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한 수를 놓듯 인생의 판을 채워라
이 책은 바둑을 잘 두기 위한 비법을 가르치는 게 그 목적이 아닙니다. 바둑을 두며 이삭처럼 주운 지혜들을 함께 나누고자 지은 책입니다. 바둑과 더불어 제가 옆에 끼고 읽어온 노장 사상과 다른 동양고전, 명저들에서 읽은 얘기들도 덧보탰습니다.
20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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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을 흔히 인생에 비유합니다. 바둑은 판 전체의 국면을 읽고 부분적인 형세와 변화를 정확히 판단해서 돌 한 점을 놓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지요. 살다보면 풀어야 할 많은 난제와 만나고,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나아갈 때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물러설 때가 있습니다. 공세를 취해야 할 순간에 수세를 취하고 수세를 취해야 할 순간에 공세를 취하면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은 바둑이나 인생이나 마찬가지지요. 바둑을 두어오며 인생에서 필요한 지혜를 얻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 책은 바둑을 잘 두기 위한 비법을 가르치는 게 그 목적이 아닙니다. 바둑을 두며 이삭처럼 주운 지혜들을 함께 나누고자 지은 책입니다. 바둑과 더불어 제가 옆에 끼고 읽어온 노장 사상과 다른 동양고전, 명저들에서 읽은 얘기들도 덧보탰습니다.
바둑의 기원은 4천 년이 넘습니다. 따라서 바둑은 4천 년 이상 쌓이고 깊어진 동양의 처세철학과 지혜가 농축된 하나의 보고(寶庫)입니다. 바둑은 집중력을 키우고 두뇌를 개발하게 합니다. 선택의 순간에 경솔함을 삼가고 신중하게 만듭니다. 아울러 나를 다스리고[修身齊家] 천하를 경영하는 법[治國平天下]을 배울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교육수단입니다.
조지 레너드라는 사람은 《교육과 황홀경》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된 교육은 황홀감과 해방감을 준다. 참된 배움의 순간이 기쁨의 순간이다.” 배움은 자연스럽고 즐거운 모험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몰입할 수 있습니다. 강압과 반복은 배움을 지겹고 두려운 일이 되게 합니다.
바둑은 배움의 순간을 기쁨의 순간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최고의 교육수단입니다. 바둑을 두면서 틀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 감정을 다스리고 억제하는 법, 정신을 강하게 수련하는 법, 약할 때 생존하는 법, 위기에서 벗어나는 법, 자산을 관리하는 법, 경쟁자를 친구로 만드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도태되는 법입니다. 낡은 지식을 새로운 지혜로 대체하지 못하면 허물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벗과 나누는 수담의 황홀경
바둑돌을 처음 만져본 게 열 살 무렵이니, 바둑을 벗 삼은 지도 어언 4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둑을 늘 가까이 했던 것은 아닙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 바둑에 몹시 빠져 학교 공부도 뒷전이고 식음을 잊은 적도 여러 번입니다. 그래서 한 동안 바둑을 멀리 했습니다. 부모님의 만류도 컸지만 바둑 두는 재미에 들려 사람으로 해야 될 일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지요. 그러다가 생업이던 출판사를 접은 뒤 모처럼 한가로워져 다시 바둑을 찾았습니다. 좋은 벗과 나누는 수담(手談)은 황홀경 그 자체입니다.
도연명(陶淵明)의 시에 나오듯 자족하며 유유하게 사는 벗이 이웃에 있고, 그의 사람됨이 질박하고 순수하며, 뜻이 맞고 바둑 좋아하는 취미를 가졌다면 이는 크나큰 기쁨이요 지복입니다. 벌써 15년이 훌쩍 흘러버렸군요. 수담을 나눌 벗을 구해 몇 해 동안 바둑 두는 재미에 흠뻑 취해 살았지요. 창밖 가로수의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니 가을이 온 줄 알고, 창밖에 눈보라가 치는 걸 보니 겨울이 온 걸 비로소 알았지요. 계절을 잊고 세월 가는 걸 잊은 채 오로지 바둑에 몰입하여 울화를 삭이고 나락에서 뼈가 녹는 고통을 망각할 수가 있었지요.
요동치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데 바둑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바둑은 수만 번의 대국을 하여도 같은 판이 없습니다. 감히 천변만화하는 바둑에서 인생을 보고, 우주만물에 작용하는 도를 엿보았습니다. 바둑을 두면서 제가 깨달은 소박한 지혜를 글로 풀어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품은 지도 꽤 오래 되었지요.
작은 반상에 삼라만상을 담다
바둑판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지요? 바둑판은 가로세로 각각 19개의 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즘 바둑판에는 9개의 화점이 있습니다만, 우리의 옛 바둑판의 화점은 네 귀와 네 변의 16개의 점과 그 사이에 8개의 점, 중심의 천원점 1개를 합하여 모두 25개의 점이 있습니다. 바둑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입니다. 바둑을 도(道)라고 하는데, 이는 바둑이 우주의 이치를 깨치는 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은 작은 재주다. 그러나 오묘한 이치가 있다. 오묘한 이치가 있는 것에서 신묘한 경지에 통하려면, 비록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역시 어려운 법이다.”라는 말은 춘주 김도수가 지은 《춘주유고(春州遺稿)》에 나오는 글입니다. 춘주는 바둑을 이렇게 말합니다.
“요컨대 바둑이 삼대 시대에 생겼다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 법도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술수를 부연하고 처지를 본떠 곧고 바르게 펼쳐진다. 지극히 고요하면서도 지극히 동적으로 움직여, 더하는 생각이 깊고도 원대하고 온갖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니, 이치가 깃들어 있는 도구이자 옛날 훌륭한 시대의 기품 있는 놀이다.”
바둑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바둑이 전해졌습니다. 《삼국사기》에 백제의 개로왕이 바둑을 즐긴 기록이 있고, 고구려의 바둑 명수인 승려 도림이 개로왕을 바둑으로 현혹하기 위해 위장 망명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족과 양반들 사이에 바둑이 널리 성행했습니다. 바둑은 그 역사가 아주 깊은 동양의 기예입니다.
위기십결(圍棋十訣)이란 “바둑 둘 때 마음에 새겨야 할 10가지 교훈”이면서 “바둑을 잘 두기 위한 10가지 비결”입니다. 즉, 바둑 두는 사람이 마음에 새겨야 할 10계명입니다. 8세기 중엽 당나라 현종 때 사람인 왕적신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왕적신은 시인이자 당대의 고수로 황제와 바둑을 상대하는 벼슬을 했습니다.
그이가 바둑 고수로 거듭나게 되는 일화 중에 이런 것이 있지요. 고부가 함께 사는 어떤 집에 머물 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각각 동쪽 서쪽의 방에 있으면서 말로써 대국(對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왕적신이 예를 갖추고 물으니 며느리가 바둑 둘 때 써먹을 수 있는 공수(攻守), 살탈(殺奪), 구응(救應), 방거(防拒)의 비법을 가르쳐주며, “이를 가지면 세상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지요.
왕적신은 그때 바둑에 대해 큰 깨우침을 얻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들은 신선들이었을까요? 1992년 여름 대만의 중국교육성 바둑편찬위원인 주명원 씨가 위기십결이 왕적신이 아니라 “송나라 때 사람 유중보의 작품”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제기함에 따라 현재 위기십결의 원작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는 다시 오리무중에 빠져 있습니다.
바둑을 넘어 인생의 지침이 되는 위기십결
위기십결은 오늘날까지 바둑을 두는 사람들에게 금과옥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열 개의 비결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기십결은 바둑에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녹아 있는 동양의 오랜 지혜들은 처세와 경영 등 인생에 두루 쓸모 있는 것들이지요.
이 책은 바둑을 잘 두기 위한 비법을 가르치는 게 그 목적이 아닙니다. 바둑을 두며 이삭처럼 주운 지혜들을 함께 나누고자 지은 책입니다. 바둑과 더불어 제가 옆에 끼고 읽어온 노장 사상과 다른 동양고전, 명저들에서 읽은 얘기들도 덧보탰습니다.
바둑의 기원은 4천 년이 넘습니다. 따라서 바둑은 4천 년 이상 쌓이고 깊어진 동양의 처세철학과 지혜가 농축된 하나의 보고(寶庫)입니다. 바둑은 집중력을 키우고 두뇌를 개발하게 합니다. 선택의 순간에 경솔함을 삼가고 신중하게 만듭니다. 아울러 나를 다스리고[修身齊家] 천하를 경영하는 법[治國平天下]을 배울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교육수단입니다.
조지 레너드라는 사람은 《교육과 황홀경》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된 교육은 황홀감과 해방감을 준다. 참된 배움의 순간이 기쁨의 순간이다.” 배움은 자연스럽고 즐거운 모험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몰입할 수 있습니다. 강압과 반복은 배움을 지겹고 두려운 일이 되게 합니다.
바둑은 배움의 순간을 기쁨의 순간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최고의 교육수단입니다. 바둑을 두면서 틀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 감정을 다스리고 억제하는 법, 정신을 강하게 수련하는 법, 약할 때 생존하는 법, 위기에서 벗어나는 법, 자산을 관리하는 법, 경쟁자를 친구로 만드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도태되는 법입니다. 낡은 지식을 새로운 지혜로 대체하지 못하면 허물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벗과 나누는 수담의 황홀경
바둑돌을 처음 만져본 게 열 살 무렵이니, 바둑을 벗 삼은 지도 어언 4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둑을 늘 가까이 했던 것은 아닙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 바둑에 몹시 빠져 학교 공부도 뒷전이고 식음을 잊은 적도 여러 번입니다. 그래서 한 동안 바둑을 멀리 했습니다. 부모님의 만류도 컸지만 바둑 두는 재미에 들려 사람으로 해야 될 일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지요. 그러다가 생업이던 출판사를 접은 뒤 모처럼 한가로워져 다시 바둑을 찾았습니다. 좋은 벗과 나누는 수담(手談)은 황홀경 그 자체입니다.
누추한 집이나마 금(琴)도 있고 책도 있네. 타기도 하고 읊기도 하며 이내 즐거움 누린다오. 어찌 달리 좋아함이 없으리오마는 이렇게 조용히 사는 게 즐겁다오. 아침엔 정원에 물을 주고 저녁엔 초가집에 몸을 눕히오. 사람들이 보배로 여기는 것도 나에게는 외려 진귀하지 않다오. 같이 좋아하는 것 없다면 어찌 친할 수 있을꼬. 나는 좋은 친구를 구하다가 그리던 사람을 정말로 만났구려. 기뻐하는 마음 잘 맞았고 사는 집도 이웃이라오. -도연명, 〈방참군에게 답하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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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데 바둑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바둑은 수만 번의 대국을 하여도 같은 판이 없습니다. 감히 천변만화하는 바둑에서 인생을 보고, 우주만물에 작용하는 도를 엿보았습니다. 바둑을 두면서 제가 깨달은 소박한 지혜를 글로 풀어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품은 지도 꽤 오래 되었지요.
작은 반상에 삼라만상을 담다
바둑판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지요? 바둑판은 가로세로 각각 19개의 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즘 바둑판에는 9개의 화점이 있습니다만, 우리의 옛 바둑판의 화점은 네 귀와 네 변의 16개의 점과 그 사이에 8개의 점, 중심의 천원점 1개를 합하여 모두 25개의 점이 있습니다. 바둑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입니다. 바둑을 도(道)라고 하는데, 이는 바둑이 우주의 이치를 깨치는 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은 작은 재주다. 그러나 오묘한 이치가 있다. 오묘한 이치가 있는 것에서 신묘한 경지에 통하려면, 비록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역시 어려운 법이다.”라는 말은 춘주 김도수가 지은 《춘주유고(春州遺稿)》에 나오는 글입니다. 춘주는 바둑을 이렇게 말합니다.
“요컨대 바둑이 삼대 시대에 생겼다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 법도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술수를 부연하고 처지를 본떠 곧고 바르게 펼쳐진다. 지극히 고요하면서도 지극히 동적으로 움직여, 더하는 생각이 깊고도 원대하고 온갖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니, 이치가 깃들어 있는 도구이자 옛날 훌륭한 시대의 기품 있는 놀이다.”
바둑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바둑이 전해졌습니다. 《삼국사기》에 백제의 개로왕이 바둑을 즐긴 기록이 있고, 고구려의 바둑 명수인 승려 도림이 개로왕을 바둑으로 현혹하기 위해 위장 망명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족과 양반들 사이에 바둑이 널리 성행했습니다. 바둑은 그 역사가 아주 깊은 동양의 기예입니다.
위기십결(圍棋十訣)이란 “바둑 둘 때 마음에 새겨야 할 10가지 교훈”이면서 “바둑을 잘 두기 위한 10가지 비결”입니다. 즉, 바둑 두는 사람이 마음에 새겨야 할 10계명입니다. 8세기 중엽 당나라 현종 때 사람인 왕적신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왕적신은 시인이자 당대의 고수로 황제와 바둑을 상대하는 벼슬을 했습니다.
그이가 바둑 고수로 거듭나게 되는 일화 중에 이런 것이 있지요. 고부가 함께 사는 어떤 집에 머물 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각각 동쪽 서쪽의 방에 있으면서 말로써 대국(對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왕적신이 예를 갖추고 물으니 며느리가 바둑 둘 때 써먹을 수 있는 공수(攻守), 살탈(殺奪), 구응(救應), 방거(防拒)의 비법을 가르쳐주며, “이를 가지면 세상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지요.
왕적신은 그때 바둑에 대해 큰 깨우침을 얻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들은 신선들이었을까요? 1992년 여름 대만의 중국교육성 바둑편찬위원인 주명원 씨가 위기십결이 왕적신이 아니라 “송나라 때 사람 유중보의 작품”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제기함에 따라 현재 위기십결의 원작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는 다시 오리무중에 빠져 있습니다.
바둑을 넘어 인생의 지침이 되는 위기십결
위기십결은 오늘날까지 바둑을 두는 사람들에게 금과옥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열 개의 비결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부득탐승(不得貪勝)으로, 바둑은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나 너무 승부에 집착하면 오히려 그르치기 쉽다는 뜻입니다. 둘째, 입계의완(入界宜緩)은 포석을 끝내고 중반으로 넘어갈 때 승패의 갈림길에서 너무 서두르지 말고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셋째, 공피고아(攻彼顧我), 섣부른 공격은 화를 자초할 뿐이니 나의 약한 곳부터 지켜둔 다음에 공격하라는 뜻입니다. 넷째, 기자쟁선(棄子爭先)은 돌 몇 점을 사석으로 버리더라도 선수를 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섯째는 사소취대(捨小就大)로,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입니다. 큰 것과 작은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지요. 여섯째, 봉위수기(逢危須棄)는 위험을 만나면 모름지기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사가 불확실해 보이는 말은 일단 가볍게 처리하는 것이 요령이지요. 일곱째, 신물경속(愼勿輕速)은 경솔하게 착점하지 말고 신중하게 두라는 뜻입니다. 대국 자세가 올바를 때보다 깊고 정확한 수를 읽을 수 있지요. 여덟째 동수상응(動須相應), 바둑판 위에 놓인 돌은 그 하나하나에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러므로 착점을 하기 전에 자기편 돌의 호응과 상대편의 움직임을 깊이 궁구해야 합니다. 아홉 번째, 피강자보(彼强自保)는 상대방이 강하면 스스로를 먼저 보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열 번째, 세고취화(勢孤取和)는 적이 압도적으로 포진하고 있는 세력 속에서 고립되어 있을 때는 싸우지 말고 화친을 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
- 인생의 한 수를 두다 장석주 저 | 한빛비즈
바둑에 몰입하는 시간, 사람은 본래의 평정심을 되찾고 바른 길을 생각해낼 수 있다. 바둑에 대해 배우는 것은 다름 아니라 마음 다스림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바둑판은 사람과 삶의 축소판이기에 바둑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처세이다. 바둑은 인생살이에서 알까기 수를 두어 판을 망치지 말고, 꼼수를 경계하여 홀림이 없는 삶을 살라고 가르친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절묘한 후절수도 있으니 시련이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위로한다. 무엇보다 버리라고 말한다. 너무 많은 것을 탐해 오히려 불행해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바둑에서 삶의 도를 배우고, 지혜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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