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어요] 어떤 기업이 애플처럼, 구글처럼 살아남는가? - 『거의 모든 IT의 역사』 정지훈
IT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지훈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수 ‘비’보다 그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IT 전문가로 강연, 저술 등 누구보다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정지훈 관동의대 IT융합 연구소장 말이다.
201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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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지훈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수 ‘비’보다 그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IT 전문가로 강연, 저술 등 누구보다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정지훈 관동의대 IT 융합 연구소장 말이다. 트위터를 한다면, 그의 아이디(@hiconcep)가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밤낮 가리지 않고, IT 산업 전반에 관한 좋은 정보가 그의 트윗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28년 차 프로그래머이자, 여러 기업에서 전략자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여러 매체에서 통섭적 지식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는 이런 자신을 ‘미래 칼럼니스트’ ‘미래 디자이너’라고 소개한다.
사람들의 역사가 IT의 역사다
전작 『제4의 불』도 그렇고 이번 책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서도 ‘사람’에 주목한다.
“최근 부상하는 혁신기업들을 살펴보면, 혁신은 자본 수단을 소유한다고 이뤄내는 것이 아니더라. 그보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열정 등이 만들어내는 것이 훨씬 크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혁신을 제조업적인 패러다임으로 생각하고 있다.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회 환경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일대기가 아니라, IT 변화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역사서를 쓰고 싶었다.”
핵심 인재들이 지나간 행로를 보고 있으면,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내부 사정을 모르고, 어떤 회사가 얼마나 벌고 있고 그 회사에 어떤 서비스가 매각되었다는 정도의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시각은 과거 제조업 중심의 사고방식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 (p.30)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제목도 ‘하이컨셉, 하이터치’다. 이 역시 기술보다 사람을 강조하는 맥락이다.
“다니엘 핑크의 『 A Whole New Mind』라는 책, 한국에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라고 번역된 책에서 따온 제목이다. 다니엘 핑크는 인재의 조건으로, 하이컨셉 능력과 하이터치 능력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생각을 감성과 엮어내는 것이 하이컨셉 능력이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같이 공감하게 만드는 게 하이터치 능력인데, 두 가지가 중요할 것 같다는 얘기에 무척 공감해서 제목을 따왔다.”
마이크로 소프트, 애플, 구글의 DNA를 파헤치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속에서 정지훈 박사는 IT 세계를 움직이는 세 괴물 기업, 애플, 마이크로 소프트, 구글을 다룬다. 창업자들의 성장배경, 당시의 사회, 경제적 환경, 분위기 등을 통해 회사의 패러다임과 혁신의 비결을 꿰뚫는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세 기업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는 이 책은 세 기업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한 기업의 성공이 창업자의 도전정신으로 이뤄낸 성과물이 아니라, 주변의 무수한 조력자와 시대의 흐름 등 아주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임을 밝혀낸다.
그는 각 회사마다 초점을 달리 두고 서술했다. “PC를 만들며 시작한 애플은,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회사다. 예술품에 가까운 하드웨어를 만들고, 이를 잘 유통하기 위해 앱스토어, 애플스토어 등의 다양한 콘텐츠 마켓을 만들어 서비스와 제품을 융합시켜왔다.
반면 마이크로 소프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던 빌 게이츠가 세운 회사답게, 무형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프로그래밍을 제품화 한 회사다. 라이선스나 솔루션, 패키지 비용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여전히 소프트웨어 기업 DNA를 지니고 있는 회사다.
반면 구글은 많은 정보를 쉽게 찾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회사다. 위의 두 곳과는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IT산업을 어떻게 이끌어갔는지 살펴보기 전에 각 회사의 정체성과 패러다임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수다.”
그는 현재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선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애플이 당분간은 최고의 위치를 점하겠지만, 여기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애플이 가지고 있는 기본 철학 토대가 산업시대의 마지막 꽃을 피우는 모습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협업과 네트워크의 철학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는 구글이 더 가까이 있다는 측면에서 애플보다는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를 꾸려간 이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선점했던, 통찰력 있는 인재들이었다.
잘 나가는 CEO 때문에 회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기 이전 CEO였던 길 아멜리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그의 업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 속에서 애플이 재도약 하기 위한 밑바닥을 충실하게 깔아놓은 사람으로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p.263)
저자는 다양한 사례에서 2인자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길 아멜리오나 팀 쿡 같은 2인자들은 위기의 순간에 전화위복까지 이뤄낸 것은 아니지만,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회사의 안정성을 회복시키고 자리를 내어준 자들이었다.
“우리 사회는 스타를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돈을 끌어오거나, 큰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의 역할을 한 우리나라의 재벌 소수가 지나치게 인정받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국 협업에 의해 성사된다. 협업이라는 건 도와준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느냐에 따라 좌우를 받는다. 그런 헬퍼들의 역할이 너무 평가 절하되어 있다.
만약 애플에 매킨토시에 초점을 맞춰 마켓을 유지했던, 존 스컬리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자금을 끌어온 길 아멜리오가 없었다면 지금의 애플은 없었다. 어쩌면 계속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있었다면 빨리 망했을 수도 있다. 이후에 스티브 잡스를 데려와 애플을 맡겨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길 아멜리오다. 그런 결정을 내린 공로는 인정받아야 한다. 결국 둘 다 쫓겨나거나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되는데, 그런 마지막 때문에 그간의 업적도 무시되는 건 불공평하다. 잘 나가는 CEO 때문에 회사가 잘 되는 건 아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더니, 역사적으로 봤을 때 세상은 정말 1인자만 기억해주더라. 문득, 1인자와 2인자의 결정적인 차이는 뭘까 궁금했다. 비전의 차이일까? 운의 차이일까?
“1인자라는 건, 결국 설립자다. 처음에 사업을 일으켜서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위험을 안고 가져가는 사람이다. 2인자는 그런 1인자의 비전을 보고 그 사람을 따르지만, 대신 자기가 그만큼의 리스트를 안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비전에 대한 세팅 자체가 다른 거다. 위험을 떠안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차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빌 캠벨에 관한 일화도 인상적이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현장에서 모두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라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인물이 있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실리콘 밸리의 코치라고 불렸던 빌 캠벨은 실제 미식축구 선수이자 코치를 했던 사람이다. 가장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사람은 스포츠팀 코치나 감독이 아닐까? 스타 플레이어만 모아놓고 다루잖나. 빌 캠벨 역시 코치 경험이 있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에릭 슈밋이 구글에 갔을 때만 해도, 세르게이 브린과 나이 차이가 커서, 세대 차가 있었다. 대기업에 있던 에릭 슈밋은 거대 기업의 관리 노하우, 조직체계가 있던 반면 젊은 친구는 패기만 넘친 거다. 이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잘해 화합을 이뤄준 게 빌 캠벨이고, 그의 성과가 구글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의 열정을 누르는 식으로는 절대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니시스의 권도균 대표라던지, 카카오톡을 만든 전 nhn 김범수 대표도 본인의 사업을 하면서 아래 친구들을 도와주고 조언을 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빌 캠벨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다.”
세상에 안정적인 것은 없다
어린 나이인데도 거침없이 저지르고 시도하는 창업청년들에게서 구글이, 애플이, 놀라운 혁신이 일어났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기업이 영속성을 가지기 어렵다. 인생은 아주 길다. 어떤 안정된 회사에 들어가서 10년 있다고 해도, 10년 후에는 뭐할 건가?(웃음)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의 역량을 키워놓지 않으면, 내 삶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다. 어떤 직책으로 나의 커리어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그에 맞춰 기업들도 살아남기 위해 더 빨리 체인징을 할 거다. 결국 어느 쪽이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내 나름대로 시도해보고 열정을 불태우고, 창업해보는 일로 비즈니스 감각을 익혀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꼭 커다란 자본금과 부담을 안고 시작하지 않아도, 도전해볼 수 있는 일이 과거에 비해 많아졌다. 집에서도 창업하고, 과거에 비해 창업 리스크가 줄어들었다.
어차피 세상에 안정적인 것은 없다. 그렇게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성공하는 사람도 많아질 거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커다란 성공만이 성공이 아니다. 그런 작은 성공들을 바탕으로,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 구체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도전이 단순한 치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이 중요하겠구나 싶더라. 기업가뿐 아니라, 각자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일반인에게도 중요한 문제 같다. 삶과 사회를 내다보는 일에 조언을 해 준다면?
“제일 지양해야 하는 자세는, 내 전문분야, 관심사가 아니니까 관심 없다는 태도다. 지금은 전문적인 분야를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상당 부분 사람들이 해 놓은 것도 많다. 이걸 찾는 능력이 중요한데, 다양한 지식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학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컨택 포인트’를 늘려가야 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사람을 접해 자기 시야도 넓히고 기회도 늘려야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은 내 머릿속에 있는 걸 표현해내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시키는 힘이다. 여기에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많이 읽고, 많이 써봐야 한다.”
각 개인이 원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다. 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개념이 바로 경험이다. 앞으로는 경험이 경제의 중심 품목이 될 것이다.(p.467)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이긴다
저자 역시 이 책 속에 나오는 인재들처럼 통찰과 통합의 힘을 활용하고 있는 사람이다. 의사, IT 전문가,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직함이 많다. 처음에 진로를 정할 때,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갖고 있었나?
“의과대학을 다니다 보니, 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학생 실습을 나가보면, 꿈도 많고 고민도 많던 학교 다닐 때와는 달리 선배들이 판박이같이 비슷한 삶의 형태를 갖고 있더라. 내 앞날도 빤히 보였다. 그래서 바로 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중보건의사에서 3년의 세월을 보내며 다양한 경험을 접했다. IT 관련 글도 써보고,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해보고, 여러 사람을 만나보면서 미래를 그려봤다.
미래를 디자인할 때, 나는 항상 사회적 가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임상 의사가 된다면 성공은 어느 정도 하겠지만, 남들이 대체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낼 뿐이었다. 그보다 10년 뒤에는 여러 가지를 엮어내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사람의 사회적 가치가 더 클 거라는 생각에, 미국 유학을 가고, 다양한 학문을 접하며 나에게 투자를 한 거다. 그리고 돌아왔더니 커넥터이자 전체를 이해하고 해석해주는 인터프리터 역할의 수요가 실제로 있었다. 그전에는 이만큼의 수요도 없었다. 그게 잘 맞아떨어졌다고 본다.”
지금도 의사로서, 미래 칼럼니스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 사회 공헌을 위한 더 큰 계획이 있을 것 같다. 들려준다면?
“젊은 스타트업 벤처들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 시니어 멘토 그룹을 만들고, 도움받을 친구들을 엮어서 가르치고 코치도 해주는 식으로 돕고 싶다.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나는 정규교육보다 비정규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결국 사회가 사람을 길러 내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두 교육의 책임자들이다. 가르쳐줄 사람과 배울 사람이 만나면 그게 학교다. 그런 네트워크만 형성되면 가상의 학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교육이 사회 구성원들의 능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교육을 시연해볼 수 있는 물리적 장소도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뉴욕의 해커 스페이스가 있다. 우리나라는 차고 같은 게 없잖나.(웃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나 와서, 서로 이야기하다가 뭐든 만들어보고, 그러다 밤도 새울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 같은 걸 하나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웃음)”
꼭 그런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웃음) 사회 속에 사건들이 중구난방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역사는 도도한 흐름을 갖고 있더라. 역사의 물결을 타고 오르는 사람은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차없이 잊힌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겠지만, 다시 정리하고 집필할 때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결국에는 진리가 승리한다. 처음이 됐든 나중이 됐든 결국에는 사회적 가치를 많이 만들어 낸 자가 보상을 받더라. 많은 사람에게 가능한 한 더 많은 이득이 돌아가도록 뭔가 만들어 낸 곳이 빛을 보고, 부당이득을 취한 곳은 결국 그 시스템을 통해 자멸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라도 때와 규모를 맞춰서 조율하는 게 중요한데, 여기에는 협업이 중요하다. 윗사람이 되어 사람들을 부리거나 규제를 통해 남들을 방해하는 방식으로는 정말 단기적인 성공 외에는 이룰 수 없다.
항상 단기적인 변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사회적 정의를 불신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내가 투입한 게 즉각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지, 이런 생각만 하지 말고, 꾸준히 자기 자신을 믿고 투자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좋다.”
사람들의 역사가 IT의 역사다
전작 『제4의 불』도 그렇고 이번 책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서도 ‘사람’에 주목한다.
핵심 인재들이 지나간 행로를 보고 있으면,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내부 사정을 모르고, 어떤 회사가 얼마나 벌고 있고 그 회사에 어떤 서비스가 매각되었다는 정도의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시각은 과거 제조업 중심의 사고방식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 (p.30)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제목도 ‘하이컨셉, 하이터치’다. 이 역시 기술보다 사람을 강조하는 맥락이다.
“다니엘 핑크의 『 A Whole New Mind』라는 책, 한국에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라고 번역된 책에서 따온 제목이다. 다니엘 핑크는 인재의 조건으로, 하이컨셉 능력과 하이터치 능력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생각을 감성과 엮어내는 것이 하이컨셉 능력이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같이 공감하게 만드는 게 하이터치 능력인데, 두 가지가 중요할 것 같다는 얘기에 무척 공감해서 제목을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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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소프트, 애플, 구글의 DNA를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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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IT의 역사』속에서 정지훈 박사는 IT 세계를 움직이는 세 괴물 기업, 애플, 마이크로 소프트, 구글을 다룬다. 창업자들의 성장배경, 당시의 사회, 경제적 환경, 분위기 등을 통해 회사의 패러다임과 혁신의 비결을 꿰뚫는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세 기업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는 이 책은 세 기업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한 기업의 성공이 창업자의 도전정신으로 이뤄낸 성과물이 아니라, 주변의 무수한 조력자와 시대의 흐름 등 아주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임을 밝혀낸다.
그는 각 회사마다 초점을 달리 두고 서술했다. “PC를 만들며 시작한 애플은,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회사다. 예술품에 가까운 하드웨어를 만들고, 이를 잘 유통하기 위해 앱스토어, 애플스토어 등의 다양한 콘텐츠 마켓을 만들어 서비스와 제품을 융합시켜왔다.
반면 마이크로 소프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던 빌 게이츠가 세운 회사답게, 무형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프로그래밍을 제품화 한 회사다. 라이선스나 솔루션, 패키지 비용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여전히 소프트웨어 기업 DNA를 지니고 있는 회사다.
반면 구글은 많은 정보를 쉽게 찾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회사다. 위의 두 곳과는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IT산업을 어떻게 이끌어갔는지 살펴보기 전에 각 회사의 정체성과 패러다임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수다.”
그는 현재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선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애플이 당분간은 최고의 위치를 점하겠지만, 여기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애플이 가지고 있는 기본 철학 토대가 산업시대의 마지막 꽃을 피우는 모습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협업과 네트워크의 철학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는 구글이 더 가까이 있다는 측면에서 애플보다는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를 꾸려간 이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선점했던, 통찰력 있는 인재들이었다.
잘 나가는 CEO 때문에 회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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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기 이전 CEO였던 길 아멜리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그의 업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 속에서 애플이 재도약 하기 위한 밑바닥을 충실하게 깔아놓은 사람으로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p.263)
저자는 다양한 사례에서 2인자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길 아멜리오나 팀 쿡 같은 2인자들은 위기의 순간에 전화위복까지 이뤄낸 것은 아니지만,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회사의 안정성을 회복시키고 자리를 내어준 자들이었다.
“우리 사회는 스타를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돈을 끌어오거나, 큰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의 역할을 한 우리나라의 재벌 소수가 지나치게 인정받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국 협업에 의해 성사된다. 협업이라는 건 도와준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느냐에 따라 좌우를 받는다. 그런 헬퍼들의 역할이 너무 평가 절하되어 있다.
만약 애플에 매킨토시에 초점을 맞춰 마켓을 유지했던, 존 스컬리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자금을 끌어온 길 아멜리오가 없었다면 지금의 애플은 없었다. 어쩌면 계속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있었다면 빨리 망했을 수도 있다. 이후에 스티브 잡스를 데려와 애플을 맡겨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길 아멜리오다. 그런 결정을 내린 공로는 인정받아야 한다. 결국 둘 다 쫓겨나거나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되는데, 그런 마지막 때문에 그간의 업적도 무시되는 건 불공평하다. 잘 나가는 CEO 때문에 회사가 잘 되는 건 아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더니, 역사적으로 봤을 때 세상은 정말 1인자만 기억해주더라. 문득, 1인자와 2인자의 결정적인 차이는 뭘까 궁금했다. 비전의 차이일까? 운의 차이일까?
“1인자라는 건, 결국 설립자다. 처음에 사업을 일으켜서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위험을 안고 가져가는 사람이다. 2인자는 그런 1인자의 비전을 보고 그 사람을 따르지만, 대신 자기가 그만큼의 리스트를 안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비전에 대한 세팅 자체가 다른 거다. 위험을 떠안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차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빌 캠벨에 관한 일화도 인상적이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현장에서 모두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라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인물이 있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실리콘 밸리의 코치라고 불렸던 빌 캠벨은 실제 미식축구 선수이자 코치를 했던 사람이다. 가장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사람은 스포츠팀 코치나 감독이 아닐까? 스타 플레이어만 모아놓고 다루잖나. 빌 캠벨 역시 코치 경험이 있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에릭 슈밋이 구글에 갔을 때만 해도, 세르게이 브린과 나이 차이가 커서, 세대 차가 있었다. 대기업에 있던 에릭 슈밋은 거대 기업의 관리 노하우, 조직체계가 있던 반면 젊은 친구는 패기만 넘친 거다. 이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잘해 화합을 이뤄준 게 빌 캠벨이고, 그의 성과가 구글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의 열정을 누르는 식으로는 절대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니시스의 권도균 대표라던지, 카카오톡을 만든 전 nhn 김범수 대표도 본인의 사업을 하면서 아래 친구들을 도와주고 조언을 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빌 캠벨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다.”
세상에 안정적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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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인데도 거침없이 저지르고 시도하는 창업청년들에게서 구글이, 애플이, 놀라운 혁신이 일어났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을 것 같다.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그에 맞춰 기업들도 살아남기 위해 더 빨리 체인징을 할 거다. 결국 어느 쪽이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내 나름대로 시도해보고 열정을 불태우고, 창업해보는 일로 비즈니스 감각을 익혀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꼭 커다란 자본금과 부담을 안고 시작하지 않아도, 도전해볼 수 있는 일이 과거에 비해 많아졌다. 집에서도 창업하고, 과거에 비해 창업 리스크가 줄어들었다.
어차피 세상에 안정적인 것은 없다. 그렇게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성공하는 사람도 많아질 거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커다란 성공만이 성공이 아니다. 그런 작은 성공들을 바탕으로,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 구체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도전이 단순한 치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이 중요하겠구나 싶더라. 기업가뿐 아니라, 각자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일반인에게도 중요한 문제 같다. 삶과 사회를 내다보는 일에 조언을 해 준다면?
“제일 지양해야 하는 자세는, 내 전문분야, 관심사가 아니니까 관심 없다는 태도다. 지금은 전문적인 분야를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상당 부분 사람들이 해 놓은 것도 많다. 이걸 찾는 능력이 중요한데, 다양한 지식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학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컨택 포인트’를 늘려가야 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사람을 접해 자기 시야도 넓히고 기회도 늘려야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은 내 머릿속에 있는 걸 표현해내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시키는 힘이다. 여기에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많이 읽고, 많이 써봐야 한다.”
각 개인이 원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다. 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개념이 바로 경험이다. 앞으로는 경험이 경제의 중심 품목이 될 것이다.(p.467)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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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역시 이 책 속에 나오는 인재들처럼 통찰과 통합의 힘을 활용하고 있는 사람이다. 의사, IT 전문가,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직함이 많다. 처음에 진로를 정할 때,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갖고 있었나?
“의과대학을 다니다 보니, 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학생 실습을 나가보면, 꿈도 많고 고민도 많던 학교 다닐 때와는 달리 선배들이 판박이같이 비슷한 삶의 형태를 갖고 있더라. 내 앞날도 빤히 보였다. 그래서 바로 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중보건의사에서 3년의 세월을 보내며 다양한 경험을 접했다. IT 관련 글도 써보고,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해보고, 여러 사람을 만나보면서 미래를 그려봤다.
미래를 디자인할 때, 나는 항상 사회적 가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임상 의사가 된다면 성공은 어느 정도 하겠지만, 남들이 대체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낼 뿐이었다. 그보다 10년 뒤에는 여러 가지를 엮어내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사람의 사회적 가치가 더 클 거라는 생각에, 미국 유학을 가고, 다양한 학문을 접하며 나에게 투자를 한 거다. 그리고 돌아왔더니 커넥터이자 전체를 이해하고 해석해주는 인터프리터 역할의 수요가 실제로 있었다. 그전에는 이만큼의 수요도 없었다. 그게 잘 맞아떨어졌다고 본다.”
지금도 의사로서, 미래 칼럼니스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 사회 공헌을 위한 더 큰 계획이 있을 것 같다. 들려준다면?
“젊은 스타트업 벤처들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 시니어 멘토 그룹을 만들고, 도움받을 친구들을 엮어서 가르치고 코치도 해주는 식으로 돕고 싶다.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나는 정규교육보다 비정규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결국 사회가 사람을 길러 내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두 교육의 책임자들이다. 가르쳐줄 사람과 배울 사람이 만나면 그게 학교다. 그런 네트워크만 형성되면 가상의 학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교육이 사회 구성원들의 능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교육을 시연해볼 수 있는 물리적 장소도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뉴욕의 해커 스페이스가 있다. 우리나라는 차고 같은 게 없잖나.(웃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나 와서, 서로 이야기하다가 뭐든 만들어보고, 그러다 밤도 새울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 같은 걸 하나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웃음)”
꼭 그런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웃음) 사회 속에 사건들이 중구난방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역사는 도도한 흐름을 갖고 있더라. 역사의 물결을 타고 오르는 사람은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차없이 잊힌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겠지만, 다시 정리하고 집필할 때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결국에는 진리가 승리한다. 처음이 됐든 나중이 됐든 결국에는 사회적 가치를 많이 만들어 낸 자가 보상을 받더라. 많은 사람에게 가능한 한 더 많은 이득이 돌아가도록 뭔가 만들어 낸 곳이 빛을 보고, 부당이득을 취한 곳은 결국 그 시스템을 통해 자멸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라도 때와 규모를 맞춰서 조율하는 게 중요한데, 여기에는 협업이 중요하다. 윗사람이 되어 사람들을 부리거나 규제를 통해 남들을 방해하는 방식으로는 정말 단기적인 성공 외에는 이룰 수 없다.
항상 단기적인 변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사회적 정의를 불신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내가 투입한 게 즉각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지, 이런 생각만 하지 말고, 꾸준히 자기 자신을 믿고 투자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좋다.”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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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netsong
2011.03.12
조약돌사랑
2011.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