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글만 써서 먹고 살기엔 너무 힘들지만…
무지개 창작 식당을 차린 것은 작가가 되는 법을 상담해주고 싶어서다. 그렇다고 대단한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은 아니다.
글ㆍ사진 서지원
201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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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문을 열었다, 무지개 창작 식당

10월의 거리에 비가 내린다. 세상이 젖는다. 가는 비는 오는 듯 마는 듯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세상은 젖고 있다. 세상이 원래부터 저런 잿빛은 아니었을 테니까.
이 비가 그치면 추워질까? 계절은 그렇게 바뀌고, 세월은 그렇게 쉬지 않고 스치고 지나간다. 시간 앞에서 나는 항상 작아진다. 드디어 문을 열었다, 무지개 창작 식당.

아직 간판도 달지 않았다. 손님이 없는 건 당연하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갖고 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손님이 올까 봐 지금은 조금 두렵다. 메뉴는 두 가지, 무지개 맛 국수와 무지개 맛 비빔밥.
무지개 맛이 무슨 맛이냐고 묻는다면, 흠,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한 마디로, 일곱 가지 맛이 들어간 무지개 맛이다. 나는 작가다. 그렇게 대단한 작가는 아니다.

무지개 창작 식당을 차린 것은 글을 쓰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다. 세상에는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지만, 그래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분들에게 무지개 맛의 음식을 내놓고 싶다.
무지개 창작 식당을 차린 것은 작가가 되는 법을 상담해주고 싶어서다. 그렇다고 대단한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은 아니다. 나는 작가이긴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단한 작가가 되는 법을 알려드리지는 못한다. 단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경험담을 나누고,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조언을 해줄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책을 썼다. 주로 어린이 책이다. 100권 이상 쓴 것 같다. 정확하게 얼마나 썼는지 세보지 않았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써왔다. ‘어떻게 그럴 수가?’ 하고 묻는 분들이 있다. 난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쓰게 됐기 때문에 쓴 것이다.

내가 무지개 창작 식당을 차리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 년쯤 전이다. 내 책이 나오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지인들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옛 직장의 동료도 있고, 대학 때 동창도 있고, 우연히 알게 된 아주머니도 있으며,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선생님도 있다.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 그 중에서 어린이 책 작가나 동화 작가(어린이 책과 동화책은 조금 다르다)가 되고 싶은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들에게 몇 가지 어쭙잖은 조언을 해주면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구체적이고, 단계적으로 작가가 되는 법, 글을 쓰는 법을 알려줄 수 있을까, 하고.

그래서 그동안 100권 이상의 책을 쓰면서 겪어왔던 개인적인 경험을 살려 작가가 되는 법을 조금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들려주고 싶었다. 대단한 경험은 아니라도 몇 가지 알아두면 좋은 것도 있다. 그렇다고 창작법을 알려주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창작법이란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창작법을 배운다고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미 많은 사람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창작법은 여전히 사기를 친다! 창작법 책은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처럼 만병통치 같은 약을 판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출판 현장의 소리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편집자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출판사에 제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출판사들은 어떤 원고를 찾고 있는지, 인기 있는 소재와 주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자꾸 놓치게 돼서 편집자들을 실망시키는 글쓰기의 기본이란 게 무엇인지 등이다. 글만 잘 쓰면 책이 나오고 유명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세상을 잘 모르고서 하는 얘기다. 책이 출간된다는 건 출판사 입장에서 작가를 믿고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책을 한 권 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당신이 출판사 사장이라면 당신에게 천만 원의 돈을 투자하겠는가? 어쩌면 한 방에 날려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위험한 투자다. 당신의 글이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믿는가?

얘기가 조금 벗어났다. 휴, 아직 손님은 없고, 비는 조금 굵어졌다. 아무래도 금방 그칠 비는 아니다. 식어버린 국을 끓여놔야 할까?
예전 생각이 난다. 나는 작가를 하기 전에 출판사에서 일했고, 신문사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출판사에서는 이런저런 종류의 요란한 책들을 만들었고, 기획부터 편집, 제작, 마케팅 관리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책이 완성되어 판매가 되는지 잘 알고 있다. 대부분 작가들은 자신의 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정확하게 잘 모른다. 수익은 어떻게 해서 들어오고, 얼마나 판매가 되어야 그나마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지도 모른다. 모르면 소통이 안 된다.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된다. 독자와의 소통, 시장과의 소통, 편집자와의 소통 등은 지금 시대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앞으로 나는 무지개 창작 식당에 출판사 편집자들과 출판사 사장들, 영업자들, 인터넷 서점의 에디터들, 다른 작가들 등을 초대할 예정이다. 초대해서 작가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원고 청탁이 이뤄졌는지, 어떤 책은 왜 성공을 했고, 어떤 책은 왜 실패를 했는지, 어떻게 팔았기에 이런 썩을 콘텐츠가 그렇게 성공했는지 등을 물어볼 생각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창작법이 아니라, 바로 이런 현장의 목소리 아닐까?

문학청년 시절, 내 꿈은 글만 써서 먹고 사는 것이었다. 다른 일은 안 하고 오로지 글만 써서 먹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천장을 보고 빈둥거리면서 꿈꿔 왔다. 대한민국에서 글만 써서 먹고 살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이 중간에서 포기하고 생계의 전선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현재 글만 써서 먹고 산다. 정말이지 꿈같은 일이 이뤄졌다. 나는 이런 현실이 너무나 감사하다. 그래서 차렸다, 무지개 창작 식당.
나처럼 글만 써서 먹고 사는 법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이 식당에서 작가를 꿈꾸는 많은 분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차린 것이다.

무지개 창작 식당은 누구나 올 수 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특별한 능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글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소통이다. 다른 사람들과 열심히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미 작가가 될 준비는 끝났다.

어린이들도 작가가 될 수 있다. 오히려 때 묻고 상투적인 어른보다 더 나은 면이 있다. 어른들은 모두 망각했다. 어린 시절에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던 놀라운 상상력을. 나의 어린이 친구들이 무지개 창작 식당을 찾아와 작가로 도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 그 사이에 첫 손님이 오셨군.

“어서 오세요. 네? 일수 안 찍냐고요? 필요 없습니다.”
휴, 오늘은 아무래도 그냥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 내일은 첫 손님이 오겠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서지원 #창작 #글쓰기
1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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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a2to

2013.01.04

꼭 초대받고 싶은 곳이네요. 형태없는 공간이라도,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훈훈함이 벌써부터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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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2012.11.06

작가가 되는 법을 상담해주기 위해 식당을 차렸다... 짧은 한마디에 많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멋있습니다.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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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178

2011.11.30

<글은 곧 소통이다. 사람들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작가 준비가 된 것이다.> 공감 한표. 그런데 '말'도 대화와 혼잣말이 있듯이 '글'도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글과 자신(내면)과의 소통을 위한 글도 있지 않을까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혼잣글에서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글로의 비약이 필요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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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스토리텔링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며, 재미없는 글을 쓰는 건 죄악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250여 종의 스토리텔링 책을 집필을 했으나, 재능이 있어서 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익히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지원 작가의 특징은, 지식과 교양을 유쾌한 입담과 기발한 상상력, 엉뚱한 소재로 스토리텔링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바다 소년으로,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문학과 비평》에 소설로 등단했다.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이상한 사람과 놀라운 사건을 취재했고, 출판사에서 요란한 어린이 책을 만들다가, 지금은 어린 시절 꿈인 작가가 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며, 예스24와 네이버에 스토리텔링 방법론에 대해, 빅이슈에 인간의 행복과 삶의 양식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글을 연재한다. 스토리텔링으로 쓴 책은 수학, 과학, 철학, 인문, 역사, 환경, 예술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으며, 무려 300종에 가까운 책을 썼다. 중국, 대만 등 외국 여러 나라에 수십 종의 스토리텔링 책이 수출이 됐으며, 외국에서도 인기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쓴 책으로는 『어느 날 우리 반에 공룡이 전학왔다』, 『몹시도 수상쩍은 과학 교실』, 『국제무대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요』, 『빨간 내복의 초능력자 1, 2』, 『훈민정음 구출 작전』, 『원더랜드 전쟁과 법의 심판』, 『세상 모든 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원리를 잡아라! 수학왕이 보인다』, 『다짐 대장』, 『토종 민물고기 이야기』, 『귀신들의 지리공부』, 『무대 위의 별 뮤지컬 배우』 『어린이를 위한 리더십』 등 많은 책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도서관협회가 뽑은 2012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는 등 스토리텔링으로 지식 탐구 능력과 창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담아주는 집필을 계속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