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 옷이 내가 존재하는 것을 도와줄 거야!
내가 만난 여성들 중에는 옷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입을 때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옷을 잘 입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선택하고 조화롭게 꾸미는 것이 좋다고 했다.
글ㆍ사진 조경란
201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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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소설가로서 내가 자주 받는 질문들 중 하나는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난감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 그 질문은 책을 읽어도 글쓴이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질문들처럼 나는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인터뷰어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내내 생각한다. 나는 과연 무엇에 관해 쓰고 있는 걸까.


내가 지금보다 젊고, 신인작가라고 불렸을 때는 세계와 싸우고 싶었다. 나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 부당한 것들에 관해 쓰고 싶었다.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젊은 작가라고 불러주지 않는 지금은 나에게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에 관해 쓴다. 그것은 고통일 수도 있고 슬픔, 죽음,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 더 명료하게 말한다면 두려움fear이다.


두려움이라고 말하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관계나 소통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거미에 대한 두려움, 무지에 대한 두려움, 지하철을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넓은 장소 혹은 비좁은 장소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두려움의 종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다. 나는 타인에 관해 알고 이해하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가 갖고 있는 두려움에 관해 대화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두려움을 털어놓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잠깐 가르친 적이 있다. 첫 수업은 매번 이 주제로 하고는 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두려움들을 열거하기. 그러곤 모든 가족들이 각각 비행기를 타는 것,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자동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존 치버의 「다리의 천사」라는 단편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식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학생들에게 두려움에 관해 말하게(털어놓게) 하는 수업 방식이 얼마나 폭압적인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학생이라면 그런 것을 요구하는 문학 선생이 정말 싫을 것 같았다. 수직적인 관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곧 그 수업 방식을 그만두고는 이렇게 쓰게 하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 처음 만난 사람이거나 앞으로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 경우에도 나는 은근슬쩍 그렇게 물어보곤 한다. 물론 나도 그것에 관해 말해야 한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를 읽다가 혼자 웃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좋아하지 않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동시에 좋아하지 않는 것에 관해 쓰고 있었다. 롤랑 바르트가 좋아하는 것은: 샐러드, 치즈, 아몬드 파이, 지나치게 차가운 맥주, 손목시계, 만년필, 피아노, 커피, 사르트르, 포도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딸기, 정치와 성의 결합, 부부싸움 장면,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저녁시간.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동시에 좋아하지 않는 것’은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며 명백히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한다.


내 짐작이지만 그는 위의 열거 방법을 통해 나의 육체는 당신과 동일하지 않다 혹은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없다’라고 말하려는 듯 보인다. 나에게는 마지막 항목이 가장 흥미롭고 어렵게 느껴진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놓고 상대방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금방 알게 되는 사실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실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거다. 좋아하는 것은, 서로 너무나 많다.


내가 좋아하는 것, 이런 것을 열거하며 이야기 나누다보면 즐거워지고 뜻밖에 친밀감 같은 게 생겨난다. 두려움에 관해 서로 털어놓았을 때의 친밀감과는 다르다. 뭐랄까, 보다 가볍고 유쾌한 친밀감이라고 할까. 그리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발화하게 될 때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과 나의 불완전성과 모순을 이해하고 알게 되는 경험을 얻는다. 우울하고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는 잠을 자고 일어나도 침대가 아니라 습기 찬 동굴 속에서 기어나오는 느낌이다. 그럴 땐 의지를 발휘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러면 그 동굴 입구쯤에 슬며시 햇살 한 자락이 비쳐드는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에 관해, 처음으로 지금 떠올려보고 쓴다. 심야 통화, 숲, 호수, 비, 폭우, 남자의 눈물, 키위, 퍼fur, 고양이, 나리 과科의 꽃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들. 


두려움에 관해서라면 앞에서 열거한 것 중에 지하철을 타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피하는 사람이 돼버렸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최면술에 관한 강의도 들은 적이 있지만 최면조차 걸리지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지하에 있는 술집도 안 가고 식당도 안 간다. 가게 돼도 금방 나온다. 당연히, ‘계단’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있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에는 매혹당한다. 한데 모서리는 좀 다른 모양이다. 계단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하다.


예닐곱 살 때 계단에 얼굴을 정면으로 박듯 넘어져 입술에 흉터가 생긴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8센티미터 힐을 신은 채 세 살배기 조카를 안고 동네 콩나물해장국집 계단을 내려오다 구른 적이 있다. 애 뒤통수와 보도블록이 퍽, 하고 부딪치는 순간, 지금부터 0.0001초 후 벌어질 장면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고 나는 그때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에스컬레이터는 한결 괜찮다. 이것은 계단이 아니라 움직이는 기계다. 하지만 생각뿐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조차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게 된다. 이 수송기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승객의 안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황색 라인이 그려진 스텝과 스텝 사이에는 발이 끼지 않도록 가드의 표면에 매끄러운 불소 고무가 코팅되어 있으며 만약 발이 끼거나 난간의 인렛 부에 손이 끌려들어갔을 때도 자동적으로 안전장치가 작동하게 돼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탔다면 에스컬레이터를 믿어야 한다. B라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B를 믿어야 하듯. 의심은 대체로 좋지 않다. 나는 마음을 놓는다. 속도는 분당 30미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주위를 둘러보기 알맞은 속도다. 이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보낸 시간도 적진 않은 것 같다. 


언제나 쌀쌀한 계절에 혼자만 가게 되어 더 특별해진 도시, 암스테르담에서였다. 진 트렌치코트에 검정 폴라를 받쳐 입고는 레이체 광장을 쏘다니다가 ‘메츠&코Metz&Co’ 백화점에 들어가 오래되고 폭이 좁은 걸로 유명한 에스컬레이터를 작정하고 한번 타보기도 했다.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는 일.


어려운 일도, 타인의 이해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는 사소한 일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나한테는 그렇지가 않고 계단 앞에 서면 나는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인가 절실히 깨닫곤 한다. 두려움.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어떤 크고 작은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고 알고 싶다.


자, 다시 에스컬레이터 이야기로 돌아가자. 고객의 안전한 수송이 가장 큰 목적인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는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을까. 이러한 수송기관의 탄생은 많은 사람들이 용이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 거대한 건축물과 타워들, 그리고 이 인공적인 낙원이라 불리는 백화점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다.


나는 입는다, 나는 존재한다


십일월이 시작되면 엄마 얼굴에 주름이 부쩍 느는 것 같다. 김장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배추 파동은 지나갔지만 엄마는 여기저기 전화해 정보를 교환하고 믿을 수 있는 절임배추를 구하는 일에 하루를 다 보내고 있다. 자매들과 나도 다르지만 엄마와 내 성격도 아주 다르다. 엄마는 김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십일월 내내 김장 생각만 하는 사람이고, 나는 하게 되면 하는 거지 뭐, 매사에 늑장을 부리는 타입이다. 서로 사십 년 넘게 같이 살고 있는데도 성격은 조금도 닮지 않는다. 덕분에 십일월이 되면 나도 김장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단 김장을 해놔야 엄마가 편안한 얼굴로 밥도 짓고 잠도 주무시니까.


어제 총각김치를 담근 엄마는 지금 거실 바닥에 신문을 깔아놓고 앉아 혼자 마늘을 다듬고 있다. 식탁에 앉아 신문을 펼쳐 읽는데 마음이 불편하다. 엄마 옆에 쭈그려 앉아 물기를 뺀 마늘 꼭지를 칼로 자르기 시작한다. 마늘은 단단하고 희고 크기도 일정하다. 어디서 이런 좋은 마늘을 구했어? 엄마 얼굴이 득의만만해진다. 작업실 가야 되지 않아? 엄마가 흘긋 나를 보며 묻는다. 그러나 만류하지 않는다. 마늘은 커다란 플라스틱 그릇으로 가득이다. 하나라도 손을 보태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엄마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일, 마늘을 까고, 마늘 꼭지를 깨끗이 다듬고, 붉은 고추를 마른행주로 닦아내고, 고르게 무채를 썰고, 멸치를 다듬는 종류의 일을 아주 좋아하는 걸. 십 년 전인가, 「코끼리를 찾아서」라는 자전소설 끝에 이렇게 썼다. 마음 상한 일이 있거나 자존심이 상할 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식탁에 앉아 멸치를 다듬는다. 멸치가 없으면 땅콩 껍질이라도 깐다. 그러면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곤 흥, 뭐 이까짓 일로! 하는 마음이 된다. 마늘 꼭지를 다듬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전부터 나는 단순하고 손을 움직여야 하고 몰두할 수 있으며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좋아했다. 한때 새벽에 벌떡 일어나 학교 등교 전에 주산학원에 열심히 다녔던 이유도, 남들 입시준비 한창인 고등학교 2학년 때 통기타를 배우러 다닌 이유도, 첫 조카가 막 생긴 십이월에 버스를 타고 명동으로 뜨개질을 배우러 다닌 것도 다 비슷한 이유에서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뜨개질도 숄이든 목도리든 하나 다 완성할 때까진 잠도 안 잔다. 십자수가 유행하던 무렵 고민에 빠졌다. 시작할까 말까. 긴 원고를 앞두고 있던 중이었다. 과감히 포기했다. 양궁, 바둑, 낚시도 그와 유사한 이유로 아직 시작 못 하고 있다.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때였다.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하러 한 사람씩 차례를 기다렸다가 교무실에 가야 했다. 내 성적으로 서울 시내에서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험이라도 꼭 쳐보고 싶은 학과가 있었다. 그냥 해보는 말이 역력하다는 얼굴로 담임 선생님이 어디 가고 싶냐? 물었다. 얌전한 목소리로 저, S대 의상학과 가고 싶어요, 했다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출석부로 머리를 한 대 맞았다. “야, 정신 좀 차려라 이놈아.”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소리긴 했을 거다. 그 시절 그 대학 의상학과는 상위권 성적이 아니면 꿈도 꾸기 어려운 데였으니까. 한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러니까 옷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집 앞에서 142번 버스를 타고 상도동, 한강, 갈월동, 용산, 서울역을 지나 서대문에 있는 여자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는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수도복장학원’이라는 간판을 매일 아침 눈여겨봤다.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지로 산업근무를 나가 있던 십 년 동안 엄마는 우리 세 자매를 키우며 부업을 했다. 희고 약간 납작하면서도 톡톡한 천으로 여러 번 매듭을 지어 작고 동그란 중국식 단추를 만드는 일이었다. 치파오에 다는 그런 단추 말이다. 나는 부업을 하고 있는 엄마를 지켜보는 것이 좋았고 단추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다 만들어진 중국식 단추는 작지만 단단했고 정교했으며 내가 좋아하는 원圓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엄마를 따라 중국식 단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 역시 단순하고 손을 움직여야 하고 혼자 할 수 있고 몰두할 수 있는 일들에 속했고, 어쩌면 그 단추를 만드는 일이 내가 그런 일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막의 나라에서 아버지가 힘들게 생활비를 벌어오는 동안 우리도 엄마 명령대로 근검절약했다. 낡고 해어진 옷도 버리지 않고 자투리라도 모아 어딘가에 다시 썼다. 알록달록한 갖가지 천들이 서랍에 항상 가득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가위를 들고 그것을 적극 활용했다. 동생들의 마론인형 옷, 주로 이브닝드레스나 나팔바지, 투피스 같은 것은 내가 다 만들었다. 마론인형이 덮고 잘 솜이불까지. 커서도 옷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중학교 1학년 동안 교복을 입고 다녔다. 일 년만 지나면 교복 자율화가 시작될 거였다. 교복을 입는 게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매일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게 즐겁진 않았지만 자율화가 돼도 마음대로 옷을 사 입을 수 없는 우리 집 형편 때문에 걱정 되었다. 정교하게 주름을 잡은 개더스커트와 어깨가 볼록 솟은 퍼프소매 블라우스를 만들고 자수를 놓던 가사 시간만큼은 교실에 있어도 없는 것 같던 내 존재가 부각되었다.


교복 자율화가 시작된 1983년 봄, 엄마와 나 사이에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었다. 옷을 사달라는 사춘기 딸과 어린 게 벌써부터 사치만 한다고 여기는 엄마와. 어느 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바꿔 입을 옷이 없어 사흘이나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간 다음 날이었다. 현대시장에서 본, 어깨에 테일러칼라처럼 흰 레이스가 하늘하늘 달린 인디언핑크색 블라우스를 사주지 않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토니 다키타니」에 나오는 여자 생각이 난다. 일러스트레이터인 고독한 토니 다키타니는 어느 날 원고를 받으러 온 출판사의 새 직원을 보고는 사랑에 빠져버린다. 언제나 옷차림이 멋있어 보이는 여자였다.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고 드디어 토니 다키타니의 고독한 삶은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연일 새 옷과 구두를 사들이자 토니 다키타니는 불안을 느낀다. 구매를 조금 삼가는 게 좋겠다고 넌지시 말한다. 어느 날 옷을 환불하고 난 후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방금 환불한 옷, 그 코트와 원피스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신호가 바뀌고, 그녀는 다시 그 옷을 사러 가기 위해 튕겨나갈 듯 힘껏 액셀을 밟는다. 대형 트럭이 전속력으로 그녀의 차머리를 박는다. 토니 다키타니에게 남겨진 것은 이제 아내의 방 하나 가득한 사이즈 7짜리 옷더미와 이백 켤레나 되는 구두들이었다. 장례식을 마친 그는 비서를 모집하기 위해 신문에 구인광고를 낸다. 사이즈 7, 신장 161센티미터 전후, 신발 사이즈 22의 여성을 구함, 월급 최우대. 그리고 한 여자가 그의 집으로 온다. 영화에서는 미야자와 리에가 열연했다. 첫 데이트 때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수줍게 미소 짓는다. “옷을 좋아해요.” 그리고 토니 다키타니가 옷 사는 걸 조금 삼가면 어떻겠냐고 말했을 때 그녀는 “왠지 자신이 텅 비어버린 듯한 기분”을 느낀다. “공기가 적은 혹성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을.


내가 만난 여성들 중에는 옷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입을 때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옷을 잘 입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선택하고 조화롭게 꾸미는 것이 좋다고 했다. 옷은 그저 옷이 아니라 자신과 일치시켜 생각하게 되는 사물이라는 이유에서. 나는 잘 이해한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옷은 스스로 ‘자기창조self-creation’한다. 입는 사람의 창조에 힘을 불어넣어주곤 하는 것이다.
핑크, 레이스, 둘 다 지금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핑크에 집착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두 조카 중 네 살짜리 여자애는 핑크 옷 핑크 핀 핑크 가방만 보면 어디든 한달음에 달려간다. 그 꼬맹이가 큰이모인 나를 유독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를 안다.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이해해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건 큰이모가 최고니까.


엄마는 고집부리고 있는 나를 쟤가 진짜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나 하는 눈으로 보다가 물었다. 말해봐, 왜 꼭 그 옷을 입어야 하는지. 나는 곧장 대답했고 지금도 그 대답을 기억한다. 열다섯 살의 사춘기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 옷이 내가 존재하는 것을 도와줄 거야! 


마늘 꼭지를 다듬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멸치가 없으면 땅콩 껍질이라도 깐다, 뒤에는 이런 문장이 이어진다. “가끔은 이쁜 옷을 차려입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파스타를 먹고 와인을 마시기도 한다”라고. 그 ‘이쁜 옷’을 사야 할 때가 있고 그런 옷이 꼭 필요한 날이, 인생에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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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조경란 저/노준구 그림 | 톨

소설가 조경란이 쓴 백화점을 직접 조명한 문화 에세이다. 백화점이라는 ‘장소’가 현대인들에게 갖는 의미와 기능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책은 현장 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깊이와 넓이가 더해져 오롯이 백화점을 다룬 최초의 논픽션이 되었다. 정신적인 삶, 물질적인 삶 사이에서 갈등한 저자의 고민이 엿보인다…

#백화점 #조경란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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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

2012.04.13

저도 옷골라입은걸 귀챦아하는 타입이예요~ 옷은 그저 크게 경우에 어긋나지 않고 깨끗하게 입으면 된다는 생각^^ 그러다 보니 가끔 눈팅이라도 아이쇼핑을 즐겨하는 막둥동생에게 타박을 당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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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4.10

전 옷 입는 걸 귀찮아하는 타입인데. 그냥 편한 옷이면 된다라는 식이라서요. 가장 큰 이유는 체형 때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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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주변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고독과 우수를 부감시키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작가 조경란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 후에 서울예대 문학창작학과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나의 자줏빛 소파』『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중편소설 『움직임』,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백화점』 등이 있다.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