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강렬한 복수극 -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백작>
프랑스의 작가 알렉산드르 뒤마라는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그의 작품 제목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적 있을 거다.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이 뒤마의 작품이다. 달타냥이 친구 잘 사귀어서 승승장구한 이야기를 <삼총사>라고 한다면,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그 반대로 친구 못 둬서 인생 꼬인 한 남자 이야기다.
글ㆍ사진 김수영
201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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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이 14년 감옥에 갇힌 한 남자의 기구한 사정


프랑스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라는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그의 작품 제목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적 있을 거다.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이 뒤마의 작품이다. 달타냥이 친구 잘 사귀어서 승승장구한 이야기를 <삼총사>라고 한다면,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그 반대로 친구 못 둬서 인생 꼬인 한 남자 이야기다.

뒤마는 우정, 사랑, 복수 등의 극적인 소재를 프랑스 역사와 한 사람의 개인사를 긴밀히 엮는데 능하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역시 역사적인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1814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탈리아의 엘바라는 섬에 귀양을 가는데, 뱃사람 에드몬드가 이 섬에 불시착한다.

나폴레옹은 에드몬드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며, “사적인 편지니 그저 전달만 해달라”고 부탁한다. 바로 이 편지 한 통이 이 평범한 남자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린다. 어떻게? 이 편지가 계기가 되어 에드몬드를 미워하던 사람들이 그를 감옥에 14년 동안이나 가둬놓는다.

복이 굴러 들어올 땐, 질투나 시기하는 자들도 같이 굴러들어오기 마련이다. 성실한 선원 에드몬드는 아름다운 여인 메르세데스와 결혼을 앞두고 있고, 선원으로 진급도 코앞에 두고 있는 다 가진 남자다. 파티가 벌어지는 흥겨운 무대 한쪽에 이를 시기, 질투하는 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고 있는 걸 에드몬드는 보지 못했다. 그의 친구 몬테고는 메르세데스를 탐내고, 함께 일하는 당글라스는 그의 선원자리가 탐나 에드몬드를 없애버릴 음모를 꾸민다.


복수한다고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일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감옥에 갇히게 된 에드몬드는 철창 속에서 무시무시한 복수를 계획한다. 영화 <올드보이>라든지, 얼굴에 점하나 찍고 돌아와 바람 핀 남편을 응징하는 <아내의 유혹> 등 수많은 복수극이 떠오른다. 억울하게 누명 쓰고 모든 것을 빼앗긴 주인공이 돌아와 악당을 심판하는, 오늘 날 TV나 영화에서 익숙하게 반복되는 이 복수 플롯은 1845년 출간된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부터 맥을 잇고 있는 셈이다.

분노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증오로 14년을 버틴 에드몬드는 결국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가명을 쓴 복수의 화신이 된다. 에드몬드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됐다. 정의를 돈으로 살만큼 갑부가 되었고, 자신을 모함한 자들을 가차 없이 심판할 만큼 냉정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변신을 도운 파리아 신부는 그에게 신신당부한다. 증오를 내려놓으라고. 그게 이 기구한 삶의 선물이 될 거라고. 신부의 잠언은 이야기로 증명된다.

증오로 일그러진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에드몬드 자신의 본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복수를 마쳐도 행복할 수가 없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잉태하고, 살기는 반복된다. 에드몬드에게 처음 벌어진 부정한 일은, 되갚아 복수할 일이 아니라, 애초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복수한다고 해서, 한번 잃어버린 것은 되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연을 풍성하게 만든 3D 입체영상


에드몬드가 바닷속에서 탈출하는 장면, 해적선이 객석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장면이 3D 영상을 통해 입체적이고 박진감 넘게 표현된다. 몇몇 무대에서 영상을 활용해온 예가 있지만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백작>는 입체적인 영상을 적극적이고도 적절하게 활용한다.

에드몬드가 몬테크리스토로 부활해 고향에 새로운 성을 짓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장면에서는, 몬테크리스토의 성을 영상으로 보여준 뒤, 그 성의 문이 열리면서 무대가 서서히 밝아지는데, 관객들은 마치 함께 그의 화려한 성으로 입장하는 기분을 느낀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 작품은 몬테크리스토가 복수할 수밖에 없는 그의 사정, 복수하기까지의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이렇게 에드몬드가 백작이 되기까지 기구한 과정에 공을 들이다보니, 그의 복수에 힘이 실린다.

그가 충분히 복수할 만한 상황이었고, 이를 위해 얼마나 무섭게 달려왔는지 관객들은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1막의 마지막 곡 ‘너희에게 선사할 지옥’에서 폭발한다. 이때 류정한은 이 곡을 무서운 에너지로 소화하며 등 뒤에 이글이글 불타는 영상과 함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상징적인 인상을 남긴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뮤지컬 넘버들


서두가 장황하다 보니 막상 복수 자체나 이야기 마무리는 조금 서두른 감이 있다. 간만에 무대 위에서 보는 살기등등한 복수에의 의지는 여느 무대에서 볼 수 없는 강렬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복수는 노래 한 곡으로 끝난다. 복수 그 자체보다는 에드몬드가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과정, 그리고 사랑을 통해 다시금 에드몬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

이런 극적인 상황 사이사이에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인물들의 감정선을 깊게 하는 뮤지컬 넘버가 제 역할을 다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OST는 2010년 공연 당시에도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음반 발매 당시 2010년 OST 종합 판매순위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메인 테마로 반복되는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은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멜로디와 가사가 귀를 사로잡는다. 그 밖에도 남녀 주인공이 부르는 ‘언제나 그대곁에’ ‘세월이 흘러’ 등 감미로운 명곡들이 많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천국의 눈물> 작곡가로도 잘 알려진 프랭크 와일드 혼이 작곡한 곡들이다.

2년 만에 다시 관객들과 만나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8월 4일까지 충무 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강렬한 복수극을 펼치는 백작 역에는 초연부터 함께했던 류정한, 엄기준, 이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일 임태경, 김승대 배우가 열연한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다섯 권짜리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부터 영화까지 다시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일 터. 이런 달콤한 후유증은 덤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몬테크리스토 백작 #알렉상드르 뒤마 #류정한 #엄기준 #임태경 #김승대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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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7.07

서두가 장황하다 보니 막상 복수 자체나 이야기 마무리는 조금 서두른 감이 있다. 간만에 무대 위에서 보는 살기등등한 복수에의 의지는 여느 무대에서 볼 수 없는 강렬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복수는 노래 한 곡으로 끝난다. 복수 그 자체보다는 에드몬드가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과정, 그리고 사랑을 통해 다시금 에드몬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
그런면이 있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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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dldodh

2013.07.07

아보고싶다정말 ㅠㅠㅠㅠㅠㅠㅠ 류배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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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새

2013.06.30

복수의 원조는 역시 에드몽 당테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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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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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뒤마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잘 알려진 19세기 프랑스 극작가이자 소설가다. 뒤마는 1802년 7월 24일, 빌레르코트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806년 나폴레옹 군의 장군이었던 뒤마의 아버지가 죽자, 뒤마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어린 뒤마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로빈슨 크루소』나『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작품을 읽으며 읽고 쓰는 능력을 길러나갔다. 성인이 된 뒤마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파리로 간다. 파리에서 그는 1823년 오를레앙 공작(후에 루이 필리프 왕) 가문에서 서류 작성하는 일을 얻게 되지만 곧 연극계로 뛰어들었다. 1820년대 말에서 1830년대 초는 패기 넘치는 젊은 뒤마에게 작가로서의 장래를 보장해 준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1828년에 화려한 문체로 프랑스 문예 부흥을 묘사한『앙리 3세와 그의 조정Henri Ⅲ et sa cour』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시간, 장소, 행동의 3일치라는 고전주의 규칙을 무시하고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씌어진 전형적인 낭만주의 작품이었다. 1829년 이 작품의 공연은 첫날부터 대성황을 이루었다. 뒤마를 후원한 루이 필립은 매우 흡족해했으며 한때는 극단적인 왕당파였던 빅토르 위고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작가로서의 뒤마의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20여 년 동안 뒤마는 위고, 비니Vigny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극작가로 활약했다. 한편 1820년대에는 많은 잡지가 창간되면서 <문예란>에 연재소설이 등장하였다. 뒤마는 연재소설에 매력을 느껴 차츰 극작품보다는 소설, 특히 역사소설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일만큼이나 삶의 자극에 탐닉했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권태를 모면하기 위해 그는 연애, 음식, 잠, 쾌락, 여가, 운동 등 여러 방면의 자극을 원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뒤마는 여자, 오페라, 그리고 지중해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그런 가운데 그의 대작들이 잉태되어 여행에서 돌아온 이듬해인 1944년에 리슐리외 시대의 모험담인『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를, 이어서『몬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을 세상에 내놓았다. 특히『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출간 즉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번역되고 차용되고 표절되는 등, 한마디로 그 시대 최고의 <인기 소설>이 되었다. 『삼총사』와『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성공 후에도 그는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여 당시의 가장 인기있는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지만 그의 사생활은 날로 황폐해 가고 있었다. 사치한 생활에 빠져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기 위해 그는 발자크처럼 날마다 더 많은 글을 써내야 했고, 그 때문에 발자크처럼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 뒤마에게는 또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이어받은 훌륭한 작가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춘희La Dame aux camelias』(1848)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뒤마 2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