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한국어다운 게 뭔데?
10월 1일 있었던 두 번째 글쓰기 강좌는 ‘한국어답다는 것의 의미’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들을 살펴보고 한국어에 걸맞지 않는 어법들을 알아보았다. 구체적인 문장을 놓고 첨삭도 시작했다. 자주 사용하는 나쁜 습관들을 걸러내고, 한국어에 대한 ‘감’을 키우는 훈련이었다.
글ㆍ사진 정연빈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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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지난 시간 낸 과제를 확인하며 분주하게 시작했다. 고종석은 자신의 저서이자 수업 교재인 『자유의 무늬』 를 꺼내 들고 대뜸 잘못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수강생들이 잠시 머뭇대자 “저는 아주 많은데요. 좋은 글이 아니에요. 고칠 부분이 아주 많죠.” 라며 까맣게 첨삭을 한 책을 보여주었다. 그런 모습에 수강생들은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조사나 문장의 구조를 바꿔온 사람들도 있었고, 내용이 어렵다며 잘 모르는 용어나 내용을 묻는 사람도 있었다. 또, 쉼표나 작은따옴표의 사용법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

질문에 대답하며 고종석은 자신이 고쳐온 것들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나쁜 문장이니 절대 쓰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 했다. 자기가 쓴 글에 대해 선선하고 건강한 거리감을 가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종석이 자신의 글을 읽으며 자주 반복한 말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를테면, 한국어다운 글을 쓰는 기본규칙이라 할 수 있다. 의미가 통하는 선에서 복잡하지 않은 문장구조, 간결한 어휘 사용을 권하고 있다.

1. 접속 부사 뒤에 쉼표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접속 부사 뒤에 문장이 아주 길어질 경우는 쉼표를 쓰는 게 의미를 선명하게 만든다.

2. ‘-적’은 가능하면 쓰지 않는다. ‘-적’이 빠져도 충분히 의미가 통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적인’은 절대 쓰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매우 정치적인 구호’와 같이 부사가 들어가는 경우에는 ‘-적인’을 쓸 수밖에 없다.

3. ‘-의’는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좋다. 그러나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나 부사 뒤에서는 -의가 꼭 필요하다.

4. 뉘앙스에 변화를 주어 의미를 섬세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겹조사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굳이 쓸 필요가 없는 곳에 습관처럼 사용하면 문장을 거추장스럽게 할 뿐이다. 의미가 통하는 선에서 최대한 덜어내도록 한다.

5. ‘-에의’나 ‘-에 있어서(의)’ 같은 표현은 절대 쓰지 않는다. 보통 배운 사람들이 많이 쓰는 표현인데 좋지 않은 일본식 말투다.
예) 영주‘에의’ 추억은 영주를 추억하며, 영주생각 등으로 고쳐볼 수 있다. 임석진의 박사학위논문 제목 ‘헤겔에 있어서의 노동의 개념’은 한국어답게 고치면 ‘헤겔의 노동 개념’으로 줄일 수 있다.

6. ‘-것에 대한’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 물론, 때에 따라 필요할 때가 있다. 이 결정은 사실 개인의 한국어 감각인데 꾸준히 쓰다 보면 익힐 수 있다.

7.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라는 말을 붙이기도 하는데, 좋지 않은 말버릇이다. 쓰지 않는 게 좋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자유의 무늬』 를 첨삭한 고종석은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어의 특징을 살펴보기 전, 소쉬르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언어에 전반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개별언어인 한국어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생각 같았다. 소쉬르는 그의 저서 『일반 언어학 강의』에서 언어가 청각 영상과 개념의 쌍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시니피앙(significant)과 시니피에(signifie)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시니피앙(기표)은 언어의 소리를, 시니피에(기의)는 언어가 지닌 의미를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는 ‘달’을 ‘달’이라고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moon'이라고 한다. 이 경우, 두 단어의 시니피에(의미)는 같다. 하지만 시니피앙(기표)는 다르다. 이렇게 둘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한 공동체 안에서 정해진 기표를 사용해야 한다. 소쉬르는 이것을 ‘자의적 필연성’이라고 정리했다.


소쉬르를 통해 언어에 대해 설명을 마친 고종석은 본격적으로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첫 번째로 꼽은 한국어의 고유한 특징은 ‘음성상징이 풍부한 언어’라는 점이었다. 음성상징이라는 말이 낯설다면 흔히 우리가 의성어나 의태어로 부르는 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어휘들을 적절히 사용하면 한국어답고 생생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쓸데없는 치장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의성상징어가 과하게 사용되면 글이 유치해지거나 의미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어의 또 다른 특징은 색채에 대한 어휘가 발달했다는 점이다. ‘붉다’에 대한 영어 표현이 ‘red’와 ‘reddish’ 정도라면 한국어는 ‘발갛다’, ‘발그레하다’, ‘불그레하다’, ‘발긋하다’, ‘불그스레하다’, ‘불그죽죽하다’, ‘시뻘겋다’, ‘새빨갛다’ 등 100개도 넘는 색채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글을 쓸 때, 색채어를 잘 활용하면 아름다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한국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언어와 사람들의 생각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한국어에 색채어가 많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의 색채 감각이 다른 나라보다 보다 뛰어날까? 혹은 색채 감각이 뛰어나서 색채어가 많은 걸까? 고종석은 “오랫동안 언어와 생각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왔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때는 언어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한다는 ‘언어결정론’이 중요하게 여겨진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이제 언어학자들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한다고 했다. 언어가 생각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언어가 생각을 규정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생각, 의식은 언어 밖에 있으며 독립 변수라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종석은 미국의 언어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를 언급했다. 스티븐 핑커는 자연어보다 더 밑에 생각의 언어(Language of Thought)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자연어에 앞서는 선행언어, 메타언어라고 불렀다. 인간은 한국어, 일본어, 영어 같은 자연어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의 언어’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실어증에 걸린 사람들에 대해서도 훌륭한 설명을 내놓을 수 있었다.

고종석은 스티븐 핑커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하는 노암 촘스키에 대해 언급했다. 개별언어를 뛰어넘는 언어가 있다는 구상 아래서 촘스키는 개별언어를 포괄하는 보편문법을 수립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 스티븐 핑커의 말처럼 자연어가 우리 생각을 규정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대개 언어학자들은 우리의 생각이 언어를 규정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몇 가지 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뉴턴 이래로 무지개의 색깔은 일곱 가지로 정리되었지만 언어에 따라, 사용하는 집단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또, 이누이트족의 언어에는 눈이 세분화되어 ‘쌓여있는 눈’, ‘흩날리는 눈’과 같이 다양한 단어로 사용된다는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번역과정을 통해서도 생각이 개별언어보다 먼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인어는 영어의 ‘be동사’와 같은 의미가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한 가지는 일시적 상태를 뜻하는 estar동사이고, 다른 하나는 영구적 상태를 뜻하는 ser 동사다. 영어에서 ‘you are pretty’로 쓰이는 문장이 ‘지금’예쁜 것과 ‘늘’ 예쁜 것으로 세분화된다는 뜻이다. 다른 언어로 스페인어를 옮길 경우, 우리는 이것을 직역해낼 수 없다. 일대일로 대응되는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스페인어 사용자가 아니어도 이 뜻을 생각해볼 수는 있다. 언어 없이도 그 차이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고종석이 마지막으로 꼽은 한국어의 특징은 한자어였다. 한자어의 사용을 줄이고 되도록 고유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지만 고종석은 한자어가 한국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았다. 곧 그는 한국에 유입된 한자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중국의 한자어가 아닌 일본에서 만들어지고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건너온 한자어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18세기 말, 동아시아에 빛나는 시기가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수강생들도 새로운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시계는 이미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한자어에 대한 이야기는 세 번째 시간으로 미루어졌다. 한자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관점을 가지는 부분이라 고종석이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낼지 더욱 궁금해진다.

참, 혹시 이 글과 함께 수업을 따라가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자유의 무늬』 1부 전체를 읽고 첨삭하는 다음주 과제를 전한다. 문득, 직접 글을 만져보지 않으면 수업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고종석의 말이 떠오른다. 자, 수강생 여러분! 다들 과제는 열심히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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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한국어 #자유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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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빈

북극곰이 되기를 꿈꾸며 세상을 거닐다.
어지러운 방에 돌아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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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간결하면서도 냉철한 글로 유명한 고종석은 이 시대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언어학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했지만 문학이나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그는 24세에 한 영어 일간지의 기자가 된 이 후 지금까지 직업적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 왔다. 좋아하는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 에릭 시걸, 존 그리셤 같은 영어권의 대중 소설가이고, 저널리즘에 대한 취향이 까다로운 그가 선택한 신문은 르몽드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도이다. 그를 정서적으로 압도한 최초의 책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눈물을 훔쳐내며 읽은 심훈의 『상록수』이며, 그를 지적으로 압도한 최초의 책은 고등학교에서 내쳐져 자유롭던 열 일곱 살 때 골방에서 담배 피우기를 익히며 읽은 노먼 루이스의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다. 그는 자신의 문체에서 에릭 시걸과 김현과 복거일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생각에서 칼 포퍼와 김우창과 강준만을 느낀다. [코리아타임스], [한겨레신문], [시사저널] 등지에서 스물 두 해 동안 기자 노릇을 한 그는 2005년 봄 [한국일보] 논설위원직을 끝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의 멍에와 명예에서 벗어났다. 현재 도서출판 개마고원 기획위원으로 있다. 나이에 걸맞은 가장 노릇을 못하며 살아온 터라, 그는 더러 자신이 객원남편, 객원아비, 객원자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득 자신을 객원한국인이나 객원인류로 여길 때도 있다. '객원'의 비정규성과 느슨함이 베푸는 자유의 감촉을 그는 무책임하게도 흐뭇해하는 편이다. 언젠가 페르시아어로 '루바이어야트'를 읽어보는게 꿈이다. 특별히 집착하는 기호품은 디스 플러스 담배와 붉은 포도주와 아스피린이다. 지은 책으로는 사회비평집 『서얼단상』, 『바리에떼』, 『자유의 무늬』,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경계 긋기의 어려움』, 문화비평집 『감염된 언어』, 『코드 훔치기』, 『말들의 풍경』, 한국어 크로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어루만지다』, 『언문세설』, 『국어의 풍경들』, 역사인물 크로키 『여자들』, 『히스토리아』, 『발자국』, 영어 크로키 『고종석의 영어 이야기』, 시 평론집 『모국어의 속살』, 장편소설 『기자들』, 『독고준』, 『해피 패밀리』, 소설집 『제망매』, 『엘리아의 제야』, 여행기 『도시의 기억』, 서간집 『고종석의 유럽통신』, 독서일기 『책 읽기, 책 일기』, 에세이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등이 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C'est tout)』, 『어린 왕자』를 우리 말로 옮겼다. 주저主著 『감염된 언어』는 영어와 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