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은의 단위
몽골이 채용한 세 단계 은의 중량 단위의 이름은 지역과 언어에 따라 제각각이다. 한어로는 전錢, 양兩, 정錠이었다. 위구르어(아마도 투르크계 언어 전반에 걸쳐)로는 스틸, 바쿠르, 야스투크라고 불렸다. 두 나라 말 모두 세 단계의 이름이 모두 알려져 있다.
글ㆍ사진 스기야마 마사아키
201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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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이 채용한 세 단계 은의 중량 단위의 이름은 지역과 언어에 따라 제각각이다. 한어로는 전, 양, 정이었다. 위구르어(아마도 투르크계 언어 전반에 걸쳐)로는 스틸, 바쿠르, 야스투크라고 불렸다. 두 나라 말 모두 세 단계의 이름이 모두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배자의 언어인 몽골어로는 가장 무거운 단위를 스케라고 부르는 것 외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국제어였던 페르시아어로도 바리슈라는 가장 무거운 단위만 알려져 있다.

세 단계의 단위 가운데 약 4그램, 약 40그램은 아주 오래전 이미 사산조페르시아제국의 유명한 은전(이른바 사산조 은전)으로 확인된다. 즉 몽골시대 훨씬 이전부터 중앙유라시아와 이란 방면에서 사용되었고 연면히 유지되어 온 ‘국제통일 단위’였다.

즉 몽골의 독자성은 가장 무거운 단위인 약 2킬로그램뿐이다. 그런데 그것도 전례가 있었다. 즉 몽골이 확장하면서 초기에 궤멸시킨 금제국에서 사용했던 50량=1정이라는 단위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금제국이라는 독특한 국가는 한쪽으로는 중화제국의 방식을 수용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들이 해체시킨 키타이 요제국 이래의 유라시아형 국가 요소 또한 적절하게 수용했다.

그 키타이제국의 시대에 수도였던 상경임황부를 비롯해서 현재의 북경 지구에 해당되는 남경석진부를 포함한 영토 내에 있는 곳곳으로 몽골 시대에 대활약한 ‘천산 위구르왕국’의 조상들을 필두로 중앙아시아 방면에서 카라반대상인이 줄지어 찾아왔다. 남쪽의 ‘중국 본토’의 경제 대국이었던 북송제국보다 경제ㆍ문화의 ‘국제화’라는 면에서 키타이 요제국이 훨씬 뛰어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은정.
《대몽골3》 각천(角川)서점에서
한편 오랫동안 ‘금은 세계’의 바깥에 있었던 ‘중화 세계’도 요ㆍ금 두 왕조와 남송과 북송 두 나라의 300년에 걸친 남북 병존 시대(이것을 제2차 남북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에 서서히 중앙유라시아의 은의 사용이라는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발상지인 만츄리아 평원 외에 화북 전역을 지배했던 금왕조에서는 멸망 직전에 50량의 은으로 만든 연판延板 모양의 주괴를 1정(정은 바탕쇠를 가리킨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과 ‘정’은 모두 ‘딩’이라고 발음한다.

여기서 50량, 즉 약 2킬로그램의 은을 나타내는 중량 단위인 ‘정’이 출현했다. ‘정’에서 ‘정’으로 변한 이유는 몽골 시대의 약 2킬로그램의 은괴가 연판 모양 외의 다른 형태로도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즉 몽골은 기존의 두 단위를 확장해서 ‘몽골식’ 세 단계의 새로운 중량 체계를 만들어 자기들이 지배하는 전 영역에 적용시킨 것이다. 이점에서도 발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종합하는 사람이라는 몽골다움이 느껴진다.

몽골의 1정이라는 은괴는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은정銀錠’이라고 총칭되는 몽골식 주괴는 주로 일족 울루스ㆍ왕족ㆍ귀족에 대한 증여, 또는 거액에 이르는 군사 지출 등에 널리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5,000량이면 은정이 100개가 된다. 아무튼 1개에 2킬로그램인 ‘화폐’라는 것은 참으로 웅장하고 단순명쾌하다.


위구르어로 야스투크, 페르시아어로 바리슈란 모두 ‘베개’를 의미한다. 한편 몽골어의 스케는 ‘도끼’라는 뜻이다. 그것은 1정의 주괴가 때로는 베개 모양, 때로는 도끼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몽골어와 페르시아어에서 가장 무거운 단위를 부르는 이름밖에 전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이 몽골식 2킬로그램짜리 주괴가 몽골과 유라시아 동서로 그 독특한 모습 그대로 이리저리 여행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몽골의 은’이라고 하면 ‘도끼’ 또는 ‘베개’라고 곧바로 연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전한 몽골 시대의 매매ㆍ금융의 매뉴얼 책인 프란체스코 발두치 페골로티Francesco Balducci Pagolotti는 자신의 저서 《상업지남商業指南》에서 동방의 통상을 다루면서 몽골 지배하에 있는 동방은 매우 안전하고 번화하고 ‘바리슈’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서술했다. 이건 분명히 국제어였던 페르시아어 ‘바리슈’가 이탈리아까지 전해졌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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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저/이경덕 역 | 시루
이 책은 그동안 야만족, 미개인이라고 치부되었던 유목민들이 은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오아시스에 사는 정주민들의 고립을 막아주는 문화 교류자였으며, 그들이 사용한 아람어가 소그드문자를 비롯해 위구르문자와 만주문자, 한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등의 그동안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그동안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왜곡, 축소되었던 유목민들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짚음으로써 동과 서로 단절되었던 세계사를 연결시켜 비로소 역사의 실체를 마주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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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은 #은정 #유라시아 #스기야마 마사아키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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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이

2013.05.31

유목민의 눈으로 보는 세계사.... 신선합니다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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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전중

2013.05.28

몽골에서의 은의 단위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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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새

2013.05.09

몽골을 떠올리면 신비하다는 생각이 떠오르는데 유목민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까닭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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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야마 마사아키

1952년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교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교토여자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재 교토대학 교수다. 주요 연구 주제는 몽골 시대사로 일본 내에서 몽골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1995년 《쿠빌라이의 도전》으로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했고, 2003년 시바료타로상, 2006년 《몽골제국과 대원 울루스》로 일본학사원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