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밀당’ 같은 맛에 반했다! - 중국식 샤브샤브 훠궈(火鍋)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는 마라샹궈라는 작은 중국집이 있다. 이곳은 중국집의 상식을 깬다. 차림표부터 그렇다. 수십 가지 외우기도 힘든 중국 음식이 즐비하지 않다. 요리는 고작해야 8가지. 카페처럼 아담하고 예쁘다. 차림표 첫장의 ‘훠궈(火鍋)’는 온탕과 냉탕을 들락거리면서 피부를 당겼다 풀었다 하는 맛을 선물한다. 남녀의 ‘밀당’이 이와 같지 않을까!
2012.10.16
작게
크게
공유
그는 반찬 가짓수가 많은 밥상처럼 다채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이들의 노고를 존중하고,
맛집 정보를 탐욕적으로 수집하지 않으며,
맛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별하는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이들의 노고를 존중하고,
맛집 정보를 탐욕적으로 수집하지 않으며,
맛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별하는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
신호등 앞에 멈춰선 승용차 안은 웃음바다가 됐다. 차 안에는 5명의 《한겨레신문》 주말 섹션 esc 창간 멤버가 타고 있었다. 내가 지른 한마디 때문이었다. ‘던킨 도넛’이라는 말이 나왔어야 했다. 정교한 뇌의 시스템을 건너 튀어나온 단어는 희한했다. 내가 지른 말이 뭐였냐고? ‘더큰 도넛.’ 가장 먼저 평범한 말에서 미세한 위트를 찾아낸 이가 소설가 김중혁이었다. 그가 차 안에 없었다면 웃음바다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던킨’이 ‘더큰’이 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멤버들에게 알렸다. 언제나 ‘더 큰’ 먹을거리에 집착하는 욕망이 툭 튀어나온 것처럼 부끄러웠지만 그들의 웃음이 모든 것을 해결했다. 나는 ‘철없고 귀엽고 말 좀 못하는 동료’가 되었다. 2007년의 일이다.
소설가 김중혁은 당시 기자로 활동했다. 이미 그는 『펭귄 뉴스』 등으로 촉망받는 소설가였다. 누구도 쫓아오기 힘든 상상력, 음악과 그림 등 각종 문화 코드에 대한 산뜻한 식견, 정확한 혀를 가진 요리기자였던 경력 등, 그는 반찬 가짓수가 많은 밥상처럼 다채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이들의 노고를 존중하고, 맛집 정보를 탐욕적으로 수집하지 않으며, 맛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별하는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
2011년 7월 어느날 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두 번째 장편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당장 서점에 달려가 『미스터 모노레일』을 구입했다. 첫 장부터 무릎을 탁 쳤다. 역시 김중혁이었다. 차례와 작가의 말은 구불구불하고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인 ‘모노레일’ 게임 판이었다. 그가 그린 일러스트와 구간마다 적힌 문구도 역시 그의 것이었다.
“승리의 트림은 디저트보다 달콤한 법이지.”
음식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여전했다. 그런 흔적은 소설 곳곳에 출몰했다. 주인공은 게임을 완성하면서 메밀국수, 즉석낙지볶음밥을 먹고 가상의 모노레일 식탁에는 파스타, 에스카르고(프랑스의 달팽이 요리), 정어리 튀김이 올라왔다. 게임 캐릭터 레드의 직업은 이탈리아 몬탈치노 포도나무에서 찾았다. 등장인물 고우인은 분식점 이름을 ‘지상에서 천원으로’라고 지어 독자의 웃음을 불렀다. 소설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의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버릴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와 어디서 밥 한 끼를 먹으며 축하해 줄까?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는 마라샹궈라는 작은 중국집이 있다. 이곳은 중국집의 상식을 깬다. 차림표부터 그렇다. 수십 가지 외우기도 힘든 중국 음식이 즐비하지 않다. 요리는 고작해야 8가지. 카페처럼 아담하고 예쁘다. 차림표 첫장의 ‘훠궈(火鍋)’는 온탕과 냉탕을 들락거리면서 피부를 당겼다 풀었다 하는 맛을 선물한다. 남녀의 ‘밀당’이 이와 같지 않을까! 훠궈는 만주와 몽고 유목민에서 유래한 중국식 샤브샤브다. 조조의 아들 조비도 즐겼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다. 청나라 건륭제는 훠궈를 매우 좋아해서 1,550개의 훠궈 솥을 걸어 나눠 먹었다고도 한다.
가장 큰 매력은 두부, 각종 채소, 양고기나 쇠고기 등을 두 가지 버전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훠궈는 홍탕과 백탕이 함께 붙어 있다. 홍탕은 10여 가지 약재와 말 그대로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 등을 써서 맵다. 백탕은 닭고기, 돼지 뼈, 오리고기 등으로 우려 담백하다.
이곳 홍탕은 일품이다. 그냥 매운맛이 아니다. 진하게 졸인 캡사이신(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의 은근한 풍미를 온몸에 전달받는 것처럼 ‘징하게’ 맵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피부에는 땀이 방울방울 맺혔다. 문득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것은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는 동안 느낀 감정과 비슷했다. 고통이 지구의 밑바닥까지 이어진 것처럼 절망이 침공할 때도 소설은 고상 떨지 않는 낙관과 경쾌한 웃음, 무겁지 않은 진지함을 선사하며 희망을 말했다. 곧 그에게 전화해 약속을 잡으리라!
- 인생이 있는 식탁 박미향 저 | 글담
이 책은 누구보다 많은 음식을 맛보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맛 기자’의 특별한 에세이다. 『인생이 있는 식탁』이라는 제목은 이 책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오랜 시간 수많은 맛집을 순례하며 다양한 음식을 맛본 저자는 편안한 친구와 한바탕 수다를 떨듯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야기 속에는 맛있는 음식들만큼이나 다양한 저자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그들과의 추억담을 풀어놓으며 음식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 |||||||||||||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3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박미향
대학교에서 사학과 사진학을 전공했다. 사진기자로 기자생활을 시작했지만 현재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도 찍는 음식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2005년), 『박미향 기자 행복한 맛집을 인터뷰하다』(2007년), 『와인집을 가다』(2009년) 3권의 책을 어쩌다 냈다.
chang0307
2013.02.10
yerim49
2012.11.01
gda223
2012.10.16
다른 음식보다 값은 좀 나갔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