 결코 죽이지 않아요

‘과학이 낭만을 소멸시켰다’고요.
거칠게 말하면 이래요. 달나라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줄 알았는데, 우주선을 타고 가보니 황폐하기 짝이 없단 말이죠. 토끼도 나무도 없고요. 그러니 낭만이 깨졌다고들 해요.
그러나 정말, 그런가요? 과학이 드디어 인간의 상상을 우주 공간까지 확장했다고 볼 순 없을까요? 그건 낭만이죠.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훨씬 더 기막힌 낭만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돼요. 즉, 과학은 낭만과 상상을 결코 죽이지 않아요. 더 큰 경지의 낭만과 상상을 선사하죠.

과학자의 마음과 시인의 마음과 조각가의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성적이었던 제 꿈들이 사실과 검증이 지배하는 과학이라는 세계에서 지금껏 부서지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인을 꿈꿨던 사람이 과학자가 되었다 해서 꿈이 없어진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보기 드물게도 ‘시인의 마음을 지닌 과학자’가 되었지요. (작가의 말)

‘통섭’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통섭’이 ‘여러 분야를 무조건 섞는 것, 융합하는 것’ 등으로 오독, 오용되는 일이 많습니다. 통섭을 이해하기 쉽도록 정의해 주신다면요?
융합과 통섭의 차이를 살펴보면 쉬워요. 융합의 ‘융’의 한자를 풀어보면, 솥 격에 벌레 충이 함께 있는 글자로, 솥에서 나오는 김이 곤충처럼 나오는 모습을 본 뜬 문자예요. 따라서 둘 이상이 녹아서 하나가 되는 게 융합이죠. 그러므로 ‘기술의 융합’ 이라는 말은 허용돼요. 두 가지 이상의 기술이 만나 하나의 제품을 만드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학문의 융합’이라고 잘못 쓰는 경우예요. 학문은 융합될 수 없거든요. IT와 BT가 소통 한번 하고 하나가 된다고요? 말 안 되죠. 예컨대 21세기 인기학문인 인지과학은 불과 몇십년 전에 진화생물학자, 심리학자, 뇌과학자 등이 모여 ‘우리 뇌가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이리도 놀라운 일을 하느냐’고 연구하다가 만들어진 학문입니다.

그런데 인지과학이 흥한다고 심리학이 문 닫았나요? 절대 아니죠. 그대로 있거든요. 이게 바로 통섭이에요. 원래 것들은 그대로 있되, 그것들이 정을 통해 자식을 낳는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네요.(웃음) ‘부모 학문의 DNA를 적절히 섞은 자녀 학문’이죠. 융합이 화학적 과정이라면, 통섭은 생물학적인 과정.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갈까요?



“두려울 게 무엇인가. 새로운 분야가 거기에 있다면
다시 한번 뛰어넘으면 된다”


‘자연이 꿈의 씨앗을 심어주었고 책은 그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물을 주었다’고 책에 쓰셨어요. 요즘 청소년들은 독서를 강요받는 동시에 ‘한가하게 책을 읽느냐. 수능공부 혹은 취업공부를 해야지’라는 핀잔을 듣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안타까워요.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한숨)현재는 한우물의 시대가 아니거든요. 여러 우물을 파야죠. 저는 가능한 평생에 걸쳐 학위를 여러 개 취득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예요.

이제 정년제도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70년간을 일해요. 평생동안 대여섯개의 직업을 가지게 되는 시대죠. 그렇다고 미아리에 자리 깐 사람 찾아가 ‘제가 평생 어떤 학문들을 써먹게 되나요?’ 물어서 그것들 다 공부한 후에 취업할 건가요? 그럴 순 없잖아요. 피터 드러커가 말했어요. ‘21세기는 지식의 세기다. 지식의 세기에는 배움에 끝이 없다’. 일생에 걸쳐 자신이 관심을 둘 분야를 탐색해야 하고, 그러니 독서가 필수죠.

평생학습으로서의 독서를 강조하시는 것이군요.
흔히 독서가 취미라고들 해요. 취미로서의 독서의 최상치는 『해리포터』를 읽는 정도 아닐까요. 물론 그것도 좋아요. 그러나 독서는 일삼아 해야 합니다.‘기획독서’를 하세요. 내가 모르는 분야의 책을 덥썩 들고 일단 씨름을 해 보는 거예요.

‘나노과학’에 대해 모르면 ‘나노과학’에 대한 책을 들고 무작정 읽기 시작해요. 기자님께서 아까 ‘뼛속까지 문과’라고 하셨죠? 그런 분들은 몇 달 족히 걸릴 거예요. 하지만 또 ‘나노과학’ 책이 눈에 띌 거예요. 그럼 또 잡고 몇 달. 물론 어렵죠. 그런데 세 번 정도 하면 ‘어렵쇼, 읽히네?’가 돼요. 그러다 어느 아침신문에 나노과학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기사가 떠요.“나노과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놈이 썼구만. 쯧쯧.”하는 자신을 발견해요.
그러다 사십대 중반에 회사에서 내쳐졌다고 쳐요. 길가다 만난 옛친구가 “나노과학 관련 회사 다닌다네.” 한단 말이야. 이때 대개 “어, 그러냐. 잘 살아라. 안녕.”하겠지만 좀 아는 사람은 얼쑤 잘 됐다, 싶어 이러죠. “나도 나노과학에 흥미가 좀 있는데 말이지.” 그러면 하다못해 그 회사에 입사할 기회도 높아지겠죠.

단순한 예를 들었지만요, 결론은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덤벼서 읽어라”란 메시지예요. 실상 학부 전공 했다고 얼마나 전문적인가요? 책 두세 권만 읽어도 그 분야에 덤비기에는 충분한 바탕지식이 돼요. 독서는 밥줄입니다. 책을 읽어야 먹고 살아요.



행복한 과학자의 ‘느릿느릿’ 독서법

취미로서의 독서와 학습으로서의 독서, 각기 다른 독법을 두고 고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만 읽었던 이들은 과학서적을 줄치고 메모하며 공부하듯 읽다가 다시 스르륵 읽으며 방황하다가 포기하기도 합니다. 과학책 잘 읽는 선생님만의 독법이 있나요.
없어요.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참고 읽습니다. 게다가 뜻밖이시겠지만 책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안사람과 한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경우에 늘 타박을 받곤 하죠. 나는 눈으로만 읽지를 못하고 꼭 속으로 소리를 내며 읽고 앉아 있거든! 대신 굉장히 정독하는 스타일이에요. 한 권 한 권 내 안에 많이 남도록 읽어요. 하지만 빠르게 읽기와 느리게 읽기, 둘 다 장단점이 있겠죠.

‘나는 행복한 과학자다’라고 하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어제 무엇이 가장 행복하셨나요?
어제는 기억이 안 나네요, 벌써.(웃음) 몇 년 전부터 오랑우탄 연구를 시작했어요. 보석이, 보리, 보람이 등 네 명의 아이들이 이제 습관이 되어서는 “자, 실험하자” 하면 신이 나서 다가와요. 물론 먹을 것 때문이겠지만요.
나무 토큰에 입을 맞추면 ‘실험 시작’ 신호인데요. 네 명 각각 색깔이 배정돼 있는데, 이제는 색 박스가 이리저리 이동해도 알아서 막대를 꽂아 넣어요. 오늘 연구진이 한데 모여 비디오 촬영본을 봤는데 결과가 참 좋아서, “이거 되겠다!” 하며 손뼉을 치며 웃었어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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