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人터뷰] 우리의 촛불, 아직 꺼지지 않고 있죠? 그죠?! - 『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난달 24일, 롯데시네마 영등포관이었어. YES24와 롯데시네마가 마련한 ‘작가와의 만남, 아름다운 책 人터뷰’에 초대된 김선우 여신님을 알현했더랬지. 너와 관련된 이야기여서일까. 아, 행복한 시간이었어.
201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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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지오
어쩌다가 네가 한국을 떠난 뒤, 친구들에게 간간이 꽃씨처럼 날리는 메일의 일부를 봤어. 아, 오해는 마. 일부러 훔쳐보려고 한 건 아냐. 넌 날 모를 거야. 우린 서로 얼굴을 마주하진 않았지만, 네가 한국에 있을 때, 같은 공간에서 나도 촛불 들고 있었단다. 음, 그러니까 우린 그렇게 함께 촛불이었어. 이만하면, 네게 편지 정도는 쓸 자격은 되겠지?
네 얘길(『캔들 플라워』(김선우 지음 | 예담 펴냄)) 봤어. 근데, 뜬금없이 한 사람이 갑자기 떠올랐어. 지난해. 나의 집, 내가 있을 곳이라고 노래했던 지구를 떠나 버린 마이클 잭슨. 당연히 알지? 그야말로, ‘it man, it musician’이었던 그의 미완성이었던 마지막 앨범, 도 들어 봤겠지? 그 앨범에 담긴 그의 음성. 흑. 아마도 그의 부재 때문이겠지. 아, 그가 혹은 우리가 애절하고 간절해서 흑…….
「THIS IS IT」, 우리의 마이클은 노래하잖아. “This is it, here I stand / I'm the right of the world, I feel grand / Got this love I can feel/ And I know yes for sure it is real…….”(그래 이거야, 여기 난 서 있어 / 난 세상의 빛이고, 난 당당해 / 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이 있고 / 난 그 사랑이 진짜라는 걸 알 수 있어…….)
우리 마이클이 읊는 시는 또 어때. 「PLANET EARTH」. “Planet Earth, My home, My place / (…) Planet Earth, gentle and blue / with all my heart, I Love you.”(작은 행성 지구, 나의 집, 내가 있을 곳 / (…) 작은 행성 지구, 온화하고 푸르다 / 내 모든 마음을 담아, 너를 사랑해.)
울컥울컥 울먹울먹
이젠 그의 노래를 아무 생각 없이 들을 자신이 없어. 아니, 그럴 수가 없게 됐지. 괜히 들었어, 듣지 말 걸 그랬어, 라고 어깨를 들썩거릴 수도 없지. 이미 내 마음에 그의 부재가 똬리를 튼 이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 미완의 무엇이기 때문일까. ‘당신이 이전에 결코 그에 대해 보지 못했던 것들.’(Like you've never seen him before.)이라고 내걸었던, 마이클이 떠나기 전 기획하고 있었던 공연의 캐치프레이즈. 타살 여부를 떠나, 그는 요절했고, 가깝든 그렇지 않든, 미래를 거세(당)했지. 그렇다고 끝이 아냐. 대신 남은 이들에게 무수한 가능성으로 덧칠할 수 있는 가상의 미래를 안겨 줬잖아. 요절한 천재를 떠올릴 때마다 품게 되는 아이러니.
어떤 연관일까. 우리 마이클과 2008년 우리를 달군 촛불. 굳이 관련성을 찾으라면, 누군가는 각기 다른 해의 6월을 달궜다는 정도를 들지 모르지만, 나는 그래. 촛불은, 우리가 그릴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의 미래를 남겼다는 것. 마이클이 떠난 뒤, 그러했듯, 촛불 역시. 물론, 결정적 차이라면, 촛불은 요절하지 않았지. 우리 안에서 여전히 또 다른 불씨를 지피고 있다(고 믿어).
우리들이 경험했던 그 촛불의 시간. “축제가 된 싸움은 이전의 우리 역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 즐거운 싸움에 누구는 섞이고, 누구는 구경하고, 누구는 욕하고, 어디서는 애가 태어나고, 누군가는 소집을 당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거나 이별을 하는 연인들도 있을 것이었다.”(p.242)
5월 1일 노동절에 태어난 아이, 지오(Geo) 너 역시 그래. 내가 아는 넌 이래. 『캔들 플라워』의 사랑스러운 소녀. “지구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엄마 여신이니까.”(p.26)라며, 자연과 천연의 감각과 감수성을 지닌 생명체. 2008년 한국의 촛불을 경험하고 레인보우로 돌아가 간간이 꽃씨처럼 메일을 날리는 존재. 네 얘길 만난 이들이라면, 아마도, 네 미래를 각자 그려볼 것 같아. 무한대의 가능성으로 점철된 생명의 이야기를. 물론, 당연, 너도 요절하지 않지. 사실 있잖아. 난 무슨 상상도 했는지 알아? 너네 집 멋진 여인들처럼 너도 언젠가 한국과 모종의 블랙 멜로 같은 관계를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아마 그 멜로의 주인공이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땡 잡은 겨. 하하.
넌 감동이었어
네 얘기, 참 뭉클했단다. 열다섯이 된 네가 처음 레인보우를 홀로 떠나, 단독 비행(!)했던 한국에서 머물렀던 시간의 공기를 공유해서일까. 나도 그 시간 돌아보며, 너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바람을 맞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설레는 것 있지? 늙은 노총각이 주책 떤다구 할지 모르겠지만, 뭐 어때. 내 마음이 그런걸. 헤헤.
뭣보다 네가 가진 그 생명력과 감수성이 날 감동시켰어. 아 참, 얘기 안 했지? 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고, 종종 글도 끼적거려. 늦되지만, 꼰대들이나 지구나 생명 따윈 뇌 구조에 입력이 안 된 촌스러운 지배 세력이 꾸역꾸역 주입한 허접한 가치와 삽질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그러니까, 네 친구인 희영이가 덜컥 겁냈던 이런 것들에게서 안녕을 고하고자 하는. “하지만 쥐꼬리만 해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기만 한다면, 한 눈 딱 감고 적응하며 살아지는 게 이 도시의 생존윤리다. 꿈은 어디 있느냐고? 글쎄. 월급 나오는 직장에 붙기만 한다면! (…) 성취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열심히 습관적으로 한다(행복한가 어떤가 따위는 묻지 말 것). 월급의 일부를 꼬박꼬박 저축하며 결혼자금을 만든다. 결혼한다. 아이를 낳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을 향해 장기 도전. 내 집 마련. 아이들은 크고, 다 큰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나는 ‘노약자’가 되어. 죽는다.”(p.37)
조금씩 그런 궤적에서 발 빼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빼야 할 얼룩이 많지. 커피도 그래서 우연히 다가온 선물이었고, “외계에서 온 생명체가 지구의 공기를 처음으로 접한 것처럼. 조심스럽게. 천천히.”(p.13) 삶을 재구성하고 있단다. 너도 경험해 봤겠지만, 한국, 특히 대도시에선 생명(력)이 거의 없어. 좀비나 흡혈귀 같은 악귀들이 판을 치지. 대세지, 대세. 그래서 내 바람 중의 하나는, 지오 너 같은 생명체와 좀 더 교류하고, 얘길 나누는 것. 그런 의미에서 널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니! “은빛 솜털날개를 단 꽃씨가 드넓은 수평 속에 스미듯이. 목적을 미리 정하지 않은. 속도감을 버린 꽃씨의 유영처럼.”(p.14) 그런 생의 속도로 살고 싶은 나에게, 넌 우리 연아보다 더한 청량감을 줬단다. ‘대인배 김슨생’이 들으면 섭섭할 소린가. 하하. 난 좀 그래. “발칙한 것들을 보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p.14)
아, 잡설이 길었네. 그런 생명수 같은 네 얘길 들려준 여신님을 찾아뵙고 왔단다. 지난달 24일, 롯데시네마 영등포관이었어. YES24와 롯데시네마가 마련한 ‘작가와의 만남, 아름다운 책 人터뷰’에 초대된 김선우 여신님을 알현했더랬지. 너와 관련된 이야기여서일까. 아, 행복한 시간이었어. 한번 들어 볼래? 귀 쫑긋 세우고 은하수가 촛불처럼 진을 펼친 네 눈빛이 떠올라. 음, 어린 네겐 이건 좀 느끼한 코멘트군. 그냥 흘려보내. 하하.
지오, 네 얘길(『캔들 플라워』)하게 된 계기는 이랬어
여신님이 원래 쓰고자 했던 것은 여자 3대에 걸친 걸쭉한 연애사. 그러다 진행이 다소 주춤하셨나 봐. ‘내가 원하는 것은 뭐지?’라는 창작자로서의 마음의 상태와 병행해서 또 다른 마음이 진행되셨대. 네가 참여했던 2008년의 촛불집회가 잦아든 뒤 그해 말 사방에서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지.
여신님은 이런 말씀을 하셔. “우리 사회에서 보수나 진보를 얘기하는 단어들에는 허상이 많다. 시쳇말로 쪽팔리는 게 많은 거지. 세계사적 안목에서 우리나라의 좌?우나 보수?진보는 후진 면이 많은 사회랄까. 그것을 전제로 촛불이 가라앉으면서 보수 진영에선 마녀 사냥하듯 비난하고 짓밟고, 이른바 진보 진영에선 이론적 반론들, 즉 어떻게 감성적이었나 등으로 촛불을 비판하면서 운동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이론의 틀로 제시하는 레토릭이 온 거다.”
작가의 말에선 이렇게도 얘기돼. “하나의 사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자연스러운 후대의 몫이겠으나 한편에서는 증오에 가까운 낙인이, 한편에서는 계몽적 언사를 배면에 깐 지식인 담론이 너무도 발 빠르게 넘치더군요.”(p.381)
이렇게 느끼신 거야. “촛불이 잦아들자마자 비난과 비판이, 그 사이에서 우리들 마음속에는 이상하고 기묘한 방식의 패배감이 자라나고 있더라. 가까운 이들, 나 역시도 뭘 배울 것인가가 아직 잘 서지 않을 때, 외부의 비판?비난이 우리 마음을 경색시키면서 ‘뭘 얻었단 말이냐?’와 같은 촛불 후유증이 생겨나더라. 패배감, 무기력감이라고만 얘기하고. 촛불에 대한 냉소가 실체 없는 후유증을 이루는 것을 보고 굉장히 안타까웠다. 우리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긍정적인 고갱이를 가져가려 하지 않고, 그것을 찬밥처럼 만드는 것이 안타까웠다. 살아가기 위한 무기를 왜 폐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언가 속에서 아마 네 얘기도 잉태된 셈이겠지? 글 쓰는 분으로서, 시인의 감성을 지닌 분으로서, 그것을 칼럼이라는 형식으로 소화하기보다 문학적인 질문을 해야겠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발동을 하신 게지. 그런 마음이 들자, 애초에 쓰고자 했던 얘기들이 방향을 틀었고, 촛불이 본격적으로 구상된 거야. 특히 그즈음, 2009년 1월, 한국에선 끔찍한 일이 있었어. 아, 너도 소식 들었구나. 용산 참사라고, 공동체 사회에서 일어나서도 용납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야. “‘생명과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실종된 사건”(p.381)이었지.
그 일 때문에라도, 분발하셨대. 그 일에 무감각해진 우리들 속에서 이걸 빨리 써야겠다는 자각이 들고 맹렬하게 출구를 얻어서! “내가 쓰고 싶어 한 게 이거구나, 미적미적하던 것에 추진력이 생겼고, 본격적으로 디테일을 다듬었다. 여름에 맞춰 인터넷 장(문화웹진 나비 http://nabeeya.yes24.com)이 열렸고 그래서 하게 됐다.”
촛불에서 희망을
너도 알다시피, 촛불은 그랬잖아. 누군가는 ‘광우병 쇠고기 싫어, 안돼!’라며 분노해서, 또 누군가는 그 이면의 제도적 권력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일어나기도 했고. 여러 다양한 의제들 때문에 촛불은 들고 일어났지. 누군가가 단 하나의 슬로건을 제시해서 우~하면서 따라간 게 아니었지. 그래, 촛불의 다양한 분화. “하나의 의제로부터, 마치 아메바가 분열을 시작하면서 젤리처럼 서로의 몸이 떨어져 나오고, 그 몸 하나하나가 다시 불을 붙여 가는 과정이었다. 수직처럼 강제된 의제 없이 저마다의 해석된 가치로 촛불을 이뤘다는 것, 그게 100만이었다는 것. 그게 엄청났다.”
아, 기억이 몽글몽글. 내 옆 친구가 긍정하지 않더라도 통할 수 있는 면이 있었고, 통할 수 있는 면이 같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너와 내가 이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연결돼 있음을 느낀 거잖아. 지오 너와 난 그렇게 연결돼 있었고, 연결돼 있는 것.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과거에도 결코 혼자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결코 혼자이지 않을 것이다. 그 무렵 읽고 있던 산스크리트어 책의 몇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혼자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혼자이지 않을 것이다.’”(p.51)
각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원하는 행복, 자유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음을 확인했었지. “싸우고 있다는 그 마음은, 심장의 언어인 거다. 머리에서 생각하는 연대가 아니라. 누군가 와서 촛불이나 음식 나눠 주는 과정들이 있었고, 이 연대에는 너와 내가 조금씩 달라도 모든 다양성이 허용됐다. 이를 ‘21세기적 생명의 감각’이라고 문어체적으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생명이 가진 말랑말랑하고 적극적인 방식이었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명이 이래야 한다는 굉장히 부드러운 방식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그걸 이렇게도 표현하셨어. “우리 생명의 놀라운 입체성은 저마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공동의 테제 속에서는 함께 슬로건을 가질 수도 있고, 폭력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촛불 모두는 저마다 처한 환경 속에서 자기 문제로부터 출발한, 모든 문제들이 일상의 정치라고 얘기하는, 공존의 가능성을 잃지 않는다면 언제든 연대가 가능하다. 그게 힘이 아녔을까. 심장의 연대, 마음의 연대, 살아있는 생명만이 가능한 연대의 힘을 봤다.” 아, 그 가슴 뛰고 뿌듯했던 일상의 정치. 우리의 연대. “저 구호들. 우리 삶과 직접 연관이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다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 아닌가.”(p.311)
그 속에서 넌 이렇게 잉태됐어
애초 구상했던 여자 3대에 걸친 연애사에서 너도 있었어. 당연히 마리(할머니), 하린(엄마), 너 지오. 그리고 하린의 애인 조안으로. 물론 한국적인 상황과 거리가 있지. 마리는 68혁명 세대의 씩씩한 할머니, 하린은 예술적 감각으로 하나의 마을이 오랜 세월을 두고 가꿔지는 자율적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 넌 그들의 손녀이자 딸. 네가 있는 레인보우도 역시나 애초 구상에 있었고. 사실 이상향처럼 보이는 레인보우도 그래. “모든 이상향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시간과의 투쟁이 있다. 레인보우 마을이 만들어지게 된 얘기들, 마리의 진하고 걸쭉한 연애사부터 삼대에 걸친 여자들의 연애사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아까 말했듯, 촛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원래 생각했던 이 플롯을 접으려 했는데, 네(지오)가 백지에서 탁 튀어 올랐대. ‘나 한국에 가야겠어. 한국에 갈래.’ 역시, 넌 생명력이 넘쳐. 멋져. “생각해보니, 지오를 한국으로 부르면,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사건인 촛불시위를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인 눈을 얻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날 엄청 술을 먹고 즐거움에 몸을 바르르 떨다가 바로 얘기가 진행됐다.(웃음)”
이른바 ‘한국적인 상황’에선 네가 살고 있는 레인보우 공동체가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야. 많은 사람들도 그런 얘길 했나 봐. 아 뭐, 난 부러우면서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하. 여신님도 그러셨어. “전 세계적으로 이런 공동체를 구현하고 사는 소수들이 굉장히 많다. 한국 현실에서 비현실적일 뿐이지, 누군가는 시도하고 있고 실험하고 있는 공동체다. 우리도 할 수 있는 공동체고, 다양한 이념을 갖고 있는 공동체도 많이 알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소박하면서도 정말로 잘 사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실험하는 공동체가 많다.”
너에 대한 고민도 있으셨대. 네가 가진 천연의 감각을 모순 많은 한국 사회에 부딪히게 만들 것이냐, 얼마간 부드럽게 혹은 조금 현실적으로 만들어 줘야 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신 거지. 그러다 내린 결론. 지오 네가 가진 성정 그대로 부딪히게 만들자. 꽝꽝꽝. “여러 가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순, 미학적 모순, 촌스러움 같은 걸 얘기해 주기 위해서 지오의 날것 그대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고집하고 싶었던 건, 네가 결코 비현실적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대. 네가 비현실적이 아니라고 얘기하면, 많은 이들이 ‘꿈 좀 깨세요.’ ‘왜 그리 낭만적이세요.’ 했대. 생각해 보면, 우린 한때 지오 너였어. “우리가 어릴 때, 별이나 바람에게 ‘안녕~’ 하잖아. 그러면 부모는 ‘우리 애가 시인이나 예술가가 될 것 같다.’고 얘기하고. 사람들 속에는 그게 있는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영롱하고 말랑말랑한 감수성이 있다. 세월과 함께 특히 한국 사회는 학교 교육의 시작과 함께 아주 빠르게 망가지니까 문제지. 나이 먹는 건, 기성세대가 되는 과정인 것 같다.”
흑, 눈물 나. 자연의 존재로, 자연의 감성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의 감각으로 살았던 시간이 망가지는 거지. 진짜 ‘철’없는 인간이 되는 거지. 대개의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그 ‘철’과는 반대로 말이야. 그러니까, 지오 넌, 없는 존재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고, 지키지 못한 우리의 존재인 셈이야.
“제가 바깥에서, 한국 사회보다 스트레스가 덜한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 청년에게선 지오 같은 모습을 20~30대에도 유지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 모두에게 숙제로 남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끝까지 주장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언제부터인가 자기의 빛을 잃어 간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타는 순간, 자본이 일상을 짓누르는 순간, 그 모두가 내 속에 있는 지오를 훼손하면서 생존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터프한 과정이 아녔을까. 그럼에도 그런 감각을 회복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노력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노력을 통해 삶의 감각을 찾아가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자기 삶을 깨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말이다. 사회 시스템 자체는 엉망이지만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개인들.”
“‘함께 아픈’ 말간 눈물 속에서 깨끗한 웃음이 무럭무럭 자라난다고 저는 믿는 쪽입니다. 시스템의 타락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려는 개인의 힘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회의 타락은 시스템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힘없는 개인들은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타락해 가기 쉽지만, 스스로를 지키려는 개인의 힘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니까요.”(p.380, 작가의 말 중에서)
너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치시더라
앞선 인터뷰에서 널 ‘이상형’으로 꼽으시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애정이 팍팍!!! 또 너와 내가 있던 그 촛불 현장을 낭독하는 시간도. “5월29일. 결국 장관 고시가 강행된 날이었다. 오후 4시. 분꽃이 피는 시간이었다…”(p.165)로 시작해서, “다음 순간 시위대에서 ‘노래해! 노래해!’ 구호가 터져 나왔다.”(p.169)까지. 아울러 ‘단편선’이라는 민중 음악계의 총아이자 『요새 젊은 것들』의 공동 저자가 『캔들 플라워』라는 곡을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어. 곡 만들고 공식 석상에서 첫 연주였다지. 흠. 낭독과 어우러진 멋진 연주와 노래.
다른 인물들 얘기도 좀 할까
우선 희영-동수 커플이 촛불 현장에서 다시 만나 모텔에서 서로를 보듬고 감싸 안은 뒤, 촛불 2개를 창틀에 세워 놓잖아. 그걸 본 다른 촛불들이 환호하고. 물론 어떤 분들은 그 장면이 불편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 부분은 사족이 아니냐는 얘길, 한 선배에게 들은 적도 있다고 하시더라. 물론 여신님은 그 장면이 필요한 장면이라 생각하셨다지. 그 모텔이 위치한 광화문 새문안 교회 뒤쪽은 격렬한 싸움이 있던 골목이었지. 만나게 하고 싶으셨대. 바깥엔 여러 촛불이 있고, 장소를 달리해 모텔에도 촛불이 있는 것.
“두 촛불을 켜 놓는 순간, 거리에서 어떤 반응이 일까, 궁금했다. 예전 80년대 같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장면이고 맞아 죽어야 하는 장면이다.(웃음) 투쟁 현장에서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긴데, 2000년대의 촛불들은 박수 치고 환호한다. ‘우리 몫까지 사랑하세요.’라며. 이것이 내가 느낀 촛불 마음의 한 면이다. 거리에서 싸우는 것도, 잘살아 가려고 싸우는 것 아닌가. 보다 행복하게 살려는데, 그것을 막는 시스템 때문에 화가 나서 광장에 모였던 거잖아. 희영이는 흠칫하면서 어떻게 반응할지 두려운데, 뜻밖에 촛불의 박수와 환호가 터지면 좋겠다, 이러면서 썼다.”
그리고 보수 신문의 이지훈 기자. 가장 아쉬움이 많은 인물이래. 작가로서 그 인물의 형상화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고. 아마 네게 꽤 많은 공력을 쏟아 부은 탓일까. 하하. 애초 그를 입체적이고 디테일하게 다루고 싶으셨대. 그저 쉽게 ‘쳐 죽일 보수 신문(아마, ‘진짜’ 보수라기보단 ‘수구 꼴통’에 가까운 신문이겠지만)의 기자’라고만 하면, 서로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데 그러면 전체 맥락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고, 분량이 훨씬 더 길어질 것 같아 욕심을 접으셨대. “왜 보수 신문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길(기사를) 만들면서 사는지, 갈등은 없는지, 그것까지 살피는 것이 문학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우리 모두는 변화 가능한 몸과 마음의 상태를 갖고 있다. 악인이라고 ‘아웃’ 해 버리면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없어지는 거다. 문학은 천인공노할 놈에게도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과 이유가 있음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쉽게 단정 내리고 재단하지 않기. “우리 사회가 한 발짝이라도 좋아지려면 조선일보를 40년 동안 본 독자를 움직이는 거다. 진보 흐름이 어떻게 형성되고, 우리 청년이 어떤 상황인지, 변화한 우리 지형을 공감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청중 100명만큼 중요한 것이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1명이 함께 사회에 대해 물어보고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문화 예술의 중요한 몫이다. 가장 나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와 관점으로 쉽게 재단하려는 자세다. 우리는 누구나 변화 가능하고 변화의 선상에 있다.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건강한 방향으로 스스로를 가져가고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로 가꿔 가느냐에 관건이 있지, 결정론적인 사고방식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한다.”
“가장 기쁠 수 있는 방식으로 잘 존재하기를”
어쩌다보니, 너에게 보내는 첫 편지가 길었네. 물론 넌 한글을 읽을 수 있으니, 번역과 같은 도움은 필요 없겠지? 읽어 줘서 고맙고, 선우 여신님이 언급했듯, 감사는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주어야 하는 감사. 새로운 틈을 만나려는, 생명에 가깝게 가려는 우리 모두의 몫. 너도 가장 기쁠 수 있는 방식으로 잘 존재하길 바라. 나도 언젠가 너를 비롯해 마리, 하린, 조안이 있는 레인보우에 가서 네가 한국에서 찍어 간 사진들을 전시한 도서관 갤러리도 구경하고, 알몸으로 레인보우 마운틴에도 올라가 춤을 추고 싶다! “알몸일 때 우린 가장 강력해지거든.”(p.367)
뜬금없지만, 우리 연아가 널 만나면 참 좋겠는데. 하하. 얼마 전 끝난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여신다운 예술적 몸놀림을 보여 줬거든. 국가나 부모도 아니요, 자신과 즐거움을 위해 피겨를 탄 그녀가 널 만났다면 죽이 잘 맞을 것 같아서. 물론 일부러 보진 않았겠지? 네가 있는 캐나다의 밴쿠버 섬의 서해안 마을은 올림픽이 열린 밴쿠버에서도 7시간 반을 가야 한다니. 아, 연아와 지오의 만남. 아깝다. 아마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몹쓸 가치의 노예로 살지 않을 너희들. 다른 이들에게도 너희들이 지닌 그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려 주라. 나같이 꼰대화되어 가는 인간에겐 더더욱. “얘들아. 산다는 건 꿈꾼다는 거잖아. 꿈이 없으면 좀비지.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삶이 대체 언제 행복해진단 말야? 학교가 답답하니? 시험지옥이 끔찍하니? 그럼, 짱돌을 들어라. 꼰대어른들에게 기대 걸지 말아라. (…) 너희는 저질러도 돼. 너희가 들면 짱돌도 꽃이 된다. 그게 십대의 권리야. 너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 얘들아 절대 노예로 살지 마라.”(p.194)
슬슬, 마무릴 해야지. 어디였더라. 이런 말을 들었어.(사실은 읽었지.)
그랬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크게 울 줄 알고
누구보다 견디고 버틸 줄 알며
누구보다 정당하게 분노할 줄 알고
누구보다 싸울 줄 알며
누구보다 용서할 줄 아는.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누구보다’랄 것은 없지만, 우리의 촛불이 그랬던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아직 우리에게 촛불은 꺼지지 않은 가치, 아니겠어? “전체 집회는 끝났지만 내 집회는 아직 안 끝났어요. 내가 들고 있는 이 촛불이 꺼지면 들어갈 겁니다.”(p.213) 이 엄혹한 세상, 아주 티끌만치라도 덜 슬프게 만드는 데 일조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족하고, 유투의 보노가 일구는 근사한 기획 같은 것에도 힘이 된다면 보태고 싶어. “멋진 아티스트.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근사한 일들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보노 좋아!”(p.80) 난 이 말을 믿거든.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않다면 어느 한쪽도 자유로울 수 없는 거니까요. 어느 한쪽이 고통 받는 일이 있다면 그건 진정한 자유가 아닌 거지요.”(p.379, 작가의 말 중에서)
아, 그리고 잊지 못할 사건. 아니, 잊을 수 없을 거야. 선우 여신님이 건네 준, 책에 적어 준, 그 씨앗들. 다시 여신님을 만나볼 수 없을지라도, 그 한순간의 기억만으로도 생은 때론 행복할 수 있는 거. 누군가에게, 그날은 여느 하루 중의 하나여도, 내겐 오직 하루뿐일 특별한 날인 그런. 그날의 공기, 그날의 기분, 나의 DNA에 저장된 그날 하루. 생은 그런 것 아니겠어. 음하하.
준수님.
꿈꾸는 촛불나무!
수처작주 입처개진!
그래도 말이야. 뵙는 것만으로 족할 줄 알았더니, 그렇진 않더라. 언젠가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드리고픈 그런 생각도 들었어. 아마 선우 여신님께 내가 만든 커피 한 잔을 대접이라도 하게 될라치면, 난 심장이 터져 죽고 말지도 몰라. 심장의 연대를 하기도 전에 말이지. 하하. 지오, 네게도 언젠가 공정 무역 커피를 한 잔 만들어 주고 싶은걸. 마이클 잭슨의 노랠 들으며, 커피 한 잔으로 연결된 세계를 생각하며. 참, 내가 일하는 카페 이름이 ‘카페 레인보우’란다. 재미난 우연이지? 곧 5월~6월이 되면 네 생각도 날 것 같아. 노동절(5월 1일)에 태어나, 열다섯 살이 된 그날에 첫 단독 비행을 해서, 광주민주화운동일(5월 18일)에 희영, 연우, 수아, 사과와 독수리 5형제 파티를 가졌으며, 6?10민주항쟁일(6월 10일)에 촛불 문화제의 최절정을 경험한 너를.
이만 접을게. 안녕, 나의 작은 여신님, 지오. 사랑해, 우리들.
Planet Earth, gentle and blue with all my heart, I Love you.
어쩌다가 네가 한국을 떠난 뒤, 친구들에게 간간이 꽃씨처럼 날리는 메일의 일부를 봤어. 아, 오해는 마. 일부러 훔쳐보려고 한 건 아냐. 넌 날 모를 거야. 우린 서로 얼굴을 마주하진 않았지만, 네가 한국에 있을 때, 같은 공간에서 나도 촛불 들고 있었단다. 음, 그러니까 우린 그렇게 함께 촛불이었어. 이만하면, 네게 편지 정도는 쓸 자격은 되겠지?
「THIS IS IT」, 우리의 마이클은 노래하잖아. “This is it, here I stand / I'm the right of the world, I feel grand / Got this love I can feel/ And I know yes for sure it is real…….”(그래 이거야, 여기 난 서 있어 / 난 세상의 빛이고, 난 당당해 / 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이 있고 / 난 그 사랑이 진짜라는 걸 알 수 있어…….)
우리 마이클이 읊는 시는 또 어때. 「PLANET EARTH」. “Planet Earth, My home, My place / (…) Planet Earth, gentle and blue / with all my heart, I Love you.”(작은 행성 지구, 나의 집, 내가 있을 곳 / (…) 작은 행성 지구, 온화하고 푸르다 / 내 모든 마음을 담아, 너를 사랑해.)
울컥울컥 울먹울먹
이젠 그의 노래를 아무 생각 없이 들을 자신이 없어. 아니, 그럴 수가 없게 됐지. 괜히 들었어, 듣지 말 걸 그랬어, 라고 어깨를 들썩거릴 수도 없지. 이미 내 마음에 그의 부재가 똬리를 튼 이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 미완의 무엇이기 때문일까. ‘당신이 이전에 결코 그에 대해 보지 못했던 것들.’(Like you've never seen him before.)이라고 내걸었던, 마이클이 떠나기 전 기획하고 있었던 공연의 캐치프레이즈. 타살 여부를 떠나, 그는 요절했고, 가깝든 그렇지 않든, 미래를 거세(당)했지. 그렇다고 끝이 아냐. 대신 남은 이들에게 무수한 가능성으로 덧칠할 수 있는 가상의 미래를 안겨 줬잖아. 요절한 천재를 떠올릴 때마다 품게 되는 아이러니.
어떤 연관일까. 우리 마이클과 2008년 우리를 달군 촛불. 굳이 관련성을 찾으라면, 누군가는 각기 다른 해의 6월을 달궜다는 정도를 들지 모르지만, 나는 그래. 촛불은, 우리가 그릴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의 미래를 남겼다는 것. 마이클이 떠난 뒤, 그러했듯, 촛불 역시. 물론, 결정적 차이라면, 촛불은 요절하지 않았지. 우리 안에서 여전히 또 다른 불씨를 지피고 있다(고 믿어).
우리들이 경험했던 그 촛불의 시간. “축제가 된 싸움은 이전의 우리 역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 즐거운 싸움에 누구는 섞이고, 누구는 구경하고, 누구는 욕하고, 어디서는 애가 태어나고, 누군가는 소집을 당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거나 이별을 하는 연인들도 있을 것이었다.”(p.242)
5월 1일 노동절에 태어난 아이, 지오(Geo) 너 역시 그래. 내가 아는 넌 이래. 『캔들 플라워』의 사랑스러운 소녀. “지구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엄마 여신이니까.”(p.26)라며, 자연과 천연의 감각과 감수성을 지닌 생명체. 2008년 한국의 촛불을 경험하고 레인보우로 돌아가 간간이 꽃씨처럼 메일을 날리는 존재. 네 얘길 만난 이들이라면, 아마도, 네 미래를 각자 그려볼 것 같아. 무한대의 가능성으로 점철된 생명의 이야기를. 물론, 당연, 너도 요절하지 않지. 사실 있잖아. 난 무슨 상상도 했는지 알아? 너네 집 멋진 여인들처럼 너도 언젠가 한국과 모종의 블랙 멜로 같은 관계를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아마 그 멜로의 주인공이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땡 잡은 겨. 하하.
넌 감동이었어
네 얘기, 참 뭉클했단다. 열다섯이 된 네가 처음 레인보우를 홀로 떠나, 단독 비행(!)했던 한국에서 머물렀던 시간의 공기를 공유해서일까. 나도 그 시간 돌아보며, 너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바람을 맞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설레는 것 있지? 늙은 노총각이 주책 떤다구 할지 모르겠지만, 뭐 어때. 내 마음이 그런걸. 헤헤.
뭣보다 네가 가진 그 생명력과 감수성이 날 감동시켰어. 아 참, 얘기 안 했지? 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고, 종종 글도 끼적거려. 늦되지만, 꼰대들이나 지구나 생명 따윈 뇌 구조에 입력이 안 된 촌스러운 지배 세력이 꾸역꾸역 주입한 허접한 가치와 삽질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그러니까, 네 친구인 희영이가 덜컥 겁냈던 이런 것들에게서 안녕을 고하고자 하는. “하지만 쥐꼬리만 해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기만 한다면, 한 눈 딱 감고 적응하며 살아지는 게 이 도시의 생존윤리다. 꿈은 어디 있느냐고? 글쎄. 월급 나오는 직장에 붙기만 한다면! (…) 성취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열심히 습관적으로 한다(행복한가 어떤가 따위는 묻지 말 것). 월급의 일부를 꼬박꼬박 저축하며 결혼자금을 만든다. 결혼한다. 아이를 낳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을 향해 장기 도전. 내 집 마련. 아이들은 크고, 다 큰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나는 ‘노약자’가 되어. 죽는다.”(p.37)
조금씩 그런 궤적에서 발 빼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빼야 할 얼룩이 많지. 커피도 그래서 우연히 다가온 선물이었고, “외계에서 온 생명체가 지구의 공기를 처음으로 접한 것처럼. 조심스럽게. 천천히.”(p.13) 삶을 재구성하고 있단다. 너도 경험해 봤겠지만, 한국, 특히 대도시에선 생명(력)이 거의 없어. 좀비나 흡혈귀 같은 악귀들이 판을 치지. 대세지, 대세. 그래서 내 바람 중의 하나는, 지오 너 같은 생명체와 좀 더 교류하고, 얘길 나누는 것. 그런 의미에서 널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니! “은빛 솜털날개를 단 꽃씨가 드넓은 수평 속에 스미듯이. 목적을 미리 정하지 않은. 속도감을 버린 꽃씨의 유영처럼.”(p.14) 그런 생의 속도로 살고 싶은 나에게, 넌 우리 연아보다 더한 청량감을 줬단다. ‘대인배 김슨생’이 들으면 섭섭할 소린가. 하하. 난 좀 그래. “발칙한 것들을 보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p.14)
아, 잡설이 길었네. 그런 생명수 같은 네 얘길 들려준 여신님을 찾아뵙고 왔단다. 지난달 24일, 롯데시네마 영등포관이었어. YES24와 롯데시네마가 마련한 ‘작가와의 만남, 아름다운 책 人터뷰’에 초대된 김선우 여신님을 알현했더랬지. 너와 관련된 이야기여서일까. 아, 행복한 시간이었어. 한번 들어 볼래? 귀 쫑긋 세우고 은하수가 촛불처럼 진을 펼친 네 눈빛이 떠올라. 음, 어린 네겐 이건 좀 느끼한 코멘트군. 그냥 흘려보내. 하하.
지오, 네 얘길(『캔들 플라워』)하게 된 계기는 이랬어
여신님이 원래 쓰고자 했던 것은 여자 3대에 걸친 걸쭉한 연애사. 그러다 진행이 다소 주춤하셨나 봐. ‘내가 원하는 것은 뭐지?’라는 창작자로서의 마음의 상태와 병행해서 또 다른 마음이 진행되셨대. 네가 참여했던 2008년의 촛불집회가 잦아든 뒤 그해 말 사방에서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지.
여신님은 이런 말씀을 하셔. “우리 사회에서 보수나 진보를 얘기하는 단어들에는 허상이 많다. 시쳇말로 쪽팔리는 게 많은 거지. 세계사적 안목에서 우리나라의 좌?우나 보수?진보는 후진 면이 많은 사회랄까. 그것을 전제로 촛불이 가라앉으면서 보수 진영에선 마녀 사냥하듯 비난하고 짓밟고, 이른바 진보 진영에선 이론적 반론들, 즉 어떻게 감성적이었나 등으로 촛불을 비판하면서 운동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이론의 틀로 제시하는 레토릭이 온 거다.”
작가의 말에선 이렇게도 얘기돼. “하나의 사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자연스러운 후대의 몫이겠으나 한편에서는 증오에 가까운 낙인이, 한편에서는 계몽적 언사를 배면에 깐 지식인 담론이 너무도 발 빠르게 넘치더군요.”(p.381)
이렇게 느끼신 거야. “촛불이 잦아들자마자 비난과 비판이, 그 사이에서 우리들 마음속에는 이상하고 기묘한 방식의 패배감이 자라나고 있더라. 가까운 이들, 나 역시도 뭘 배울 것인가가 아직 잘 서지 않을 때, 외부의 비판?비난이 우리 마음을 경색시키면서 ‘뭘 얻었단 말이냐?’와 같은 촛불 후유증이 생겨나더라. 패배감, 무기력감이라고만 얘기하고. 촛불에 대한 냉소가 실체 없는 후유증을 이루는 것을 보고 굉장히 안타까웠다. 우리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긍정적인 고갱이를 가져가려 하지 않고, 그것을 찬밥처럼 만드는 것이 안타까웠다. 살아가기 위한 무기를 왜 폐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언가 속에서 아마 네 얘기도 잉태된 셈이겠지? 글 쓰는 분으로서, 시인의 감성을 지닌 분으로서, 그것을 칼럼이라는 형식으로 소화하기보다 문학적인 질문을 해야겠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발동을 하신 게지. 그런 마음이 들자, 애초에 쓰고자 했던 얘기들이 방향을 틀었고, 촛불이 본격적으로 구상된 거야. 특히 그즈음, 2009년 1월, 한국에선 끔찍한 일이 있었어. 아, 너도 소식 들었구나. 용산 참사라고, 공동체 사회에서 일어나서도 용납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야. “‘생명과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실종된 사건”(p.381)이었지.
그 일 때문에라도, 분발하셨대. 그 일에 무감각해진 우리들 속에서 이걸 빨리 써야겠다는 자각이 들고 맹렬하게 출구를 얻어서! “내가 쓰고 싶어 한 게 이거구나, 미적미적하던 것에 추진력이 생겼고, 본격적으로 디테일을 다듬었다. 여름에 맞춰 인터넷 장(문화웹진 나비 http://nabeeya.yes24.com)이 열렸고 그래서 하게 됐다.”
촛불에서 희망을
너도 알다시피, 촛불은 그랬잖아. 누군가는 ‘광우병 쇠고기 싫어, 안돼!’라며 분노해서, 또 누군가는 그 이면의 제도적 권력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일어나기도 했고. 여러 다양한 의제들 때문에 촛불은 들고 일어났지. 누군가가 단 하나의 슬로건을 제시해서 우~하면서 따라간 게 아니었지. 그래, 촛불의 다양한 분화. “하나의 의제로부터, 마치 아메바가 분열을 시작하면서 젤리처럼 서로의 몸이 떨어져 나오고, 그 몸 하나하나가 다시 불을 붙여 가는 과정이었다. 수직처럼 강제된 의제 없이 저마다의 해석된 가치로 촛불을 이뤘다는 것, 그게 100만이었다는 것. 그게 엄청났다.”
아, 기억이 몽글몽글. 내 옆 친구가 긍정하지 않더라도 통할 수 있는 면이 있었고, 통할 수 있는 면이 같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너와 내가 이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연결돼 있음을 느낀 거잖아. 지오 너와 난 그렇게 연결돼 있었고, 연결돼 있는 것.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과거에도 결코 혼자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결코 혼자이지 않을 것이다. 그 무렵 읽고 있던 산스크리트어 책의 몇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혼자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혼자이지 않을 것이다.’”(p.51)
각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원하는 행복, 자유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음을 확인했었지. “싸우고 있다는 그 마음은, 심장의 언어인 거다. 머리에서 생각하는 연대가 아니라. 누군가 와서 촛불이나 음식 나눠 주는 과정들이 있었고, 이 연대에는 너와 내가 조금씩 달라도 모든 다양성이 허용됐다. 이를 ‘21세기적 생명의 감각’이라고 문어체적으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생명이 가진 말랑말랑하고 적극적인 방식이었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명이 이래야 한다는 굉장히 부드러운 방식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그걸 이렇게도 표현하셨어. “우리 생명의 놀라운 입체성은 저마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공동의 테제 속에서는 함께 슬로건을 가질 수도 있고, 폭력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촛불 모두는 저마다 처한 환경 속에서 자기 문제로부터 출발한, 모든 문제들이 일상의 정치라고 얘기하는, 공존의 가능성을 잃지 않는다면 언제든 연대가 가능하다. 그게 힘이 아녔을까. 심장의 연대, 마음의 연대, 살아있는 생명만이 가능한 연대의 힘을 봤다.” 아, 그 가슴 뛰고 뿌듯했던 일상의 정치. 우리의 연대. “저 구호들. 우리 삶과 직접 연관이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다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 아닌가.”(p.311)
그 속에서 넌 이렇게 잉태됐어
애초 구상했던 여자 3대에 걸친 연애사에서 너도 있었어. 당연히 마리(할머니), 하린(엄마), 너 지오. 그리고 하린의 애인 조안으로. 물론 한국적인 상황과 거리가 있지. 마리는 68혁명 세대의 씩씩한 할머니, 하린은 예술적 감각으로 하나의 마을이 오랜 세월을 두고 가꿔지는 자율적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 넌 그들의 손녀이자 딸. 네가 있는 레인보우도 역시나 애초 구상에 있었고. 사실 이상향처럼 보이는 레인보우도 그래. “모든 이상향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시간과의 투쟁이 있다. 레인보우 마을이 만들어지게 된 얘기들, 마리의 진하고 걸쭉한 연애사부터 삼대에 걸친 여자들의 연애사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아까 말했듯, 촛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원래 생각했던 이 플롯을 접으려 했는데, 네(지오)가 백지에서 탁 튀어 올랐대. ‘나 한국에 가야겠어. 한국에 갈래.’ 역시, 넌 생명력이 넘쳐. 멋져. “생각해보니, 지오를 한국으로 부르면,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사건인 촛불시위를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인 눈을 얻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날 엄청 술을 먹고 즐거움에 몸을 바르르 떨다가 바로 얘기가 진행됐다.(웃음)”
이른바 ‘한국적인 상황’에선 네가 살고 있는 레인보우 공동체가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야. 많은 사람들도 그런 얘길 했나 봐. 아 뭐, 난 부러우면서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하. 여신님도 그러셨어. “전 세계적으로 이런 공동체를 구현하고 사는 소수들이 굉장히 많다. 한국 현실에서 비현실적일 뿐이지, 누군가는 시도하고 있고 실험하고 있는 공동체다. 우리도 할 수 있는 공동체고, 다양한 이념을 갖고 있는 공동체도 많이 알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소박하면서도 정말로 잘 사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실험하는 공동체가 많다.”
너에 대한 고민도 있으셨대. 네가 가진 천연의 감각을 모순 많은 한국 사회에 부딪히게 만들 것이냐, 얼마간 부드럽게 혹은 조금 현실적으로 만들어 줘야 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신 거지. 그러다 내린 결론. 지오 네가 가진 성정 그대로 부딪히게 만들자. 꽝꽝꽝. “여러 가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순, 미학적 모순, 촌스러움 같은 걸 얘기해 주기 위해서 지오의 날것 그대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고집하고 싶었던 건, 네가 결코 비현실적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대. 네가 비현실적이 아니라고 얘기하면, 많은 이들이 ‘꿈 좀 깨세요.’ ‘왜 그리 낭만적이세요.’ 했대. 생각해 보면, 우린 한때 지오 너였어. “우리가 어릴 때, 별이나 바람에게 ‘안녕~’ 하잖아. 그러면 부모는 ‘우리 애가 시인이나 예술가가 될 것 같다.’고 얘기하고. 사람들 속에는 그게 있는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영롱하고 말랑말랑한 감수성이 있다. 세월과 함께 특히 한국 사회는 학교 교육의 시작과 함께 아주 빠르게 망가지니까 문제지. 나이 먹는 건, 기성세대가 되는 과정인 것 같다.”
흑, 눈물 나. 자연의 존재로, 자연의 감성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의 감각으로 살았던 시간이 망가지는 거지. 진짜 ‘철’없는 인간이 되는 거지. 대개의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그 ‘철’과는 반대로 말이야. 그러니까, 지오 넌, 없는 존재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고, 지키지 못한 우리의 존재인 셈이야.
“제가 바깥에서, 한국 사회보다 스트레스가 덜한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 청년에게선 지오 같은 모습을 20~30대에도 유지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 모두에게 숙제로 남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끝까지 주장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언제부터인가 자기의 빛을 잃어 간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타는 순간, 자본이 일상을 짓누르는 순간, 그 모두가 내 속에 있는 지오를 훼손하면서 생존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터프한 과정이 아녔을까. 그럼에도 그런 감각을 회복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노력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노력을 통해 삶의 감각을 찾아가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자기 삶을 깨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말이다. 사회 시스템 자체는 엉망이지만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개인들.”
“‘함께 아픈’ 말간 눈물 속에서 깨끗한 웃음이 무럭무럭 자라난다고 저는 믿는 쪽입니다. 시스템의 타락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려는 개인의 힘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회의 타락은 시스템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힘없는 개인들은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타락해 가기 쉽지만, 스스로를 지키려는 개인의 힘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니까요.”(p.380, 작가의 말 중에서)
너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치시더라
앞선 인터뷰에서 널 ‘이상형’으로 꼽으시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애정이 팍팍!!! 또 너와 내가 있던 그 촛불 현장을 낭독하는 시간도. “5월29일. 결국 장관 고시가 강행된 날이었다. 오후 4시. 분꽃이 피는 시간이었다…”(p.165)로 시작해서, “다음 순간 시위대에서 ‘노래해! 노래해!’ 구호가 터져 나왔다.”(p.169)까지. 아울러 ‘단편선’이라는 민중 음악계의 총아이자 『요새 젊은 것들』의 공동 저자가 『캔들 플라워』라는 곡을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어. 곡 만들고 공식 석상에서 첫 연주였다지. 흠. 낭독과 어우러진 멋진 연주와 노래.
다른 인물들 얘기도 좀 할까
우선 희영-동수 커플이 촛불 현장에서 다시 만나 모텔에서 서로를 보듬고 감싸 안은 뒤, 촛불 2개를 창틀에 세워 놓잖아. 그걸 본 다른 촛불들이 환호하고. 물론 어떤 분들은 그 장면이 불편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 부분은 사족이 아니냐는 얘길, 한 선배에게 들은 적도 있다고 하시더라. 물론 여신님은 그 장면이 필요한 장면이라 생각하셨다지. 그 모텔이 위치한 광화문 새문안 교회 뒤쪽은 격렬한 싸움이 있던 골목이었지. 만나게 하고 싶으셨대. 바깥엔 여러 촛불이 있고, 장소를 달리해 모텔에도 촛불이 있는 것.
“두 촛불을 켜 놓는 순간, 거리에서 어떤 반응이 일까, 궁금했다. 예전 80년대 같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장면이고 맞아 죽어야 하는 장면이다.(웃음) 투쟁 현장에서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긴데, 2000년대의 촛불들은 박수 치고 환호한다. ‘우리 몫까지 사랑하세요.’라며. 이것이 내가 느낀 촛불 마음의 한 면이다. 거리에서 싸우는 것도, 잘살아 가려고 싸우는 것 아닌가. 보다 행복하게 살려는데, 그것을 막는 시스템 때문에 화가 나서 광장에 모였던 거잖아. 희영이는 흠칫하면서 어떻게 반응할지 두려운데, 뜻밖에 촛불의 박수와 환호가 터지면 좋겠다, 이러면서 썼다.”
그리고 보수 신문의 이지훈 기자. 가장 아쉬움이 많은 인물이래. 작가로서 그 인물의 형상화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고. 아마 네게 꽤 많은 공력을 쏟아 부은 탓일까. 하하. 애초 그를 입체적이고 디테일하게 다루고 싶으셨대. 그저 쉽게 ‘쳐 죽일 보수 신문(아마, ‘진짜’ 보수라기보단 ‘수구 꼴통’에 가까운 신문이겠지만)의 기자’라고만 하면, 서로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데 그러면 전체 맥락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고, 분량이 훨씬 더 길어질 것 같아 욕심을 접으셨대. “왜 보수 신문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길(기사를) 만들면서 사는지, 갈등은 없는지, 그것까지 살피는 것이 문학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우리 모두는 변화 가능한 몸과 마음의 상태를 갖고 있다. 악인이라고 ‘아웃’ 해 버리면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없어지는 거다. 문학은 천인공노할 놈에게도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과 이유가 있음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쉽게 단정 내리고 재단하지 않기. “우리 사회가 한 발짝이라도 좋아지려면 조선일보를 40년 동안 본 독자를 움직이는 거다. 진보 흐름이 어떻게 형성되고, 우리 청년이 어떤 상황인지, 변화한 우리 지형을 공감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청중 100명만큼 중요한 것이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1명이 함께 사회에 대해 물어보고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문화 예술의 중요한 몫이다. 가장 나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와 관점으로 쉽게 재단하려는 자세다. 우리는 누구나 변화 가능하고 변화의 선상에 있다.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건강한 방향으로 스스로를 가져가고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로 가꿔 가느냐에 관건이 있지, 결정론적인 사고방식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한다.”
“가장 기쁠 수 있는 방식으로 잘 존재하기를”
어쩌다보니, 너에게 보내는 첫 편지가 길었네. 물론 넌 한글을 읽을 수 있으니, 번역과 같은 도움은 필요 없겠지? 읽어 줘서 고맙고, 선우 여신님이 언급했듯, 감사는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주어야 하는 감사. 새로운 틈을 만나려는, 생명에 가깝게 가려는 우리 모두의 몫. 너도 가장 기쁠 수 있는 방식으로 잘 존재하길 바라. 나도 언젠가 너를 비롯해 마리, 하린, 조안이 있는 레인보우에 가서 네가 한국에서 찍어 간 사진들을 전시한 도서관 갤러리도 구경하고, 알몸으로 레인보우 마운틴에도 올라가 춤을 추고 싶다! “알몸일 때 우린 가장 강력해지거든.”(p.367)
뜬금없지만, 우리 연아가 널 만나면 참 좋겠는데. 하하. 얼마 전 끝난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여신다운 예술적 몸놀림을 보여 줬거든. 국가나 부모도 아니요, 자신과 즐거움을 위해 피겨를 탄 그녀가 널 만났다면 죽이 잘 맞을 것 같아서. 물론 일부러 보진 않았겠지? 네가 있는 캐나다의 밴쿠버 섬의 서해안 마을은 올림픽이 열린 밴쿠버에서도 7시간 반을 가야 한다니. 아, 연아와 지오의 만남. 아깝다. 아마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몹쓸 가치의 노예로 살지 않을 너희들. 다른 이들에게도 너희들이 지닌 그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려 주라. 나같이 꼰대화되어 가는 인간에겐 더더욱. “얘들아. 산다는 건 꿈꾼다는 거잖아. 꿈이 없으면 좀비지.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삶이 대체 언제 행복해진단 말야? 학교가 답답하니? 시험지옥이 끔찍하니? 그럼, 짱돌을 들어라. 꼰대어른들에게 기대 걸지 말아라. (…) 너희는 저질러도 돼. 너희가 들면 짱돌도 꽃이 된다. 그게 십대의 권리야. 너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 얘들아 절대 노예로 살지 마라.”(p.194)
슬슬, 마무릴 해야지. 어디였더라. 이런 말을 들었어.(사실은 읽었지.)
그랬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크게 울 줄 알고
누구보다 견디고 버틸 줄 알며
누구보다 정당하게 분노할 줄 알고
누구보다 싸울 줄 알며
누구보다 용서할 줄 아는.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누구보다’랄 것은 없지만, 우리의 촛불이 그랬던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아직 우리에게 촛불은 꺼지지 않은 가치, 아니겠어? “전체 집회는 끝났지만 내 집회는 아직 안 끝났어요. 내가 들고 있는 이 촛불이 꺼지면 들어갈 겁니다.”(p.213) 이 엄혹한 세상, 아주 티끌만치라도 덜 슬프게 만드는 데 일조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족하고, 유투의 보노가 일구는 근사한 기획 같은 것에도 힘이 된다면 보태고 싶어. “멋진 아티스트.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근사한 일들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보노 좋아!”(p.80) 난 이 말을 믿거든.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않다면 어느 한쪽도 자유로울 수 없는 거니까요. 어느 한쪽이 고통 받는 일이 있다면 그건 진정한 자유가 아닌 거지요.”(p.379, 작가의 말 중에서)
아, 그리고 잊지 못할 사건. 아니, 잊을 수 없을 거야. 선우 여신님이 건네 준, 책에 적어 준, 그 씨앗들. 다시 여신님을 만나볼 수 없을지라도, 그 한순간의 기억만으로도 생은 때론 행복할 수 있는 거. 누군가에게, 그날은 여느 하루 중의 하나여도, 내겐 오직 하루뿐일 특별한 날인 그런. 그날의 공기, 그날의 기분, 나의 DNA에 저장된 그날 하루. 생은 그런 것 아니겠어. 음하하.
꿈꾸는 촛불나무!
수처작주 입처개진!
그래도 말이야. 뵙는 것만으로 족할 줄 알았더니, 그렇진 않더라. 언젠가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드리고픈 그런 생각도 들었어. 아마 선우 여신님께 내가 만든 커피 한 잔을 대접이라도 하게 될라치면, 난 심장이 터져 죽고 말지도 몰라. 심장의 연대를 하기도 전에 말이지. 하하. 지오, 네게도 언젠가 공정 무역 커피를 한 잔 만들어 주고 싶은걸. 마이클 잭슨의 노랠 들으며, 커피 한 잔으로 연결된 세계를 생각하며. 참, 내가 일하는 카페 이름이 ‘카페 레인보우’란다. 재미난 우연이지? 곧 5월~6월이 되면 네 생각도 날 것 같아. 노동절(5월 1일)에 태어나, 열다섯 살이 된 그날에 첫 단독 비행을 해서, 광주민주화운동일(5월 18일)에 희영, 연우, 수아, 사과와 독수리 5형제 파티를 가졌으며, 6?10민주항쟁일(6월 10일)에 촛불 문화제의 최절정을 경험한 너를.
이만 접을게. 안녕, 나의 작은 여신님, 지오. 사랑해, 우리들.
Planet Earth, gentle and blue with all my heart,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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