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멤버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나는 정형돈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정형돈 역시, 실물이 훨씬 나은 연예인으로 기억하고 있고, 능력에 비해 과소평가된 개그맨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형돈을 마주친 건, MBC 방송사 로비에서 스친 5초 기억뿐이었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무한도전> 멤버, 노홍철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다. 나는 꼬꼬마 기자 시절부터, 다소 체면치레를 했던지라 웬만하면 인터뷰이와의 기념 촬영은 시도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원하여 기념 촬영을 한 건 고작 세 번인데, 그 중 한 번이 바로 노홍철이었다. 연출 컷을 꺼리는 나였지만, 기어코 노홍철과 브이질을 해가며 사진을 찍어댔다.
코가 자라도 그댄 멋져요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는데, 가끔 코가 자랐나 싶으면 노홍철이 떠오른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무한도전> 공식 미남에서 ‘못친소’ F1으로 추락한 노홍철.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무지개모임 회장 역을 톡톡히 하고 있는 노홍철은 대한민국 연예계의 대표 깔끔남이다. 노홍철이 <무한도전>에 이어 <나 혼자 산다>에서 집을 공개했을 때, 대한민국 미혼여성 팬들이 다소 줄어들지 않을까 나는 약간 걱정했다. (그대가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부인 입장으로서는 부담스럽지 않겠어요?) <나 혼자 산다>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일찍 막을 내리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벌써 30회를 넘어섰다. 2기 멤버까지 출연 중이니 초대 회장 노홍철의 힘이 적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평소 소녀 팬을 갈구하는 노홍철이지만, 나는 안다. 노홍철이 미혼여성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그것도 연예인과 팬의 관계가 아닌 ‘일반인’ 노홍철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괜찮은 여성들이 내 주변에는 꽤 많다. 노홍철을 실제 마주한 건, 2010년 라디오 <노홍철의 친한 친구> 녹음 부스였다. 노홍철을 아무리 좋아한다기로서니 ‘DJ 노홍철’의 목소리는 약간 부담스럽지 않을까, 예상했다. 녹음 부스에서 약 30분간 짧은 인터뷰. 노홍철은 소녀팬들이 보내준 ‘악마의 과자’로 불리는 팀탐을 권하며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나는 질문을 해야 하는데 왜 자꾸 과자를 권하시던지, 나는 결국 인터뷰를 마치고 팀탐 몇 개를 손에 들고 나와야만 했다) DJ를 맡은 소감부터 기억에 남는 청취자 사연 등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당시 담당 PD는 “노홍철이 이렇게 라디오에 애정이 깊을 줄 몰랐다”며, “자원하여 청취자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매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노홍철은 라디오 생방송 중에 청취자들에게 벙개를 제안하기도 했다. 생방송이 마치는 밤 10시에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만나 치맥을 하자든지.
노홍철과의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답변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정말 좋다”는 말이었다. 평범한 이야기로 보이는 이 대답이 인상적이었던 건, 노홍철의 진심이 담긴 말투 때문이었다. 노홍철은 “연예계에서 활동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작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들,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 배울 것이 많다.”고 답했다. 라디오만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좋은 매체가 있을까. 나는 노홍철이 오래도록 DJ를 하길 바랐다.
노홍철과 브이질을 하며 찍은 사진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고이 올려놓고 몇 달이 지났을까. SNS 운영에 관한 세미나를 들으러 간 자리에서 한 연사(아마도 통신사 관계자)가 노홍철에 대한 후일담을 들려줬다. (매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독도 행사를 진행하면서 노홍철을 섭외했는데 기상 악화로 현지 상황이 무척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연예인이었던 노홍철은 아무런 항의 없이 스태프들을 도왔다는 것. 섭외비는 달랑 아이패드 한 대였다고 했다.
이미 기사화가 된, 노홍철에 대한 유명한 에피소드도 많다. 행사를 마친 뒤 야구장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진과 모 대학교에서 일일강사로 강단에 섰다가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 밤늦게까지 학생들과 악수를 했다는 이야기 등. 지금도 간간히 방송계 사람들로부터 노홍철에 대한 훈훈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노긍정 트윗, 자주 올려주세요
트위터를 일찌감치 시작한 노홍철이지만, 요즘은 자주 하는 것 같진 않다. 간혹 올리는 트윗을 읽어보면 ‘노긍정’ 기운이 가득하다. 인생에 대한 자각도 뚜렷하다. “적성에 딱 맞는 직업을 만나, 다행이지. 이거 어디에 써? 새삼 내 성격에 최적화된 이상적인 내 직업 짱.”이라고 말하기도, 항문병원 광고 촬영을 하며 “내 인생이 미치도록 좋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조정민 목사(@ChungMinCho)의 트윗을 리트윗한 글도 인상 깊다. “A-Yo! 형님~^^ 찌!찌!뽕! RT 문제가 해결되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가 문제 해결을 경험합니다. 자주 웃기만 해도 많은 문제가 풀리고 꼬인 인생이 풀립니다.” 돈키호테에게 말을 거는, 아래 트윗도 가히 노홍철스럽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아! 돈키호테 형님, 뵌 적도 뵐 수도 없지만 이 형님 나랑 말 참 잘 통했을 듯 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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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짱!”이라며, 옥상달빛의 노래 ‘없는 게 메리트’ 가사를 올린 적도 있다.
“없는 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 게 젊음이라네. 난 두 팔을 벌려 세상을 다 껴안고 난 달려갈거야.
나는 가진 게 없어 손해 볼 게 없다네. 난 정말 괜찮아요. 그리 슬프진 않아요.
주머니 속에 용기를 꺼내 보고 오늘도 웃는다.”
11월 9일 방송된 <무한도전> ‘관상’ 특집에서 노홍철은 사이비교주상, 동물로 따지면 제비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머리가 총명하고 눈치가 빠르며 일에 막힘이 없다. 큰 입은 구대향상(口大向上), 꿈이 크고 추진력과 노력하는 힘이 있다.” 관상을 믿진 않지만 노홍철의 관상은 퍽 동의하는 바다.
노홍철은 <무한도전> 300회 쉼표 특집 편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무한도전> 세계 속에서 사기꾼 캐릭터로 살고 있는 노홍철. 그는 프로그램 속 캐릭터가 무너질까 두려워, 현실에서도 사기꾼 이미지로 멤버들을 대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다행인 건, 트위터 세계 속 노홍철의 얼굴은 민낯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박명수의 조언대로, 노홍철이 동물적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에도 사기꾼 캐릭터로 대중들을 만나왔으면 어땠을까. (박명수는 예능감을 잃지 않기 위해 평소에도 ‘악마’ 캐릭터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성격이 문체에 그대로 드러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많다. 노홍철은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무한도전> 속 영악한 사기꾼 노홍철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일반인 노홍철의 따뜻한 민낯을 보는 것도 반갑다. 대중들은 이제 TV 속 인물과 현실의 인물을 혼돈하지 않는다. 프로의식 철저한 유재석, 박명수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다 보니 방송인이 되고, 사기꾼이 된 ‘그저 즐겁게 재밌게 살고 싶은’ 노홍철은 지금의 이중적 캐릭터를 유지해도 좋을 성 싶다. 왜냐, 그는 오로지 TV 속에서만 사기를 치는 익살스러운 노긍정이니까. 장미하관의 ‘오빠라고 불러다오’를 외치지 않아도 아직 소녀 팬들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노홍철을 섭외할 일이 있어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다. 지난 8월 <무한도전> ‘여름예능캠프’에서 잠깐 출연한 바 있는 자칭 비보이 출신 매니저인 듯했다. 거절의 답을 들었지만 인상적이었던 건 전화를 받는 태도였다. “매달 스케줄을 지킬 자신이 없어서 거절을 한다”는 대답. (아! 섭외인생 7년차 입장으로, 이런 개념 있는 대답만 들어도 참 감사할 따름) 그래도 언젠간 인터뷰는 한 번 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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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
eunbird22
201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