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고 싶다…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사랑! 사랑하고 싶었다. 다시 가슴 뛰게 살아 있음을 느낄 정도로 사랑하고 싶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딸아이들을, 남편을, 또 내가 만나는 많은 아이들을, 아직 만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가슴 절절하게 사랑하고 싶었다.”
글ㆍ사진 김영란
201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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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이들을 편한 길로 인도하지는 마옵소서.
그렇지만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옵소서.


-J.코르작


여행 5일째! 영국의 장엄한 역사적 유물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며 말로만 듣던 그 테제베(프랑스의 고속 철도)를 타고 프랑스로 넘어왔다. 그러나, 오늘 나는 낭만적인 광경은 뒤로한 채 딸아이와 기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다녀야 했다.

어젯밤 훈계 아닌 훈계를 하고나서-친밀함과 버릇없음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구별해야 할 것 아니겠냐며 너와 엄마 사이는 친구 같이 가깝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잊지 말자고 주절주절-서로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 유럽까지 와서 열다섯 살 딸내미와 이렇게 티격태격해야 하다니.

여기서도 나는 내가 선생이기 때문인지 자존심이 바닥을 친 엄마이기 때문인지 딸내미의 발랄함이 도를 지나쳐 무례해 보이기 시작했다. 예낭이에겐 그저 낯선 이국땅에서의 흥분이겠지만, 엄마 눈에는 아이의 태도가 영 마땅찮다.

난 오랫동안 벼르던 내 여행을 왔는데, 이게 뭐야? 딸내미의 사소한 행동에 신경이나 곤두세우고 있고…. 이런 내 모습에 실망스럽기도 하고, 화가 난다고 또 딸아이한테 그 화를 내버리는 게 한심스럽기도 하고…. 마냥 즐거울 줄 알았던 여행이 딸과의 심리전에 시차 적응과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과 같은 문제, 피곤까지 더해지니 짜증이 복받쳐 올랐다.

아침식사를 하는 테이블에 앉아서도 예낭이는 엄마보다 일행 중 이미 자기와 마음이 맞아버린 대학생 미현이와 수능을 막 마친 소현이 자매를 더 반기고 수다를 떤다. 이게 웬 질투? 자기네들끼리 통하는 언어로 수다를 떨고, 스마트폰을 가운데 두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즐기는 건 십 대들에겐 너무 당연한 일상일 뿐인데. 게다가 사람을 만나 금세 친하게 지내는 게 예낭이의 특기인지라 이 넓은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서 소심한 엄마만 찬밥 신세다.

물론 나도 주변에 같이 다니는 팀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농담 따먹기도 하고 다니지만, 나는 딸을 나 몰라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니진 않는데, 이놈은 그냥 내가 자기랑 같이 파리에 있다는 사실마저 까먹은 듯 그 언니들하고만 몰려다닌다.

그냥 서글펐다. 아니, 내가 왜 서글플까? 내가 예낭이 때문에 여기 왔나? 난 나 때문에 여기 왔는데 이 감정은 뭐지? 센 강을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고 아름다운 조명에 눈부시게 빛나는 에펠탑을 보지 못했다면 내 감정의 소용돌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센 강에서 올려다보는 에펠탑은 정말 황홀했다. 그 순간 나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고 싶었다.




“그냥, 선생님도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나와 만나고 싶었다. 무언가를 꼭 해야겠다고 전전긍긍하지도 않는 나. 내 나이도, 성별도 다 잊은 그냥 나. 동그마니 유람선 벽에 기대어 파리의 밤바람을 맞으며 삼십여 분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자유로웠다. 아무런 생각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서 있다보니 그냥 평온했다. 여기가 파리여서, 겉멋이 든 걸까? 아니면 파리가 내게 주는 선물인가? 그러면서 문득 솟구치는 감정 덩어리를 포착하였다.

그래,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진정한 사랑, 소중한 사랑을 하고 싶었고 받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가족들에게 받고, 가족에게 주었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나는 사랑이란 감정마저 밥 먹는 일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상으로 느꼈던 걸까? 새삼스럽게 웬 사랑 타령이야!

그런데도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어쩌면 내 딸아이에게도 나는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굴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사랑! 사랑하고 싶었다. 다시 가슴 뛰게 살아 있음을 느낄 정도로 사랑하고 싶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딸아이들을, 남편을, 또 내가 만나는 많은 아이들을, 아직 만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가슴 절절하게 사랑하고 싶었다.”


사랑이란 감정! 그 감정을 춤추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가슴 벅찬 감정을 느낀다. 이 감정을 오래도록 부여잡고 싶었다.

유람선이 정박하면서 딸과 다시 만났다.

“엄마 도대체 어디 있었어? 나 사진 많이 찍었다!”

사진기를 내밀며 자랑하는 예낭이. 진짜로 날 찾기는 했을까? 에펠탑 전망대로 올라가 파리 야경을 보는 일도 이젠 시큰둥했다. 그런데 예낭이는 왜 갑자기 나를 챙기는 거지? 문득 혼자 내버려 둔 엄마가 좀 안쓰러웠던 걸까? 아니면 내가 사랑받고 싶어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피운다는 걸, 애늙은이 같은 예낭이에게 벌써 들켜버린 걸까?

큰딸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가만히 옆에 서 있다. 내가 화가 난 것도 아니고 화를 낸 것도 아닌데 아이는 내 눈치를 살핀다. 아이에게 미안하다.

나는 예낭이와 어떤 관계일까? 어색한 이 시간을 나는 어떻게 채워야 하지? 내가 꼭 채워야 하나? 내가 엄마니까? 예낭이에게 뭐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난 정말 예낭이와 서로의 속마음을 나누고 싶긴 한 걸까? 우리가 나눠야 할 속마음이란 게 대체 있기는 한 걸까? 어쩌면 딸아이는 평소에도 짐 같았고 잔소리꾼이었던 나와 매일 24시간, 그것도 꼬박 열이틀을 붙어있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나에게 질려버린지도 모른다. 나는 예낭이에게 어떻게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엄마도 너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 딸뿐만 아니라,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사랑받고 싶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그들의 따스한 사랑 역시 받고 싶어 하는 나를 본다.”


그랬구나. 이 감정을 예낭이와 나눠야겠다. 솔직하게.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여긴 파리이지 않은가!




편집자의 말

광복절을 맞이하여 식품회사 천호식품에서 5일간 홈페이지를 통해 주부를 대상으로 ‘가장 해방되고 싶은 대상’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1위는 시댁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3040 엄마들도 한때는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자신만의 미래를 꿈꾸던 여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엄마가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딸로 살다가 어느 순간 아내란 이름을 얻고 ‘얼떨결에’ 엄마가 된다. 그 이후로는 모두가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 엄마.

엄마로 사는 데 온 힘을 다하다 어느 순간 정작 ‘나’는 사라졌음을 깨닫고 서글프다가도 엄마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현실에 숨 막힌다. 따라서 3040 엄마들이 가장 찾고 싶은 대상은 ‘나’일 것이다. 그런데 왜 주부들은 가장 해방되고 싶은 자신을 나 자신으로 꼽았을까? 그 말은 달리하면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피하고 싶은 대상은 정확히 ‘나’라기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저 타인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나'일 것이다. 엄마로 사는 동안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일이 중요하지만 엄마가 된 이상 나로서만 살 수는 없다. ‘엄마’인 동시에 ‘나’로 살아야 한다. 나만의 꿈을 갖고 사는 엄마가 행복하고, 그런 엄마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자녀 역시 행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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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맘, 때론 쌤, 그리고 나 김영란 저 | 한언
저자는 공립 초등학교, 대안학교, 기간제 교사, 소년원 상담교사 등을 거치면서 결국 맘과 쌤은 하나임을 깨닫는다. 가끔은 엄마란 이름에서, 교사란 이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와 함께 엄마 자신도 끊임없이 키워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꿈을 꾸는 엄마가 진정 행복한 엄마가 되는 길임을 피력한다. 이 책은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선 ‘진정한 나를 찾아 아이와 함께 꿈을 꾸고 부대끼며 성장하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때론 맘 #때론 쌤 #그리고 나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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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꾸다스

2012.09.30

나 자신에게 해방되고 싶다는 말, 아름다운 말이면서도 가장 슬픈 말인 것 같아요. 추석이라 그런가? 엄마를 돌아보게 되네요. 전 아직 엄마인 적이 없었는데, 엄마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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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기

2012.09.25

나 자신이 행복해야 남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저도 이번 추석 때 엄마랑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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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ngo

2012.09.21

어머니도 여성이고 한사람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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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