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FA 무엇이 문제인가
그야말로 ‘억의 향연’이었습니다. 한국야구에 FA 제도가 생긴 이래 가장 화려한 선수들이 나온 이번 FA 시장은 총 523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오고 간 사상 최대의 빅마켓이었습니다. 야구가 자본주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가장 자본 친화적인 종목이라는 점이 새삼 증명된 것이지요.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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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억의 향연’이었습니다. 한국야구에 FA 제도가 생긴 이래 가장 화려한 선수들이 나온 이번 FA 시장은 총 523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오고 간 사상 최대의 빅마켓이었습니다. 야구가 자본주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가장 자본 친화적인 종목이라는 점이 새삼 증명된 것이지요. 강민호, 정근우, 이용규, 장원삼 등 국가대표 출신 ‘Big 4’는 대박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준 점, 그 노력이 인정 받은 점은 당연히 축하할 일입니다. ‘야구 꿈나무’들에게도 아주 좋은 자극이 되었을 겁니다.
‘전력 평준화’ 측면에서도 좋은 결과였습니다. 최하위의 수모를 겪은 한화 이글스는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이용규, 정근우 영입에 성공했고, 신생팀 NC 다이노스는 베테랑 내/외야수 손시헌, 이종욱을 영입함으로써 경험의 부족을 메울 수 있게 됐습니다. 4번타자 부재에 시달리던 롯데는 최준석을 금의환향 시켰습니다.
이택근-김주찬 효과
하지만 이렇게 ‘야 강민호 대박 나서 정말 좋겠다’라거나 ‘내년 시즌 더 재미있어 지겠는걸’ 하면서 그냥 넘기기엔 뭔가 꺼림칙한 것이 많습니다. 선수들의 몸값이 너무나 높아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원리에 의해 정해진 가격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올해 FA 시장은 ‘시장의 실패’에 가깝습니다. 경제학원론에 보면 시장 실패 요인 중 하나로 ‘외부효과’를 드는데 올해 FA 시장이 딱 그렇습니다. ‘이택근-김주찬 50억’ 외부효과로 인해 가격이 폭등해 버린 것입니다.
넥센 히어로즈가 2011시즌 종료 후 LG에서 FA로 풀린 이택근에게 4년간 50억을 안긴 것은 야구팬 모두를 놀라게 한 ‘깜짝 계약’이었습니다. 3할 타격에 좋은 수비와 주루를 갖췄지만 LG 시절 이런 저런 부상에 시달리며 특별히 보여준 게 없던 이택근이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넥센이 이택근에게 50억을 준 것은 사실 야구 외적인 측면이 더 컸습니다. 넥센의 전신 현대 유니콘스 출신 이택근에게 거액을 안김으로써 그를 덕아웃 리더로 만들고, 재정이 빈약하다는 구단의 이미지도 없애며, 다른 넥센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지요. 야구 실력에 따른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된 가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간 있었던 수많은 FA나 기타 야구선수들의 계약에서도 실력 외의 요소가 고려되기는 했지만 그 정도가 이택근 선수처럼 거액으로 실현된 적도 없고 그 여파가 커진 적도 없습니다.
이택근의 예가 없었다면 12년간 선수 생활 중 단 2번 3할을 친, 국가대표를 한 적도 없는 평범한 외야 수비력을 가진 김주찬이 결코 50억이라는 거액에 계약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작년 FA가 없어 공급 측면에서 운이 따랐다 하더라도 최대 35억 정도였을 겁니다.
올해는 이 ‘이택근-김주찬’ 외부효과가 대폭발 했습니다. 희소한 포지션인 포수에 프랜차이즈 스타이긴 하나 결코 특A급 선수라고 할 수 없는 강민호가 무려 75억에 계약을 했고 전성기가 지난 정근우는 역시 70억이라는 거액에 계약을 했습니다. 수술 때문에 내년 전반기 출장이 불투명한 이용규는 67억에 사인을 했고 삼성 이외의 팀에서는 10승 이상을 장담할 수 없던 장원삼이 60억에 계약을 했습니다. 심지어 올시즌 주전에 밀린 채 대주자-대수비 전문으로 뛰던 이대형도 4년 24억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주요 FA 중에서는 이병규, 박한이 두 베테랑들만이 ‘제 가격’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거품의 부작용
이런 FA 선수들의 몸값 거품 현상은, 결론부터 말하면 야구 발전에 나쁜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 선수가 많은 돈을 가져가게 될 경우 구단 운영비가 그만큼 늘지 않는다고 보면(운영비는 늘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다른 선수들의 몫이 분명 줄어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강민호에게 75억, 최준석에게 35억을 지불하게 된 (강민호에게만 내년 계약금 35억에 연봉 10억, 총 45억을 써야 합니다) 롯데는 손아섭, 김성배 등 올시즌 맹활약한 몇몇 선수 외에 다른 선수들의 연봉에 팍팍해질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이는 이른바 ‘팀 케미스트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올시즌 김태균에게 다른 선수들의 연봉을 합친 연봉을 주었던 한화처럼 말입니다.
팬들 입장에서도 부담은 커질 수 있습니다. 목동 구장 입장료를 올린 넥센의 예에서 보듯, 강민호에게 75억을 쓴 롯데는 당연히 사직구장의 입장료를 올릴 가능성이 큽니다. 선수들의 훌륭한 플레이를 보는 대가로 입장료를 더 지불해야 한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구단 시설은 그대로인채 야구의 수준이 예년보다 떨어지는 상황에서 선수들의 거품 몸값 때문에 입장료를 더 지불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죠. 관중 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당연히 커지게 됩니다.
거품은 끄고 공급은 늘려야
이런 시장과열과 거품을 줄이기 위한 방법은 사실 간단합니다. 김응용 감독의 제안대로 자격취득 기간을 9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현재는 고졸선수들은 9년, 대졸선수들은 8년을 뛰어야 FA 자격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군대까지 끼면 10년 이상은 되어야 FA 자격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이리 되면 특A급 선수 정도만이 2번 정도 계약이 가능하고 중간급 선수들은 1번 내지는 한번도 계약을 못할 수 있습니다. 반면 5년으로 취득기간을 줄이게 되면 그만큼 공급이 늘어나기 때문에 시장 과열을 줄일 수 있고 거품도 끌 수 있습니다. 당장 내년부턴 신생팀 KT까지 FA 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에 수요 쪽을 컨트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남은 건 공급, FA 선수들의 숫자를 늘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몇몇 극소수 선수에게 초대박을 안겨주는 것보다 액수는 적더라도 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혜택을 받고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야구의 장기적인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KBO와 각 구단들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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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평준화’ 측면에서도 좋은 결과였습니다. 최하위의 수모를 겪은 한화 이글스는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이용규, 정근우 영입에 성공했고, 신생팀 NC 다이노스는 베테랑 내/외야수 손시헌, 이종욱을 영입함으로써 경험의 부족을 메울 수 있게 됐습니다. 4번타자 부재에 시달리던 롯데는 최준석을 금의환향 시켰습니다.
출처_기아 타이거즈, 넥센 히어로즈 |
이택근-김주찬 효과
하지만 이렇게 ‘야 강민호 대박 나서 정말 좋겠다’라거나 ‘내년 시즌 더 재미있어 지겠는걸’ 하면서 그냥 넘기기엔 뭔가 꺼림칙한 것이 많습니다. 선수들의 몸값이 너무나 높아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원리에 의해 정해진 가격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올해 FA 시장은 ‘시장의 실패’에 가깝습니다. 경제학원론에 보면 시장 실패 요인 중 하나로 ‘외부효과’를 드는데 올해 FA 시장이 딱 그렇습니다. ‘이택근-김주찬 50억’ 외부효과로 인해 가격이 폭등해 버린 것입니다.
넥센 히어로즈가 2011시즌 종료 후 LG에서 FA로 풀린 이택근에게 4년간 50억을 안긴 것은 야구팬 모두를 놀라게 한 ‘깜짝 계약’이었습니다. 3할 타격에 좋은 수비와 주루를 갖췄지만 LG 시절 이런 저런 부상에 시달리며 특별히 보여준 게 없던 이택근이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넥센이 이택근에게 50억을 준 것은 사실 야구 외적인 측면이 더 컸습니다. 넥센의 전신 현대 유니콘스 출신 이택근에게 거액을 안김으로써 그를 덕아웃 리더로 만들고, 재정이 빈약하다는 구단의 이미지도 없애며, 다른 넥센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지요. 야구 실력에 따른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된 가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간 있었던 수많은 FA나 기타 야구선수들의 계약에서도 실력 외의 요소가 고려되기는 했지만 그 정도가 이택근 선수처럼 거액으로 실현된 적도 없고 그 여파가 커진 적도 없습니다.
이택근의 예가 없었다면 12년간 선수 생활 중 단 2번 3할을 친, 국가대표를 한 적도 없는 평범한 외야 수비력을 가진 김주찬이 결코 50억이라는 거액에 계약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작년 FA가 없어 공급 측면에서 운이 따랐다 하더라도 최대 35억 정도였을 겁니다.
올해는 이 ‘이택근-김주찬’ 외부효과가 대폭발 했습니다. 희소한 포지션인 포수에 프랜차이즈 스타이긴 하나 결코 특A급 선수라고 할 수 없는 강민호가 무려 75억에 계약을 했고 전성기가 지난 정근우는 역시 70억이라는 거액에 계약을 했습니다. 수술 때문에 내년 전반기 출장이 불투명한 이용규는 67억에 사인을 했고 삼성 이외의 팀에서는 10승 이상을 장담할 수 없던 장원삼이 60억에 계약을 했습니다. 심지어 올시즌 주전에 밀린 채 대주자-대수비 전문으로 뛰던 이대형도 4년 24억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주요 FA 중에서는 이병규, 박한이 두 베테랑들만이 ‘제 가격’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출처_롯데 자이언츠] |
거품의 부작용
이런 FA 선수들의 몸값 거품 현상은, 결론부터 말하면 야구 발전에 나쁜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 선수가 많은 돈을 가져가게 될 경우 구단 운영비가 그만큼 늘지 않는다고 보면(운영비는 늘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다른 선수들의 몫이 분명 줄어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강민호에게 75억, 최준석에게 35억을 지불하게 된 (강민호에게만 내년 계약금 35억에 연봉 10억, 총 45억을 써야 합니다) 롯데는 손아섭, 김성배 등 올시즌 맹활약한 몇몇 선수 외에 다른 선수들의 연봉에 팍팍해질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이는 이른바 ‘팀 케미스트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올시즌 김태균에게 다른 선수들의 연봉을 합친 연봉을 주었던 한화처럼 말입니다.
팬들 입장에서도 부담은 커질 수 있습니다. 목동 구장 입장료를 올린 넥센의 예에서 보듯, 강민호에게 75억을 쓴 롯데는 당연히 사직구장의 입장료를 올릴 가능성이 큽니다. 선수들의 훌륭한 플레이를 보는 대가로 입장료를 더 지불해야 한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구단 시설은 그대로인채 야구의 수준이 예년보다 떨어지는 상황에서 선수들의 거품 몸값 때문에 입장료를 더 지불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죠. 관중 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당연히 커지게 됩니다.
거품은 끄고 공급은 늘려야
이런 시장과열과 거품을 줄이기 위한 방법은 사실 간단합니다. 김응용 감독의 제안대로 자격취득 기간을 9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현재는 고졸선수들은 9년, 대졸선수들은 8년을 뛰어야 FA 자격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군대까지 끼면 10년 이상은 되어야 FA 자격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이리 되면 특A급 선수 정도만이 2번 정도 계약이 가능하고 중간급 선수들은 1번 내지는 한번도 계약을 못할 수 있습니다. 반면 5년으로 취득기간을 줄이게 되면 그만큼 공급이 늘어나기 때문에 시장 과열을 줄일 수 있고 거품도 끌 수 있습니다. 당장 내년부턴 신생팀 KT까지 FA 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에 수요 쪽을 컨트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남은 건 공급, FA 선수들의 숫자를 늘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몇몇 극소수 선수에게 초대박을 안겨주는 것보다 액수는 적더라도 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혜택을 받고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야구의 장기적인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KBO와 각 구단들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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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용훈
서울 출생으로 MBC 청룡 어린이회원 출신이지만 지금은 자칭 ‘C급 동네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시즌 중에는 퇴근하면 바로 TV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비시즌에는 야구 책을 뒤적이며 허전함을 달랜다. 지인들과 집 근처에서 생맥주 마시며 야구 이야기를 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저서로 『프로야구 감독열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