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 남쪽으로 떠난 가족 - 임순례 감독 <남쪽으로 튀어>
최근 개봉한 <남쪽으로 튀어>는 임순례 감독의 특징이 드러나면서도 또한 동시에 감춰진 영화이기도 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남들과 달라도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한 가족의 위기를 코미디로 풀어낸다.
글ㆍ사진 최재훈
201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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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고마워>

2011년 옴니버스 영화 <미안해, 고마워>는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게 만드는 관계와 성찰의 영화였다. 배우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제작된 착한 영화의 제작 총괄과 함께 「고양이 키스」라는 한 파트를 만들어낸 임순례 감독은 배고픈 길고양이를 돌보는 혜원(최보광)과 그런 딸이 그저 못마땅한 아버지(전국환)의 갈등과 화해를 그려낸다. 사투리로 티격태격하는 부녀의 모습과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몸짓은 소소한 재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특유의 시선으로 바라다보는 현실 인식은 서늘한 면이 있다. 밋밋하고 서늘하다는 표현은 임순례 감독의 작품 특징을 나타내는 주요한 단어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남쪽으로 튀어>는 임순례 감독의 특징이 드러나면서도 또한 동시에 감춰진 영화이기도 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남들과 달라도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한 가족의 위기를 코미디로 풀어낸다. 주인공 최해갑은 한때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릴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던 운동권 대학생이었으나, 지금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직함을 내걸고 있다. ‘안 다르크’로 불리던 열혈 운동권 출신 아내 안봉희(오연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가는 딸 민주(한예리), 아버지에게 불만 많은 아들 나라(백승환), 사랑스러운 막내 나래(박사랑)는 해갑과 충돌하지 않고, 든든하게 지원해 준다. 그들은 행복을 찾아 남쪽 섬으로 떠난다. 그러나 평화로운 생활도 잠시, 개발 열풍이 섬을 뒤흔들면서 해갑의 가족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일본의 1970년대 세대를 한국의 1980년대 세대로 끌어오면서도 큰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게 잘 각색해 낸다. 사실 일본의 1970년대와 한국의 1980년대의 운동권 세대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거품 경제의 물결 속에 과거의 이념을 밟고 너도 나도 자본주의의 급물살에 몸을 담아냈을 때, 그 과거의 운동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은 원작 소설에도 각색된 한국 영화 속에서도 주요한 화두 중의 하나이다.

1990년대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자본주의 발전 양쪽 모두에서 중추적인 캐릭터를 담당했던 그들의 속내는 어떨까? 한국에서는 ‘후일담’ 소설로 불리는 많은 작품들에서 어둡고 우울하게 그려졌던 운동권의 이야기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서는 여전히 이상향을 꿈꾸는 수다쟁이 캐릭터로 재탄생했는데, 유쾌함 속에 과거의 신념을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 하는 무거운 화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임순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섬 개발을 둘러싼 대립을 통해 용산 참사, 제주 강정마을을 연상시키는 정치적 상황을 대입하지만, 주요화두로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전작들에서 서늘한 현실 인식을 품었던 감독의 열린 시선을 두고 보자면 곁가지가 많은 에피소드에 극의 흐름이 흩어지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게다가 격하게 밀어붙이는 원작에 비한다면 임순례 감독은 특유의 느린 속도로 감정을 쌓아 격앙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남쪽으로 튀어>가 코미디 영화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정적이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게다가 비극을 전제로 하지만, 희극으로 마무리되는 역설적 비장미를 건져 올리리란 기대는 주춤거리다 사라진다. 그의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했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대하기 보단, 인물 간의 충돌을 통해 정서적 재미를 만들어내는 밋밋하면서도 흥미로웠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기대하면서 극장을 찾기를 권한다.


쓸쓸하고 안쓰러운 아이들과 동행하다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예상외의 흥행 감독이 되었지만,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그의 초기 작품들이다. 단편 데뷔작 <우중산책>은 삼류 극장 매표소 처녀의 눅눅하게 비에 젖은 어깨를 감싸 안아준 작품이었다. 그리고 1996년 그의 첫 장편 영화 <세 친구>는 학교와 사회, 그 사이 텅 빈 공간에서 부유하는 세 소년의 모습을 그린다. 세상의 낙오자인 세 친구의 현실은 너무나 쓸쓸해서 아팠다. 임순례 감독은 굳이 그들을 격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을 패배라고 낙인찍지도 않는다. 그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보는 감독의 시선 때문에 더 처연한 느낌을 주는 서늘한 영화였다. 그리고 5년 만에 돌아온 영화에서 이번에는 30대 남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게 2001년 제작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하지만, 여전히 불행한 30대 밴드의 이야기이다. 존재 자체가 너무 흐릿해서 슬픈 남자들의 모습에서, 감독은 삶의 비극을 관조하지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읊조리지도 않는다.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삶 속에 그저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하나 툭 던질 뿐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날아라, 펭귄>

이후 행보는 그의 영화처럼 더디고 느리다. 차기작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7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포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대표 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선수들이 공유한 생애 최고의 순간 속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그의 전작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고단한 삶 속에서 허덕댄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이 영화에는 따뜻한 온기가 흐른다. 그는 서른을 넘긴 일하는 여성들을 향한 사회적 편견과 그 한계를 다양한 사례로 재현해 낸다. 그리고 올림픽이라는 사회적인 이슈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개개인의 문제를 등한시하지 않는 한결같은 뚝심에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아줌마의 긍정적 속성들을 희망적인 그림으로 보여준다. 다음 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영화 <날아라, 펭귄>을 통해 그는 ‘인권’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유연하고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서늘했던 전작들과 달리 관망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세상을 응원하는 영화였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영화 속 주인공 선호가 아주 작은 꿈조차 품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임순례의 초기작품의 캐릭터들과 닮아 있지만,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기점으로 임순례 감독은 따뜻한 동행과 온정의 기운을 조금씩 담아가고 있다. 감독은 주인공을 보채거나 밀어내지 않고, 그들의 보폭대로 함께 걸어간다. 여행담과 주인공의 성장담까지 그리면서, 감독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도시의 황량함 대신 길이 가지는 서사와 풍경이 가지는 넉넉한 넓이와 깊이까지 담아낸다. 주로 경쟁 사회 속에서 부유하는 약자들의 곁에서 소통하고 나누는 법을 그려낸 그가 인권 문제에 이어 동물 복지에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영화는 서늘한 시선 속에서도 지켜내야 할 삶의 따뜻함을 품어내기 시작했다.


감독은 늘 약자와 동행하지만 세상과 싸우라고 부추기는 법이 없다. 섣부른 연민 없이 불행한 사람을 그려내지만, 그들이 정작 불행한지에 대한 판단은 늘 유보한다. <남쪽으로 튀어>의 최해갑과 그 가족들은 우리 기준에서 불행해 보이지만 사실은 행복한지도 모른다. 철썩 같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남쪽으로튀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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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남쪽으로 튀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생순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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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6.30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과 <남쪽으로 튀어>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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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kaist

2013.03.02

이번 작품은 볼 기회가 되지 않아서 못봤는데 아쉽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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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826

2013.02.26

남쪽으로 튀어를 보았는데... 흠..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캐릭터가 공감이 안되긴 하지만.. 류승룡배우와 더티섹시의 선두주자 김윤석 배우를 위한 영화같았어요.. 살짝살짝 등장하는 신스틸러 정문성 주진모 배우커플 연기가 좋았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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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