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왜 우리의 도덕과 상식을 배반할까?
출간 7일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는 등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다시 쓴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소개합니다. 하루키 못지않은 필력으로 2년 3개월 만에 돌아온 정유정의 『28』, 레오 카츠 교수가 명쾌하게 풀어낸 법의 수수께끼 『법은 왜 부조리한가』 등 이번 주 최근에 산 책들을 소개합니다.
201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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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억관 역 | 민음사
전 세계가 기다려 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많은 분들이 기다려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인데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제목이 너무 길어서 예전 <상실의 시대>처럼 축약하거나 다른 제목으로 바꿔서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대로 나왔더라고요. 아마도 ‘색채가 없는’이라는 말 자체가 이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철도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남자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고 하는데 잃어버린 원형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하루키 문학의 가장 익숙한 틀이 아닌가 싶어요. 하루키는 특유의 감성과 함께 미스터리를 가장 잘 다루는 작가 중에 한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엄청난 판권 등 외적인 떠들썩함을 뒤로 하고 작품으로 봤을 때 어떨지 매우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정유정 저 | 은행나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존을 향한 갈망
<28>은 정유정 작가의 소설입니다. 하루키 소설 못지않게 정유정 작가의 신작 또한 기다리신 분들 굉장히 많으셨을 겁니다. 바로 직전에 쓰셨던 <7년의 밤>이 매우 흥미진진했었는데요. <28>은 수도권에 있는 인구 29만명의 화양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눈이 붓고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의 인수공통전염병이 창궐하는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그려낸다고 하는데 얼핏 알베르카뮈의 <페스트>라는 작품이 떠오르기도 하죠. 구원, 일간실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루는 등의 세팅을 작가들이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재난 스릴러의 색을 지니고 있는데요. 정교하면서도 사실감이 넘치는 휴먼드라마로 그려냈다고 출판사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애스트라 테일러 저/한상석 역 | 이후
코넬 웨스트 등 철학자 여덟 명의 인터뷰를 담은 대담집
<불온한 산책자>는 애스트라 테일러라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엮은 철학서인데요. 원래 이 감독이 ‘성찰하는 삶’이라는 이색적인 다큐멘터리를 발표한 사람이거든요. 코넬 웨스트 등 현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8명을 섭외해 짧게는 90분에서 길게는 4시간씩 각각 편안한 일상복을 입은 채 대담한 장면을 촬영한 철학 다큐멘터리에요. 다큐멘터리의 러닝타임 때문에 각 대담을 10분씩 압축해서 내보냈다고 하는데요. <불온한 산책자>는 그 대담을 전부 살려서 담은 책입니다. 진리, 의미, 윤리, 세계시민주의, 정의, 혁명, 생태, 상호의존 등 8개의 철학적인 테마를 놓고 각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구성입니다. 이런 대담집은 질문자의 자질이나 수준이 굉장히 중요한데 애스트라 테일러는 철학자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매우 원론적이면서도 직설적이고 과감하게 질문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철학자들의 대담 역시 생생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레오 카츠 저/이주만 역/금태섭 감수 | 와이즈베리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풀어낸 법 이야기
미국 법학자인 레오 카츠가 쓴 책입니다. 제목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법에 부조리한 측면들이 왜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 현실에서는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잘못한 것인지 제대로 한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상황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법은 어째서 모든 물음에 대해 중도적, 확률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유죄 또는 무죄라는 이분법적으로만 답하는지, 또는 좀도둑질한 사람은 법으로 처벌하면서 배은망덕이라는 행위를 저지른 사람은 왜 처벌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 혹은 장기매매나 대리모 계약에 경우 양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거래했고 모두 만족했음에도 왜 법이 관여하는지에 대한 의문들을 경제학, 철학, 통계학, 정치학 등 학문적인 설명을 끌어들여 파고든 책입니다. 논점이 명확하고 사례가 구체적인데다 가끔 유머도 곁들여져있어 큰 무리 없이 읽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올리버 색스 저/이민아 역 | 알마
베스트셀러 작가 올리버 색스가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이 책은 신경정신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가 썼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는 주웠다>와 같이 제목만 들어도 잊을 수 없는 책들을 쓰신 분입니다. 이분은 굉장히 희귀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의사의 입장에서 마치 소설처럼 다루곤 하시는데요. 이번 작품 <마음의 눈>에서는 감각기관을 상실해 악보를 읽을 수 없게 된 피아니스, 뇌졸중으로 읽기 능력을 상실한 작가, 간단한 문장도 완성할 수 없는 실어증에 걸린 한 남성 등이 나옵니다. 신경과적인 큰 위기 상황에 봉착한 환자들이 과연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지 올리버 색스 특유의 소설 같은 문장을 통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본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인지 혹은 뭔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보편적이거나 선천적인 것인지 등에 대해 원론적으로 숙고할 수 있게 해주는데요. 아마도 그래서 제목을 <마음의 눈>이라고 붙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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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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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즌이
2013.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