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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환자들과 화투 친 천재 과학자 - 정재승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과학자가 발견하는 영화 속 진실 혹은 거짓 천재 과학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의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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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한 체구에 사람 좋은 인상, 청산유수같이 이어지는 말솜씨……. 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첫인상이다. 다재다능한 재주로 각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가 자신의 베스트셀러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의 2탄 격인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를 10여년 만에 출간했다.

1탄인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에서 2탄인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에 이르기까지 10년의 시간은 그에게 도전의 연속이었다. 물리학자에서 뇌과학자로 진화해 오며 세상을, 그리고 영화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더욱 확장되고 따뜻해졌다. 물리학자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인물, 그리고 그 인물들 간의 관계에 깃든 과학이 비로소 뇌과학자가 되며 보였던 탓이다.






이제 갓 마흔을 넘긴 그에게는 오래전부터 천재과학자라는 별명이 따라붙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스물일곱 살에 카이스트 교수가 된 비범한 인물이었던 탓이다. 물리학자로서 자신의 분야 외에도 소설가 김탁환과 공동 집필한 『눈 먼 시계공』을 비롯해 다양한 과학 관련 교양서적들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와 관련해서는 광적인(?) 해박함을 자랑하고 있다.

사실 그는 오래전 미디어의 수혜를 듬뿍 받기 시작한 첫 세대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간 영화관의 강렬한 기억은 청소년기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호기심과 과학자로서의 열정을 부추기는 촉매로 작용했다. 물리학자에서 돌연 복잡계 물리학으로 다시 뇌과학자로 영역을 달리한 것은 그러한 열정 덕분이다. 미국 예일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연구교수, 미국 콜롬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의 젊은 리더로서 다음 세대에 꿈을 자극하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통섭과 융합이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그의 다양한 이력과 활동은 하나의 특별한 모델이 되고 있다.


시네마 키드에서 과학자가 되기까지

정재승 교수는 “뇌과학자로서 영화를 보며 물리학자의 자의식으로 보지 못했던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들이 앓고 있는 질병에 좀 더 초점을 맞추게 됐다”며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물리학자로 살던 시절 영화의 주인공들을 둘러 싼 물리적 환경만을 주목했던 시선이 지난 세월 뇌과학자로 살아오며 사람을 향해 넓어졌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은 물론 지독한 편집증, 사이코패스 등이 등장하는 영화는 그런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좋은 연구대상이다.

그런데 문득 ‘영화를 좋아하는 과학자’로서 그를 보며 문득 선후관계가 궁금해진다. 영화를 좋아했다면 영화감독이나 배우가 됐을 법도 한데, 그는 과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과학자로만 한정 짓기에 그의 삶은 너무 다양한 도전으로 넘쳐난다. 숭실대학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많은 학생들 앞에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털어놓는 그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아봤다.




“영화는 과학자에게 굉장히 많은 영감을 줘요.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죠.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면서 성에 눈을 뜨기도 했고요. 저희 어머니는 아직도 제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시지만 저는 모든 장면이 다 기억나거든요(웃음).”

판정은 의외로 영화로 돌아간다. 그는 그 시절 다른 많은 어린이들처럼 영화에 빠져 살았던 ‘시네마 키드’였던 것이다. 청소년기 역시 그에게 제일 큰 즐거움은 매주 토요일 프랑스문화관 지하 극장에서 상영하는 프랑스영화를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영어자막이 있을 때도 있지만, 그나마도 없을 때가 더 많았던 프랑스 영화를 보는 십대란 지금 생각해도 좀 특이하다.

“매주 프랑스영화를 보고 그 앞 카페에서 우유를 마시는 것이 저의 큰 즐거움이었어요. 주말마다 남들은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저는 토요일에 프랑스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스스로가 너무 기특하더라고요(웃음). 사실 영화는 난해하고 재미없고 졸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 어두운 공간에서 세상과 떨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게 너무나 큰 안식과 위안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물리학과에서 과학도로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체물리학을 공부한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보았던 무수한 영화가 그 호기심을 자극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단면이다. 그러나 그의 호기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개 한 분야를 정해 파고드는 것이 보통인데 반해 그는 다시 ‘복잡계 과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소우주라는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기에 이른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그 와중에도 계속 이어졌다.


경험과 맞닿은 영화 이야기

뇌과학자로서 그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하나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정신병동에서의 하루’라고 할까. 뜻밖의 경험은 어느 날 함께 일하는 의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치매환자들의 뇌를 분석하는 연구를 하다가 함께 일하는 의사 선생님이 ‘정신질환자의 뇌를 연구하는데 실제로 정신질환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지 않고 연구하는 것은 좀 아이러니 아니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를 가톨릭의대 정신병동에 하루 동안 넣어주셨죠. 처음에는 관찰자였어요. 굉장히 낯선 공간이었으니까요. 이중 철문 안에 들어가고 줄을 서서 약을 타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게 된 거에요. 처음에는 그저 구경만 했는데 누군가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면 무섭기까지 하더군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대화를 하게 됐고 나중에는 그분들과 화투까지 치게 됐어요(웃음).”

그가 화투를 칠 줄 모른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환자들이 그에게 화투를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환자가 화투를 가르쳐줬다니……. 뒤에 알게 된 사실은 환자에게 배운 화투와 보통 사람들이 치는 화투 방식이 많이 달랐다는 것. 맞고 틀리고를 떠나 어쨌든 특이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하루가 거의 지날 때쯤 되니 정신질환 환자에게 제가 무엇을 배우고 있고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더군요. 그 경험을 하고 나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7년 作, 잭 니콜슨 주연)를 보게 됐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감명 깊은 영화 중 하나죠.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동에 들어가서 정말로 미쳐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결국 함께 폭동을 일으키며 정신병동을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제 인생 큰 영향을 미친 경험과 아주 잘 맞는 영화여서 더욱 관심이 갔어요.”






책을 통해 그는 “정상과 비정상이 크게 다르지 않고, 정신 질환자들의 고민과 방황은 우리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경험을 통해 영화 속 부조리가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천재성을 띈 자폐아를 만나며 영화 <레인 맨>(1988년 作, 더스틴 호프만ㆍ톰 크루즈 주연)이 오버랩 된 것이다.

“한국에서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정신과에 포스트닥터(박사 후 과정)로 갔을 당시에 첫 번째 했던 실험이 천재들의 뇌를 찍는 거였어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편지가 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내 뇌를 연구하고 싶으면 비즈니스석 항공편 티켓과 실험참가비 3천만 원을 보내라’는 내용이죠. 제가 있을 당시에는 인도에 살고 있는 23세 정도의 청년이 그런 편지를 보내왔어요. 언제고 년도와 날짜를 말하면 무슨 요일인지 1초의 지체 없이 맞추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당연히 과학자들의 호기심은 커졌고 결국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팀이 10팀 정도 나와 팀당 300만원을 모아 초청을 하게 됐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3천만 원은 그 청년의 부모에게 가는 것이었고 정작 당사자는 실험에 참여할 마음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부모는 자식을 가지고 장사를 한 셈이었다.

“제가 맨 마지막 실험 팀이었는데 마지막 20분 정도는 그나마도 잠이 들었어요. 너무 많은 실험에 시달렸던 거죠. 그나마도 열의가 없어 뇌 역시 반응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전 왜 자냐고 깨울 수 없었어요. 그 청년의 심정이 너무 이해가 되더라고요. 결국 그 프로젝트는 실패했죠.”

그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정신질환의 어두운 뒷면을 보게 됐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질병이지만 한편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생계가 되기도 하는 것이 정신질환이었다. 개중에는 질병이 아니었다가 질병으로 규정되며 제약회사들의 부를 축적시켜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세상에는 산만한 아이들이 많은데 언젠가부터 이것이 병이라고 하며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는 제약회사들이 소비자를 늘이는 방식이에요. 질병을 고안해 내기도 하죠. ‘학습장애’가 대표적이에요. 공부 못하는 것도 질병이 된 거죠. 그들은 학습클리닉이라는 곳에서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며 돈을 내게 됐어요.”


폭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접해라

그는 이어 제자들의 사례를 들며 꿈을 조절하는 연구, 트라우마를 지우는 연구 등을 영화와 접목해 설명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또한 세상에는 ‘왜 하는지 의문인 것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의외로 많음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때론 황당한 연구라 할지라도 때론 그것이 통념을 깨기도 하고 새로운 발명을 낳기도 한다는 것. 의미 있는 연구, 혹은 황당한 연구 모두 그가 지적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과학자의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이다. 세상의 많은 대상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는 이를 “더 큰 상상을 가능하게 하고 실현하게 하는 좋은 습관”이라고 설명한다.




“상상(想像)이란 단어는 제가 많이 쓰고 좋아하는 단어에요. 말 그대로 코끼리의 형상을 머릿속에 그린다는 의미죠. 어떻게 쓰게 됐냐하면 중국의 노동자들이 오래전 인도에 가서 일을 하며 생전 처음 본 코끼리를 조국에 돌아가 설명하게 되면서부터예요. 처음에는 귀가 엄청 크고 코가 길고 다리가 기중만한 동물이라고 설명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죠. 노동자들은 당시에는 살아있는 코끼리를 데려가는 것은 불법이어서 할 수 없이 코끼리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죽은 코끼리의 뼈를 가지고 다시 중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 후 사람들은 코끼리의 뼈를 보고 그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를 상상이라고 한 거죠. 저는 이 상상의 어원에서 상상력이 가져야할 본질적인 요소를 다 담고 있다고 봅니다.”

즉, 상상을 하기 위해서는 코끼리뼈가 필요했듯 모든 상상은 본질적으로 현실에 근거한 과학적 상상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 교수는 상상이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또 한 가지 요소가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예술적 상상력이다.

“기본적인 과학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문제는 코끼리뼈만 봐서는 절대 그 위에 피부와 살아있는 근육으로 움직이는 코끼리를 상상할 수 없다는 거죠. 즉 뼈를 보고 살아있는 코끼리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예술적인 상상력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온전한 상상력이란 본질적으로 과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행복하게 결합된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공상에 불과합니다. 과학적 시선만이 아니라도 사람에겐 누구나 각자 관심이 있는 폭넓은 시선이 있을 것이고 그 시선에 맞춰 영화를 볼 때 비로소 영화는 더 풍부하게 해석 되고 줄거리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거죠.”

한편 그는 영화가 주는 통념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을 향한 기괴하고, 더럽고, 사회적인 관계에도 서툴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그 스스로 과학자인 만큼 적어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릇된 고정관념 대신 과학자 역시 근사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예를 들어 장동건 같은 사람이 나와 재벌 2세 같은 역할이 아니라 물리학자, 원빈이 그냥 아저씨가 아니라 화학자 아저씨가 되는 설정은 어떨까요(웃음). 영화에서도 굉장히 매력적인 과학자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귀엽게 봐 줄만한 인물이 등장해 과학자가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많아지길 바라요. 영화가 보여주는 한 가지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문득 최근 방영되는 CF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모두가 연예인이 되길 바라는 요즘 아이들이라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들에게 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먼저 가르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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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정재승 저 | 어크로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의 ‘뇌과학’ 편. 나를 통해 숨겨진 과학을 만나고, 과학을 통해 몰랐던 나를 만나게 하는 영화 속 신경과학 이야기다. 전작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가 젊은 과학도가 스크린에서 발견한 과학을 공유하는 과정이었다면, 이 책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는 마흔 즈음의 신경과학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에 건네는 위로인 셈이다. 좀처럼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결벽증, 뭐든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 사랑하는 사람까지 잊어버린 기억상실증,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이런 증상들은 왜 생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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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황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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