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자유를 향한 뜨거운 외침!
배우로서 「카르멘」은 인습과 습관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내게 무대 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준 캐릭터이자 작품이었다. 완벽하게 그 역할을 소화했다면 미련 없이 떠나보낼 수 있었을까? 그 부족함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오랫동안 나를 카르멘에게로 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글ㆍ사진 채국희
201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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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카르멘」 초연 첫날. 새벽까지 남아서 연습하던 그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막이 올라가는 무대 위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2010년 12월.
카르멘이 걷고 춤추었던 안달루시아의 바람소리와 거대한 용광로 같은 태양의 위력을 느끼고 돌아와 또다시 그 벅찬 감정으로 플라멩코를 추기 위해 무대에 섰다.

무대는 극장이 아닌 아주 작은 카페.
내가 지금까지 섰던 무대 중에서도 가장 작은 무대다.
그러나 그 좁은 공간을 메우는 집중된 에너지와 관객 앞으로 한발씩 내딛을 때마다, 나를 따라 움직이는 에너지의 흐름이 함께 어우러져 작은 소용돌이를 만든다. 촛불을 들고 내가 지은 시를 낭송하며 한발 한발 천천히 무대 위를 걷는다.






영혼의 불꽃 - 플라멩코

춤을 출 때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춤을 출 때 나는 비로소 외로운 섬이 아닌
독립된 대륙이 된다.

플라멩코……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서
발로 대지를 깨우며
손으론 자연을 어루만지는 내 안의 신을 만난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치우치지 않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에게 집중하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에
어느새 나는 없고 무한한 자유를 만난다.

천대와 박해를 받는 집시
아무것도 기대할 수도
보상받을 수도 없는
가난한 그들의 춤

플라멩코는
그러므로

자유를 향한 뜨거운 외침일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선 플라멩코 기타 선율이 흐르고 ‘카페 깐딴떼’처럼 서울의 작은 카페에서 플라멩코 선율과 시가 울려 퍼진다.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의 제안으로 ‘노숙 여성 쉼터’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올린 작은 공연이었다. 세비야에 갈 때까지만 해도 이런 공연은 예상도 못했었다.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느끼며 배운 플라멩코. 그것을 코끝이 시린 12월에 집 없는 이들의 따뜻한 쉼터 마련을 위해 춘다는 것은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10년 가까이 맘속에만 품었던 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새해부터 떠날 계획을 세우고, 뉴욕을 시작으로 세비야에 3개월 동안 머물며 안달루시아의 도시들을 여행하고 나만의 플라멩코 일주를 실행해 옮겼다. 두려움으로 시작해서 소중한 경험을 하고 이렇게 새해를 앞둔 12월에 서로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공연을 하게 된 지금 ‘떠나기를 참 잘했다’는 뿌듯함으로 기쁘다.

배우로서 「카르멘」은 인습과 습관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내게 무대 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준 캐릭터이자 작품이었다. 완벽하게 그 역할을 소화했다면 미련 없이 떠나보낼 수 있었을까? 그 부족함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오랫동안 나를 카르멘에게로 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로서 카르멘을 찾아서, 그리고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배우기 위해서 떠난 세비야행. 배우와 카르멘과 플라멩코. 이 세 가지의 공통분모는 아마도 자유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 자유라는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과정이 나를 안달루시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걷고 춤추게 만들었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 이를 수 있는 반면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서도 무언가에 자유롭지 못하게 얽매일 수 있듯이 꼭 여행을 해야만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로움의 극치는 감정이나 마음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우리가 쉽게 얽매이게 되는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아무도 모르니 지금 현재 내가 간절히 바라는 꿈 하나를 펼쳐 과감히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물리적인 거리를 이동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그 여정은 분명 자신만의 소중하고 극적인 여행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소심 길치 기계치 쿠키도 하지 않았는가. 간절한 꿈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나아간다면 후회 또한 없을 것이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누구와 함께 있든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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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채국희 저 | 드림앤(Dreamn)

낯선 곳을 여행하며 낯설고 인상적인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서가 아니다. 오히려 낯익은 광경들을 찾아가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혼의 독백과 같다.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배우기 위해 떠난 세비야행. 그녀는 세비야에 삼 개월 동안 머물렀고, 플라멩코를 알기 위해 뉴욕, 안달루시아의 도시들, 마드리드를 찾아갔다. 그리고 배우 채국희의 시선과 사색은 그녀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자유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카르멘 #플라멩코 #세비야 #안달루시아 #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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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여신

2012.08.30

와..............이쁘다라는 말이 나와요. 작가님 사진도 참 뭔가 아름다움이 묻어나고
마지막 사진의 배경에서도 아름다움이 느껴지네요 :)..뭔가 따스해지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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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8.18

스페인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첫공연이 '노숙여성쉼터'마련이라는 좋은 취지의 공연이라는 점도 뜻깊으셨겠어요. 일부러 그렇게 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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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꾸다스

2012.08.03

플라맹코 안에서 무엇을 꿈꾸셨나요. 그리고 그 꿈의 근원을 찾았나요. 자신을 찾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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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국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