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죽음과 주변인들의 섬뜩한 반응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의 최신작이 출간 대기 중입니다. 3월 4주부터 채널예스에서 일부 연재가 시작될 텐데요. 『수상에게 보내는 101통의 편지』(101 letters to a Prime Minister)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캐나다 작가인 얀 마텔이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보내는 편지를 묶은 것입니다.
글ㆍ사진 얀 마텔
201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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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독자 여러분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의 최신작이 출간 대기 중입니다. 3월 4주부터 채널예스에서 일부 연재가 시작될 텐데요. 『수상에게 보내는 101통의 편지』(101 letters to a Prime Minister)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캐나다 작가인 얀 마텔이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보내는 편지를 묶은 것입니다.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격주로 보내진 이 편지에서 얀 마텔은, 무언가를 호소하거나 비꼬거나 조언하거나 과거를 되새기거나 미래의 청사진을 내보이거나 하지만, 결국은 일관되게 문학 읽기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반짝거리는 새 책이, 때로는 누군가의 악필이 남겨진 중고본이 편지와 함께 보내졌지요.


캐나다 수상은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대통령과 같습니다. 얀 마텔이 자국의 국가수반에게 이토록 지독하고 끈질기게 문학 읽기를 권유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서문에 답이 있습니다.


‘이런 의문에는 간단히 답할 수 있다.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책을 읽는지, 책을 읽기나 하는 건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가 어떤 책을 읽는지가 나에게는 무척 중요하다.’


정치인은 책을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느껴보지 못했거나, 사회적 핍박에 무방비로 노출되어보지 않았거나, 상대적 박탈감과 유리천장 같은 이겨내기 힘든 장애물을 겪어보지 않은 삶을 살아온 정치인일수록 더욱 그래야 합니다.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고 그 안에서라도 다른 이의 삶에, 다른 이의 고통에 푹 빠져보아야 합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정치인은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응당 공표해야 하는데요. 문학의 늪에 발을 담가보기라도 한 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정치인이 그리는 미래는 자연히 차이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비단 정치인뿐만 아니라 묵묵히, 그러나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문학 읽기는 중요합니다. 아홉 번을 사는 고양이조차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고 하지요. 그들은 이미 수백 개의 삶을 산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문학은 우리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인간성을 각성하게 합니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 전, 담당 편집자는 원고 상태로 열 번은 읽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수백 번은 곱씹지요. 얀 마텔의 이번 작품은 한 번에 읽어 치울 수 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짧은 편지 한 통을 읽으면, 저는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수정해야 했고 때로는 당장 그 책을 찾아 읽기도 했습니다.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이 나왔을 때는 인터넷 서점의 원서 코너를 기웃거리기도 했고요. 얀 마텔의 편지를 보시면, 여러분도 그렇지 않고는 못 배기실 겁니다. 얀 마텔의 이전 작에서도 많은 감동을 받았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그 감동을 만들어낸 실체를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국가수반에게 편지를 보내면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특유의 예리하고도 지적인 위트를 날려대는 문학인으로서의 자긍도 부러웠습니다. 곱씹을수록 더욱 진한 맛이 배어나오는 게, 마치 잘 말린 육포 같은 책입니다.


짧은(때로는 긴) 편지 한 통으로 읽는 이를 이토록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고 책을 더 읽고 싶게 만들다니, 정말 대단한 작가 아닙니까? 5주간에 걸쳐 얀 마텔의 편지를 받아보시게 될 채널예스 독자 여러분의 문학 읽기도 나무줄기처럼 넓게, 그러나 강물처럼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얀 마텔의 서문을 한 번 더 인용하며 소개글을 맺겠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스티븐 하퍼 수상처럼 나를 지배하는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의 꿈이 자칫하면 나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정신 담당 편집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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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에게,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하퍼 수상님께,


수상님께 제가 보내는 첫 책은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입니다. 처음에는 캐나다 작가의 작품을 첫 책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상님과 저, 우리 둘 모두 캐나다 사람이니 상징적인 의미도 있을 테고요. 그러나 저는 어떤 형태로도 정치적인 이념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위대한 문학의 힘과 깊이를 이 소설만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다른 짤막한 작품을 제 머리로는 생각해낼 수 없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걸작입니다. 이 소설에는 허세도 없고 천박함도 없으며 가식도 없고 거짓도 없습니다. 쓸데없는 표현도 없고 지루하다고 느낄 틈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줄거리가 싸구려처럼 빨리 진행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남자와 그의 평범한 죽음을 꾸밈없이, 그러나 무척 설득력 있게 써내려간 중편소설입니다.




몸의 마음의 변화에서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는 톨스토이의 눈은 섬뜩할 정도입니다. 슈바르츠를 보십시오. 그는 죽은 이반 일리치의 집에 방문해서 이반 일리치의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머릿속으로는 그날 밤에 있을 카드놀이를 생각합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어떻습니까? 그는 이반 일리치의 아내와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낮은 의자와, 그 의자의 고장 난 스프링과 씨름합니다. 또 남편 이반 일리치를 잃은 아내, 프라스코비야 표도르브나조차 우리 눈앞에서는 눈물짓고 슬퍼하지만, 사리사욕에 젖어 남편의 연금을 세세하게 따지고 정부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고 싶어 합니다. 이반 일리치가 처음 의사를 찾아갔을 때를 보십시오. 의사는 거드름을 피우며 냉담하게 이반 일리치를 진료합니다. 이반 일리치는 의사의 그런 태도가 자신이 법정에서 피고를 대하던 태도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반 일리치와 그의 아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보십시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또 이반 일리치의 친구들과 동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 모두는 단단한 둑에 서 있는데, 어리석게도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지는 쪽을 선택한 사람인 양 이반 일리치를 대하지 않습니까. 끝으로 이반 일리치와 그의 서럽고 외로운 몸부림을 눈여겨보십시오.


덧없는 것에 열중하고, 매정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명쾌하고도 간결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톨스토이는 삶의 천박한 외면만이 아니라 은밀한 내면까지도 파헤칩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사악함과 시대에 뒤떨어진 지혜를 늘어놓은 듯하지만, 그렇다고 따분한 도덕교과서처럼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삶의 어둠과 빛을 생생하게 표현한 듯합니다. 누군가 우리를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등장인물인 양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닫는 날, 우리 눈에 이반 일리치의 잘못들이 분명하게 보일 겁니다. 잘못들이 우리 눈에 너무나 명확히 들어와서, 우리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될 겁니다. 


여기에 문학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순되게 들리겠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읽어갈 때 우리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해 읽는 것입니다. 이런 부지불식간의 자기점검에서 때때로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미소를 짓게 됩니다. 이 소설의 경우에서 그렇듯이, 때로는 불안감에 싸여 부인하고 싶은 마음에 몸서리를 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더 현명해지고 존재론적으로 더 단단해집니다.


수상님도 틀림없이 눈치 채셨겠지만, 이 소설의 배경인 1882년과 오늘날의 시간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또 고루하던 전제군주 시대의 러시아와 현대 캐나다 사이의 거대한 문화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우리에게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그 시대에 살면서 뼛속까지 러시아인이던 사람이 지역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보편적인 울림을 이루어낸 다른 소설을 제 머리로는 생각해낼 수 없습니다. 중국의 농부, 쿠웨이트의 이민 노동자, 아프리카의 목동, 플로리다의 엔지니어, 오타와의 수상 등 누구라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을 때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수상님께 게라심이란 인물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모습이라고 여기기는 힘들지만 우리 모두가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이 바로 게라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게라심 같은 사람이 옆에 있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수상님이 무척 바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바쁘게 살아갑니다. 심지어 수도원에서 묵상하는 수사들도 바쁩니다. 천장까지 해야 할 일로 채워진 삶이 바로 어른의 삶입니다. (어린아이와 노인만이 시간의 부족에 시달리지 않는 듯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책을 읽고, 그들의 눈 속에는 어떤 삶이 채워져 있는지 눈여겨보십시오.) 그러나 노숙자든 부자든 누구에게나 잠자리 옆에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에서 밤이면 책이 빛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를 내려놓기 시작하며 마음이 차분해지는, 잠들기 전에 책을 집어 들고 잠시 몇 쪽이라도 읽는 그 순간이,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곳에 있기에 가장 완벽한 시간입니다. 물론 다른 시간에도 가능합니다. 단편소설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로 유명한 미국 작가, 셔우드 앤더슨은 기차로 출퇴근하는 시간에 단편소설들을 썼다고 합니다. 스티븐 킹은 좋아하는 야구 경기장에 가서도 쉬는 시간에 책을 읽었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수상님께 하루에 몇 분이라도 짬을 내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어보시라고 권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얀 마텔


답장:

2007년 5월 8일

마텔 씨에게,


수상님을 대신해서 제가 선생의 편지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 소설에 대한 선생의 견해와 의견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선생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런 편지를 보내주신 것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수전 I. 로스

수상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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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는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 수필가, 극작가이자 철학자, 교육 개혁가이기도 했다.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삶에 초점을 맞춘 사실주의적 작품을 쓴 것으로 유명하며,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한 작가 중 한 명으로도 여겨진다.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해서 열세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여덟 명만이 성년까지 살아남았다. 톨스토이는 열네 편의 소설(『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가 대표작), 여러 편의 수필과 논픽션, 세 편의 희곡, 삼십 편이 넘는 단편소설을 썼다.


* 『수상에게 보내는 101통의 편지』(101 letters to a Prime Minister)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캐나다 작가인 얀 마텔이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보내는 편지를 묶은 것입니다. 한국에도 곧 번역될 예정으로, 채널예스 독자를 위해 몇 편을 먼저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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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저/강주헌 역 | 작가정신
이 책은 캐나다의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은 세상 모든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얀 마텔적 충언'이자, 더 나아가 모든 독자들에게 전하는 문학 편지다. 짧은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어 술술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에 읽어 치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루에 편지 한 통, 아니면 일주일에 편지 한 통도 좋다.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읽느냐보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마치 시를 읽듯이, 편지 한 통 한 통을 곱씹어 읽으며 고요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파이이야기 #얀 마텔 #이반 일리치의 죽음 #eBook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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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

2014.01.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읽기는 힘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네요.
독서, 그중에서도 문학이란 장르는
우리를 넓고 깊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길이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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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제이

2013.03.31

안철수가 힐링캠프에서 문학을 통해 이해심을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떠오르네요. 안철수 지지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문학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좀 더 심도있게 이해하고 연구하고 또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재, 자주자주 올려주세요. 기다릴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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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그림자

2013.03.25

인간의 모순적인 외면뿐만 아니라 은밀한 내면까지 파헤친 소설 ' 이반일리치의 죽음' 작가가 수상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만나게 되어 더 인상적이네요. 마치 작가 얀 마텔은 조선시대때 임금에게 간언하는 신하인 것 같고 수상은 그런 신하의 말을 새겨들을 줄 아는 임금인 것 같습니다. '수상에게 보내는 101통의 편지' 좋은 책 인 것 같아요. 꼭 사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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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 캐나다 트렌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후 다양한 직업을 거친 뒤, 스물일곱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3년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을 발표하며 데뷔했고, 이후 『셀프』(1996) 『파이 이야기』(2001) 『베아트리스와 버질』(2010)을 썼다.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파이 이야기』로 2002년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