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의 책으로 아버지를 기억하다
이제 아버지의 책 중 특별한 10권을 선정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 책 10권에 아버지의 인생과 내 젊은 날의 방황이 담겨있다고 말하면 나 스스로 손발이 오그라들리라. 그저 뭔가 의미를 부여할 만한 10권이다. 이야기가 있는 10권이다.
201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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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왜 이런 ‘위험한’ 책을 샀을까?>에 이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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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책벌레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사 모은 책의 바다에 빠져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탕진했다면 어땠을까? 내 인생은 좀 더 풍요했을까? 집에는 책이 많았지만, 나는 책을 별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책을 열심히 읽는 친구들이 집에 와 서재를 구경하곤 “책을 빌려달라”고 졸랐다. 정작 나는 책에 무심한 편이었다.
유년기엔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월간지 「소년중앙」을 탐독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좋아하는 월간지를 사주는 데엔 인색한 편이었다. 매호 매호 떼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하나 계림출판사의 추리소설 시리즈가 생각난다. 「셜록 홈즈」나 「괴도루팡」 시리즈는 열심히 읽었다. 그건 아마 어머니가 사줬던 것 같다. 아들의 오해일 수 있으나, 아버지는 당신의 책에만 관심이 있었다. “서재에 이러저러한 책들이 있다. 너한테도 유익한 것은 무엇무엇이니 한 번 읽어보라”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초딩 아들을 위해 「소년한국일보」를 구독하게 한 적은 있다. 그래봤자 1~2년이었다.
그렇지만 내 삶을 말할 때 ‘아버지의 책’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다시 곰곰히 되돌아보면 그 책들을 꽤 읽었던 것도 같다. 참을 수 없이 지루하고 심심할 때면 아버지 몰래 서재에 ‘침입’했다. 아버지는 외출할 때면 서재의 문을 꽁꽁 잠가놓곤 했다. 나는 열쇠를 찾아 따고 들어갔다. 먼저 아버지의 책상 서랍 속이 궁금했다. 아버지는 예외 없이 잠가놓았다. 그래도 책상 구석구석을 뒤지며 아버지의 비밀(!)을 캐다가, 서가의 책들 중 구미가 당기는 것을 빼내어 읽곤 했다(그땐 왜 그렇게 아버지 책상서랍에 호기심이 일었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어문각에서 나온 「신한국문학전집」 50권 중 1/3은 읽은 것 같다. 이광수니 염상섭이니, 채만식을 그때 제대로 알았다. 대학에 들어가고선 아버지의 서가를 찾을 일이 더 많아졌다. 나름 사회의식이 생기면서 아버지의 책을 보는 작은 안목도 생겼기 때문이다. 다만, 책에 미치진 않았다. 책읽기는 여전히 귀찮고 졸리고 성가신 일이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이제 아버지의 책 중 특별한 10권을 선정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 책 10권에 아버지의 인생과 내 젊은 날의 방황이 담겨있다고 말하면 나 스스로 손발이 오그라들리라. 그저 뭔가 의미를 부여할 만한 10권이다. 이야기가 있는 10권이다.
1. 「신약성서와 시편」 (대한성서공회, 1984년, 비매품)
서가를 뒤지다 손바닥 만한 파란색 표지의 성서(성경)를 발견했다. 교회 활동을 열심히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그곳에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책 표지엔 ‘국제기드온협회 드림’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국제기드온협회는 100년의 역사가 넘는 기독교 평신도 선교단체다. 예전 교회 학생회에서는 처음 나온 친구들에게 이 성경책을 무료로 줬다. 가장 만만했던 이 성경책은 교회에서, 집에서 아무데나 굴러다녔다.
기독교의 정전인 성경은 아버지의 인생을 보여주는 책이다. 아버지는 직업적인 이유에서 단 하루도 성경을 펴지 않은 날이 없다. 지금도 서재엔 성경책이 30여권 넘게 있다. 「원어번역 주석 성경」, 「오픈 성경」, 「관주 톰슨 성경」, 「큰 성경 해설 찬송」, 「엠마오 주석 신약성경 및 시편」, 「현대어 성경」, 「현대인의 성경」, 「공동번역 신약성서」, 「해설 몰간 성경」 등등 같은 성경이되 종류가 다 다르다. 새로운 성경이 나올 때마다 아버지는 서점으로 달려가셨다. 아들인 나에게도 성경을 사주고 이름과 날짜를 직접 적어주셨는데 지금은 없다. 남들에게 선물을 할 때도 성경이 제1순위였다.
그 많은 성경 중에서도 파란 꼬마성경을 선택한 것은, 내 유년의 신앙을 상징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공짜 성경, 그리고 파란색의 친숙한 느낌. 검은 색깔의 가죽양장을 한 엄숙한 분위기의 성경들 틈바구니에서 이 성경은 가장 젊고 싱싱해 보인다. 나는 아직도 노래를 부르며 술술 다 외울 수 있다. “마태마가누가요한사도로마고린도전서고린도후서갈라디아에베소빌립보골로새~.”
2. 『어둠의 자식들』 (황석영, 현암사, 1980년, 2,800원)
중학생 때였다. 어느 날 아버지의 서재에 꽂힌 책 한권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소설이나 책에 관해서는 좆도 모르는 사람이다.” 책이라면 곱고 반듯한 말로 써야 한다고 여기던 순진한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이 문장은 충격이었다. 좆도, 좆도, 좆도, 좆도, 좆도…. 몇 번을 곱씹어보았다. 노는 친구들이나 쓰는 줄 알았던 상스러운 욕이 활자로 등장할 수 있다니. 그것은 당시에 어떤 전위였다. 가히 내 인생의 ‘첫 문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그 좆도!
이 소설은 황석영이 사창가와 빈민가의 바닥생활을 체험한 이동철씨의 구술을 토대로 엮은 소설이다. 앞의 첫 문장 다음엔 이런 글들이 이어진다. “도대체가 책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으니까. 어쩌다가 시간이라도 뽀갤려고 책장을 두어 장 들치다보면 이건 순 저희들끼리 해처먹는 구라판이 아닌가. 아무리 시시껍절한 구라를 풀고 있어도 저는 아예 인품이나 잡고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밸도 꼴리고 골치도 아파서 그만 던져버리고 만다….” 이것은 ‘구어체’의 백미였다. 폼 잡고 위선을 떠는 ‘문어체’를 조롱하는 글이기도 했다.
이 소설이 나오고 1년이 지난 1981년, 영화감독 이장호는 영화 <어둠의 자식들>을 만들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이동철도 1년 뒤 자신의 이름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냈다. 이 소설은 1982년 배창호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이동철의 본명은 이철용. 그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평화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3. 『나는 살고 싶다』 (김성종, 소설문학사, 1981년, 2,300원)
심심풀이로 딱 읽기 좋은 책은 추리소설이었다. 선정적이었다. 음험했다. 미스테리가 있었다. 몰래 성인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김성종의 추리소설은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나는 살고 싶다』 딱 한권이 남아있다. 『백색인간』을 포함해 10여권의 존재가 기억나는데, 아무리 찾아도 딴 소설은 없다.
『나는 살고 싶다』를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주요 대목만 반복해서 읽었다. 경찰에 쫓기는 범인이 크리스마스 이브날 서울 도심의 가발가게 점원인 주신애를 유혹해 하룻밤을 보내다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특정 신체부위의 능력을 되찾아 활활 불태운다는 내용이다. 다시 찾아보니 103쪽에서 114쪽에 걸쳐 묘사되어있다. 그 속에 펼쳐진 아슬아슬한 관계와 대화의 내용들은 내 숨을 막히게 했다. 어떤 욕망을 자극했고, 상상력을 확장시켜주었다. 나는 틈만 나면 아버지 서재에 들어가 이 책을 펴 그 부분만을 읽고 또 읽었다. 웬지 떳떳지 못했다. 비디오가 없던 시절이었다. 야동의 대체재였을까?
뒷 표지를 보니 이광훈 문학평론가의 발문이 적혀있다. “피의 오르가슴이 전편을 통해 전율하는 김성종 추리소설의 백미. 사랑과 증오, 결박과 도피로써 새끼처럼 꼬아가는 삶의 의미를, 그리고 감추어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하는 도시의 밤을 사자(死者)의 비명에 의지하여 경험케 한다. 이 소설을 통해 김성종은 호모 섹스의 처음과 끝을 칼날로써 해부해 보여준다. 마침내 독자의 예상을 뒤집는 저 잔혹한 기법 앞에 우리는 감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아, 이 책에 동성애 장면이 나왔던가? 난 전체 줄거리도 모르고 이 책의 특정 부분만 읽었단 말인가? 아주 조금, 부끄럽다.
4. 『The Best of Life』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1979년, 20,000원)
이 책은 미국 시사화보 잡지 「라이프」가 내보낸 각 부문 보도사진 중에서 최고의 작품들을 골라 엮은 것이다. 한국일보사가 「라이프」를 발간했던 미디어그룹 ‘타임워너’와 계약을 맺고 국내판으로 출간을 했다. 총 세권이었다. 「The Best of Life」말고도 「War」 편과 「Movie」 편이 있었다. 이 중 「War」는 어디론가 사라져 현재는 없다.
이 책은 최고의 눈요깃거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 책을 그림책처럼 언제든 볼 수 있었음은 행운이었다. 웬만한 역사적 사진들은 다 이 책 속에 있었다. 1945년 패전 직전의 일본군이 긴 칼을 치켜들고 오스트레일리아 비행사를 참수하기 직전의 모습, 로버트 카파가 찍은 스페인 내전의 한 장면이나 노르망디 상륙작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의 처참한 광경은 훌륭한 역사교육 자료이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고혹적인 얼굴을 감상하는 일은 연예잡지를 보는 듯한 기쁨을 주었다.
라이프지가 광고 급감으로 1972년 폐간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또한 유명한 사진가 로버트 카파가 「라이프」 담당 편집자의 횡포를 참다못해 세계적 사진가그룹 ‘매그넘’을 만들었다는 것도.
시사주간지 「한겨레21」 편집장을 하던 시절, 「The Best of Life」를 떠올리며 매해 한겨레21만의 시사뉴스 화보집을 내면 어떨까 구상한 적도 있다.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고 말았지만.
5. 『민중신학의 탐구』 (서남동, 한길사, 1983년, 5,000원)
서남동, 나는 그의 이름을 대학1학년 때인 1985년에 알았다. 그때는 이미 고인이었다. 1984년, 예순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서남동은 일본 동지사대학 문학부 신학과를 졸업하고 몇몇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했으며, 한신대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고 문익환 목사와 같은 해에 태어난 그는 한국 민중신학의 창시자 같은 인물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 갈등했다. 고3 때까지 나에게 기독교 세계관은 절대진리였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했고, 예수님을 열심히 믿어야 죽어서 천당에 간다는 믿음이 확고했다. 한데 대학에 들어와 선배들에게 배운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나의 믿음을 흔들리게 했다. 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은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기독교를 포기할 수 없었다. 선배들의 말도 영 틀리지 않아 보였다.
1985년 여름방학에, 고향에 내려와 머물렀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만난 민중신학류의 책들은 나에게 ‘절충’의 기회를 제공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도 사회를 진보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말이다. 『민중신학의 탐구』 외에도 『민중과 한국신학』(함석헌 외, 한국신학연구소, 1982년), 『역사와 해석』(안병무,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년) 등 시사점을 주는 책들이 20여권은 됐다. 나는 그 해 여름방학 때 이 책들을 대부분 독파했다. “예수는 정치범으로 처형되었다”거나 “모세 출애굽의 의미는 사회적 해방을 뜻하고 개인의 구원만을 바라는 기복적 신앙은 한국식 기독교의 전통”이라는 구절 등은 내가 종교에 갖고 있던 여러 궁금증과 의구심을 해소시켜 주었다. 그 깨달음의 한 가운데에 『민중신학의 탐구』가 있었다.
6. 『휴거』 (어니스트.W.앵글리 원저, 이장림 편역, 성암사, 1978년, 1,000원)
맨 뒷장엔 아버지의 사인과 함께 구입한 날짜가 써 있다. 1978년 11월16일. 그로부터 14년 뒤인 1992년 이 책의 번역자와 아버지의 운명은 둘 다 극적이었다. 번역자인 이장림 목사는 종말론 때문에 구속되었다. 아버지는 인생의 종말을 두 달 남겨두고 병상에 누워있었다.
이 책은 예수의 재림을 다룬 소설이다. 목사이자 전 세계를 순회하며 선교활동을 했던 필자 어니스트 앵글리가 1970년대 초반에 펴냈다. 171개국에나 번역될 정도로 세계적 화제가 되었다. 번역자인 이장림 목사는 이 책의 영향을 과도하게 받았는지, 번역 10년 뒤인 1988년 다미선교회를 설립했다. 이 선교회는 1992년 10월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하며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떠들고 다녔다. 적잖은 사람들이 그 예언 아닌 예언에 미혹되었다. 서울지검 강력부는 1992년 9월24일 그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뒷 표지엔 이런 글이 적혀있다. “주님은 과연 재림하실 것인가? 수세기 동안 ‘말세!’란 말을 들어온 한국교회는 이제 주의 재림에 대한 거대한 꿈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다. 마침 주님은 재림하시지 않을 것처럼 안일한 생각에 빠져 현실주의와 물질주의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교회 부패상을 과연 방치해 두어도 좋을 것인가?”기독교인이라면 끌릴 말이다.
표지는 멋지다. 그야말로 ‘휴거’의 상상도인데, 1978년에 발간된 책 답지 않게 컬러인쇄다. 휴거(携擧)란 한마디로 ‘들림받는다’는 뜻이다. 예수가 재림해 심판할 때 믿는 자는 다 하늘로 들림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초중고 시절 이 표지를 볼 때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꼈다. 이 책의 표지그림만 봐도 신앙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 했다. 지난날 내 믿음의 조각이 이 책 표지에 화석처럼 남아있다.
7. 「대학」 (대학문화, 1985년 12월호 창간호, 3,000원)
잡지 창간호라서 선정했다. 「대학」은 내가 대학1학년 때 창간한 월간지다. 「대학」 외에도 다섯 권의 창간호가 더 있다.「월간 여성포럼」(우먼포럼, 1991년), 「외국문학」(전예원, 1984년), 「민족지성」(한국학술진흥재단, 1986년), 「사회와 사상」(한길사, 1988년), 「사회평론」(사회평론사, 1991년).
아버지는 잡지 창간호는 꼭 사왔다. 잡지 뿐 아니라 1985년 여름에 창간한 「스포츠서울」 같은 신문도 구입해서 보관해놓았다. 여성월간지 창간호도 여럿 기억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서재에서 50여종이 넘는 신문ㆍ잡지 창간호를 보았을 땐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몇 년 뒤 다 사라졌다. 앞에서 열거한 6권을 제외하곤 몽땅 자취를 감췄다. 어디로 갔나. 오, 어머니. 어머니가 내다버렸다 ㅠㅠ
8. 『사색인의 향연』 (안병욱, 삼중당, 1965년, 300원)
에세이라기 보다는, 수필이라는 말이 정확해 보인다. 에세이와 수필 사이엔 아주 미세한 뉘앙스 차이가 있다. 논리적으론 설명하긴 어렵다. 안병욱의 글은 수필이라 우기는 바이다.(표지 위엔 ‘현대교양엣세이선’이라고 돼 있지만. 이것도 ‘에세이’가 아닌 ‘엣세이’다)
아버지는 안병욱의 수필집을 모두 모아놓았다. 『젊은이여 희망의 등불을 켜라』, 『삶의 길목에서』, 『인생론』,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같은 제목들이 생각난다. 이 책들, 지금은 못 찾겠다. 딱 한권 『사색인의 향연』을 발견했다. 1965년 판이다. 정가는 350원이고, 보급특가가 300원으로 되어 있다.
가끔 그의 수필을 정독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내주는 작문을 하거나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 안병욱의 수필집에 있는 문장들은 유용했다. 아직도 생각나는 한 구절이 있다. 대충 이랬다. “사랑은 마주보고 앉는 것이 아니다.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색인의 향연』을 꺼내 머리말을 들춰본다. “인생은 결코 춤과 노래로 수놓은 흥미로운 축제가 아니고 부단한 수고와 노력을 요하는 정성스러운 일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인생에서 제일 소중히 여기는 단어는 성실이라는 말이다. 인간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또 나 자신에 대해서 성실의 덕을 다하려고 하는 것이 나의 인생에 대한 근본태도다. 성실은 만인이 걸어가야 할 인생의 대도다. 우리가 배워야 할 덕이 있다면 성실의 덕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정열이 있다면 성실에의 정열이다.”
무작정 성실하면 된다고? 다시 돌아보는 안병욱의 문장은 관념의 향연이다. 예전엔 감미로운 잠언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면 감미롭지도 않다. 좋은 단어들만의 얼기설기 조합이다. 내가 입학한 대학의 철학과에 바로 그 안병욱 교수가 있었다. 그는 내가 1학년이던 1985년 1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그해 6월 나는 학보사의 3학년 선배를 따라 서울 명륜동 자택으로 정년퇴임 기념 인터뷰를 갔다. 그때도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씀만 쏟아내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정신좌표, 역사의식, 정열, 생명, 야망, 비판정신…. 시대와 불화하지 못했던 것은 그의 콤플렉스일지도 모른다.
1920년생인 그는 이 글을 쓰는 2012년 9월 현재 92세다. 건강하시길.
9. 『토지 - 제1부 1권』 (박경리, 삼성출판사, 1979년, 1,500원)
삼성출판사에서 1979년부터 나온 이 판본은 세로편집이다. 아버지는 이 소설책을 3부3권까지 총 9권 소장했다. 나는 80년대에 몇 권을 읽다 말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1993년부터 처음부터 다시 펴보았다. 어느 날 2호선 전철을 타고 가며 이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옆 사람이 내가 읽는 『토지』와 똑같은 판본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박경리 작가는 1994년에 이 대하소설을 완간했다. 5부 총16권이다. 아버지의 서재엔 4,5부가 없다. 『토지』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정치ㆍ사회적 격변기를 무대로, 몰락하는 지주 최참판댁의 몰락을 숨막히게 그렸다. 『토지』를 3부까지 다 읽고 박경리 작가의 다른 소설을 찾아 읽었다. 『김약국의 딸들』, 『파시』 같은 소설에 나오는 그녀의 간명한 단문들은 문장공부에 좋은 교본이 돼주었다.
장편소설에 재미를 붙인 건 대학 4학년 때인 1988년부터였다. 그때 한참 발간되기 시작하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으며 아버지 서재의 『임거정』(홍벽초, 사계절출판사, 1985년), 『장길산』(황석영, 현암사, 1983년)이 눈에 들어왔다. 고향에 내려갈 때면 그 책들을 꺼내 정신없이 읽었다. 그 이후 아버지 서재의 장편소설들은 거의 다 섭렵했다. “이놈아 눈은 가죽이 모자라서 뚫어놓은 게 아니야”라는 걸쭉한 입담이 누구의 것인지 지금은 헷갈린다. 장길산의 대사인가 임거정의 대사인가. 『토지』는 가장 나중에 읽은 아버지 서가의 장편소설이었다. 『토지』는 서사의 산맥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장편소설의 최고봉이었다.
10.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창작과 비평사, 1982년, 2,000원)
시집을 빼놓을 수 없다. 시를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예의다. 스크랩북 곳곳엔 시가 적혀있다. 그걸 증명하듯, 시집은 유난히 많았다. 아버지는 어떤 시인을 좋아했을까. 서정주? 박목월? 고은? 김지하? 이해인?
나는 중고생 시절 그 시집들을 부지런히 읽으며 문학적 감성을 키우지는 않았다. 다만 시집의 지은이와 제목은 일찍이 눈에 익혔다. 『농무』를 보면 신경림을 떠올렸고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보면 정희성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 이치였다. 『타는 목마름으로』 책날개를 힐끗거리다 당시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가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에서 주는 로터스(Lotus)상을 수상(1975년)했다는 사실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그것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사독재 시대에 민주주의를 향한 갈증이 함축된 한 마디 절규였다. 다시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목놓아 외친다면 청승 떤다는 욕 먹기 딱 좋다. 저항의지로서 ‘타는 목마름’은 잠시 접어두자. 그것은 우선 삶의 동력이다. 내 가슴 속 무언가 한 줄기 타는 목마름이 있다면 살아있다는 증거다. 아버지에게도 그것이 있었을까? 시를 욕망하는 마음은 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시 한 편을 바친다. 김지하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에 나오는 시다. 제목도 그냥 ‘시’다.
詩 |
사회생활을 하면서 장서를 소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아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집과 자신이 대표로 있는 인권단체 사무실과 교수연구실도 모자라 넘치는 책을 따로 위탁 보관할 정도였다. 아버지의 책이 5,000여권이나 됐다고 했지만, 이는 책을 사랑하는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일에 불과하다.
책을 놓고 아버지와 토론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부자간에 서로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다. 어린 시절 그닥 진지한 태도로 아버지의 서재에 접근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서가의 책들은 알게 모르게 내 문화의 젖줄이 되었다. 그런 책들을 매개로 아버지를 내멋대로 추억해보았다. 당신도 누군가에게 책으로 추억되는 존재인가?
‘아버지의 스크랩’ 연재를 모두 마칩니다. 2011년 8월10일부터 격주로 글을 올렸는데 13개월간 총 31회를 기록했군요. 일부는 글이 너무 길어 2~3회로 나누어 실은 적도 있지요. 1959년부터 1992년까지 아버지가 만든 26권의 스크랩을 따라 그때의 시대상과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미처 몰랐던 한국사회의 역사적 사건들을 많이 공부했습니다. 처음 접하는 메모와 각종 기록을 통해 아버지의 생소한 얼굴과 만나며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회를 맞아 아버지의 스크랩이 꽂혀있었던 서재의 다른 책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기회가 될 때 가족의 숨은 얼굴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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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고경태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 「한겨레21」「씨네21」편집장과 한겨레 esc 팀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 홈스쿨』(2011)과 『유혹하는 에디터』(2009), 『직설』(공저, 2011)이 있다. 가족을 사골국물처럼 글감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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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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