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잘 하세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출근길 자동차 접촉사고 때 5분만 지나면 꼭 듣게 되는 대사가 있다. “어따 대고 반말이야?” 문제는 반말 잘못 쓰다간 봉변은 물론, 심지어 목숨마저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글ㆍ사진 이이후
201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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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에 있었던 일이다. 지하철을 타고 틀니 등 치과 용품을 수도권 병원으로 배달하는 오모(70)씨가 오후 5시쯤 혼잡한 지하철 내부에서 몸이 부딪친 뒤 사과하지 않는다며 77세 김모씨를 주먹으로 때려 숨지게 한 것이다. 고령의 김씨는 쓰러지면서 왼쪽 넓적다리뼈가 부러졌고,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8일 만에 숨지고 말았다. 밀려드는 승객으로 몸이 서로 부딪쳤을 뿐인데, 사람 하나가 제 명(命)에 못살고 간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 경우 속칭 ‘안 봐도 비디오’다. 한쪽이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고, 다른 한쪽도 덩달아 목청을 높이고, 한쪽이 “너 대체 몇 살이야?” 외치고, 다른 한쪽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맞받아치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출근길 자동차 접촉사고 때 5분만 지나면 꼭 듣게 되는 대사가 있다. “어따 대고 반말이야?”
박경리의 ‘토지’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허허허, 입맛없게 그놈의 존대 그만둘 수 없나”, “존대하고 뺨 맞는 일 없다 하더라”. 예의를 다하면 모욕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일 텐데, 문제는 반말 잘못 쓰다간 봉변은 물론, 심지어 목숨마저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 가입국 193개국 가운데 14세(중2)는 15세(중3)에게 존댓말하고, 15세는 14세에게 무작정 반말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한번 들어보시라. 엇비슷해 보이는 중학생들이 모여 서서 한 녀석은 “선배님 그러셨어요. 괜찮으셨어요?” 굽신거리고, 맞은편 녀석은 “너는 잘해야 한다”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남 얘기일 때는 우스울 뿐이지만, 제 자식이 밖에서 그 꼴을 보인다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지금이 어느 땐데.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이 무슨 해괴한 대화법인가.

 

존칭 표현은 영어를 비롯한 서양어에도 있지만, 말 그대로 어려운 상대에 대한 ‘조심스러움’의 표현일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서양 사람들이 우리말을 배울 때 가장 어려워 하는 점이 존댓말이다. “밥 먹었냐” “식사 하셨나요” “진지 드셨습니까”가 다르니, 미칠 지경일 것이다.

 

동아시아 3국으로 국한하더라도, 정작 유교를 만들어낸 중국어에는 존댓말이 거의 없다. 영어의 ‘please’에 해당하는 ‘淸’이나 ‘添麻煩(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만~)’ 같이 예의를 갖추는 말이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말에서처럼 존댓말과 반말을 명확하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서양언어와 비슷하다. 오랜 기간 동안 동양문화를 선도해왔던 국가임에도 그러하다.

 

일본어는 겸양어/존경어/정중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경어법이 유난히 발달해 있다. 우리말의 ‘~입니다’ ‘~합니다’에서 쓰는 ‘~ㅂ니다(~데쓰~です)’ 어법이나 ‘~요(~마쓰~ます)’를 붙이는 게 정중어다. 존경어는 낱말 앞에 ‘お’나 ‘ご’를 넣어 말하는 것으로, ‘출발하다’라는 뜻의 ‘出發する’를 ‘ご出發になる’로 바꾸면 ‘출발하시다’가 되는 식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그렇지 일상 생활에서는 대부분 서로 말을 낮춘다. 심지어 초등학생이 담임 교사에게 반말을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시피,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심지어 ‘압존법(壓尊法)’이라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할 때도 있다. 국립국어원 풀이에 따르면 “문장의 주체가 화자(話者)보다는 높지만 청자(聽者)보다는 낮아, 그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어법”이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아직 안 왔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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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간 박완서 선생도 생전에 말한 바 있다. 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아주 젊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박완서씨 계세요?” 한단다. 요즘 젊은층이 아주 예의가 없다는 취지로 한 말이지만, 정작 전화를 건 당사자는 그 말이 왜 예의에 벗어나는 지 아마 전혀 모를 것이다. 또 논리적으로는 결례가 아니다. “어이, 김씨”의 용례와 달리 ‘~씨’는 서구 ‘Mr.’의 대응어로서 하대(下待)의 뉘앙스는 있지만 아주 중립적이고 공식적인 호칭인 것이다. 그러나 나이 70이 넘은 노작가의 입장에서는 ‘박완서 선생님’이어야 하지 않냐는 속뜻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여러 현상에 대해 대체로 열려 있는 작가조차 이럴 정도이니 이 땅의 갑남을녀(甲男乙女)에게 존댓말과 반말의 차이가 주는 어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넓다.

 

나는 이 자리에서 존댓법의 연원에 대해 논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의 대비에도 관심 없다. 나는 오로지 그 과잉스런 존댓말의 폐해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부작용 하나를 들어보겠다.

 

얼마전 총선 정국에서 소설가 이외수씨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뒤 네티즌의 ‘몰매’를 맞은 적이 있다. 그는 글에서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 중에서도 낙후된 접경지역, 철원, 인제, 양구, 화천을 이끌어 갈 새누리당 정치인 한기호 후보를 응원합니다. 추진력과 결단력이 있습니다. 호탕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라고 했다. 앞서 이씨는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에 대한 지지를 공개선언했고, 이전에도 한미 FTA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글 등을 여러 차례 올려 유명 인사 가운데 대표적인 ‘야권 지지자’로 꼽힌다.


그러나 그 글 하나로 난리가 나자 이씨는 “자기네 정당 후보 여러 명 추천해 드렸는데 그때는 가만히 계시다가 다른 정당 후보 딱 한 명 추천해 드리니까 불쾌감 드러내시는 분들. 저는 분명히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약이나 활동 검토한 다음 제 소신대로 소개하겠다고 미리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외수씨는 평생 글로 먹고 산 사람이다. 팔로어가 132만명에 달해 ‘트위터 대통령(트통령)’으로 불리는 파워 트위트리안이기도 하다. 글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두번째로 올린 글 “자기네 정당 후보 여러 명 추천해 드렸는데 그때는 가만히 계시다가~”를 보자. ‘자기네’라는 우리말은 대상에 대해 호의적일 때 쓰는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동사는 ‘추천해 드렸는데’와 ‘가만히 계시다가’이다. ‘추천했는데’와 ‘가만히 있다가’라는 표현이 훨씬 자연스러운 맥락이다. 그걸 이씨가 몰랐을까. 그랬을 리 없다. 일부러,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좀더 정확히 짚자면 상대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쓴 것이다. 아니면, 비꼬는 표현으로 썼을 것이다. 담임 교사가 자기 반 아이들에게 “더운 날 게임에 정진하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신가” 식으로 말이다. 어느 쪽이든 정공법(正攻法)을 피한,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유명인사’ 이외수의 비굴함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흔히 이 모든 정황을 유교의 잔재(殘滓)로 본다. 600년 조선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21세기 현대 한국인의 골수에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언행과 사상을 후대인들이 정리한 ‘논어’에는 “학생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웃어른을 공경하며(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학이-學而> 정도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공자 자신은 “조정에 나아가 하대부와 말씀할 때는 편안하게 하시고, 상대부와 말씀할 때는 공손하게 하셨다. 임금이 계실 때는 불안한 듯 했으나 위엄이 있으셨다” <향당-鄕黨>에서 보듯 아랫사람에게도 예를 갖췄고, 윗사람에게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말의 존댓법을 거부하면 상당히 신선한, 경우에 따라 매우 충격적인 시각을 갖출 수 있다. 서정주의 그 유명한 ‘자화상’(1939)의 도입부를 보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만약 이 구절을 우리 경어법에 따라 썼다고 가정해보라. “아버님은 종이셨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으셨다.” 요절한 소설가 김소진이 “아버지는 개장수였다”고 말할 때도 “아버지는 개장수셨다”고 써서는 전혀 본래의 맛이 살지 않을 것이다.

 

‘올드 보이’(2003)로 프랑스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도 우리말의 경어법을 잘 비틀어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친절한 금자씨’가 낳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이영애의 대사 “너나 잘하세요.” 정말 그렇다. “어, 말이 짧네” 운운하는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 너나 잘하세요.

 

한국 청년에게 고한다. 손아랫사람이라고 함부로 반말하지 말라. 교사는 무슨 권리로 학생들에게 반말하는가. 부장은 무슨 권리로 과장에게 반말하는가. 반말과 막말은 한 끗 차이다. “빨리 처리하시오”“빨리 좀 해라”는 듣는 입장에선 천양지차다. 물리적 폭력만 폭력이 아니다. 육체의 멍은 때가 되면 사라지지만, 언어 폭력이 낳은 심리적 상처는 죽을 때까지 의식 저변에 깔려 전 생애를 지배한다. 아무런 사회적 필연 관계가 없는 완벽한 타인, 제3자에 의한 악플, 그 쓰레기 같은 언어가 남기는 후유증들을 떠올려보시라. 계량화가 불가능해서 그렇지, 한국인 각자가 갖고 있는 그 트라우마가 초래하는 ‘심리적/사회적 손실’의 기회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성문법 못지 않게 엄정한 게 관습법이다. 우리네 존댓말은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철옹성 관습법령이다. 그러니 별 수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상호 공대(恭待)하자. 노인이 청년에게, 손님이 룸살롱 아가씨에게, 학생주임이 아들뻘 재학생에게, 사장이 신입사원에게, 검사가 피의자에게, 점주(店主)가 아르바이트생에게, 무엇보다 중2가 중1에게 존댓말을 쓰자. 그러면 저절로 진정한 민주사회가 된다.

 

#한국어
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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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a223

2012.07.27

나이가 많든 적든 서로에게 존대해야 말로 상처입는 일이 줄어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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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낭만푸우

2012.06.05

음... 논지가 뭔지 논점이 뭔지 정확하지가 않군요. 그래서 서로서로 존댓말을 하자는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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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2012.05.31

저도 밑밑분 의견에 무한 공감합니다. 한국어와 예의는 정말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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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후

신문을 읽고, TV를 보고, 거리를 걸으며
우리가 무심결에 범하는 오류와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인습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 때의 세상이 좀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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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1926년 10월 28일(음력)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을 비롯하여 『파시』(1964), 『시장과 전장』(1965)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하여 4만 여장 분량의 작품으로 26년 만인 1994년에 완성하였다. 박경리 개인에게나 한국문학에 있어서나 기념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원고지 분량에 걸맞게 6백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시간적으로는 1897년부터 1945년까지라는 한국사회의 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격동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동학혁명에서 외세의 침략, 신분질서의 와해, 개화와 수구, 국권 침탈,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종적인 축으로 하여 진주와 간도(만주), 경성, 일본 등으로 삶의 영역이 확대되고 윤씨 부인과 최치수, 최서희로 이어지는 최참판댁과 연결되어 삶을 엮어가는 평사리의 주민들, 김길상이나 김환을 중심으로 한 민족운동에 투신하는 인물들, 최참판댁의 전이과정 속에서 부침하는 신지식인들 등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이 형상화되어 있다.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土地)』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선정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문학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으며, 연세대학교에서 용재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1996년부터 토지문화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현대문학 신인상, 한국여류문학상, 월탄문학상, 인촌상, 호암 예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 기념 메달’을 수여 받았다. 박경리의 문학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소외문제, 낭만적 사랑에서 생명사상으로의 흐름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 그 생명사상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바로 '토지'이다. 박경리에 의하면 '존엄성은 바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파시』 제1권, 131면, 1993)인데 그의 작품에서 이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생명본능 이상으로 중요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게 하는 기존의 관습과 제도 및 권력과 집단에 대한 비판, 욕망의 노예가 되어 존엄성을 상실한 인간들에 대한 멸시와 혐오는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존엄성을 상실할 때에 바로 한이 등장하는 것이며 이 한을 풀어가는 과정이 곧 박경리 문학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김은철 상지대 국문과 교수) 지금까지 이 작품에 대한 여러 논의들, 즉 역사소설인가 아닌가가 문제시 되었다거나 농민소설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었다거나 총괄체 소설, 가족사 소설, 민족사 소설, 총체소설 등의 다양한 장르로 규정되어 온 것은 곧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서사구조, 다양한 층위의 세계가 중층적인 구조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문학뿐 아니라 환경과 생태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999년 원주 오봉산 기슭에 토지문화관을 세우고,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2003)하고,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로 엮은 환경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2004)도 출간하는 등 사회와 인간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놓치 않았다. 2008년 5월5일 향년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한국현대문학의 영원한 고향으로 남았다. 타계 이후 정부에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장편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현대문학]에 연재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수필집 『Q씨에게』, 『원주통신』, 『만리장성의 나라』,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생명의 아픔』 등과 시집으로는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 『우리들의 시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등이 있다. 그밖의 주요작품에 『나비와 엉겅퀴』, 『영원의 반려』, 『단층(單層)』, 『노을진 들녘』, 『신교수의 부인』 등이 있고, 시집에 『애가』가 있다.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되었으며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