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란 무엇인가
춘심애비가 처음 내건 주제는 ‘취업이란 무엇인가’. 그는 취업에 대해 많은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많은 사람이 취업을 누가 더 먼저 하고 더 좋은 자리에 오르느냐고 생각한다.” 초중고 내내 성적과 점수로, 대학에 가도 토익, 학점 등의 기준에 줄 세우는 것에 길들여지다 보니 그것에 맞춰 좋은 성적을 가진 사람만 좋은 직장을 고르고 선택의 기회가 넓어지고 주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 취업을 단순히 성적 등에 따라 주어지는 무엇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권한다.
“취업은 미취업에서 취업으로 진입하는 상태가 아니다. 자신이 앞으로 30년 이상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가는 길을 찾겠다, 관문을 넘어서겠다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길을 갈 것인지, 옆길로 갈지, 뒤로 갈지, 그 자리에 가만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개념이다. 취업은 누구나 통과해야 하고 경쟁해야 한다는 게 아니고, 어떤 삶과 하루를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는 취업을 연애나 결혼과 비유해서 이야기한다. 한국 사회, 특정나이대가 지나면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삶을 함께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함에도 불구, 그것보다 ‘맞선 볼 때의 주의할 점 10가지’, ‘소개팅에서 주의해야 할 12가지’ 등을 본다는 것. 물론 어떤 면에선 그런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그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종‘만’을 기준으로 하는 직업 분류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어떤 직종의 직업을 구했다는 것만으로 보장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여러분은 그 직종 안에 있는 어떤 위치에서 동료들이나 거래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고, 바로 그렇게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낼 순간순간이 인생을 구성한다.”(p.30)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춘심애비가 받는 질문 중 가장 많은 것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맞는지, 평생 해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대학에 있을 경우, 선배는 후배에게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게 좋다는 말을 하곤 한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이런 말을 들은 후배는 자신도 모르게 직업의 서열을 매긴다. 무지와 오해가 뒤범벅된 판타지로 직업 간 서열이 규정되는 셈. 그러나 그런 판타지를 안고 취직한다손,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춘심애비의 안내다.
“특정 업종에 대한 환상은 깨는 게 좋다. 물론 업종에 따라 연봉테이블이나 근속 예상 기간이 다른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의 히치하이커들은 연봉과 고용안정성에 너무 큰 가중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p.70)
“통계를 보니, 3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는 비율이 절반이 넘더라. 머리 터지게 준비해서 들어가도 3년 내 그만둔다면, 뭔가 잘못돼 있다는 거지. 그 3년을 잘 활용하면 좋지만,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 내가 어느 회사에 가겠다는 목표로 잡지 말고 일을 알아봐야 한다. 출판업계 가고 싶다면 출판업계에 대해 알아보라는 거지. 토익공부 등에 매달리지 말고.”
그는 그래서 덕질(오타쿠질)을 권했다. 나와 맞지 않는 것은 덕질이 성립할 수 없다는 이유다. 즉, 덕질을 하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걸러낼 수 있다. 더불어 취업 가능성까지 높여준다는 것. 가령, 면접관에게 토익점수 950점과 980점은 의미가 없는 한편, 업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쪽과 대리나 과장급 지식을 갖고 있다면 확실한 차이가 난다고 덧붙였다. 덕질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취업을 보장하진 않지만, 유용성을 생각하면 덕질에 이점이 있다는 것.
“우선 머릿속에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나마 존재한다면 바로 ‘그 일’에 대한 덕질을 해야 한다. 그러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p.78)
아울러 그는 현재 취업스터디를 하고 있다면 당장 그만둘 것을 권했다. 특정 업종에 가기 위한 스터디라면 괜찮지만, 면접 연습 등의 스터디라면 스톱! 취업준비생끼리의 연습은 현장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들끼리 하는 스터디에는 미신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고 언급한다. 적은 샘플에서 추출된 결과를 갖고 미신을 쌓는다.
“취업 스터디를 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그만둬라. 특히 그 스터디가 취업 경험이 전혀 없는 준비생들만으로 이뤄진 스터디라면 진짜로 그만두는 게 좋다.… 취업 스터디는 좀 가혹하게 말하면 섹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이론만 공부하는 것과 같다.”(p.99)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면접관은 오디션 평가관이 아니다. 맞선 보는 상대방이라고 여겨라. 나를 뽑아주는 것이 목표가 아닌 마음에 들면 나를 뽑아주는 게 좋은 것이다. 무조건 (취업이) 되면 장땡이라는 말이 아니다. 날 뽑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맞춰줘야 한다. 그게 아닌 맞선 자리로 생각하면, 상대방이 A를 좋아하든 말든 내가 A를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해야 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연인상이 있고, 주선자가 보여주는 사진 등이 내가 좋아하는 상이 아니라면 거절하잖나. 그걸 서류심사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서류에서 심사관 마음에 꼭 들고 싶게 노력해도 큰 의미가 없다. 서류심사관이 마음속으로 점지하고 면접을 보고 당연히 뽑는 경우가 많지 않다. 서류는 얘는 진짜 아니라고 생각하고 걸러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력서와 자소서는 여러분이 심사관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또 심사관들이 여러분을 알기 위한 도구만도 아니다. 여러분이 심사관들에게 원하는 정보만을 보여줄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여러분이 보여주고 싶은 정보를 잘 골라서 효과적으로 전달했는데,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다면 그건 성공적인 필터링이다. 그 회사나 여러분에게 말이다.”(p.90)
그는 자소서 등에 거짓과 과장이 있으면 치명적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게 했다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 소개팅과 연관지어, 뽀샵질 했다가 직접 만났을 때 그게 아니라면 그 관계는 맺어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숨기거나 왜곡한 것도 결국엔 들통 나게 돼 있다.
“그냥 내 이야기를 쓰면 된다. 회사에 들어갔다고 끝난 게 아니다. 남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떠나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궁금하면 물어봐서 최대한 나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나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자신도 회사에 대해서 알아봐야 한다. 자신의 기준에 회사가 맞는지도 알아보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관계를 맺으면 되겠다.”
“신입사원일 때 이 회사에 잘못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최대한 천천히 고민해보고, 최대한 빨리 그만둬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 회사가 너무 이상하거나 자신과 안 맞아서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확신이 들면, 타이밍 같은 건 따지지 말고 바로 그만두시라.”(p.018)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취업을 했다고 그게 끝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춘심애비는 두 가지를 꼽았다. 사람 관계와 돈에 관련된 문제. 먼저 돈에 대해, 그는 평생 들어갈 비용에 아주 대충이라도 꼽아볼 것을 권했다. 자신의 연봉과 저축 등을 감안해 계산하면 대략 80년 동안 산다고 가정했을 때, 얼마나 일해야 하는지 체크해보자고 한다.
“첫 직장을 다닐 때 이렇게 계산해보니 나는 죽은 뒤 20년을 더 일해야 메워지더라. 말이 안 되잖나. 죽은 뒤 20년을 더(웃음).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다. 대박의 꿈을 노리고 회사를 그만 둔 거지(웃음). 일단 평생 벌 돈과 쓸 돈을 계산하면 대부분 답이 안 나올 거고, 능력자가 되거나 전문가가 되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받고 싶은 연봉만큼의 가치를 만들자. 1억 원의 연봉을 받고 싶다면, 내가 1년에 1억만큼의 가치를 만들면 된다.”
이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전 세계의 모든 과장은 ‘개새끼’다. “내가 과장이 되면 나도 개새끼가 된다(웃음).” 물론 누구나 처음 회사에 들어가서 빨리 진급을 해서 이런 진상 과장이 되길 바라진 않는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요령이 생기고 회사 내의 관계가 보인다.
“야근 많이 생기고 퇴근 직전에 일을 주어지고, 휴가 갈 때 눈치를 보게 하고... 이걸 깨닫는 순간,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가 눈에 보인다. 그런 관계를 파악하면 사내 정치를 이해하게 된다. 이해를 한 다음, 라인을 탈지 여부부터 어떤 라인을 탈 것인지 등을 판단하면 된다. 관계가 왜 형성되고 구조적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등 총체적 그림을 그려봐야 한다. 선택하는 과정에선 『미생』이나 드라마 <하얀거탑> 등을 보면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Q&A
정말로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취업이나 인생 전반에 대해 가장 진부하고 뻔한 조언은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해라”일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고민 중인 상황에서 저런 조언을 듣는다는 건 곤욕스럽다.”(p.58)
연애할 때도 헷갈림이 존재하듯 일에도 그런 게 있지 않겠냐는 질문으로 이해하겠다. 헷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헷갈려야 한다. 연애할 때 상대의 진짜 매력을 발견하려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일도 마찬가지다. 좋아서 시작했는데, 진짜 여부를 알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연애는 덕후질이 있을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일할 때의 덕질은 연애에선 스토킹이다. 정리하자면, 나에게 맞고 좋아하는 일이긴 한데, 이상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는 헷갈림은 어쩔 수 없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연애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맥락이다. 일을 고를 때도 화려해보이고 남들이 인정해줄 것 같은 것을 전제하고 선택하면 시행착오가 더 잦아질 수밖에 없다. 부딪히면서 나와 맞고 안 맞고를 따져보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이다.
“무직 상태를 1년 먼저 벗어나려고 잘못된 선택을 하면 약 3년 뒤에 후회 가득한 마음으로 전혀 다른 분야에서 신입사원으로 시작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건 연애다. 무조건 사귀는 횟수를 늘리는 게 장땡이 아니라, 한 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후회가 없다.”(p.86)
서른다섯, 건설회사 계약직이다. 대기업에도 있어봤지만 요즘 내 삶을 챙기고 있다. 일단 취업하면서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딴지일보에 글을 쓸 때 나름 기사에 대해 확신을 가진 게 직장생활을 많이 한 분들에게선 반대 여론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봤다. 실제로도 그랬다. 내용에 대한 반론이 거의 없었다. 취직하기 전과 하고 나서의 시각이 완전 다르다. 책을 낸 것은 그걸 잘 모르는 사람들이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는 취지도 있었다.
고등학생인데, 한국일보와 같이 개인 아닌 회사 분위기의 문제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두 가지 차원이다. 대개의 경우, 직장동료가 이상한 사람이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구조적인 맥락에서 ‘개새끼 과장’이 탄생한다. 회사의 재무 담당자는 깐깐하고 재수 없고 말 걸기 힘들다. 그렇게 만들면 일하기도 편하고 인사고과 받기도 좋다. 그러니 해결하기보다 이해해야 할 문제다. 정치력을 길러서 분리하는 방법이 있으나 권하고 싶지는 않고, 업무적인 피해가 아닌 신경이 거슬리는 것이라면 참는 수밖에. 내가 귀찮은 것인지, 내 일에 방해를 하는지, 구조적인 문제인지 등을 먼저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
덕질은 내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인데, 일을 하다 보면 반대되는 감정이 드는 경우가 많다. 취미를 업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도 있는데...
인디밴드를 봐주고 있는데, 그들로부터도 음악을 업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게 아니라는 말은 잘못됐다고 본다. 음악을 좋아하는데, 다른 일을 택했다고 하자. 그러면 일을 억지로 하고 남는 시간에 음악을 즐기자는 것인데, 그런 식으로 일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좋아하는 것을 남는 시간에 해서는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그리고 불행한 시간이 너무 길다.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맞다.
“이런 오타쿠야말로 회사에서 말하는 ‘준비된 인재’인 셈이다. 혹시 그러다가 그 업계 종사자의 눈에 띄어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고, 다른 자리를 소개받을 수도 있다. 막연하겠지만 어떻게든 시작을 하면 시간이 해결해준다. 지금 당장 시작하길 바란다.”(p.79)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