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의 문을 열고 동양인 최다승(124승)을 기록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 그는 고국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싶다는 희망으로 2011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 연봉을 기부하고 은퇴 후 대한민국의 야구 인프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1월 현역 선수를 은퇴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 박찬호는 “다시는 유니폼을 입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찰나의 미련을 느꼈다.”고 했다. ‘야구 하나만 알고 야구 하나만 해왔던’ 박찬호의 인생 후반전은 어떤 모습일까. 많은 이들의 궁금증과 기대감 속에 박찬호가 자서전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를 펴냈다. 지난 6월 13일, 박찬호장학재단 사무실에서 최효종과 만난 박찬호는 “야구선수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보니 또 다른 시작이 있었다”고 말했다. | ||
최효종: 방송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분들을 만났지만, 가장 제가 뵙고 싶었던 분 중 한 분이 바로 박찬호 씨입니다. ‘최효종의 추파’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박찬호: 안 그래도 최효종 씨를 한 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과거에 ‘애정남’을 즐겨보면서 제가 겪는 콩트 같은 일을 최효종 씨가 정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웃음). 여러 소재를 보내주고 싶어서 이수근 씨와 전화통화도 하고 했었는데요. 또 지난번에 골든 글러브 시상식 때 오시지 않았어요? 그때도 만나고 싶었는데 끝나고 바로 없어지시더라고요(웃음).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최효종: 아, 그러셨나요? 그렇다면 지금 혹시 생각나는 고민이 있으신가요? 애매한 것 확실히 정리해드릴게요(웃음).
박찬호: 팬들이 사인을 부탁할 때 어디까지 받아줘야 되는지가 애매해요. 예를 들면 미국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사인해달라고 할 때가 많아요. 아니면 자기 아들을 위해서.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아들한테 하나씩 다 해줘야 되고, 아들 친구들 것도 챙겨줘야 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현명할지 애정남의 대답을 듣고 싶네요.
최효종: 글쎄요. 개인적으로 사무실에서 만났다면 사촌 이내까지는 해주셔야 할 것 같고, 길이나 식당, 외부에서 만났다면 본인에게만 해줘도 되지 않을까요? 워낙 개인적인 스케줄도 많으시고, 식사하거나 할 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면 불편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팔촌까지 해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많이 요구하지 않으시니까요(웃음).
박찬호: 또 하나 있어요. 이것도 팬들과의 일인데요. 종종 목욕탕에서 만난 아저씨들이 ‘아, 박찬호 선수다’하고 악수를 청해요. 같이 옷을 벗고 탕 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겠죠? 그래서 제가 탕 밖으로 반 정도 나와서 악수를 하면, 아저씨들은 항상 잡아당겨요.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없이 일어나서 불편하지만 인사드릴 때도 있고요. 옷을 벗은 상태에서 사인이나 사진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최효종: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수영장이나 공용 장소에서 남자들이 최소한으로 입는 것이 하의잖아요. 속옷. 그것 이상 입었을 때만 가능하죠. 하지만 올 누드라면 사진 요청 및 사인은 금지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몸이 건장하시니까 사실은 사진을 찍어도 그렇게 굴욕이 아니신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벗고 찍으면 민망하거든요(웃음).
박찬호: 수영장에서는 해드려야 된다는 거군요(웃음). 알겠습니다.
박찬호의 야구 노하우, 질문을 던져라
최효종: 평소 정말 궁금한 게 있었어요.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하셨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후배들에게 권위의식이 없는 분으로 보였거든요. 제 느낌이 맞나요?
박찬호: 그건 저를 겪는 후배들마다 다르겠죠.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을 때 후배들하고 나이 차이가 정말 많이 났어요. 스무 살까지 차이가 났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선수 생활하면서 선수들끼리 편하게 지내고 농담도 자주 하고 즐겁게 지내는 문화에 영향을 받았거든요. 그런 게 팀워크를 위해서 굉장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선후배 사이에 조금 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소통할 수 있도록 했었죠.
최효종: 가끔 경기를 보다 보면,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시는 모습이 카메라에 많이 잡혔거든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투수 후배가 있을까요?
박찬호: 투수들에게 다 애착이 갔고요. 사람들은 안승민 선수가 저랑 많이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생긴 게 비슷하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얼굴에 털이 많이 나는 것만 비슷하죠(웃음). 젊은 선수들을 보면 재능이 굉장히 많은데, 자신감이라든지 자신을 성장시키고 강해지도록 훈련시키는 데 인색해요. 그리고 뭔가 좋은 정보들이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제가 갖고 있는 정보들이 후배들에게 100% 도움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다양한 정보들이 있어야 자기 자신에게 맞도록 창의적인 걸 발전시키고 변환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진 정보들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거죠.
최효종: 특히 어떤 노하우들을 말씀해주셨나요?
박찬호: 게임이 잘 안 됐을 때 선수들에게 질문을 던지죠. 무엇이 안 되었는지, 어떤 걸 생각해야 하는지. 그 질문을 통해서 저도 배우지만, 선수들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게 되고요. 예를 들어서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잘 쳤을 때, 그 투수한테 오늘 왜 성적이 안 좋았는지를 물어요. 그러면 대부분 ‘오늘 공이 안 좋았습니다, 운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건 아니거든요. 공을 어디에 던졌기 때문에 타자에게 맞은 건지 생각해야 돼요. 왜냐하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너무 많아요. 우리가 실패했을 때 ‘이 선수에게 어떤 생각으로 여기에 던졌더니 실투가 됐다’라는 것만 생각하면, 답을 어떻게 풀어나갈 지를 알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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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고 보니 또 다른 시작이 있었다
최효종: 지난해 은퇴 기자회견을 하셨는데, 이후 많은 일들을 계획하셨다고 들었어요.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떤 것들인가요?
박찬호: 선수 생활을 하면서 기록했던 메모들과 일기들을 책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시간이 좀 걸렸어요. 다음 달부터는 전시회를 해요. 박찬호의 추억들을 통해서 어떤 의미와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들을 여러 작가들과 함께 전시할 계획이에요. 어린이 야구대회와 야구 교실도 계획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공부도 하고, 저희 딸들 학교 보낼 준비도 하고 있어요. 야구 경기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코치나 감독의 일을 하는 것 보다, 뭔가 저 자신을 더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일들을 계획하고 있어요.
최효종: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는 선수 은퇴 후 출간한 책이라, 남다른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박찬호: 굉장히 준비를 많이 했어요. 생각도 많이 하고요. 내용들을 보면 제가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 들어오기 전에 일본에서 활동하고,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에 대한 제 마음들을 많이 표현해 냈어요. 저한테는 한국 야구가 도전이었거든요. 한국 야구에 대한 큰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야구를 승패에 집착해서 보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감성적이고 예술적으로 바라보는 거죠. 제가 패배를 했을 때, 그 시간들 속에서 더 많이 깨닫고 강해질 수 있었고 성숙해질 수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글로써 표현하는 작업이었어요.
최효종: 제목이 의미심장하더라고요.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박찬호: 사실 마지막이라는 것, 끝낸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어요. ‘이걸 놓으면 나는 뭘까, 여기서 끝나면 나는 뭘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계속해서 화려한 모습을 이어가고 싶고, 승리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고, 내 노력의 대가를 만들어 내고 싶으니까 이걸 놓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내려놓고 나니까 또 다른 시작이 있었던 거예요. 물론 마운드 위에서의 삶은 끝이지만 거기에서의 노하우를 가지고 새로운 삶을 계속해서 시작한다는 거죠. 그렇게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을 계획하는 내용들을 썼어요.
최효종: 책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메이저리그 아시아인 최초 124승에 대한 이야기보다 마이너리그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를 더 즐겨 하신다고요. 그 시절이 더 자랑스럽고 기쁘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찬호: 당시의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승리했을 때의 기쁨과 사람들의 칭찬은 그 순간에 없어졌어요. 그 순간에 다시 두려움이 찾아오기 때문에 없어진 거예요. 사람들이 기대하는 마음이 저를 두렵게 했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다시 슬럼프라든지 어려움, 시련을 겪게 되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됐어요.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자신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 거죠. ‘힘들다, 고통스럽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을까?’ 이런 걸 자신한테 질문하는 게 진심이거든요. 절실한 거예요. 그 속에서 제가 더 노력하고 공부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시간들이 더 고마운 거죠.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를 생각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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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컨트롤하는 법? 신경 쓰지 않으면
최효종: 최근에 NC 다이노스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시기도 하셨던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투수 코치나 감독직 제의를 받으신다면 수락하실 용의가 있으신가요?
박찬호: 없어요.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유능한 코치, 감독 분들이 한국 야구를 이끌어 가고 계시고요. 저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조금 더 공부하고 만들어서, 한국 야구가 발전하는 데 변화가 필요하다면 도움이 되고 싶어요. 경영이나 행정 같은 부분에 조금 더 관심이 있고요. 기술적인 부분은 좋은 코치, 감독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우리가 심리라든지 문화를 변화시켜서 성장시키는 부분에는 아직 접근해 있지 않거든요. 지금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그 학생들이 나중에 한국 스포츠를 이끌어나갈 거예요. 그런 학생들 중 한 사람이 되고 싶고요. 학생으로 돌아가서 삶과 야구를 다시 공부하고, 돌아올 때는 조금 더 다른 모습으로 보고 싶어요. 더 공부한 후에 코치를 하게 되면 지금 코치를 하는 것과는 다른 위치에 있게 되겠죠. 그래서 지금은 첫 단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효종: 미국 언론을 보면 하루하루의 평가가 다르잖아요. 칭찬했다가도 조금만 실수하면 마치 이 선수가 다시는 못 나올 것처럼 폄하하기도 하는데요, 미국에서 활동하실 때 언론을 많이 신경 쓰셨나요?
박찬호: 많이 신경 쓰게 되죠. 언론을 통해서 나의 가치가 더 부각되기도 하고 더 망가지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걸 신경 쓰다 보면 그들이 원하는 망가짐의 세계로 들어가요. 신경을 안 쓰면 다시 나를 통해서 그들이 나를 부각시키고요. 그러니까 내가 신경을 안 쓸 때 그들을 내가 컨트롤하게 되는 거고, 신경을 쓰게 되면 그들이 나를 컨트롤하게 돼요. 나중에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재밌어져요.
최효종: 재밌어진다고요?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박찬호: 내가 자신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또는 살고자 공을 던지듯이, 기자들은 글로 쓰는 거예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자기들의 생각을 써서 사람들을 컨트롤해 나가는 거예요. 언론은 사람들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있는 것 같아요. 책은 사람들에게 전달자가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지금은 언론과 재밌게 공유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기자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도 생겼어요. 언론 때문에 괴롭고 미워하는 마음이 누구나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결국 또 그들이 저를 살렸어요. 그들을 통해서 저를 질책하고 실망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린 팬들이 있는가 하면, 저를 망가트린 언론을 통해서 끊어질 것 같은 줄을 연결해주는 팬들이 있었어요. 그런 팬들이 저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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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종: 큰 경기를 앞두고 긴장이 많이 되잖아요. 저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흥분도 되지만 긴장도 많이 되거든요.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는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본인만의 비결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박찬호: 루틴을 만들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루틴이 없으면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서 많이 흔들려요. 예를 들면, 저는 오늘 효종 씨를 만난다고 해서 저만의 루틴을 만들어 왔어요. 우리가 행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말하는 데 있어서도 루틴이 있거든요. ‘3초를 생각하고 이야기 하자’라는 루틴대로 행동하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막힘 없이 얘기할 수 있겠죠. 야구도 마찬가지에요. 실전에서 구체적으로 루틴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루틴 routine: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으로, 야구에서는 선수들이 나름대로 만든 규칙적인 습관을 뜻할 때 사용한다)
최효종: 야구장에서 미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시는 건가요?
박찬호: 그렇죠. ‘내가 긴장을 하고 있는지 체크를 하겠다, 긴장을 한다면 다리를 빼겠다, 마운드 아래로 내려오겠다, 호흡을 하겠다, 그리고 어떤 공을 던질 건지 구체적으로 이미지를 그려 놓겠다, 다시 마운드로 올라가서 포수의 사인을 보겠다’ 라는 식이죠. 나중에는 습관이 돼서 루틴이 빨라져도 생각이 정리가 돼요. 그랬을 때 꾸준한 성적을 낼 수 있어요. 성적의 편차가 심한 건, 자기의 루틴이 없거나 의심이 굉장히 크다는 거예요. 프로 세계에 들어와서도 성적이 좋다가 나쁘다가 하는 것은 같은 프로끼리 경쟁을 하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 선수한테 내가 지는 것은 당연한 거야’라고 생각하되 ‘또 다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믿으라는 거죠. 저는 루틴을 통해서 위기감을 미리 구상하고 야구장에 들어가면 복습을 했어요.
최효종: 경기를 복습처럼 생각하셨던 거네요. 완벽한 마인드 컨트롤인 것 같은데요.
박찬호: 실전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한데 복습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그래서 저는 경기를 복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운드에 올라가면 더 배고픈 사자처럼 해야죠. ‘저 타자를 이겨야겠다’는 공포를 뛰어넘어서 내가 어떻게 공을 던지겠다는 생각이 정말 절실해야 해요. 그러면 집중력이 생겨요. 승패를 초월해서 내가 할 일에 몰입하는 것이 승리를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현장을 복습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즐기자’ 라는 거죠. 즐거움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할 때 생겨요.
최효종: 방금 해주신 말씀은 저도 꼭 새겨들어야 할 것 같네요.
박찬호: 최효종 씨도 똑같을 것 같아요.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멤버들과 상의할 때는 즐겁잖아요. 그런데 녹화가 시작됐을 때 그런 생각을 하면 큰일 나잖아요. 사람들의 반응이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져요. 그건 효종 씨가 컨트롤 할 수 없어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효종: 저는 제가 뭐든지 즐기면서 했다면, 실패하더라도 ‘후회 없이 잘했다’는 칭찬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박찬호: 승리보다 더 어려운 게 뭔지 알아요? 패배예요. 승리는 자기가 마음먹고 하다 보면 이룰 수 있어요. 패배는 마음먹고 하려고 해도 잘 안 돼요. 일부러 지는 게 왜 어렵냐면, 부담이 없으니까 몸이 이완되거든요. 이완되면 엄청난 에너지가 생겨요. 그러면 상대가 못 치는 거죠. 제가 124승을 했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은 승리는 ‘오늘 경기는 져도 되지’라고 생각할 때 이룬 거예요.
최효종 “저는 제가 뭐든지 즐기면서 했다면, 실패하더라도 ‘후회 없이 잘했다’는 칭찬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류현진 선수의 메이저리그 성공기는 아직 멀었다
최효종: 류현진 선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많은 전문가들이 류현진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전망했었죠. 첫 해는 힘들 거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고, 가서도 잘할 거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고요. 현재까지는 성공을 장담한 분들의 이야기가 맞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박찬호 선수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박찬호: 제가 미국에 갈 때는 많은 분들이 알지 못했어요. 성공을 할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을 거예요. 사례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도전을 했던 이유는 성공하면 어떨 거라는 그림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또 실패하면 어떨 거라는 그림도 없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아이였어요. 뭔가 새로운 걸 계속 경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었어요. 그래서 담벼락에 오르고 옥상에 올라가고, 야밤에 산에 가거나 공동묘지에 가기도 했어요. 미국에 진출할 때도, 그런 사례는 없었지만 그냥 가보고 싶었어요. 한국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선동렬, 최동원, 장종훈, 이런 선수들이 제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메이저리그라는 새로운 곳을 보고, 그곳에 가면 어떨지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건지 경험해 보고 싶었던 거예요.
최효종: 어릴 적부터 도전 의식이 많으셨네요. 그래도 미국에 갔을 때는 두려움이 많으셨을 텐데요. 처음이었으니까요.
박찬호: 미국에 가서도 계속 도전하고 절박함을 경험하면서 성공한 거죠. 그 성공이 이후의 김선우, 서재응, 송승준과 같은 선수들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만든 거예요. 저는 아마추어에서 최고가 아니었는데 메이저리그에 가서 성공했어요. 그런데 류현진 선수는 아마추어에서 최고가 아니라 한국 야구에서 최고 선수가 간 거예요. 검증이 된 거잖아요. 그러면 지금 같은 성적을 당연히 내야 돼요. 하지만 지금 성적을 두고 성공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지금까지 6승을 했는데, 6승에 대한 성공이에요. 다만 류현진 선수의 메이저리그 성공기는 아직 멀었다는 거죠. 이제 류현진 선수만의 창조적인 부분을 밀고 나가야 해요. ‘한 시즌 19승, 20승’ 그리고 ‘월드시리즈 챔피언 경기의 마지막 선발 투수, 승리투수’처럼 박찬호가 창조해내지 않은 것들을 해내야죠.
최효종: 류현진 선수에 대한 기대감이 무척 크시네요.
박찬호: 그럼요. 앞으로 류현진 선수가 해낼 거라고 생각하고요. 후배들에게 엄청난 메시지가 전해질 거예요. 메이저리그에 도전해서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내는 거죠. 박찬호와는 다른 18승 선수, 류현진과 다른 첫 회에 7승 선수, 한국 최초 신인왕 선수가 나올 거예요. 그들이 모이면 한국 야구의 힘이 되는 것이고, 사회의 동력이 되는 거죠. 현진이가 이런 생각과 목표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런 시선으로 응원을 했으면 좋겠어요.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시작한 기부 활동
최효종: 한화에 입단했을 때 연봉을 기부하셨고, 은퇴 후에도 유소년들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의 인세도 유소년들을 위해서 기부하겠다고 하시고, 유소년 야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으시고 적극적이신 것 같아요.
박찬호: 저도 거기에서 왔으니까요. 우리는 다 거기에서 왔으니까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다음에 또 다시 거기에서 발전해나갈 거니까요. 제가 어렸을 때 장훈 선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았어요. 장훈 선수의 비극을 책에서 읽고 야구선수로 성공해야겠다는 메시지를 받은 거예요. 어떻게 보면 충격적이었어요. ‘내가 하고 있던 노력이 보잘것없는 것이었구나, 이런 노력을 해야 되는 구나’ 생각했죠. 특히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야구 외에도 어려운 장애들이 있잖아요. 그걸 극복한 선수인데, 정말 훌륭한 거죠.
최효종: 어떻게 보면 메이저리그 진출과도 관계가 있었겠습니다.
박찬호: 네.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에 간 것도 그 영향일 수 있어요. 미국에 가서 문화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도 ‘어떻게 하면 더 훌륭해질까’ 생각하면서 이겨냈던 것 같아요. 기부를 하는 것도 저를 끊임없이 지켜주었던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한 거예요. 그리고 뭔가 창의적인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기부를 통해서 구단과 작품을 만드는 거죠. 한국 야구는 구단과 선수가 항상 갈등이 있었어요. 구단은 선수를 조금 더 존중하고, 선수는 구단을 통해서 더 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죠. 그렇게 소통이 되고 화합이 돼야 팬들에게 보답이 되잖아요. 앞으로 야구를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야구 기술로써 성공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가져야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어요.
‘최효종의 추파’ (박찬호 편) 기사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댓글로 작성하고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등으로 기사를 공유해주시면, 박찬호의 사인볼을 드립니다. (독자 3명) | ||
엄지혜, 임나리
eumji01@yes24.com
차누
2013.07.19
인터뷰 내용중에서 특히 아래 문구들이 인상깊게 느껴집니다.
"게임이 잘 안 됐을 때 선수들에게 질문을 던지죠. 무엇이 안 되었는지, 어떤 걸 생각해야 하는지. 그 질문을 통해서 저도 배우지만, 선수들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게 되고요. 예를 들어서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잘 쳤을 때, 그 투수한테 오늘 왜 성적이 안 좋았는지를 물어요. 그러면 대부분 ‘오늘 공이 안 좋았습니다, 운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건 아니거든요. 공을 어디에 던졌기 때문에 타자에게 맞은 건지 생각해야 돼요. 왜냐하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너무 많아요. 우리가 실패했을 때 ‘이 선수에게 어떤 생각으로 여기에 던졌더니 실투가 됐다’라는 것만 생각하면, 답을 어떻게 풀어나갈 지를 알 수 있는 거예요."
어떤 일을 해나갈 때,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 그리고 다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실패를 분석하고 그 안에서 답을 찾는다. 그런데, 왜 매번 같은 실패를 반복할까요?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실전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한데 복습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그래서 저는 경기를 복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운드에 올라가면 더 배고픈 사자처럼 해야죠. ‘저 타자를 이겨야겠다’는 공포를 뛰어넘어서 내가 어떻게 공을 던지겠다는 생각이 정말 절실해야 해요. 그러면 집중력이 생겨요. 승패를 초월해서 내가 할 일에 몰입하는 것이 승리를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현장을 복습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즐기자’ 라는 거죠. 즐거움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할 때 생겨요."
"盡人事待天命" 문구가 생각이 나네요. 또는 무대를 즐기자. 끊임없는 노력과 피나는 연습없이는 할수 없는말 같습니다. 가슴속에 다시 새겨봅니다.
박찬호 선수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똥꼬벨라
2013.07.19
yena1990
201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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