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몇 살 된 만화과 대학생이 해보겠다고 하니까 그냥 놔두셨겠죠. 그런데 나와보니 아니거든요.
그러다가 결국 지면매체에까지 실렸잖아요. 결과적으로 김수정 선생이 추천사에 “다시는 (둘리 패러디를) 허락하지 않겠다”라고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까 얘기했던 현실에서의 고통보다도 매체에서의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을 처음 생각했던 게 그 시절이에요. 사실 『공룡 둘리』 이후 한동안은 그것과의 싸움이 제 작품의 주된 주제였죠. 「사랑은 단백질」도 그런 부분을 많이 집어넣었어요. 당신들이 행복하게 느끼는 장면, 이런 것들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를 보여주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었죠.(웃음) 귀여운 병아리가 통닭이 되어서 먹히고, 트림이 되어서 날아가고, 방귀가 되어서 날아가고, 그런 것이 아름다운 이별장면으로 묘사되잖아요. 일부러 많이 집어넣었습니다. 사실 저는 반응이 놀라웠어요. 제 딴에는 나름 개그라고 했는데, 둘리가 진지하게 나오면 그것 자체로 웃기잖아요.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럴지 모르겠는데, 딱 보면 웃기는 거거든요. 그런데 너무 진지한 반응들이 나오니까 왜 이렇게까지 할까, 망가져봐야 기억이 망가지는 거고, 진짜로 둘리랑 뛰어논 것도 아니잖아요.(웃음) 그래봐야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인데, 왜 이렇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인가, 문화현상에 대해서 관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그때 많이 받은 거죠.
그게 훼손되어서 느끼는, 자기가 고통이라고 얘기하는 감정이 정말로 고통으로 느껴졌을까 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거예요. 전 아닐 거 같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는 고통스럽다고 얘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는 것이지, 진짜 감정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그 사람들이 되어보지 않았으니까 모르겠는데, 이런 것이 사람한테 진짜 고통을 줄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로 때리지도 않았는데.(웃음)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전쟁을 겪었던 할아버지들이 나와서 과도한 행동을 하는 게 짜증나긴 하지만, 이해는 가는데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 있는데요. 가짜 감정이라는 단어를 가끔 씁니다. 자기가 살면서 봤던 매체들로부터 주입받은 지식들로 인해, 익숙한 상황이 오면 실제 자기에게서 그런 감정이 불러일으켜지지 않는데도 매체에서 보여줬던 감정을 스스로 연출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고, 사람들은 그런 가짜 감정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진짜 자기 감정인지 아닌지 곰곰이 묵상해보는 시간들을 갖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요.(웃음)
『공룡 둘리』 때문에 다른 데서 작업을 제안받는 경우도 생겼겠지만, 아까 얘기했던 시선들에 대한 극복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극복하는 과정은 역시 다른 작품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된 건가요?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죠. 다른 것으로 더 유명해지는 수밖에 없잖아요. 김수정 선생님에게 항상 죄송스럽기는 했어요.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둘리 관련된 기사만 나오면 기자들이 그냥 쓰니까요. 인터뷰가 아니니까 저한테 물어볼 이유가 없잖아요. 항상 말미에 한 줄 따라나오는 게 죄송하더라구요. 『공룡 둘리』가 만화계 내부에서 인식이 안 좋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습니다.
『습지』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나오지 않았나요? 반응은 어떤가요?
스페인어권이나 불어권에서 나왔는데요. 썩 잘 팔리는 것 같지는 않구요. 기자들 얘기 들어보면 한국에서의 비평과 비슷한 것 같아요. 블랙유머, 새로운 감성, 이런 식으로 여기나 거기나 키워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쪽은 만화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들이 많아서 오히려 편하더라구요. 질문의 심도가 한국에서 일간지 인터뷰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니까 부러웠습니다. 한국에는 만화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가 없다보니 대가를 인터뷰하나 신인을 인터뷰하나 질문이 똑같더라구요. 저분들한테 저것밖에 못 뽑아내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죠.
첫 장편이 1987년 6월항쟁에 관련된 만화 『100。C』잖아요.
제가 그동안 한 것 중에서는 제일 길죠. 장편이라고 하기는 힘들고, 그것도 중편인데요. 제가 어릴 때부터 거의 다 장편에 맞춰 만화공부를 해와서 길이 때문에 어려운 건 별로 없었어요.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 그게 좀 힘들긴 했죠.
작업을 할 때 영화 만들듯이 콘티를 다 만들어놓고 한다고 들었는데요.
지금까지는 그랬죠. 더 긴 것을 할 때는 그렇게 못하고, 하나씩 끊어서 해야겠죠. 『100。C』는 오히려 훨씬 긴 것을 잘라먹은 작품이라서 그런 데 대한 안타까움들이 있죠. 캐릭터들을 각자 살려내면 더 길게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책이 세 권이 되면 인세도 세 배로 늘어나잖아요.(웃음)
10편 정도 되는 장편도 생각 중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떤 건가요?
굉장히 정치적인 만화가 될 것 같아요.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고, 일본만화의 모범에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굉장히 대중적인 정치만화? 이번 작업이 끝나면 시작해야죠. 모르겠어요. 취재할 것이 너무 많아서. 능력도 없는데.
소재를 얻을 때 구체적으로 취재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창작하시는 분들도 스타일이 다 다르더라구요. 취재를 충분히 하시는 분도 있고, 너무 자세히 아는 것은 상상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좀 덜 하시는 분도 있구요.
작품으로 보여줄 게 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아요. 그것을 배경으로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 자체가 주제인지의 문제죠. 정치가들의 사랑 얘기라고 하면 정치가에 대해서 자세히 알 필요는 없죠. 그런데 정치 자체를 보여주기 위한 정치 이야기라면 취재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 얘기를 하는 작가들도 있어요. 취재를 너무 많이 한다든가, 설정을 너무 열심히 하면 그것에 매몰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는데요. 그 사람이 하는 장르가, 그것 자체가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것 자체가 주제라면 그것을 보지 않고서는 못 하죠.
상대적으로 적은 작품 수에 비해 많은 각광을 받는 편인데요. 오래 그렸는데, 작품 수가 많지 않잖아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웃음)
부끄럽죠. 게으름의 소산입니다. 저를 복제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구요.(웃음)
돈이 떨어져야 일을 시작하는 성격은 아닌가요?
돈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은 아닌데요. 시작을 잘 못해요. 그리고 작업이 빠른 편은 아니죠. 그림이 밀도가 있고 하니?요. 앞으로 열심히 해야죠.
뭔가 만들어내서 제안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편인 것 같아요. 연재는 여러 번 하셨고, 연재할 때 마감이 늦은 적은 없다고 들었거든요.
조금씩은 늦었죠. 인쇄 돌리기 전까지는 원고가 들어가야죠.(웃음) 사실 일하는 것이 엄청 즐겁지는 않거든요. 작가로서의 욕심, 그리고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데 대한 욕심과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는 욕심이 굉장히 강해서 균형을 잡아야 해요. 작품을 많이 하면 못 놀잖아요. 작업할 동안에는 친구들도 못 본단 말이에요. 친한 친구들 얼굴 본 지도 오래 됐고, 일년 내내 일만 하면 계속 못 볼 거란 말이에요. 제가 작업할 동안에는 나가지를 않으니까요.
데뷔작은 「솔잎」이었죠?
데뷔라면 데뷔죠. 사실 계속 버리려고 했어요. 작업하는 내내 ‘버릴까, 버릴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자만심에 찬 젊은이였죠. 잘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가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원고를 한 건데,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계속 했죠. 너무 괴롭더라구요. 내일 제출해야 되는데, 같이 작업했던 친구랑 ‘어떻게 할까, 버릴까, 그래도 고생한 게 있는데 일단 내자’고 해서 냈는데, 상을 주니 참 고맙더라구요.(웃음) 그걸 하고 나서 많이 겸허해졌죠.
상복은 있는 편이잖아요. 2003년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 대통령상도 받으셨구요.
그건 학점 때문에 받은 상이었구요. 사실은 이름만 그렇고, 교육부 장관상이죠.
상금도 없었다면서요.
이름은 거창한데, 없더라구요. 산업시찰을 데리고 가주더군요.(웃음)
예전에 비해서 요즘은 만화에 대한 지원이 많아졌나요? 정치인들이 “어떤 것을 지원해줄까요?” 물어보면 “인터뷰할 때 보면 책장 앞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화책이나 많이 꽂아주세요” 한다는 말씀도 하셨는데요.(웃음) 만화에 대한 인식이나 지원들이 좀 생긴 건가요?
지원은 많아요. 세금은 써야 되니까요. 문화사업도 해야 되고. 그런데 그것도 핵심에 가 닿지 못한, 정말 피상적인 지원사업들이 많죠. 제가 공무원이라면 하고 싶은 사업들이 꽤 있는데, 제안해도 안 받아들이더라구요. 스토리텔러들과 작가들의 접합점을 찾아준다든가, 만화가들이 폐쇄적인 생활을 많이 하니까 시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제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화가들을 위한 인문학강좌 같은 것을 하면 좋을 것 같거든요.
사실 문화라는 것도 요즘은 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하니까요. 지원을 하고 나면 일 년 안에 뭔가 나와야지, 하거나 극장 같은 것을 크게 지어주는 것을 지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지난번에 쓰신 글 중에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밥만 먹어도 창작하는 족속들이다. 사회안전망이 튼실하면 머리 써가며 행정 안 해도 알아서들 문화상품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사람들 옥죄고 있는 공포와 불안을 해소해야 된다. 시급한 대책이란 시급하게 실패를 불러온다”는 말이 참 멋지더라구요. 근본적인 얘기기도 하고.
사실은 그게 최저임금의 문제죠. 프랑스 갔을 때 놀랐던 것이 한국에서는 프랑스 하면 ‘만화가들의 천국, 예술가들의 천국’ 이런 착각들을 하잖아요. 그런데 거기도 젊은 애들은 똑같이 밥 굶더라구요. 모든 사회가 그런 것 같은데요, 문제는 최저임금이죠. 요즘은 거기도 많이 깨져서 방세 내려고 집주인에게 여대생이 성상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은 상황이었어요. 접시를 네 시간 닦으면 방세가 해결된대요. 그러면 여섯 시간은 자기 작업을 할 수 있잖아요. 일본에서도 큰 애니메이션 회사, 우리가 보고 깜짝깜짝 놀라는 대작 애니메이션 작품의 배경을 그리는 애들이 밤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더라구요. 알바하면 가능하다는 얘기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안 되잖아요. 여덟 시간 편의점에서 일해도 방세를 못 내니까요. 양자택일을 해야 되죠. 이거냐, 저거냐, 극단적인 선에 서야 된단 말이죠. 이건지 저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먹고살 수 있는 정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만약 만화가들에게 지원을 한다면 만화가 복지 같은 것, 책을 한 권이나 두 권 냈거나, 웹에서 일 년 정도 연재를 한 작가가 쉬고 있다고 하면 실업수당 같은 것을 찔러주고 하면 좋잖아요.(웃음) 한국 만화가들은 연재 끝나면 바로 또 해야 되거든요. 작업하면서 버는 돈을 다 쓰기 때문에, 그러면 쌓인 게 없잖아요. 몇 십 년 동안 쌓아봐야 별거 없고. 다 퍼냈는데, 이제 마른 바닥을 긁어내야 되는데, 그러면 차기작이 좋은 게 나올수 없죠. 그러다가 몇 년 반짝하고 사라진단 말이에요. 천재는 천재대로 가고, 중박을 칠 만한 작가들은 사회가 키워야 됩니다. 그런데 중박을 칠 만한 작가들은 사라져버리고, 각 세대별 천재만 나오는 겁니다. 30대는 누구, 40대는 누구, 이것밖에 없잖아요. 나머지는 없고. 천재는 전쟁 때 태어나도 다 살아남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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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쪽으로는 어떤 지원들이 있을 수 있나요?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건물 짓고, 박물관, 도서관, 만화 데이터베이스 구축하고 이런 것들이죠. 대여점 대여료만 노래방 시스템으로 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저랑은 관계없을 것 같지만, 권당 50원이라도 받으면 좋잖아요.
노골리즘 선언에서 “나의 노골리즘 만화는 아직 발표된 바 없다”라고 했는데요. 나중에 그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그게 다음 작품이에요. 노골적이라고 하는 것이 일본만화의 전통적인 규범, 그냥 쉽다는 뜻인데요. 하고자 하는 얘기를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거죠. 과거 한때 날렸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찌질하게 돈 때문에 싸우고 하는 장면을 빼고, 메시지를 좀 직설적으로 전달하려고요. 비웃는 것도 비웃을 대상이 있어야 되는 건데, 누굴 비웃는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도 없거든요. 저 꼰대들은 누구길래 술 처먹고 싸우고 있나 할 거잖아요. 광주 이야긴지도 잘 모를 거구요.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긍정적인 신파의 힘을 본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그런 맥락인가요?
거기에 구체성이 들어가는 거죠. 지적인 부분, 한국이나 일본이나 대중문화 쪽은 감성 코드가 대부분이라서 모든 문제를 휴머니즘으로 해결하려고 든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휴머니즘이 아니라 지성으로 해결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어떻게 보면 지성적인 신파겠네요.
좋네요. 지성 신파.(웃음)
아이디어료를 받아야 되겠는데요.(웃음) 그럼, 만화가로서 자신의 장단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단점은 완성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보면 굉장히 들쭉날쭉합니다. 열심히 그렸다가 날렸다가 하는 것이 굉장히 심해요. 대충 가자는 것, 게으르다는 것, 생각을 너무 오래한다는 것 이런 것들이 단점이죠.
그걸 뒤집으면 장점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안 될 것 같은 것을 되게 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커요. 어느 정도는 그걸 성공시키는 것 같구요. 몇 작품 안 하기는 했지만, 아이템만 보면 사람들이 대부분 안 된다고 했거든요. 『습지』 같은 경우도 개그만화인데, 보면서 고민을 많이 해야 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에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개그와 메시지 둘 다 어느 정도 잡은 것 같구요. 『100。C』 같은 경우도, 그 이전에는 메시지 전달이 주인 역사만화라고 하면 학습만화 정도밖에는 못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아주 재밌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름 인기가 있었으니까요. 조합이 안 될 것 같은 것들을 조합하는 능력은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그런 거구요.
포탈의 고료 수준이 정상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했잖아요.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옛날의 잡지 시스템은 데뷔를 하는 선이 명확했잖아요. 이 선을 넘어서면 생활이 보장되었단 말이에요.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작가라 해도. 지금은 그런 것 없이 제일 위에서부터 제일 밑까지 흐릿하게 나뉘어져 있단 말이죠. 자기가 작가인지 아닌지 아리까리한 상황, 옛날 같으면 데뷔를 하지 못했을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조금씩 주면서 유지를 하게 하는 상황인데요. 좋게 보면 만화가 지망생도 돈을 받으면서 데뷔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된 거구요. 나쁘게 말하면 포기하고 떠났어야 되는데, 계속 붙잡고 있는 상황이 되었단 말이죠. 어떻게 보면 빨리빨리 자기 길을 찾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좋겠죠.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쪼개주려고 하니까.(웃음) 일단 작가가 되면 생활은 된다는 신호를 줘야 되는데, 그걸 못 주고 있죠. 작가가 되고 나서도 한참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요즘 한국에서 만화가들의 수입원으로 어떤 게 있습니까?
포탈 고료, 만화가 많이 쓰이는 홍보물 같은 거 있잖아요. 광고 같은 것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강연료도 용돈벌이 정도는 되죠.
만화가가 되려면 어떤 루트가 있나요?
대학이 제일 크죠. 대학졸업자들이 많이들 하고 있죠. 아니면 혼자 작업해서 인터넷에 올리다가 뜨는 경우도 있구요.
요즘 만화과가 있는 대학이 많아졌죠?
정확히 모르겠지만, 100군데 내외일 것 같아요. 만화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과들이. 이름이 많이 바뀌어서 콘텐츠 미디어과, 이런 식으로 바뀌었는데요. 뭔 소린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점점 언어가 직관성을 잃어가고 있어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언어들이 점점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되어가고 있죠.
만화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조언해줄 말은 없나요?
만화를 너무 열심히 보지 말라는 거죠.(웃음)
왜 열심히 보면 안 됩니까?(웃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을 해야죠. 만화는 수단으로 이용해야죠.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면 안 되고, 만화를 잘 그리고 싶다는 꿈을 꿔야죠. 그러면 잘된 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고, 굉장히 많은 생각이 가지를 치겠죠.
영향을 준 작가 또는 롤모델이 있습니까?
굉장히 많죠. 최초로 충격을 준 작가는 『터치』를 그린 아다치 미츠루였죠. 중학교 때 처음 보고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화 장르의 가능성, 만화가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이 굉장히 넓다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오토모 가츠히로. 작품의 완성도가 무엇인지,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가였죠. 그다음에는 고등학교 가서 접했던 한국 작가들, 오세영 선생이라든가, 박흥용, 이희재 이런 분들이 있구요. 또 에가와 타츠야라고 『골든 보이』나 『동경대 러브 스토리』라는 연애공부물을 한 작가가 있는데, 그분 작품을 보면서도 많이 배웠죠. 파격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리얼리즘이라는 것이 뭔가 하는 고민을 한참 할 때였는데요. 그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상황의 리얼함이라는 것은 필요가 없다, 캐릭터가 리얼하면 배경은 우주공간에 있든, 우화적인 공간에 있든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그 작품을 통해서 했죠. 그것을 안 봤다면 작품이 굉장히 딱딱해졌을 겁니다. 『공룡 둘리』라든가 「사랑은 단백질」 같은 것은 나올 수가 없었겠죠.
지금 만화를 그리는 동료작가 중에서 좋아하는 작가는 없나요?
도영이 형(강풀) 만화도 재미있게 보고 있구요. 굉장히 많아요. 김수박 작가, 주호민 씨, 네스티캣, 하일권 씨 만화도 재미있게 잘 보고 있어요.
어릴 때는 글을 쓰고 싶어한 적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기자처럼 글을 깔끔하게 쓴다는 평도 있고, 사회과학 책도 많이 읽잖아요. 그게 만화가로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나요?
뭐든지 읽으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꼭 그것을 알아서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그것을 통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니까 아이디어가 생기죠. 궁금증이 많은 편이에요.
많은 작가가 지금의 사회구조나 현상 자체에 대해서보다는 우주, 내세, 예술 자체나 관념 이런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갖잖아요.
그런 것은 무지하게 싫어합니다.(웃음) 한국 예술가들의 자세는 가짜 감정으로 보일 때가 굉장히 많아요. 예술가는 이러이러해야 된다는 이미지에 짓눌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죠. ‘왜 예술가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 이런 태도가 있는데요. 그 사람들은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 같아요. 별나 보이고 싶은 욕구도 있는 것 같고, 그게 멋져 보인다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서 머릿속에 주입이 된 면도 있는 것 같구요. 일제시대 때 넘어온 퇴폐적인 문예사조가 한국에 처음 넘어온 근대 문예사조라고 하더라구요. 그것 때문에 굳은 거라고 해요. 퇴폐적인 사조도 역사적인 한 시기에만 등장했던 건데, 그걸 마치 전체인 양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예술가가 미친 짓하면 ‘예술가니까’라고 넘어가잖아요. 그래서 한국의 예술들이 구체성을 잃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한 지점을 파고드는 데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있어야 되는데, 다 뭉뚱그려지잖아요.
촛불집회 때 시위현장도 취재하고, 참여하기도 하고, 기륭전자 현장 같이 비정규직 노조 투쟁 현??도 가면서 생각했던 점들이 좀 더 심화되었다고 할까, 구체화되었다고 할까, 현실을 좀 더 가까이 느낀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용역과 경찰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피묻은 형제들」이라는 그림도 그렸잖아요.(웃음)
아, 그거.(웃음) 그건 대학 다닐 때부터 하고 싶었어요. 졸업작품이 철거촌 이야기였는데요. 그때 취재할 때도 용역하고, 경찰하고 같이 작전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성인들을 위한 우화도 많이 그렸는데요.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의 잘못도 생각해보자’는 점들이 어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요. “어쩌자는 거냐?” 또는 “냉소적이다” 하는 반응들도 있죠?
그렇죠. 불편하겠죠. 자기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불편하죠. 저도 그래요. 말꼬투리 잡는 새끼 짜증나죠.(웃음) 우화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접근했어요. 우화라는 것이 출처가 어딘지 정확지 않으면서 떠돌아다니기는 굉장히 쉬운 장르거든요. 시험지문으로 쓰인다거나, 라디오 프로그램 시작될 때 오프닝 멘트로 인용되기도 쉽고요. 사실은 그런 목적으로 만들었어요. 일단 만들어놓고 세월이 흐른 뒤에 회자가 되면 원래 세상에 있었던 이야기처럼 돌아다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세상에 짧게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들이니까 반대되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돌아다니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임팩트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거칠게 간 부분도 많고, 작품 자체로 보자면 저도 그다지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전략적으로 접근한 거죠. 실제로 시험지문으로도 꽤 쓰이고, 짧고 쉬우니까 토론용 교재로도 많이 쓰이는 것 같구요. 그런 용도로 쓰이길 바라고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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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후배가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찾아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일단 묻겠죠. “어떤 만화가가 되고 싶냐?”고. 선택은 자기가 하는 거니까 하라, 마라고는 얘기 못하겠지만, 고민거리는 안겨주겠죠. 어떤 만화가가 되고 싶냐, 그 한마디면 거의 끝나는 것 같은데요.
후회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요?
진짜로 강력하게 후회할 때는 마감 때예요.(웃음) 몸이 축나는 것 같다는 느낌. 장르 특성상 노동량이 너무 많다보니까, 이게 사실 육체노동이죠. 어릴 때 글에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소설가가 됐을 텐데. 소설가 분들이 들으면 화내실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만화가보다는 소설가가 쉬운 것 같아요.(웃음) 그림이 진짜 오래 걸리거든요. 그 외에는 별로 후회되는 면이 없어요. 재미있습니다.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습지』 연재하면서 돈 들어올 때.(웃음) 사람이 돈을 어떻게 버는 거지, 하면서 의아해했는데, 『습지』를 연재하니까 고료가 들어오는데, 엄청 신기했어요. 내가 한 달에 몇 백만 원이라는 돈을 벌다니, 하면서.(웃음) 일하는 즐거움이 그런 거 아니겠어요. 다른 일을 하더라도 자기가 벌어서 사람구실을 하고 사는 즐거움, 어머니한테 돈도 좀 드리고, 후배들 만나면 밥도 사주고 그런 즐거움이 있어야 되잖아요.
애착이 가는 작품은 없나요?
딱히 없습니다. 지나고 나면 부끄럽죠. 쪽팔리고.
나왔던 그 시점에서는 의미가 있었잖아요.
의미가 있기는 한데,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기 전에 다른 사람한테 먼저 보여준 적이 없어요. 이번이 처음인데요. 사계절 팀장님이 하도 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드렸는데, 그전까지는 미리 못 보여줬어요. 무서워서, 너무 쓰레기 같아서요. 원고 완성되고서야 넘기고, 편집자 반응 올 때까지 벌벌 떨고 있는 거죠.(웃음)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많이 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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